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광우병 때와 달리… 국민도 기업도 어민 살리기 나섰다
日 오염수 방류 시작됐지만 수산물 외면 않고 자발적 소비
尹대통령 “1+1을 100이라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어”
8월 28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이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전광판에는 국내 수산물 방사능 안전현황이 '안전'으로 표시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와는 달랐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전까지만 해도 이번 오염수 방류가 광우병 사태와 닮은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았다. 정치적 혼란뿐 아니라 수산물 소비 감소, 불매 운동으로 인한 경영 위축, ‘노 재팬’ 운동의 확산으로 인한 외교적 혼란 등이 연쇄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지난 24일 후쿠시마에서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이후에도 정치적인 공방만 커질 뿐 경제적, 사회적 혼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광우병 사태 때와 같은 소비 급감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업과 국민들의 자발적인 소비 확산 운동이 일어났다. ‘노 재팬’ 운동도 정치적 구호에 그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1 더하기 1을 100이라 하는 세력들과는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야권의 오염수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괴담 수준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먼저 기업들이 국내산 수산물 소비 촉진 캠페인에 앞장섰다. HD현대는 구내식당의 우럭과 전복 소비를 크게 늘리기로 했다. HD현대그룹 내 전체 취식 인원이 하루 5만5000명에 달해, 연말까지 예상되는 추가 소비량은 100t에 달한다. 지난달 출하된 우럭과 전복의 약 6%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를 위해, HD현대는 지난 22일 수협중앙회, 현대그린푸드와 ‘어업인 지원 및 어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생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주요 사업장이 울산, 군산 등 주로 해안가에 있는데 최근 우럭과 전복의 소비가 크게 감소해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헌상(왼쪽부터) 현대그린푸드 부사장, 노동진 수협중앙회 회장, 금석호 HD현대 부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업인 지원 및 어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협약서에 서명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
경제 단체도 동참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중소기업복지플랫폼’에 수산물 판매 업체를 입점시키고, 회원사에는 추석 선물로 우리 수산물을 적극 이용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무역협회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지난 2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회원사를 대상으로 수산물 소비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산지 적체가 우려되는 수산물을 단체 급식에 정기적으로 사용하기 △기업의 추석 명절 선물 등을 우리 수산물로 이용하기 등이다. 전경련과 경총도 수산물 소비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10대 그룹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은 사전 논의 중인 단계”라며 “다만, 식대를 내는 직원들의 반발도 있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30일 주요 대기업에 급식을 납품하는 삼성웰스토리·현대그린푸드·아워홈 등과 간담회를 갖고 수산물 소비 촉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에서 정례 회동을 하면서 수산물을 포함한 메뉴로 점심을 함께 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광어, 우럭 등이 메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구내식당에도 점심때 모둠회와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대통령실은 “평소보다 1.5배 이상 많은 인원이 구내식당을 이용했다”며 “외부 약속을 취소하고 구내식당을 이용한 직원들도 다수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실 구내식당은 29일 제주 갈치조림과 소라무침, 30일 멍게비빔밥과 우럭탕수 등 이번 주 점심 식단에 모두 수산물을 포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메뉴는 수산물이었다./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도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회를 먹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만찬의 주 메뉴는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가져온 모둠회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29일 1박 2일 연찬회를 마치고 인천 중구의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우리 수산물 먹기 캠페인’을 벌인다.
한 총리는 지난 27일 관계 부처 현안 간담회에서 장관들에게 “꼭 수산 시장에 가지 않아도 좋으니, 동네 식당에서라도 수산물을 소비하고 페이스북에 사진도 올려서 홍보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실 직원들은 28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해 단체 회식을 했다. 한 총리도 조만간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연찬회엔 우리 생선회와 문어 - 28일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 만찬은 생선회와 문어 등 수산물 위주로 준비됐다. /연합뉴스
노량진수산시장은 지난 2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개시 후 첫 주말 평소보다 매출이 1.5~2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차덕호 상인회장은 “검증되지 않은 말들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우리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 했다. 부산 자갈치시장 금봉달 부산어패류처리조합 본부장은 “정치권에서는 이슈를 선거 때까지 끌고 가려고 하겠지만, 과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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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해 선물의 상한을 농수산물 및 관련 상품권에 한해 평시에는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설·추석 연휴 전후로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렸다. 수산물 등 소비를 촉진해 수해와 오염수 방류 등으로 손해를 입은 어민과 상인들을 지원하자는 취지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이날 부산 자갈치 위판장을 찾아 상인 간담회 후 회덮밥으로 오찬을 했다.
28일 용산 대통령실 구내식당에서 모둠회와 고등어구이 등으로 구성된 메뉴가 제공되고 있다. /뉴스1
해양수산부는 28일부터 100일간 해양경찰청과 함께 수산물 수입 이력이 있는 업체 2만여 곳을 대상으로 민관 합동 원산지 표시 특별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일본산 등 수입 수산물 유통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면서 국내 수산물을 믿고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수산물안전 국민소통단도 점검에 참여한다. 가리비와 참돔, 멍게 등을 수입해 국산으로 둔갑시키거나,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는 행위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