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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찍 눈이 떠져 아침 산책에 나선다. 호텔 앞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간다. 한가한 도로변 주택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동네가 조용하다. 10여분 걸으니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나 집 안쪽을 들여다보니 한 젊은이가 화덕에서 전통 빵 난을 열심히 굽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정겨워 인사를 하니 웃으며 빵조각을 건넨다. 그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본다. 돌아오는 길 사거리엔 대문호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ai) 동상이 보인다.
오늘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로 가는 날이지만 국경도 가깝고 국경에서 페르가나로 가는 거리도 멀지 않아서 그리 일찍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로 떠나가기 위해서 우즈베키스탄 국경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거리가 숙소에서 10㎞가 채 안 되기 때문에 금방 간다.
키르기스스탄을 떠나면서 아쉬운 것은 카자흐스탄 국경에 가까운 탈라스를 가보지 못한 것이다. 이곳은 동양과 서양 간 최초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751년 탈라스 강 근처에서 벌어진 당나라와 이슬람 아바스왕조 간 전투로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중국과 이슬람의 전쟁이며, 중국의 서역 팽창 저지와 중국이 독점하고 있던 종이 제조 기술인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어 유럽까지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당나라가 완벽하게 패함으로써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세력권에 넘어가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하는 사람 중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탈라스를 둘러봐야 할 정도로 이곳은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다.
국경 도스툭(Dostuk)은 우즈베키스탄어로 우정, 친선이란 뜻으로 양국 또는 안디잔과 오시 두 도시간의 우정과 친선을 다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키르기스스탄에서 쓰다 남은 돈을 우즈베키스탄 화폐로 교환하는 일로 환전소가 국경 바로 앞에 있어서 키르기스스탄에서 100달러를 환전해 쓰고 남은 돈을 우즈베키스탄 돈으로 환전한다. 2009년 내가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할 때는 고액권이 100숨 짜리 밖에 없어 100불을 환전하면 100만 숨 정도로 환전한 돈만 가방 한가득이었는데 지금은 1만 숨과 5만 숨 지폐가 나오면서 이 같은 문제가 사라졌다. 전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돈을 쓸 때는 더 놀랐는데 밥 한 끼를 사 먹어도 돈이 한 뭉텅이씩 빠져 나가며 단체로 계산할 경우를 대비해 식당마다 지폐계수기로 돈을 세던 기억이 난다.
수십 차례 여행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국경에 오면 잘못한 것도, 문제가 될 물건도 없지만 긴장이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인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이기도하고 육로로 통과하기 때문에 출국수속이나 입국수속이 비교적 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긴장이 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출국절차를 마치고 출국도장을 받아 철문을 통과해 조금 걸으면 우즈베키스탄 출입국사무소와 세관이 있는데 세관검사와 입국절차도 간단하다. 8시반에 호텔을 출발해 우즈베키스탄 입국절차까지 모두 마친 시간이 9시40분이다. 쿤자랩패스를 넘어 중국으로 입국할 때와 토르갓패스를 넘어 키르기스스탄으로 올 때 중국 국경의 출입절차를 생각하면 다시는 신장지역 중국 국경엔 접근조차 하기 싫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광객에게 조차 중국이 이렇게 심한 출입국 통제(?)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면 시장이 형성돼 있어 무척 복잡하고 소란스럽다. 국경선을 넘자마자 핸드폰 시간이 바뀌고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한 시간의 시간 부자가 된 기분이다. 국경에서 페르가나로 가는 버스가 미리 와 우릴 기다리고 있다. 페르가나로 이동하면서 버스 차창으로 비치는 풍경은 인접한 나라인데도 모든 것이 사뭇 다르다. 사람들의 옷차림, 건물이나 가옥 모습, 그리고 자유분방함 등 십리 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 간에 풍속이 다르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곳이 이곳이다. 뿐만 아니라 페르가나 분지라는 도로 주변 밭에는 밀, 감자, 옥수수, 면화 등이 빠짐없이 자라고 있고 과수원도 많이 조성돼 있어 땅을 놀리는 곳이 없고 관개 관수시설이 잘 되어 있어 풍요로워 보인다. 또, 상가나 주택들은 잘 정돈이 돼 있고 상가의 간판은 러시아 글자가 아닌 알파벳으로 표기돼 있어 읽기 쉽다. 도로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DAMAS 차량이 주류를 이루고 시보레 승용차도 많이 보여 이곳이 과거 대우자동차공장이 있었던 곳임을 알게 해 준다. 국경을 넘어 왔을 뿐인데 두 나라간 경제력 차이가 눈에 확 들어온다.
페르가나로 가는 길에 안디잔이라는 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안디잔이라는 도시도 페르가나 분지에서 우리가 기억할 만한 곳이다. 안디잔은 IMF 이전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던 곳으로 대우가 부도가 나면서 공장은 미국 GM으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GM우즈베키스탄의 이름으로 자동차가 생산되고 있다. 안디잔은 우즈베키스탄 동부 페르가나 계곡에 있는 안디잔 주 주도이며, 인구 약 55만 명, 인구기준 사마르칸트를 추월해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 페르가나 계곡에서 가장 큰 도시다. 또, 안디잔은 무굴제국을 건설한 바부르(Babur)의 고향이다. 1902년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고, 2005. 5월 13일 이슬람 급진주의 성향을 지닌 이슬람운동(IMU)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리모프의 장기 집권과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군인들에 의해 수백 명~ 2천5백 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수니파 이슬람국가인데 카리모프 대통령이 터키처럼 엄격한 율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아닌 서구와 같은 국가를 만들려고 종교적인 색채를 가능한 배제하는 정치를 하려고 하자 안디잔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봉기를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페르가나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농촌 풍경으로 두 시간 넘게 이런 풍경을 보면서 간다.
페르가나 시는 페르가나 분지 남서쪽에 있으며, 대륙성기후로 여름은 덥지만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그리스인이 세웠던 박트리아왕국과 쿠샨왕조 시절에는 불교가 융성하였으나 8세기 초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왈리드 1세부터 이슬람이 전파되었고, 중세에는 카라한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근세에는 코칸드 칸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1876년 코칸드 칸국을 정복한 러시아인들이 현재 시가지를 건설했으며, 페르가나를 정복한 스코벨레프의 이름을 따 스코벨레프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1924년 볼셰비키가 페르가나지방을 평정하면서 원래 이름으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소련 시절 페르가나는 1908년에 지어진 정유공단 덕에 페르가나 지역 석유생산기지로 발전했으며 비료공단(工團)도 만들어 졌다고 한다. 페르가나 시(市)는 여행만 즐기러 왔다고 하면 볼 것이 거의 없는 곳이나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월지, 소그드와 돌궐, 카라한 왕조 등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이곳은 그 역사적인 것을 향유하기에 매우 훌륭한 곳이다. 페르가나가 유명해진 것은 알렉산더 때문이고 그 다음 불교의 전래다. 페르가나를 통해 테르미즈까지 연결된 불교는 그리스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헬레니즘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어 그 유명한 간다라 문화 전성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어쩌면 당시 부패한 조로아스터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북인도에서 유행했던 불교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페르가나에 호텔(Hotel Asia Fergana)도착하니 11시다. 체크인 시간이 2시로 방 청소도 되지 않았고 방이 배정되지 않아 먼저 페르가나 시내를 구경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오면 체크인하고 방을 배정해 준다고 한다. 캐리어와 배낭을 호텔에 맡겨 두고 선배부부와 함께 City Market으로 시장구경을 간다. City Market까지는 30분 거리로 덥지만 시내 구경을 할 겸 구글지도를 보며 걸어간다. City Market은 의류, 신발, 전자제품 등 중국산 공산품상점이 대부분으로 가격은 싸 보이지만, 품질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시장에 온 것은 공산품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특산품 등을 보려는 것이기에 대충 둘러보고 시장건물 밖으로 나오니 음식점과 전통빵인 난 및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인다. 과일이 신선해 보여 체리를 조금 산다.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한국식당 THE KITCHEN에 들러 이곳에서 맛있다고 소문 난 국시를 점심으로 먹는다. 이곳의 국시는 러시아어로 Кукси(국시)라 불리는데, 고려인 강제이주 당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곳곳으로 퍼진 우리 민족의 정신과 함께 내려오는 러시아계 한인 고유의 음식으로 냉면 그릇만한 크기에 담겨있는 국시 면과 그 위에 얹어 있는 계란, 오이, 고기, 등 오색 고명들이 우리 잔치국수와 닮았으나 뜨겁지 않는 찬 육수에 말아준다. 국수 면발은 길고 가늘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아 130년전 유라시아로 강제 이주 당함에도 그곳에서 뿌리내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역사와 닮았는데, 차가우면서도 고기 육수와 고명 맛이 어우러져 음식과 국물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줘 정말 맛있게 먹었다.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방에 가져다 둔 뒤 선배부부와 페르가나에서 태어난 중세 유명한 천문학자 알 파르고니 동상이 있는 알 파르고니 공원으로 간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김태희가 밭을 맬 정도로 미녀가 많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미녀를 볼 수 있나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미녀들은 보이지 않는다. 페르가나 지역이 과거부터 수많은 민족들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졌던 곳이니 여러 민족 혼혈로 미녀가 많다는 소문이 난 건 아닐까?
공원 입구에는 그리스 신전에서나 볼 듯한 6개의 하얀 석주가 반원형으로 둘러 친 가운데 알 파르고니가 별 지도를 들고 서 있는 동상이 있다. 아흐마드 알 파르고니는 797년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지역에서 태어난 중세 유명한 천문학자로 서양에서는 알프라가누스(Alfraganus)로 알려있으며, 압바스 왕조시대에 바그다드 천문대에서 일을 하였고 칼리프 마문이 지은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의 천문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저서로 '별의 학문과 천체 운동의 요소', '천문학개론' 등이 있는데, 특히 천문학개론은 중세 라틴어로 번역돼 유럽에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의 페르가나(러시아어), 파르고나(우즈벡어)란 지명도 아흐마드 알 파르고니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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