鮮 고울 선
선하다, 설설하다, 설다
鮮의 금문 鮮의 전문
鮮의 금문 및 전문 자형은 羊과 魚의 합자입니다. 鱻(생선 선)의 갑골문, 금문 및 전문 자형은 모두 3개의 魚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魚가 어류로서 ‘물고기’의 뜻을 나타내며, 魚를 셋 합친 자형, 鱻은 싱싱한 상태로서의‘선(/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의 뜻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이는 배달말에서 ‘선’의 소릿값에 ‘물고기’의 뜻과 ‘선하다’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글자입니다.
鱻의 갑골문 鱻의 금문 鱻의 전문
이 鱻[생선]으로부터 파생하여[양태(樣態)의 구분자 羊으로] 鮮으로 ‘선하다(/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설설하다(/활달하고 시원시원하다)’로 구분한 것입니다.
선무당, 선웃음, 선잠의 예에서 ‘선’은 서툴거나 충분치 않음을 의미하는 접두사인데, ‘설다(/익숙하지 못하다, 빈틈이 있고 서투르다)’의 ‘설’에서 변화된 음입니다. 즉 ‘선하다’와 ‘설설하다’의 어원은 본래 같은 것입니다.
新鮮(신선), 鮮明(선명), 鮮美(선미), 鮮血(선혈) 등의 성어(成語)에서 鮮이 ‘선하다’의 뜻입니다. 이 ‘선하다’는 ‘선듯하다, 산듯하다’와도 같은 말입니다.
鮮民(선민 ; 가난하고 부모가 없는 외로운 사람)에서는 鮮이 ‘설다(/[북한어]이치에 맞지 아니하여 모자란 데가 있다)’나 ‘설다(/≒섧다/서럽다)’의 뜻입니다.
巧言令色鮮矣仁. 『論語·學而』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설겠다. 인(仁)이란!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大學』
좋아하면서도 그 나쁨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아는 것은 천하에 설겠다.
상기 두 문장의 鮮은 일반적으로 ‘드물다, 적다’의 뜻으로 풀이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설다’는 ‘서투르다’의 뜻이긴 하지만, ‘낯설다’의 예에서처럼 ‘생경하다, 생소하다’의 뜻도 나타내어, ‘드물다’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葬鮮者自西門. 『左氏傳』
장례가 설은 것은 서문을 따른다.
何年葬鮮泣途傍 …, 直道但留靑簡在 淸名更仰白眉良 …, …. 『星湖全集2·權修撰 輓詞』
어느 해에 장례가 설어 길가에서 울었던가, …, 곧은 도는 단지 청사(靑史)에 남아 있고, 맑은 이름은 다시금 백미(白眉) 량(良)을 우러른다. …, ….
상기 좌씨전의 문장과 이익(李瀷)의 「권수찬(權修撰) 만사」에 보이는 ‘鮮’은 기존에서는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 것’이라 하여 ‘일찍 죽음, 요사(夭死)’라는 식의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권수찬 만사」의 경우는 이렇다 할 ‘천수를 누리지 못한 상황’이 없습니다. 권수찬의 업적에 비하여 장례가 격에 맞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葬鮮’이란 ‘격식에 맞지 않는 장례’의 뜻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의 鮮이 ‘설다(/[북한어]이치에 맞지 아니하여 모자란 데가 있다)’의 뜻입니다.
天子乃鮮羔開冰 先薦寢廟. 『禮記』
천자는 이에 검은 양을 얼음 열은 물에 설고, 먼저 침묘(寢廟)에 드린다.
상기 문장의 鮮을 기존에서는 ‘바치다, 올리다’ 등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鮮羔[검은양을 바치다]’와 ‘開冰[얼음을 열다]’의 연관성이 없어지며, ‘開冰’은 제사 의식의 한 가지가 됩니다. ‘얼음 깨기’가 필요한 제사 의례는 없습니다.
여기서의 鮮은 ‘설다(/[옛말]걷다, 치우다, 정리하다)’로 쓰인 것입니다. ‘설거지’는 음식을 먹은 후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을 말합니다. 설거지에서의 [설]이 ‘설다’의 [설] 소릿값과 같은 어기(語氣)를 나타냅니다. 검은 양은 희생으로 쓰여 피 묻은 상태이거나 요리를 위하여 장만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상태를 얼음 깬 물에‘설어야’한다는 내용입니다.
無矢我陵 我陵我阿 無飮我泉 我泉我池 度其鮮原 『詩經·大雅』
우리 구릉을 살피지 마라, 우리 구릉 우리 고개, 우리 샘물 마시지 마라, 우리 샘 우리 못, 그 선한 동산을 넘어간다.
상기 시경의 구절에 사용된 鮮은 기존에서는 ‘멀리 있는 작은 산’, 혹은 ‘큰 산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산[小山別大山 ; 주희(朱熹)]’으로 풀이합니다. 이는 鮮 자에 본래 그러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달말의 ‘선하다(/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에 대한 중국어식의 의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시경 구절은 외침(外侵)에 의하여 빼앗긴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구원병의 도움으로 재탈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燕婉之求 籧篨不鮮, …, …, 燕婉之求 籧篨不殄 『詩經·國風』
젊고 고운님 찾아왔건만, 거적때기 설설하지도 않네, …, …, 젊고 고운님 찾아왔건만 거적때기 죽어빠지지도 않네.
상기 시경 구절의 鮮은 ‘좋다, 아름답다, 적다’ 등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실제의 뜻은 배달말의 ‘설설하다(/활달하고 시원시원하다)’를 의미합니다. ‘籧篨’는 본래 ‘대자리’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아름답지 못한 외모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그런 외모에다가 성격도 ‘不鮮[설설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며, 다음의 ‘不殄[죽어버리지도 않다]’에 대응되는 개념입니다.
‘설설하다’는 ‘선선하다’와 뜻이 통하기도 하는데, ‘설’과 ‘선’의 소릿값은 본래 음원이 같았던 것에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朝鮮(조선)에서 朝는 ‘배달’의 소릿값을 나타내며, 鮮는 ‘설설하다(/활달하고 시원시원하다)’를 나타냅니다. ‘배달이여 설설하다’로 요즘 말로 ‘다이내믹 코리아’ 정도의 어기를 나타냅니다.
군가(軍歌) 「아리랑 겨레」의 도입부 ‘밟아도 불이 뻗는 잔딧불처럼, 시들어도 다시 피는 무궁화처럼’이 배달말 ‘설설하다’에 꼭 맞아 떨어지는 어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雨鮮 비뚝뚝들을 선
선듯한 누리, 싸라기, 설설한 비, 소나기
雨鮮의 전문
雨鮮의 전문 자형은 雨와 鮮의 합자이며, 갑자기 비가 내리는 모양에 대한 의성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鮮이 ‘선듯(/동작이 조금 빠르고 시원스러운 모양. 갑자기 조금 찬 느낌이 있는 모양)’의 소릿값을 나타내고, 雨는 雹(누리 박)의 축약으로, 우박보다 물기가 훨씬 많아 선듯한 느낌이 드는 ‘싸라기’의 뜻을 나타내며, 또 鮮이 ‘설설하다(/활달하고 시원시원하다)’로 쓰여, 설설한 빗줄기에서 ‘소나기’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癬 옴 선
물고기 양 병증, 옴
癬의 전문
癬의 전문 자형은 疒과 鮮의 합자이며, 鮮이 ‘물고기인[魚] 양[羊]’으로 피부가 물고기처럼 진득거리고 갈라지는 양하게 되는 병증[疒]으로 ‘옴(/옴 진드기가 기생하여 일으키는 전염 피부병.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사이, 겨드랑이 따위의 연한 살에서부터 짓무르기 시작하여 온몸으로 퍼진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乾癬(건선), 癬瘡(선창), 白癬(백선) 등에서 癬이 ‘옴’의 뜻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