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월요일
새벽 5시 스님께서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유리 향운사로 갔다. 향운사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싣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경이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향운사가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를 했다. 새벽에 잠도 설치고 남양주시에서 수유리까지 운전을 해준 경이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자식은 내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성인이 되면 타인처럼 하나의 다른 인격체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 아내와 나는 택시를 타든지 아니면 차를 운전을 하고 가던지 하는 방법으로 향운사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경이가 스스로 마음을 내서 향운사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자청했다. 고마웠다.
택시를 타려면 새벽에 차를 잡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고, 차를 가지고 가면 돌아올 때 다시 향운사로 가서 차를 가지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런데 경이가 스스로 태워다 주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자식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가족이란 이래서 좋은 모양이다. 우리 부부를 향운사에 내려주고 돌아서는 경이에게 "고맙다. 조심히 돌아가거라."는 말을 전했다. "아빠 엄마도 조심히 여행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경이는 돌아갔다.
▲향운사 법당 부처님 전에 엎어져 절을 하고..
향운사에 도착을 하니 두 분 스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아니 부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가운데 석가 세존 즉 고오타마 싯다르타, 우측에 관세음보살, 좌측에 지장보살. 세분의 부처님이 발을 깨끗이 씻고 정좌를 하고 계셨다.
부처님은 정좌를 하실때는 항상 발을 씻고 앉으셨다. "진지를 잡수시고, 가사와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의 상태에서 앉아계시는 그 자체가 완벽한 깨달으? 경지에 있는 거룩한 모습이다.
싯다르타는 100퍼센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분이다. 그러나 두 분은 99퍼센트까지 깨달으신 보살, 즉 보디사트바이다. 보디사트바는 붓다가 될 준비가 된 사람, 거의 붓다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그는 붓다가 될 것이다. 그는 이미 99도도 끓고 있는 사람이다. 1도만 더 올라가면 100도가 되어 깨달음의 세계로 증발해버릴 분이다.
그러나 보디사트바는 99도에 좀 더 오래 머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그의 넘치는 자비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다. 그는 거의 부처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이승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어둠 속에 헤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중생과 함께 살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사바세계 모든 만물의 청원 소리를 다 들으시고 가련한 중생들을 천수천안으로 보살펴 주시는 분이다. 지장보살은 마지막 남은 지옥 중생까지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붓다가 되지않겠다고 맹세를 한 보살이다. 이는 상징적인 존재다. 실재 보살의 마음은 모든 중생들의 마음속에 다 있다.
울컥해지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리까?
법당에 들어가 이 세분의 부처님 전에 엎어져 삼배를 했다. 내 자신을 내려 놓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엎디어 절을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문득 마음이 울컥해졌다. 부처님 전에 엎디어 절을 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 부처님이시어,어떻게하면 팀진치 삼독에 찌든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 농도가 더해졌다. 나는 도대체 순도 몇 도나 끓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부처님 전에 절을 할 때만 잠깐 끓고 마는 속인이다. 법당을 나서면 금방 망각을 하고 사바세계의 유혹에 끄달리는 미련한 중생이다.
부처님께서는 하루 한 끼 식사를 걸식으로 해결했다. 육신이라는 옷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걸식, 빌어먹는 것, 아무런 재산도, 가진 것도 없어야만 걸식을 할 수 있다. 체면도 명예도 완전히 벗어 버려야만 구걸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왕자의 지위에 계시던 분이 아닌가? 왕의 자리가 완전히 보장된 왕자가 가출을 해서 걸식을 하며 도를 구하신 분이다. 걸림이 없는 분, 공의 상태에 있는 분. 왕자의 신분이던 분이 구걸을 한다? 그런데 과연 내가 거리에 나서 구걸을 할 수 있을까?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러니 나는 미련한 속인일 수 밖에 없다.
절을 하고 뒤를 돌아보니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법당에 들어 올 때만 끓어오르려고 하는 사람인 내가....
적어도 30~40도는 끓어올라야 저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끓어 오르자. 저 아이들은 만난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의 모습이 스크린처럼 죽~ 지나갔다. 저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까지는 끓어오르겠지.
▲향운사 벽에 걸린 네팔 후원 어린이들 사진
좁은 법당 벽에 붙여 놓은 네팔 아이들의 사진 속에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이들이 눈이 빠지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다. 4년 전에 만난 아이들이다. 그래, 끓어 오르는 이 마음이 식기 전에 저들을 만나야 한다.
곧 석정거사(케이피 시토올나)가 왔고, 우리들의 짐을 운반할 벤과 용달차가 도착했다. 이어서 잠시 후에 심해정 보살님과 보리화 보살님도 도착을 했다. 나와 석정거사가 무거운 짐을 용달차로 운반을 했다. 노트북 등 가벼운 짐은 벤으로 옮겨 실었다. 차가운 공기속에서 일을 하는데도 등에 진땀이 났다. 허허, 이제 조금 끓어 오르는 것일까? 식지말아야 할텐데... 짐이 용달차와 벤 트렁크에 가득찼다.
짐을 다 옮기고 나니 명조스님께서 누룽지를 끓여 놓았다고 법당 한쪽에 자리 잡은 부엌으로 오라고 했다. 마루와 부엌이 함께 딸려 있는 작은 법당. 법당이자 가난한 두 비구니 스님의 거처이다. 이렇게 구차한 살림을 하고 있는 두 스님이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했다.
그 중 한 분은 심장병으로 10년 넘게 앓고 있다. 심장 가동이 20퍼센트를 밑돌아 서울 아산병원 심장센터에 심장이식 등록을 해 놓으신 분이다. 그런 분이 남을 위해 기도를 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고 있다.
아, 장하고 가련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 스님은 몇 도나 끓고 있을까?
아내가 심장병을 앓은 인연으로 7년 전에 알게 된 스님. 스님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다. 아내는 6년 전에 이미 심장이식을 해서 숨을 편하게 쉬고 있다. 그러나 스님은 아직 숨쉬기 힘든 심장으로 겨우 집안에서 걸음마를 하며 장기를 기증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분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남을 돕자고 나섰다. 시줏돈만 축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동참을 했다. 그리고 한국자비공덕회란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란 허울을 쓰고 남에게 구걸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다르다. 천성이 맑다. 그래서 두 분은 감동을 주는 사연을 듣기만 해도 자주 울컥하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그 울컥하는 마음, 그 마음에 끌려서 이분들의 뜻에 동참을 하고있다. 벽에 걸려 있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다시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래 너희들을 만나러 가야지.
모두가 부엌으로 가니 고소한 누릉지와 지글지글 끓는 미역국이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식욕을 돋우게 했다. 그래 이 지글지글 끓는 미역국이 나는 더욱 끓게 해주겠지. 식지 않게....
"미역국이 비행기를 오랫동안 타는데는 좋다고 해서 끓였어요. 많이들 드세요."
"스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명조 스님께서 여법한 미소를 지으시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미역국을 한 그릇씩 떠 주셨다. 우리는 용달차 운전사, 벤 운전사랑 모두 함께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 누룽지에 뜨거운 미역국을 후르륵 후르륵 마시고 나니 없던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명조 스님께 잘 다녀 오겠노라고 인사를 드리고 미역국으로 후르륵 달아오르는 육신으로 벤에 올라탔다.
지상스님, 심해정 보살님, 보리화 보살님. 대자심 보살(아내)과 내가 벤에 타고 석정거사는 짐을 돌본다며 용달차에 올라탔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봉사를 하는 시토울나씨가 무척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스님, 잘 댕겨 오겠습니다."
"조심히들 다녀오세요!"
손을 흔드는 명조스님께 인사를 하자 곧 벤이 움직였다. 스님은 우리가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르며 환송을 해주었다. 심장이식을 위해 장기 이식 등록을 해 놓은 환자 같지 않게 태연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수행정진을 해 온 여법한 스님의 진정한 모습이다.
▲인천공항 가는길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한강을 건너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7시 30분, 벌써 몇 분의 보살님들이 와 계셨다. 대한항공 카운터에 모여 짐을 나누어서 패킹을 했다. 봉사를 하러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다른 보살님도 그냥 여행을 가는 기분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환하게 보였다.
허지만 출발을 할 때부터 트러블의 연속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아이들에게 줄 가방, 신발, 볼펜 등을 15명의 회원들에게 분배하여 짐을 달아보니 규정중량을 훨씬 초과하게 되어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번 여정은 대부분 70대를 전후한 노령 층으로 무리하게 핸디케리어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이륙 시간이 촉박하도록 짐을 부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15명의 일행 중 지상스님을 비롯하여 12명이 여성이고 남자는 석정거사, 상민거사,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우리 세 사람이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등 잡다한 허드렛일을 전부 감당해야 했다.
15명의 회원이 부친 짐은 총 20개였다. 그중 5개의 덩어리가 총 인원대비 무게가 초과되는 짐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초과된 짐을 한진택배 박스를 구입하여 10만원의 초과비용을 부담하고 짐을 부쳤다. 이미그래이션을 통과하자말자 허겁지겁 달려가 겨우 탑승을 하고 나니 바로 비행기가 곧 이륙을 하였다.
첫댓글 글을 읽으며 그저 감사한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