꽃기린
이연례
위쪽의 공기는 어떨까
긴 목 빼고 위를 향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빙글빙글 돌려가며 가시 세우고
조금씩 조금씩 야성을 찾아간다
황량한 사막에서 척박한 여건 견디며
한 방울 이슬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긴 기억
시간이 흐르고 꽃피운 청춘을 노래한다
먼 이국에 뿌리박고 고향으로 삼아
쓸쓸한 미소 속 목마름도 견디며
꽃기린
고난의 깊이를 간직한다
섬사람들
지척에 두고도 머나먼 길
바라만 보면서 가슴앓이하던 곳
그저 마음 안에 간직하고
무사 안녕을 빌던 가깝고도 먼 길
세월이 흘러 막힌 곳 뚫리듯
하나하나 가슴을 열고
두 팔 벌려 꼬옥 끌어안는다
섬과 섬끼리 이리 가까운 길을
마주 보고만 살았구나
훨훨 날고 싶은 꿈만 가지고 살았구나
밤낮 구별이 사라지고 날짜의 제약도 사라지고
가벼운 마음 자락 펼치면서 나들이 간다
평생 하늘과 물만 바라보던 마음들이
소통의 길 열었다
파란 하늘 푸른 바다 싱그러운 녹음 속에
흔들리는 마음 담아 떠나는 길
출렁이는 물결 따라 마음도 출렁인다
하루 사용 보고서
1.
깜박이는 신호등
목적이 있어 집어 든 핸드폰
순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할 일
당황하며 생각 머리 굴려 보지만
휴즈 나간 전기처럼 무소식이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다 실소를 짓고 만다
건망증일까 높아가는 빈도에 속상해하며
오늘도 숨바꼭질 놀이 혼자 하며 논다
2.
반짝반짝 돌아가는 생각이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몸놀림 아닌
느릿한 동작은 지나간 세월의 흔적
아쉬움 속에 시간은 간다
일상의 무딘 감성 탓하며 아쉬워하다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한 마음으로
하루를 견뎌내며 세월을 마름질한다
3.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진취적인 현대인이라는데
옛것 못 버리고 과거 속에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옛사람이 분명하다
신문물에 익숙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언제쯤 되려나
4.
무뎌져 가는 감성 잊혀지는 언어
하나둘 인생낙엽도 떨어져 가는데
바라보는 노을은 붉기만 하다
고운사랑 노래하는 남은 시간
가늠하는 마음에 시간은 흐르고
흔들리는 억새처럼 마음마저 수선스럽다
계절의 소리
계절이 소리없이 바뀌면서
달라진 풀벌레 우는 소리
매미의 극성스러운 울음 사라지고
벌레들은 화음을 맞추기 바쁘다
하모니를 조율하는 걸까
각각의 음색 살려낸다
바람 속에 들리는
풀벌레의 교향악
아름다운 선물
가을이 주고 간다
가을날 목련
봄의 화려한 미소는 하나의 위장술에 불과했다
긴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사랑이 결실로 나타날 때
또 한 번의 행복한 미소 날릴 수 있었다
달콤한 육질로 새들 유혹하는 빨간 육신
전율하는 그 영혼
세상 나온 흔적을 남기고
이듬해 봄까지 망각에 빠져든다
생일
객지의 삼월은 아직 찬기를 버리지 못하는데
썰렁한 자취방에 훈훈한 기운으로 오신 엄마
물결치는 보리 이랑이 눈물겹다
종다리 공중에서 경쾌하게 울고
봄날의 긴 해는 살랑이는 바람결에
느긋한 걸음인데 훈풍으로 느껴진 기운
이른 봄날 뾰족뾰족 돋아나온 쑥 뜯어
빚은 절편의 향긋하고 고소한 맛
잊을 수 없는 봄의 선물
지금도 봄이면 그리운
엄마의 소박한 정성
객지에서의 생일날 풍경
변해가는 시간 속에
하루하루 초록빛 잃어가는
나무들처럼
젊음에서 멀어져가는 인생사
다양한 색으로 물드는
나무들의 변신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살아감도 그러려니 바라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알록달록 절정으로 물들고
계절은 말없이 역할에 충실하다
우리네 삶도 자연과 닮아
그렇게 한해가 변해간다
분노
결실이 마무리를 준비하는 초가을
황금 물결 넘실대는 들판에
반갑지 않은 손님
거센 바람과 쏟아붓는 억센 빗줄기
많은 생명들이 저항의 힘을 잃었다
하루하루 시간을 재는 적기에
잔인한 칼날 들이대는 억지
시간과 땀방울로 익은 곡식들이
맥없이 떨어질 때
끓는 머리와 가슴은 할 말을 잃었다
글 꽃 피우는 마음
싱싱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정보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꽃동산 이루며 피워가는 글 꽃
꿈은 영글고 성긴 마음 다독여
꼭꼭 눌러 담은 사랑은
열정 담은 황혼의 모닥불
불꽃으로 타오른다
바뀌는 계절 따라 변해가는 마음
생각은 달라져도
변함없는 글에 대한 열망
소중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