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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운리 할머니미륵과 미륵 동계좌목 조선 후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소장 연기군 갈운2리 음지마을(현 세종시 도담동) 어구에 있던 미륵 석상으로, 갈운2리 양지마을에는 할아버지미륵이 있었다. 갈운리는 조선시대 연기현의 역원인 금사역이 있었던 곳이다. | |
반곡식목서(盤谷植木序) 1794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성호(成灝, 1764~1834)가 반곡리의 수구(水口)를 정비하기 위해 하천 바닥을 정리하고 제방 주위에 나무를 심은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수구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해야 하는 까닭을 문답식으로 썼고, 마지막엔 수구의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절목(節目)을 싣고 있다. | |
터주단지, 성주, 삼신전대 20세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2005년 조사 당시 연기군 반곡리 김명호 씨 댁에서 기록하고 수집했던 가신신앙 유물로 김명호 씨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 |
백지계획과 모형 1970년대 후반 / 2013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소장 구체적인 장소를 결정하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수도건설계획을 세웠다 하여 ‘백지계획’이라 부른다.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휘 하에 조직된 중화학기획단에서 제작하였으며, 1978년 1차 보고서 8권과 1979년 최종보고서 17권,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슬라이드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함께 묻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이전 발표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후보지 선정, 현지 주민 이주 대책, 주택, 토지제도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도시계획을 담고 있다. 모형은 백지계획에 실린 종합계획도를 바탕으로 2013년에 제작한 것이다. | |
부안임씨 묘지(墓誌)와 명기, 진양하씨 묘지(墓誌) 19세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연기향토박물관 소장 세종시 건설에 따라 산 사람뿐만 아니라 약 3만 여 기(基)의 묘도 고향을 떠나야 했다. 당시 연기군 남면의 주요 성씨였던 부안임씨 가문은 출토된 명기를 정부에 기증하였다. | |
쌀바가지 20세기 진병갑․유영준 소장 갈라지고 닳고 꿰매어 볼품없지만 대대로 사용했기에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지금도 사용하는 물건이다. | |
가족사진 20세기 김명호‧강신성 소장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은 흔해도, 사라진 고향 집 마루를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은 흔치 않기에 더욱 소중하다. | |
2015년 양화리 마을잔치 2002년부터 매년 8월 15일 열리는 마을주민들의 화합잔치다. 세종시가 건설되며 마을주민들은 모두 이주하였지만, 그 후에도 매년 8월 15일이면 마을의 중심공간이었던 월용동산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담소하며 끈끈한 정을 나눈다. | |
2005 | 2009~2015 세종시 건설과정 사진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시 변화 양상을 기록하기 위하여 2009년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지점에서 사진을 촬영해오고 있다. * 촬영지점 : - 2005 : 옛 연기군 남면 송담리 - 2009-2015 : 밀마루 전망대(현 세종시 종촌동) |
2009 | |
2012 | |
2015 |
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시
[早發金沙驛將渡新灘大霧失路] - 서포 김만중 -
아침에 금사역을 출발하여 신탄을 건너려 하였는데 안개가 짙게 끼어 길을 잃다
大霧金沙路行人積氣中안개 자욱한 금사역 길, 짙은 안개 속을 걷는 사람들.
乾坤歸混沌山岳失穹崇천지는 뒤섞여 구분이 안 되고, 산악마저 우뚝한 모습 사라졌네.
難借陽烏照能忘老馬功햇빛의 밝음을 빌리기 어려우니, 어찌 노마의 공을 잊을 수 있겠나.
畊歌聞互答沮溺想遺風밭 갈며 서로 화답하는 노래 소리 들리니, 장저와 걸닉의 유풍인가 생각하네.
※ 서포 김만중이 연기현의 금사역을 지나 나루터를 건너며 남긴 시문이다.
금사역은 갈운리(현 세종시 도담동)에 있었다.
첫댓글 윤박사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