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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 소유 외엔 다 도둑질 계열>의 줄거리 :
하나님 소유하기 외에 이 세상 것은 그 무엇을 어떤 정당한 방식으로 소유했거나, 소유하려 하면 예외 없이 다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입니다. 딱히 도둑질이 아니라도 세상은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로 인해 지금 인류는 절대로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절대 빈곤 의식'의 함정입니다. 예수님 십자가로 이 도둑질 계열의 범죄를 끝내고 하나님만을 소유하기에 주력하면, 이상하리만치 이 세상 것들은 다 필요에 맞추어서 있게도 되고 없게도 됩니다.
하나님 소유 외엔 다 도둑질 계열
(출애굽기 20:15)
15. 도둑질하지 말라
앞에서 살인 계열의 범죄들과 간음 계열의 범죄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을 살펴봅니다. 살인이나 간음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살인 계열과 간음 계열의 범죄들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입니다. 계열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범죄의 DNA가 같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살인 계열의 범죄들이란 직접적인 살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살인으로 간주하시는 범죄들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제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도 꼭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도둑질로 대표될 수 있는 계열의 범죄들이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제6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언급되는 다섯 가지 계열의 범죄들을 저지르게 되었다면 해당하는 범죄와 같은 영적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계명들은 우리가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행하고 있는 다섯 계열의 범죄들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편 다섯 가지 범죄 계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이 땅에 머물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9절에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내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마음이 예수님의 몸을 입어야 하나님께 도달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한 채 빗나감이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이란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마음으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가지 않고 이 땅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 범죄입니다. 설령 신학자나 목사나 장로나 권사라도 마음이 땅에 있다면 그의 말과 행동은 다 죄악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마주할 때는 하나님의 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좋음으로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욕구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에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 하나님 마음에 들기 때문에 범죄가 아닙니다.
본문은 이러한 범죄 중에 도둑질이라는 행위로 대표되는 범죄 계열이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땅에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 범죄입니다. 그중에서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은 소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이 땅에 있는 사람은 땅에 있는 것들 중에서 소유하고자 합니다. 이로부터 나타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도둑질 계열에 포함되는 범죄들입니다.
마음이 땅에 있으면서 소유하려는 모든 것은 도둑질의 대상입니다. 그것이 설령 법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정당한 방식을 통해 소유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도둑질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한 소유의 방식일 뿐이지 하나님의 관점과는 전혀 다릅니다. 특히 선민들의 마음이 이 땅에 뒹굴면서 세상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법과 사회적 통념에 맞는 정당한 방식일지라도 무조건 다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이 됩니다. 애초에 마음이 하나님께 가지 않고 이 땅에 있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소유욕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넣어주신 존재 방식입니다. 인간은 소유하면서 살아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에서 소유의식을 가짐으로써 살아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 무엇인가를 이미 가졌다는 소유의식을 통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존재냐 소유냐를 두고 갈라치기를 할 수 없습니다. 소유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소유의식이 존재를 가능하게 합니다.
문제는 무엇에 소유의식을 느끼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무엇을 소유해야 할지 이미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소유해야 할 대상을 이미 정해놓으셨음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마음이 이 땅에 머문 채 좋다고 여기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소유의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 도둑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 세상 것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마음이 이 땅에 머무는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이 세상에서 수많은 대상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그중에는 갖고 싶은 대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대상들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고 있습니다. 주권(主權)이란 말 그대로 주인의 권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주권의 행사를 우리에게 이양하시거나 잠시 잠깐이라도 중단하시거나 멈추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가 이 세상 것을 멋대로 소유하려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도둑질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은 꼭 남의 것을 횡령하거나 착복하거나 훔치는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들에 대해 주권을 발휘하고 계십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다. 만물은 나의 소유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 만물에 대한 소유의식을 중단하시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시면서 이끌어가십니다. 그렇기에 세상 것이라면 내 몸부터 시작해서 내게 주어져 있는 어떤 것에도 내가 소유의식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소유하려 할 수 없고 소유했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을 소유하려 하거나 소유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첫 번째 문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소유욕구가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 세상에서 이미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소유의식이 발동한 것입니다.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이 발동하게 되면 하나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돈을 내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돈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거나 건강을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세상의 가치들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 아무리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주를 받아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소유의 특징은 마음이 소유하는 대상에 가서 닿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은 소유하는 대상에 의해 얼룩지고, 흔적이 생기고, 더럽혀집니다. 소유하는 대상의 기운이 마음에 스며드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면 마음에는 이미 자동차가 스며든 상태입니다. 마음이 자동차의 기운으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가족, 배우자, 자녀에 대한 소유의식을 가질 수 있고 마음에 스며듭니다. 이렇게 얼룩지고 더러워진 마음으로는 살아계신 창조주요 주권자이시고 영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내 마음을 더럽힙니다. 그 결과 반드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게 됩니다.
이 세상 것을 소유하려 하거나 소유했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절대 빈곤 의식의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을 저지르는 모든 사람은 충족되지 않는 절대적 빈곤 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재벌조차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 세상 것을 가져도 마음에서 없음과 부족함의 느낌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이유는 그것을 가질 때 마음이 채워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유에는 반드시 채워짐에 대한 믿음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채워짐에 대한 믿음이 없는 대상은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하나님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람들조차 돈을 많이 소유하고 건강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가지면 마음이 채워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래 사람의 마음은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곳간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조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곳간을 세상의 피조물을 소유하여 채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유해도 없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절대 빈곤 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이 절대 빈곤 의식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마음을 짓누릅니다. 불가능한 마음의 곳간 채우기를 평생 시도하다가 삶은 끝나버립니다.
마음이 채워지고 만족하기 위해서는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은 중단되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 것을 가지고 싶다거나 이미 세상 것을 소유했다는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소유했다는 의식에는 빼앗기고 싶지 않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더하려 하게 됩니다. 원하던 것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만족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상실할까 두려워합니다. 마음이 온전한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 것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가졌다고 의식하는 한 절대로 만족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배타성과 세상 것을 가지면 절대 빈곤 의식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상을 향해 소유욕구나 소유의식이 발동할 때마다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소유욕구는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고, 소유의식은 이미 있는 것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 것에 대한 소유욕구든 소유의식이든 우리를 절대 빈곤 의식으로부터 해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은 하나님을 향해 발동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가지고 싶다.’라고 하나님에 대한 소유욕구를 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미 가진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려는 나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내가 가진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해야 한다.’라고 하나님에 대한 소유의식을 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유의 대상은 하나님 자신 외에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0장 34절을 보면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의 소유를 빼앗겨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더 낫고 영구한 소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마음에서 발생합니다. 이 세상 소유는 사회적으로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있는 것들이지만 세상 것들을 빼앗긴다고 해서 마음에서 하나님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것들을 강탈당함으로 인해 마음에서 하나님이 점점 더 커집니다. 하나님께 집중되는 소유의식이 더 강렬해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에서 세상 것을 강탈당했기에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의 크기는 굉장히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출애굽기 6장 7절을 보면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라는 말씀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는 말씀은 마음의 소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소유해도 되는 대상으로 하나님 자신을 정해놓으셨습니다. 세상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 주권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내 머리카락 하나조차도 본래 내 것이 아닙니다. 머리카락이 빠져도 하나님께 할 말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빠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 세상 만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로부터 시작하여 민족과 나라에 역사하고 계시고, 내 몸의 솜털 하나까지도 주인 됨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세상 것에 대해 소유욕구나 소유의식을 느낀다면 다 도둑질이 됩니다. 우리가 소유하기로 허락된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을 가지라는 제안은 너무나 황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타협이 없는 배타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아, 너희는 나를 가져라. 다른 사람들은 세상 것을 갖게 내버려두어라. 그들은 평생을 도둑질 계열의 말과 행동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도둑질 계열에 속한 어떤 말과 행동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세상 것을 향해 소유욕구를 가져서는 안 되고, 주어진 세상 것에 대해 소유의식을 가져서도 안 된다. 오직 나만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이 배타성은 무척 무섭게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소유”라는 말은 내 마음이 소유욕구를 가지고 있거나 소유의식을 갖고 있는 대상들입니다. 내 마음에서 가지고 싶다는 소유의 대상이든지 이미 가지고 있다는 소유의식의 대상이든지 모든 것을 다 팔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감추인 보화인 하나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빡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한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이 세상 것에 대해서는 남들처럼 많이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아지면 좋겠다고 바랐을 뿐입니다. 소박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찌질한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지려면 아무것도 마음에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하나님의 배타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절대 빈곤 의식을 갖고 살아야 했던 삶을 끝낼 계기입니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는 소유욕구도 갖지 말고, 지금 주어진 것들에 대한 소유의식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이 세상 것을 향한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이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기회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될 이유가 깨알같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작든 크든 세상 것들에 대한 소유욕구가 생길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이미 있는 것들에 대한 소유의식이 생길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은 하나님만을 향하고 하나님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십자가를 찾게 됩니다. 십계명이 부담스럽지 않고 좋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아야 할 이유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현장으로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이 계열별로 범죄들의 내용을 확인하다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서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했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말한 이유를 뼛속까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마음이 땅에 머무는 동안 나타나는 범죄의 계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한편 범죄의 계열을 알게 됨으로써 십자가를 붙잡는 내 마음의 계기와 강도는 강해지고 촘촘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가지는 일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 가지기는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이라는 속성을 내 마음의 존재감으로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 육체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든지 마음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일등으로 유지됩니다. 또 하나님께는 유일한 좋음이라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좋음을 소유하고자 욕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유욕구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소유욕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번 가지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더 가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채워지기 전까지는 소유욕구는 계속 발동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가능한 많이 갖기 위해서 계속 소유욕구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 가지는 일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비록 하나님을 온전히 가질 수 없더라도, 나의 소유욕구가 하나님께 고정되기만 하면 엄청난 자유와 만족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세상 것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가 됨이란 세상 것이 필요 없을 만큼 마음이 배부름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세상 것을 끊어냈다면 하나님만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향한 소망의 욕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로 자유로운지는 체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은 내게 없어도 없음이 아니고, 있어도 있음이 아닙니다. 세상 것이 없다고 느낀다면 이미 도둑 계열의 범죄가 일어난 것입니다. 세상 것을 없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플 때 건강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건강에 대한 아쉬움이 들고, 건강에 대한 소유욕구가 발동하는 이유는 마음이 건강에 직접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없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됩니다. 몸이 건강하더라도 그것에서 소유의식을 느낀다면 도둑질 계열의 범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작동하고 있음을 안다면 하나님을 소유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건강에 닿아서 있음과 없음을 느끼려는 상태 자체가 죄입니다. 마음이 이 세상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늘에 올라간 자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느낍니다. 뜻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마주하는 상황에서 있음과 없음을 느끼고자 한다면 마음이 땅에 내려와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럴 때 마음은 잘못된 소유욕구나 소유의식에 의해서 절대 빈곤 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마주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있음이고 하나님만이 좋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소유하는 방식은 하나님 있음을 존재감으로 가지고 좋음을 욕구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존재감이 클수록 하나님을 많이 갖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클수록 하나님의 좋음을 많이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많이 가지면 그 증거로 세상에 대한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은 줄어듭니다. 이로부터 예전에는 크게 느꼈던 문제가 작게 느껴지고 아예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소망하고 소유하려는 욕구가 집중되고, 실제로 하나님을 소유해 가는 과정의 증거입니다.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이 세상에 대한 태도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에 대한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이 집중될 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있어야 할 것들이 있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없어야 할 것들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살아계신 곳간입니다. 나의 삶을 위하여 평생토록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병이 났다면 그 병도 하나님의 곳간에서 온 것입니다. 내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지금 내가 돈이 없어 궁핍할지라도 그것도 하나님의 곳간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곳간이 닫혔기 때문에 내가 궁핍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소유욕구를 갖고 하나님에 대한 소유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계기로 궁핍을 제공하신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생활화를 다부지게 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로써 몸의 아픔이나 궁핍함도 공급하신 것입니다. 몸의 아픔은 건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픔 자체를 공급하신 것입니다. 궁핍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궁핍 자체를 공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궁핍하든 궁핍하지 않든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곳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는 중입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곳간으로부터 충분히 공급될 것입니다. 내가 가지려 하고, 내가 있게 하려는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을 갖는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범사에 감사함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범사에 감사함이 충만한 자의 마음에는 ‘이 세상 것을 더 가져야 한다. 내가 가진 세상 것을 잘 지켜야 한다.’라는 의식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소유욕구와 소유의식이 집중되는 동안에만 이 세상에 대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짊어짐을 통해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이 근절되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무엇이 없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절대 빈곤 의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져서 하나님으로 풍요롭게 되는 진정한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이 지독할 정도로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일어남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도둑질 계열의 범죄들이 근절되는 기적이 우리 삶의 일상이 되고 보편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마음껏 갖게 하시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뜻과 계획을 따라 공급하시는 하늘과 땅의 조화로움이 삶에서 날마다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