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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혼과 그 길을 찾아서... |
김 성 삼
김 찬 권
목 차
◆ 들어가는 말 .......................................................... 1
◆ 시나리오 : 태권도의 혼과 그 길을 찾아서... ..... 1
◆ 시장분석 .............................................................. 22
1. 태권도
2. 관광
◆ 테마개발 ..................................................................... 23
테마 1. 구천동 33경 극기 수련 및 산사체험(템플스테이)
테마 2. 명인과 함께하는 태권도 캠프
테마 3. 태권 웰빙 다이어트 프로그램
테마 4. 오감 테마파크(무술 종합 촬영소)와 태권도 관광
테마 5. 태권도와 한방을 접목한 요양 프로그램
◆ 홍보방안 ..................................................................... 25
홍보 1. 태권도공원 랜드마크 제작
홍보 2. 세계 무술 영화제
홍보 3. 태권도 가족 UCC 콘테스트
홍보 4. 어린이 창작 태권 동요제
홍보 5. 태권도 문화 축제와 함께 문화 엑스포 확대
◆ 기타 ............................................................................ 27
1.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태권도공원 운영에 관한 홍보
2. 태권도공원 안내용 휴대용 단말기 활용
3. 공원 내 이동보도(무빙워크) 설치 운영
4. 네이밍 스폰서 쉽 경기장 도입
◆ 들어가는 말
50여 년 동안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과 해외 사범들의 노력으로 이룩한 태권도의 세계화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브랜드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그 정신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태권도성지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태권도공원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국내 여러 지역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심사한 결과 호국무술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는 무주에 태권도공원을 조성키로 하였고, 법률제정에 이어서 순조롭게 진행되어오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교통도 불편하고 태권도와 아무 연관도 없는 두메산골 골짜기에 태권도공원을 만들어야 하냐?”고... 하지만 그것은 호국무술의 전통지역이었던 무주의 역사와 그 역사가 말해주는 무주만의 천혜적인 지리적 요소에 대해 몰라서 나온 말들인 것 같다.
이제부터 무주의 깊은 역사 속에서 시작된 한 대(大)사범님의 태권도가 닮긴 삶과 여행을 통한 깨달음의 이야기로 ‘왜 무주에 태권도공원이 들어서야하나’와, 그것이 글로벌 세계화와 우리나라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 제목 : 태권도의 혼과 그 길을 찾아서...
▶ 때 : 2013년 8월
▶ 등장인물
- 문덕영 사범 : 태권도 9단, 서울올림픽 우승자, 현재 미국 뉴욕에 글로벌 태권도 도장 체인 본부 대표로서 미국 본관 지도자
- 최운산 사범 : 태권도 9단, 문덕영 사범의 절친한 친구로 한때 문 덕영 사범과 함께 선수생활 도중 부상 후 은퇴, 이후 전라 북도 무주에서 도장 운영
- 차훈영 교수 : 태권도 6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운산 사범의 제자로 현재 태권도공원 사범관 교수
지난해 2012년 봄, 문덕영 사범은 태권도공원의 차훈영 교수로부터 반가운 초청장을 전달 받았다. 초청장과 함께 동봉 된 CD 속에는 1억여 명에 다다르는 세계태권도 수련인구의 총 본산인 태권도공원 준공 및 운영에 대한 내용과 함께 2013년 7월 ㅇㅇ일부터 개최될 ‘제1회 글로벌 태권도공원 캠프’ 운영에 관한 내용으로 해외 태권도 지도자들의 초청 및 그 문하생들의 참가를 위한 홍보 시뮬레이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CD에는 대한민국의 대표브랜드로서 그 가치를 빛내고 있는 태권도공원의 조성 과정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내용이 시뮬레이션으로 담겨있었다.
우편물을 받았을 때 문덕영 사범은 문득 20여 년 전 그 겨울이 떠올랐다. 서울올림픽 우승자로서 문사범은 이미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꽤 유명한 태권도 스타였으며, 한국 스포츠계 내에서도 꽤 높은 지위까지 올라있었다. 그래서 그의 일상은 바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 불빛을 보다 문득 ‘나는 왜 태권도를 시작했는가? 나는 태권도로 무엇을 추구하는가? 내가 바라는 태권도의 목표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문사범 자신에 대한 화두였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문사범은 마치 무방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으로 집에 왔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초췌한 문사범의 얼굴을 보며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았지만 한번 떠오른 화두는 쉽게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고, 결국 오늘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손수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났다. 2시간여 차를 달려 그가 다다른 곳은 바로 전라북도 무주였다.
무주! 무주에는 그가 어려서부터 함께 태권도를 수련했던 최운산 사범이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최운산 사범과 문덕영 사범은 늘 단짝이자 많은 시합에서는 최고의 경쟁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림픽 대표 선발전 훈련 중에 최사범은 큰 부상을 입게 되었고, 그 결과 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최사범은 한동안 방황을 하다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어졌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최사범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터를 잡았네.” 라며 연락이 왔다. 그곳이 바로 무주였다. 언제나 어려움을 함께 했던 죽마고우가 있는 곳, 문사범은 ‘최사범을 만나 밤새 대화를 나누면 자신의 화두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차를 달렸던 것이다.
무주에 도착해서 지나는 주민에게 최사범이 운영하는 도장에 대해 묻자 잘 안다며 친절히 안내 해주었다.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도장, 그러나 도장에 들어서자 도장 내부는 최사범의 어릴 적 성격처럼 잘 정돈 되어있었다. 무도장으로서 손색이 없는 분위기 속에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넘쳐났고 도장의 한 가운데 벽을 차지하고 있는 ‘국기 태권도’라고 서각 된 힘 있는 굵은 필체와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자’는 현수막 글씨가 도장 분위기의 무게를 더해주었다. 이제 환갑이 가까워진 중년의 최사범은 손자뻘 되는 하얀 도복의 아이들에게 파묻혀 사람이 오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었다. 문사범이 도장 안으로 들어선 것을 본 한 어린 수련생이
“사범님, 저기요”
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최사범은 고개를 돌려 문사범을 발견했다.
“오랜만이네 친구, 잘 지냈나.”
“그럼, 그럼 보다시피 천국에서 지내고 있네.”
‘천국이라, 도대체 이 허름한 곳에서 돈도 안 되는 저 아이들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데...’라며 문사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련생들의 지도를 마치고 두 사범은 무주의 대표 음식인 어죽을 먹고 무주 남대천변을 걸었다. 문사범은 최사범에게 먼저
“왜 이곳 무주에 터를 잡게 되었나?” 라고 물었다.
최사범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올림픽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입은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나는 침대에 누워 지내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나의 유일한 낙(樂)이자 취미인 독서를 시작하였네.”
“그동안 오직 운동에만 매달려 생활했기에 태권도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못했었지.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학문적으로 태권도를 접근해보자 마음먹고 책을 통해 태권도의 시원과 역사, 정신 그리고 나 자신이 추구해야 할 태권도의 목표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네. 그 결과 삼국시대 때부터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 삼국의 접경지역으로 호국무술의 본산지였던 무주야 말로 우리 고유 무도인 태권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무주에 터를 잡게 되었다네.”
“그런 일이 있었군.” 문사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최사범은 문사범에게 ‘태권도는 무주!’라는 등식이 왜 성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최사범은 먼저 무주구천동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조선 중기 학자 갈천(葛川) 임훈(林薰)은 명종 7년(1552년) 53세 때 덕유산을 오르고 ‘덕유산 향적봉기’를 썼는데 그에 따르면 ‘구천동은 삼한시대부터 9천명의 호국 무사가 수련을 하며 살았다’하여 그들의 ‘둔지’, ‘둔소’란 뜻의 구천둔이라 불렸다고 하고, 이 9천명의 호국 무사가 아침에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씻은 물이 눈같이 하얀 내(川)를 이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설천(雪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구천둔’에서 둔(屯)이라는 글자의 ‘진칠 둔’은 이곳에 주둔 했던 군대가 사병이 아닌 국가가 인정한 군대였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즉, ‘삼한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였던 무주는 신라의 화랑이나 백제의 수사들처럼 국가의 동량들이 호국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학자 홍만종의『해동이적』에서는 ‘권진인’이라는 사람이 태권도의 전신이었던 ‘수박’을 적상산에서 수련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 다른 문헌에 따르면 조선 후기 학자 설계 ‘박치원’ 역시 설천에서 수박을 수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했다. 이렇듯 구천동은 삼한시대이래로 호국무술 연마의 장이었다. 그렇다면 ‘호국무술의 전통이 유독 무주에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선조들은 굳이 무주를 그들의 수련지로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인데 그것은 무주(茂朱)라는 지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다. 무주가 무주라는 현재의 지명을 갖게 된 것은 서기 1414년 조선 태종 14년 신라 무풍현과 백제 주계현에서 각각 ‘무’자와 ‘주’자를 따서 하나가 되어 무주현이 되었는데, 이것은 과거 신라와 백제로 갈려져 여러 차례의 전투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던 장소로 호국무술의 현장이면서 통일 후 무엇보다 먼저 필요했던 신라, 백제 백성들의 화합의 장으로 만들고자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무주지역이 국가와 민족을 하나로 엮는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자, 호국무술을 수련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호국무술의 전통을 이은 것이 바로 태권도이기에 ‘태권도는 무주!’라는 자연스러운 등식을 만들게 되었다라고 최사범은 말했다. 그래서 최사범은 무주에 터를 잡게 되었노라고...
최사범의 이야기가 끝나자 문사범은 최사범이 말했던 구천동이 보고 싶어졌다. 최사범은 문사범과 함께 구천동을 보기 위해 차를 달렸다. 무주읍에서 20여분을 달려 최사범이 말한 구천동 입구에 다다르자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것은 바로 산 가운데를 뚫은 작은 굴이었다. ‘라제통문’이었다. 최사범은 이곳 라제통문을 제1경으로 시작하여 덕유산 향적봉까지 구천동 제33경이 펼쳐져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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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벽화에 그려진 무예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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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무사들의 수련지 구천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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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경 통일문(라제통문) |
삼국통일시기에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던 길목에 세워졌다하여 ‘통일문’으로도 불리는 라제통문은 ‘옛날 이 일대가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동서(東西)전쟁이 벌어지던 서로간의 최전방 국경지대로 알려져 유명한 곳이며,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풍속과 문물이 판이한 지역이었던 만큼, 그로부터 1,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특색 있는 언어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했다.
또한 그때 얼마나 잦은 전쟁이 있었는지 전장에서 흘린 피가 모여 그 피 냄새를 맡고 파리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는 ‘파리소’가 라제통문 앞에 있었다. 또한 라제통문 주변에는 신라 통일 전쟁 때 격전지였던 무산성지(茂山城址)가 있었고, 무산성지 가까운 곳에는 사선암(四仙岩)이라는 크고 평범한 바위와 울창한 송림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신라화랑 남석행·술랑·영랑·안상 네 사람이 바둑을 두며 놀던 곳이라 하여 ‘사선암’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지금도 바위에 바둑판이 그대로 새겨져 남아있다고 했다.
하얗게 눈 덮힌 계곡을 지나 구천동 관광단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제32경인 백련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사찰(寺刹)을 세우고 백련암이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큰 사찰 몇 곳에만 있다는 금강계단(戒壇)이 있는 절로, 금강계단은 불도의 계율의식(戒律儀式)을 거행하는 곳이라고 했다. 최사범의 말에 의하면 백련사는 한때 14개의 말사를 두고 있었던 절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나 수행자의 수를 어림짐작 할 수 있는데, 이는 호국불교를 지향하는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 비춰보면 왜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련을 했는지 문사범은 짐작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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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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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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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
그렇게 최사범과의 짧은 무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문사범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여러 화두에 대한 한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최사범이 지도하던 도장에 걸려있었던 ‘국기 태권도’라는 서각 현판과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자’는 현수막 글씨와 무주에서 호국무술을 수련했던 수련자들의 정신이 바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태권도의 목표라는 것을... 그래서 문사범은 돌아오자마자 이러한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해외에 호국무술을 수련했던 선배 수련자들의 정신과 태권도의 목표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그렇게 또 속절없이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사범은 그렇게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며 태권도의 혼을 불어넣으며 자신의 화두를 향해 걸어왔다.
고국을 떠나 온지 몇 해인지도 모를 정도로 혼신을 다해 태권도의 혼을 머나 먼 미국 땅에 불어 넣고 있던 어느 날, 고국의 최사범으로부터 두 가지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 하나는 우리 고유의 무도 태권도가 많은 지도자들과 해외 사범들의 노력으로 국가브랜드로서 인정받게 되면서 세계화에 발맞추게 되었으며, 이러한 태권도 정신세계의 중심을 이룰 수 있는 태권도성지를 국가에서는 호국무술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오는 무주에 조성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은 최사범의 제자 차훈영군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이었다. 문사범은 무주가 어떠한 곳인가 직접 방문해서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에 무주야 말로 태권도공원이 들어설 최적지이며, 이러한 무주에서 차훈영과 같은 훌륭한 후배가 배출되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사범은 차교수가 보낸 태권도공원의 운영에 대한 홍보 시뮬레이션 CD를 보면서 1년 후 태권도공원 준공시기에 맞추어 제자들과 함께 태권도의 종주국인 고국방문을 결심하게 된다. 이제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제자들과 함께 20여년 만에 고국 대한민국과 태권도의 메카인 태권도공원 방문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미국에 정착한지 어언 20여년....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한 평생 오직 태권도에 매력을 느끼며 태권도인으로서 정진하고 살아온 지난 세월, 어쩌다 태권도의 화두를 찾기 위해 찾아 갔던 수만리 이국땅, 고독과 외로움을 오직 태권도수련과 제자들 양성에 정열을 불태우며 한 평생을 보낸 지난 세월... 수많은 블랙벨트 제자들을 양성하여 사회의 큰 역군으로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길을 찾아주는 것에 삶의 큰 보람을 느꼈던 지난 세월...
때는 2013년 여름 어느 날, 오랜만에 찾은 고국의 하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나 높고 파랬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인천공항에서 태권도공원까지 버스로 3시간이 걸렸지만, 태권도공원 개원에 맞춰 외국인들의 방문이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 하여 청주공항도 활성화 시켜 청주공항에서 태권도공원까지 고속도로와 4차선 도로를 따라 1시간 만에 갈수 있었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반갑게 맞이한 이는 바로 그의 영원한 벗 최운산 사범과 최사범의 제자 차훈영 교수였다. 하얀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백운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태권도공원은 CD로 보았던 것보다 더 웅장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차교수는 먼저 지난 2005년도부터 시작하여 2009년 9월 착공해서 2013년 지금 개원 준비가 모두 끝난 무주 태권도공원 이곳저곳을 소개 시켜 주었다.
우리일행은 내일 있을 태권도공원 준공식 참석을 위해 공원 옆 민자지구에 한국형 건축물과 정원으로 조성된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장거리여행의 여독을 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문사범은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포근한 고향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백운산과 그 능선 아래쪽에 자리 잡아 조성된 태권도공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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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2시간대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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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공원 조성지(백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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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공원 전망대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재지 앞산 백운산 능선과 계곡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남을 만큼 웅장하고 가장 한국적인 인상을 남겨주기에 충분하였고, 세계 태권도인들의 정신적인 메카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문사범은 시간에 맞추어 제자들과 함께 태권도공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나갔다. 태권도공원 준공식은 백운산 능선 아랫자락 공원입구에 자리 잡아 2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태권도 실내 경기장에서 이루어 졌다. 대통령 및 정부 각료들과 수많은 태권도지도자 및 해외 원로사범들 그리고 각계각층의 VIP들과 지역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이 ‘자손만대에 길이 남을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운 태권도공원 조성에 기여한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를 치하한다.’라는 기념사를 마치고 공원 입구에 설치된 준공 테이프를 자르고 무빙카를 이용한 VIP들의 시설안내를 끝으로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내일부터 있을 제1회 글로벌 태권도공원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지정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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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태권도연맹 가맹 188개국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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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경기장 조감도 |
다음날 일행은 캠프 일정에 따라 공원에 도착하니 차교수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우리 일행들에게는 작은 휴대용 단말기가 하나씩 주어졌다. 차교수는 “이 단말기는 공원 내 모든 시설현황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불어 등 세계 10개국 언어로 들을 수 있고, 글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단말기 내 전자 결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어 공원 내 시설 이용료 및 기념품 구매 결제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공원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이동보도(무빙워크)였다. “이동보도는 공원 내 바디(Body)와 마인드(Mind) 지구에 설치된 시설로서 이 두 지구 시설을 주로 이용하는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설치된 시설”이라고 차교수는 설명했다. 이동보도를 타고 이동하면서 차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틈틈이 궁금한 시설이 있으면 주어진 무선 단말기를 터치펜을 이용해 선택하면 시설 현황을 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별도의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바디(Body) 지구 내에는 태권도 경기장, 전시관, 체험관, 세계태권도 마을, 열린마당의 시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우리 일행의 시선을 끄는 것은 어제 준공식을 했던 태권도 경기장이었다. 경기장은 태극 모양의 개폐식 돔으로 구성되어 날씨에 따라 천장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2만여 명을 수용 할 수 있는 태권도 경기장에서는 매년 국․내외 태권도 경기는 물론, 세계적인 가수의 콘서트 그리고 각종 대규모 문화 행사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눈에 띠게 돔 표면이 유난히 빛나 차교수에게 물어보니 그 이유는 바로 돔 표면에 자가발전을 위해 부착된 태양광 전지판 때문이었다. 차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태권도공원 전체 건물 자체가 환경 친화적 건물로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즉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기를 생산 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고자 각 건물마다 일정 분분을 태양광 발전을 위해 태양광 발전 전지판을 설치하였고, 건물 지하와 외부에는 빗물과 각종 시설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재활용 할 수 있는 중수도 시설이 되어 있어 공원 전체로 볼 때 연간 약10억원 이상의 전기 및 수도료 절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경기장을 지나 전시관에 이르니 그동안 우리 태권도가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삼국시대 호국무술로서 신라 화랑과 백제 수사들이 수련했던 기록들부터 최근 열린 올림픽 대회의 생생한 화보까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문사범은 자신이 우승했던 올림픽 대회 사진을 발견하고 잠시 지난날을 회상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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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공원 전경 조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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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태권도 마을은 말 그대로 세계 각국에서 우리 태권도를 좀 더 가까이 수련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5대양 6대주의 약 수많은 나라에서 모인 수련자들이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하나 된 마을을 구성하고 있었다.
문사범은 문득 홍보 CD에서 보았던 ‘명인과 함께하는 태권도 캠프’ 프로그램 대해 궁금한 점이 떠올라 차사범에게 물었다. 차사범은 캠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태권도공원의 명인전은 세계 태권도계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그곳에 머물게 되고, 명인전에서는 매월 일정한 날을 정해 선발된 인원에 한하여 명인과의 대화, 고급 기술 배우기 등, 백운산을 배경으로 수련하는 프로그램으로 태권도 수련자들이 그들이 본받고자하는 고수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참여의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캠프를 통해 수련자들에게는 높은 경지의 태권도 수련에 이르고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지속적으로 수련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 할 수 있으며 이 캠프는 각 테마별로 인증(흰색~블랙)된 수련자에 대해서만 캠프 참여를 허락하지만 1년에 1~2회 정도 깜짝 이벤트(초보 수련자도 참여 가능)를 펼쳐 수련자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명인들을 선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명인과 함께하는 태권도 캠프’를 함께 참여한 미국의 제자들에게 통역을 통해 설명해 주자 그들의 눈망울이 갑자기 반짝반짝해졌다.
태권도 마을을 지나니 탁 트인 공간에서 태권도복을 입은 일정한 사람들이 무엇인가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유심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끔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열린마당에 들어선 것이었다.
열린마당에서는 태권도 시범과 웰빙 태권도 시범을 펼치고 있었다.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태권도 공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수련생들과 일반인들과의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차교수는 설명했다. 열린마당 주변에 문사범에게는 낯익은 건물들이 있었다. 바로 초가집이었다. 그리고 그 초가집 한 곳에서는 바로 뽀얀 연기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났다. 그곳에서는 바로 가마솥에 밥을 하고 있었다. 그렇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문사범과 일행은 그곳에 들러 오랜만에 고향의 하얀 쌀밥과 무주의 청정 지역에서 채취된 산나물, 된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옆 건물들을 보니 김치전 등 한국의 고유 먹을거리와 떡메치기 등의 한국의 전통 체험 거리가 가득했다.
점심을 먹고 차교수를 따라 간 곳은 바로 마인드(Mind) 지구였다. 이곳에는 사범관, 수련관, 태권도 연구소가 들어서 있었다. 사범관에 들어서자 태권도 공원에서 세계 태권도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많은 후배 사범들과 이번 캠프에 제자들을 인솔하여 참여한 각국 사범들이 문사범 일행을 따뜻이 맞이해 주었다. 사범관은 세계 태권도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학문적, 실제적 교육을 담당하는 곳으로 세계 태권도 대학과, 대학원이 들어서 있었다. 차교수 역시 “올림픽 이후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이곳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수련생과 사범들을 지도하며, 요즘에는 사범관 내에 벤처 기업을 설립하여 태권도의 산업화에 대한 여러 연구를 수행 중”이라고 했다. 마인드 지구 내 또 다른 시설인 수련관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우렁찬 기합의 소리가 들렸다. 벌써 수련이 시작된 모양이다. 이곳에서 수련 중인 일반인들의 기합 소리였다. 수련관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짧게는 1박 2일에서 길게는 6개월 이내의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특히 문사범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다양한 체형의 미녀들의 모습이었다. 문사범이 차교수에게 그녀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묻자 차교수는 미소 지으며 “미녀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공원 내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바로 ‘태권 다이어트 프로그램’ 이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소 3개월에서 최장 6개월 동안 미녀들이 합숙하며 진행하는 것으로서 무주의 청정 공기 속에서 태권도 수련과 식이 요법을 접목하였다”고 했다. 즉, “현대인들의 최고의 적이자 만병의 근원인 비만을 물리치기 위해 아침 5시 기상을 시작으로 명상과 태권도수련, 태권도공원을 감싸고 있는 백운산과 무주의 명산인 덕유산의 등산, 그리고 무주에서 생산되는 각종 과일과 야채를 중심으로 웰빙 식단으로만 구성하여 미녀들이 원하는 건강한 몸매를 자연스레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차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성인 남녀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차교수는 귀띔해 주었다.
수련관과 이어진 태권도 연구소에 들어서자 좀 전 수련관에서 울려 퍼지던 기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알 듯 모를 듯한 빛과 작은 웅성임이 들렸다. 차교수에게 물으니 “그 빛의 정체는 장애우들도 태권도를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광센서 장치를 위한 연구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고 작은 웅성임들은 세계 태권도 석학들이 함께 모여 미래의 태권도 발전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토론하는 방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한다. 하긴 문사범이 태권도공원 시설을 둘러보며 말은 안했지만 공원 시설 내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을 배려한 여러 시설은 작은 감동이었다. 인간의 몸은 언젠가는 장애가 오게 되는 것, 문사범 자신 역시 내일 모레면 환갑을 바라보기에 현재는 아무리 정정하다고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먹는 나이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런 한 발 앞서는 배려정신이 무빙워크가 각 건물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등으로 표현되었고 덕분에 공원 곳곳을 이동하면서 불편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낮이 긴 여름날이지만 어느덧 해는 조금씩 산을 넘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으로 들러야 할 곳은 바로 스프릿(Spirit) 지구였다. 이곳은 원로 태권도인들의 사후를 모신 추모공원과 고단자들이 모여 수련하는 명인관, 그리고 한국 고유의 문화인 제례와 각종 명상 프로그램을 치를 수 있는 태권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문사범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곳은 바로 명인전이었다. 20여년 전 한국에서의 모든 부와 명예를 누리다 어느 날 떠오른 화두를 붙잡고 고민하다가 친구 최사범으로부터 작은 실마리를 얻고 과감히 미국으로 건너가 오랜 시간에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룬 문사범이지만 사람이 가진 수구초심(首丘初心)은 그에게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 이번 세계 태권도 캠프 참가도 이제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면서 ‘돌아와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에 머무르며 남은 일생을 살아야 하나’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결책이 바로 태권도공원 안의 명인관에 있었다. 명인관에는 공원 개원과 함께 이제 곧 세계에서 모일 태권도계 최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사범은 이제 멀지 않아 평생지기인 최사범과 함께 이곳에 머무르며 노후를 보람 있게 보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면서 잠시 상상에 잠겨 있는데, 이미 명인전에 올라와 기다리고 있던 최사범이 문사범에게 명인전 이곳저곳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 이제 멀지 않아 돌아 올 때가 된 것 같네,”
“이곳에서 우리 함께 지내며 남은 생을 함께 수련하면서 살면 어떤가?”
라는 제안을 했다.
문사범은 최사범을 보며 미소로 화답했다. 해는 이미 산을 넘었고 그 자리에는 환한 보름달이 이들을 비추고 있었다.
태권도공원에서 내려와 문사범은 일행과 함께 태권도공원 옆 민자 지구에 들어선 숙소인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민자 지구에는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었고, 24시간 편의점으로부터 대형 할인 마트까지 여행객과 장기 거주자들을 위한 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 그 중 문사범이 머문 숙소 유스호스텔은 외관은 전통 한옥이나 내부는 현대적 편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일부는 고집스레 온돌방을 설치한 곳이었다. 한여름이라 난방 없이 이틀을 지낸 방이지만 문사범의 피곤한 모습을 본 주인은 “피로에는 따뜻한 온돌이 좋다”며 “원하신다면 불을 지피겠노라”고 했다. 이에 문사범은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랬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방바닥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뜻해지는 방바닥만큼이나 먼 길을 날아온 여독에 문사범은 오랜만에 고향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등 붙이고 눕자마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곳의 아침공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맑은 공기였다. 문사범은 따뜻한 온돌 덕에 산뜻한 마음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몸으로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오늘부터 글로벌 태권도공원 캠프가 시작되기에 미국에서 함께 온 제자들을 위해 챙길 것이 많았다. 글로벌 태권도공원 캠프는 단순히 태권도를 체험하는 그 이상의 캠프였기 때문이다. 호국무술로써 선열들의 발자취를 쫓아 선조들이 수련했던 방법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태권도의 혼을 체득하는 캠프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극기체험과 참선체험 그리고 산사체험 일정으로 태권도 도복을 입고 태권도 공원에서 출발하여 무주구천동 33경의 제1경 라제통문을 시작으로 구천동 계곡을 따라 1982년 아시아․태평양 잼버리 대회가 개최되었던 덕유산 국립공원 덕유대 야영장을 거쳐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코스이다. 아직은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 자체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계곡을 따라 중간 중간 제법 험난한 코스도 있기에 참가자 개인의 체력은 물론 참가자 상호간의 협동심도 필요 할 것이라는 것이 차교수의 설명이었다. 평소 끊임없는 수련으로 체력에는 자신 있는 문사범이지만 약간은 긴장되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그 옆에 그에 든든한 벗 최사범이 이번 캠프에 함께 하기로 한 점이다.
제1경 라제통문은 몇 해 전 최사범과 함께 와 본 곳이어서인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이곳이 바로 구천동 계곡의 입구이자 선조들이 호국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심산유곡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라는 생각에 문사범의 마음은 한껏 설레임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함께 온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자신의 느낌이 전달되길 바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라제통문을 은구암(隱龜巖), 청금대(廳琴臺), 와룡담(臥龍潭), 학소대(鶴巢臺)를 지나 제6경 일사대(一士臺, 일명 수성대)에 이르렀다.
일사대(一士臺)는 구천동 33경 중에서도 3대 경승지의 하나로 손꼽히며, 일명 수성대(水城臺)라고도 한다. 라제통문에서 구천동 방향 6.1km 지점에 서벽정(棲碧亭)이 있고, 그 서쪽에 서있는 창암(蒼岩)이 마치 배의 돛처럼 우뚝 솟아 세속을 떠나 홀로 고고함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이곳은 고종 황제의 스승이자 구한말 학자 연재 송병선이 나라의 어지러움을 개탄하며 조정의 중신자리를 내놓고 이곳에 은거하며 서벽정을 짓고 대자연과 더불어 우국의 정을 달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스스로 호를 동방일사(東方一士)라 칭하였다. 연재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수일간 단식하다가 끝내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연재의 고고함을 들어 후학들은 그의 스승을 일사(一士臺)라 하였다고 한다. 그 아래로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깔려 있고 흘러 내려오는 계곡의 물이 넘실거리고, 암반의 아래편은 암반에서 놀다가 언제든지 뛰어 들어가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풀(pool)이 형성되어 있었다. 또 물 속에 불쑥 솟은 한 바위에는 ‘영기인간(永棄人間) 오도부창주(吾道付滄洲) : 인간사를 영원히 버리고 나의 도(道)를 창주(創州)에 붙인다.’라고 한 연재의 9대조 우암 송시열의 글이 새겨져있었다. 일행은 나라가 기울어감을 보며 울분을 삭히던 우국충정의 연재 선생을 생각하며 잠시 선조들의 나라사랑을 기리기 위해 묵상하였다. 이어서 출발하려는 순간 제자 중 한명인 제임스가 발을 헛디뎠다. 평소 수영을 잘하는 그였지만 순간 당황하여 허우적거렸다.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문사범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곳은 깊은 계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사범이 손을 잡고 나오는 제임스는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라는 것과 손을 내민 문사범을 통해 언젠가 문사범이 수련 할 때 이야기 했던 ‘줄탁동시(啐啄同時 : 어미 닭과 병아리가 서로 협조하여 계란을 깨고 세상에 나오다.)’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수성대를 뒤로 하고 함벽소(涵碧沼), 추월담(秋月潭), 만조탄(晩釣灘)을 지나 제11경 파회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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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캠프 극기 훈련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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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계곡의 참선수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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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훈련 중 |
구천동의 33경의 또 다른 명소의 하나인 파회는 고요하게 소(沼)에서 잠겼던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켜 커다란 기암에 부딪히며 제자리를 맴돌다 기암사이로 흘러가는 곳이다. 이곳 경관은 선경인 양 황홀하기만 했고, 주변이 딴 명소보다 넓기도 하고 경치가 매우 다양했다. 길가에 거암이 고립되었고 그 위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크지는 않으나 천년을 묵었으며, 나무 이름이 천년송(千年松)이요, 바위 이름은 천송암(千松岩)이다. 이 소나무는 신라시대의 일지(一枝)대사가 이곳을 탐승하고 자기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기운을 불어 넣은 소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꽂은 것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나무의 몸통 줄기를 중심으로 매년 한쪽 가지가 살고, 한쪽 가지는 죽고, 다시 다음 해에는 다른 쪽 가지가 살고, 다른 쪽 가지가 산다는 영험한 소나무라고 차교수가 설명했다. 파회 옆에는 제12경 수심대(水心臺)가 있었다.
수심대는 옥같이 맑은 물이 굽이굽이 돌고 돌아 흐른다하여 수회(水回)라고 부르기도 하고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 산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하여 소금강이라고도 했다. 신라 때 이곳 파회를 구경하고 절벽 산에 올랐던 일지대사가 산 아래 맑은 물에 비치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도(導)를 깨우친 곳이라고 하여 수심대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수심대 절벽 산 벽에는 울퉁불퉁한 기암괴석들이 형언 할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세상 군상들이 숨어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형상이 토끼나 거북이 또는 예수나 부처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듣고 설명 없이 함께한 미국의 제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의 대답도 가지각색이었다. 각자의 대답을 들은 후 절벽에 대해 설명해주니 제자들은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이곳은 넓은 주차장 시설이 있어 평일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차를 주차하고 계곡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우리 일행 역시 이곳에서 태권도공원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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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경 수성대(서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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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경 파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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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경 수심대 |
계곡은 자꾸 덕유산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맑은 물에 씻긴 기암이 흐르다 멈춘 담수에 자락을 드리운 채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소를 지키고 있었다. 불교 전성기 때는 백련사를 비롯한 구천동 계곡 안의 불교성지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고 들어갔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제13경 세심대(洗心臺)였다. 우리 일행역시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심대를 지나서부터 수경대(水境臺), 월하탄(月下灘), 인월담(印月潭). 사자담(獅子潭), 청류동(靑流洞), 비파담(琵琶潭), 다연대(茶煙臺), 구월담(九月潭), 금포탄(琴浦灘)등 다양한 구천동 계곡의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금포탄을 지나자 우거진 밀림 사이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고 주위에는 대나무가 뒤덮여 지금이라도 호랑이가 뛰어 나올 것 같은 곳에 큰 바위가 겹쳐 높이 솟아 있었다. 옛날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산신을 모시고 덕유산을 지키며 지리산을 왕래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신의 명으로 특약을 구하러 가던 호랑이가 바위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다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소에 빠져 100일간 꼼짝 못하고 울부짖기만 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이 바위를 호탄암이라 부르는 이곳이 제23경 호탄암(虎嘆岩)이다. 실제 구천동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개발되기 전까지는 호랑이가 사람을 습격하는 경우가 잦았고, 수심대를 지나는 길 옆 대평 마을이라는 곳에는 이러한 호랑이의 피해를 막고자 주민들이 돌을 쌓아 더 큰 호랑이의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호랑이 바위’도 있었다. 호탄암이라는 이름을 들어서인지 정말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호랑이가 튀어 나올 듯했고,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계곡이 깊은 만큼 구천동에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있었는데 또 다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층암을 타고 쏟아지는 2단 폭포는 자연이 창조한 예술작품으로 옛날 천상의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즐겨 놀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 제28경 구천폭포(九千瀑布)였다. 이제 백련사로 들어가는 계곡의 마지막 소(沼)로서 백련사를 드나드는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속세를 멀리하며 불도에 정진했다고 전해지는 백련담(白蓮潭)과 연화폭(蓮花瀑)을 지나 이속대(離俗臺)에 이르니 백련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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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경 세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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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경 호탄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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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경 구천폭포 |
드디어 하루의 긴 여정을 마치고 제32경 백련사(白蓮寺)에 도착하였다. 백련사는 덕유산을 배경으로 그 중턱(해발 92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구천동 골짜기에서는 유일한 사찰이요 구천동을 대표하는 고석대찰(古昔大刹)이다. 이곳 백련사 지역은 그 옛날 9천명 호국무예를 수련했던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씻은 쌀뜨물이 70리 계곡을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설원이라는 지명을 낳게 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14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과 일부 흔적만 남은 체 오직 백련사만 남아 있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AD 681~692년경)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절을 세우고 백련암이라 했다는 오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어쨌든 백련사는 1900년 중수하였고, 그 후 구천동 계곡이 북해도제국대학의 대학림으로 지정되어 사찰 건물이 일본식 초가로 변모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고, 6·25전쟁 때는 사찰의 모든 당우가 불타 버렸었다. 그 뒤 10여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다가 60년대 중반부터 복원 불사가 꾸준히 진행되어 지금은 대웅전과 원통전, 명부전, 보제루, 천왕문, 일주문, 범종각 등이 갖추어져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매월당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를 비롯하여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 62호), 백련사계단(전라북도 기념물 42호), 정관당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102호) 등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하루 밤 묵으며 태권도와 함께하는 산사체험과 우리 고유의 선(仙) 문화를 체험하기로 했다. 모두들 피곤했지만 간단한 세면 후 저녁 발우 공양을 했다. 하루 종일 걸어 모두 허기가 져서인지 산나물과 몇 가지 찬과 밥으로 구성된 간단한 저녁이었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함께 온 미국의 제자들에게는 한국에 오기 전 설명해 주었던 발우공양이었지만 자기가 먹은 식기까지 씻는 발우공양을 직접 체험해 보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백련사 주지 스님의 호국무술과 호국불교에 대한 강의와 문답이 이루어졌다. 주지 스님 역시 비록 서툰 영어였지만 통역의 도움을 간간히 받으며 대부분의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셨다. 참가한 제자들 역시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모두들 주지 스님의 강연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히 메모를 하거나 어떤 제자는 아예 캠코더로 녹화를 하는 제자도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졌고 백련사에 마련된 선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다. 문사범은 제자들이 모두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서야 침소로 돌아왔다.
침소에 돌아오니 최사범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방 텃마루에 앉아 기다리던 최사범은 문사범에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 했다.
“친구야, 어릴 때 함께 보았던 저 별들을 기억하니?”
최사범의 말에 문사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맑은 여름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별똥 하나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수많은 별들이 최사범과 문사범의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은 한참동안 말없이 별을 보며 말없이 백련사 선방 마루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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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체험 발우공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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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배 참선수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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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아침 태권도 참선수련 |
새벽 4시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 바로 백련사의 하루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최사범과 문사범은 어제의 피로도 잊은 채 곧 법당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문사범의 제자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얀 도복을 입고 한 무리의 학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수련장 스님의 지도에 따라 108배가 시작되었다. 한 마리 한 마리 학이 군무를 하듯 서로의 자세는 달랐지만 모두들 열심히 108배를 따라했다. 108배 후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고 이내 백련사 경내 넓은 공간에 나와 아침 태권도수련을 시작했다. 차훈영 교수의 지도에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모두가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다.
차교수의 지도로 수련을 하는 동안 최사범과 문사범은 경내 산책을 하면서 최사범이 갑자기 떠오르는 시 한수를 읊는다.
태권도와 함께한
산사의 하루
부처님과 함께
자비를 느끼며
산사의 하루를 시작하네.
무아의 지경에 몰입하니
어느새 동녘은
오색찬란한 무지개 햇살
밝은 광영을 맞보게 하네.
속세의 그 무엇이
이처럼 밝고, 희망차고, 찬란함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으리요.
하얀 도복 입은 태권 전사들이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자아를 깨달으며
산사의 하루를 보내네.
한 시간여 아침 수련을 마친 일행은 아침 공양을 했다. 아침 공양 후 향적봉 등정에 앞서 잠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의 풍경은 정말 자유스러움 그 자체였다. 어떤 제자는 열심히 백련사 이곳저곳을 탐험하는가 하면, 어떤 제자는 아직도 물어 볼 것이 많다는 듯 어제 한국의 선에 대해 강의했던 주지스님 꽁무니를 계속 쫓아다니며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선방으로 들어가 쪽잠을 청했다. 백련사에서 덕유산 정상 향적봉까지는 1시간 30여분 거리 정확히 10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백련사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길은 산 깨나 탄다는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난코스가 군데군데 숨어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선두에 선 차교수나 뒤따르는 최사범과 제자들 역시 힘겨운 산행이었다. 그렇게 2시간여가 흐른 뒤 우리 일행은 덕유산 정상 해발 1,614m 덕유산 향적봉에 올랐다.
구천동의 마지막 제33경 덕유산 향적봉, 덕유산은 우리나라 12대 명산중 하나이며 해발 1,614m의 향적봉(香積峰)을 주산으로 무풍의 삼봉산에서 시작하여 대봉, 덕유평전, 중봉,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에 이르기까지 그 높이가 대부분 1,000m를 넘는 높은 산들로 장장 100리길의 대간을 이루고 소백이라는 이름으로 산맥을 이루어 영·호남을 가른다.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영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면, 북으로 가깝게 조선시대 사고지를 둔 적상산이 보이고, 향적봉 정상에서 발원한 옥수가 흘러내리며 구천동 33경을 만들며, 북사면의 무주 리조트, 서남쪽의 칠연계곡을 이루어 수많은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덕유산은 두문산, 칠봉, 거칠봉 등의 고봉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원추리 고운 빛깔이 능선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에게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 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고 차교수는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덕유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 및 조선 태조 이성계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을 말해주었다.
덕유산(德裕山)의 원래 이름은 광여산(匡廬山)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戰禍)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했는데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고, 그 안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던 신비로움에 사람들은 덕이 있는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더불어 덕유산 상봉에는 제단(祭壇)이 있었는데 이 제단은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쌓은 제단으로 전한다. 태조 이성계가 이 제단들 쌓을 때 쇠로 만든 말(馬)과 비를 함께 세워 ‘동비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차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문사범은 문득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 상편(上篇)에 나오는 ‘등태산이소천하(登太山而小天下)’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조그마하게 보인다는 말로 이 말에 얽힌 이야기는 ‘공자께서 노(魯)나라 동산(東山)에 올라가서 보니 노나라가 작게 보였고, 태산(太山)에 올라가서 보니 천하(天下)가 작게 보였다. 그렇기에 바다를 구경한 사람에게는 어지간한 큰 강물 따위는 물같이 보이지 않고 성인(聖人)의 문하(門下)에서 배운 사람은 어지간한 말들은 말같이 들리지가 않는 법이다.’는 뜻의 말이다. 문사범 역시 막상 말로만 듣던 민족의 영산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 올라보니 공자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런 고사를 남기셨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품었던 선조들의 기상도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받았다.
향적봉을 내려와서 설천봉에 이르러 곤도라를 타고 하산하면서 무주리조트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무주리조트는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했던 곳으로 외형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직수입한 자재로 지어진 특급 호텔 티롤을 비롯하여, 국내 최장 슬로프를 자랑하는 스키장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골프장까지 갖춘 곳으로 사계절 종합 가족 휴양지로 한국에서 소문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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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정상(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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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설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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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동계 U대회 개회식 |
특히 리조트 내에 와인갤러리에서는 무주만의 특산품인 머루와인의 맛을 보았다. 이는 무주에서 생산된 머루를 원료로 제조한 와인으로 몸에 좋고 다른 어느 나라 와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맛과 향을 겸비한 와인이었다. 와인의 맛을 아는 서양 사람들인 문사범의 제자들은 이 머루와인의 맛에 원더풀! 원더풀! 하고 외치기만 했다.
이렇게 캠프의 하루가 또 저물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일행은 산채정식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이틀간의 힘든 여정을 마치고 자유시간과 휴식을 가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자들은 내일부터 3일간 있을 글로벌 태권도 캠프의 메인이벤트인 태권도 경연대회(품새, 겨루기, 태권체조, 격파)를 준비하기 위해 태권도공원에 마련된 연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세계 여러 국가에서 온 다른 캠프참가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문사범은 함께 온 다른 후배 사범에게 제자들을 맡기고 태권도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였다. 명인전에 모인 태권도 지도자들은 전혀 낯선 얼굴들이 아니었다. 지도자들은 태권도공원이 건립되기 전부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미 정기적인 모임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들은 이번에 개최되는 ‘제1회 무주 글로벌 태권도 경연대회’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의 많은 부분은 언제나 모든 태권도인들의 과제인 태권도의 정신에 입각한 글로벌화였다. 많은 대(大)사범들의 눈과 귀는 미국에서 단시간에 대가를 이룬 문사범에게 쏠렸다. 문사범은 그들에게 미국내 태권도장 체인을 이룬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였고 이러한 마케팅 전략으로 태권도공원도 결국 한국에서의 태권도공원이 아닌 세계의 태권도공원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많은 사범들과 태권도계 인사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3일 간의 경연 대회가 모두 끝났다. 각국의 참가자들은 무도인 답게 또 스포츠인 답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격려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품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트처럼 기본 동작과 응용 동작에 대한 점수를 각각 매겨 합산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판정에 대한 시비를 대폭 줄였다. 겨루기 대회 역시 전자호구를 사용하고 야구에서의 비디오 판독처럼 모든 경기를 녹화하여 시시비비가 발생할 경우 즉석에서 소청심의위원들에 의해 다시 판정하게 하여 판정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켰다.
이제 모든 일정은 끝났다. ‘제1회 태권도공원 캠프’에 참가한 많은 해외 태권도지도자 및 수련생들은 ‘태권도 캠프에 참가한 것을 매우 값지고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라며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 태권도 수련에 더욱 더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문덕용 사범의 제자들 또한 ‘사범님의 나라,’ ‘태권도의 나라,’ ‘내가 수련하는 태권도의 종주국’ ‘태권도의 메카’를 방문하여 태권도의 역사와 혼과 자연과 함께 한 극기 훈련, 그리고 조용한 산사의 선수련과 태권도수련, 이어진 태권도공원 연수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련생들과 함께한 태권도경연을 통하여 맺어진 우정, 그리하여 얻은 홍익인간의 이념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태권도정신의 깨달음 등 이 모든 것들은 그들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값진 배움이었고, 참된 교육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으로 가는 길은 문사범에 있어 정리를 위한 짧은 여행처럼 여겨졌다. 바로 태권도공원이 있고 오랜 벗이 있는 무주로의 귀향을 위한... 공항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문사범은 자신이 살아온 일생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시골마을인 고향에서 자유로이 들판을 뛰놀던 망아지 같던 자신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태권도장에 가던 날,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한 맞수이자 벗이 될 최사범을 처음 만났던 기억... 또한 성인이 되어 대표 선발전 대비 훈련 중에 부상을 입고 쓰러진 최사범이 구급차에 실려 갔던 기억... 그의 잠적과 재회... 자신에게 주어진 화두를 해결하기 위해 떠났던 미국... 그리고 이제는 친구와 함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될 무주 태권도공원의 개원...
문사범에게 태권도는 삶이었고 종교였다. 그러나 한때 그의 삶이자 종교인 태권도의 허상만을 쫓았던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넘쳤던 최사범의 무주 도장에서 본 벽에 걸려 빛나던 ‘국기 태권도’라는 글씨... 그리고 그 안에 조상들이 면면히 수행했던 호국무술, 이를 이어받은 홍익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는 태권도 정신 그리고 태권도의 세계화, 무주의 태권도공원까지... 문사범은 그가 비록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무주에서 그의 새로운 꿈과 인생을 시작 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벗과 함께...
◆ 시장분석
1. 태권도
- 태권도는 1988년 올림픽 시범종목에 선정되었으며, 1994년 제103차 파리 IOC총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
- 전 세계 태권도인을 살펴보면, 아시아연맹 41개국, 오세아니아연맹 13개국, 아프리카 연맹 43개국, 유럽연맹 49개국, 팬암연맹 42개국으로 총 188개국이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으며 2008년 현재 세계 태권도 총 회원 수는 약 7천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2008년 국기원에서 집계된 전 세계의 품・단별 유단자 수는 약 700만 명으로 2006년 632만 명에 비하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국내 태권도 수련 인구는 품․단증 취득자 기준(2008년)으로 살펴보았을 때, 710만 명에 달한다. 국내 태권도도장은 2007년을 기준으로 총 10,822개이고 타 무술종목과 비교해 볼 때, 전체 체육도장 약 13,000개 중 태권도도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로 조사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태권도 도장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 관광
- 무주군의 관광자원 중 자연 및 생태자원은 총 54개소이며, 대표적인 관광지는 덕유산국립공원, 적상산, 구천동 계곡, 칠연폭포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무주구천동의 비경인 제1경 나제통문부터 33경 향적봉에 이르기까지 70리가량이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어져 있는 무주구천동 33경이라는 아름다운 자연관광지가 있다. 또한 무주군의 축제는 무주 반딧불이 축제, 고로쇠축제, 철쭉제, 안성 천마 축제, 부남 강변 축제, 적상머루축제 등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한 축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매월 각 지역별로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 세계관광시장은 2010년 연간 10억 명, 2020년 연간 15.6억 명 이상의 규모로 성장하여 세계인구의 약 20%가 국제관광에 참여할 것으로 세계관광기구(WTO)에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지역간(중국~한국~일본)관광 산업이 가장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관광객 수에서도 동 아시아 지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지역으로 예측되고 있다.
- 2008년 현재 무주군 관광객 수는 약 740만 명이며, 이는 2004년 140만 대비 약 600만명이 증가한 수치로서 이러한 추세라면 2013년 태권도공원이 개원될 때에는 관광객 수가 1,000만명 이상이 될 것이다.
◆ 테마개발
테마 1. 구천동 33경 극기 수련 및 산사체험(템플스테이)
- 삼한시대 이래로 호국무술의 수련의 장이 된 수려한 구천동 계곡을 탐방하면서 선열들의 수련을 뒤쫓아보며 태권도정신의 극기를 체험한다.
- 제1경 라제통문을 시작으로 33경 향적봉에 이르는 길(약 25Km)은 수많은 폭포와 소, 바위로 이뤄진 구천동 계곡을 통하는 코스로서 ‘계곡에서 명상하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코스이다. 통상 33경 코스는 하루에 완주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하룻밤을 백련사에서 산사체험(템플스테이)를 하면서 한국의 전통 선(仙)까지 함께 체험 할 수 있는 캠프이다.
☞ 극한의 체험과 산사체험(템플스테이)를 함께 하는 코스로서 태권도 정신 함양은 물론 우리 고유의 선(仙)에 대한 체험도 함께 병행 할 수 있다.
테마 2. 명인과 함께하는 태권도 캠프
- 태권도공원 완공과 함께 명인전이 완성되면 세계 태권도계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 명인전에서 매월 일정한 날을 정해 선발된 인원에 한하여 명인과의 대화, 고급 기술 배우기 등의 백운산을 배경으로 수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태권도 수련자들이 그들이 본받고자하는 고수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참여의 장을 만든다.- 이를 통해 수련자들에게 높은 경지의 태권도 수련에 이르고자하는 욕구를 창출시켜 지속적으로 수련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 태권도공원이 완성 된 후 평소에는 각 테마별로 인증(흰색~블랙)된 수련자에 대해서만 캠프 참여를 허락하고, 1년에 1~2회 정도 깜짝 이벤트(초보 수련자도 참여 가능)를 펼쳐 수련자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테마 3. 태권 웰빙 다이어트 프로그램
- 프로그램은 최소 3개월에서 최장 6개월 동안 합숙하며 진행하는 것으로서 무주의 청정 공기 속에서 태권도 수련과 식이 요법을 접목하게 된다.
- 현대인들의 최고의 적이자 만병의 근원인 비만을 물리치기 위해 아침 5시 기상을 시작으로 명상과 태권도수련, 태권도공원을 감싸고 있는 백운산과 무주의 명산 등산, 그리고 무주에서 생산되는 각종 과일과 야채를 중심으로 한 참살이(웰빙) 식단으로 구성하여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빼기(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따라 이를 비디오와 DVD로 제작하여 보급한다면 태권도공원의 홍보는 물론 참살이(웰빙) 시대에 새로운 살빼기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테마 4. 오감 테마파크(무술 종합 촬영소)와 태권도 관광
-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들 테마파크 공통점은 바로 관람객들이 보고, 듣고, 체험 등 오감을 통해 시설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 태권도공원 안에 혹은 민자시설지구에 이러한 대규모 위락시설 건립이 필요하다.
- 이를 통해서 태권도공원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충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 시킴은 물론 시설을 활용하여 국내에서 제작되는 각종 무술 관련 촬영을 유치 할 있으며, 이러한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의 교육도 담당 할 수 있을 것이며, 일반인들에게는 태권도공원과 연계한 태권도관광지로 활용 할 수 있다.
☞ 중국 광저우에는 황비홍무술관(黃飛鴻武術館, 황페이홍우슈관)있다.
영산이라 불리는 중국 광동 남쪽의 명산인 서초산(西樵山, 시치아오샨)에서 중국 무술계의 영웅, 황비홍 부자(父子)가 태어났다.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1996년, 황비홍의 출생지인 녹주(祿舟)에 기념관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황비홍 술관이다. 이곳은 중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황비홍을 아는 많은 사람들의 지원하에 건설된 곳으로, 5.23핵타아르의 부지에 청(淸)나라 말기의 건축양식을 따라했다. 관내에는 <황비홍연공휴게실>, <황비홍사적진열영사실>, <황비홍공원>, <황비홍무술학교>, <관덕흥기념관> 등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설비되어 있다.
테마 5. 태권도와 한방을 접목한 요양 프로그램
-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사람들은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는 것에 많은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한 투자와 준비를 아끼지 않고 있다.
- 무주는 인근 진안, 장수, 금산, 영동과 더불어 인삼과 각종 전통 한약제의 주요 생산지이다. 또한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며, 지리적으로도 대전, 전주, 청주등 대도시와 인접하고 있어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나다.
- 이러한 무주에 태권도를 통한 신체수련과 한방치료를 접목한 요양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
- 즉, 민자지구에 대규모 실버타운을 조성하고 태권도공원 안에서 이들을 위한 수련프로그램과 한방치료를 병행 할 수 있을 것이다.
☞ 일본의 경우 온천을 통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하고 있다. 즉, 기존의 온천이 휴양시설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이를 통한 피부염 등 치료효과를 접목하여 장기적으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홍보방안
홍보 1. 태권도공원 랜드마크 제작
- ‘태권도’ 또는 ‘MUJU'라는 글자 형태의 건물 또는 시설을 공원 내 건축 한다.
- 건물일 경우 무주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나 인공위성에서 보일 수 있도록 지붕색을 선정하고, 저녁에는 조명 시설을 한다.
- 공원 내 들어설 잔디 구장 또는 헬기장의 경우도 그 색깔을 달리하면 될 것이다.
☞ 각 포털(Daum, Paran 등)과 구글에서는 항공지도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공원 내에 위와 같이 건물이나 능선을 활용하여 랜드마크 시설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하면 자연스레 공원을 홍보 할 수 있다. 예로서는 KT가 ‘COOK'이라는 글자를 본사 건물 옥상에 설치하여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아 마케팅에 활용했다.
홍보 2. 세계 무술 영화제
- 현재 각 지역별로 (부산, 전주, 서울) 국제 영화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나 특정 분야를 주제로 하는 영화제는 여성영화제, 인권영화제 등이 제한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에 태권도공원이 들어설 무주에서 무술을 주제로 하는 영화제를 개최한다면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각 상영관 부족 문제는 태권도공원 내 시설과 군청과 각 읍에 설치된 시설 및 각 학교 체육관을 활용함으로써 주민들의 참여와 소득 향상에도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주 국제영화제와 연계 할 수 있으며, 영화제 기간동안 독립영화 촬영대회를 개최하여 폐막식 때 이를 시상한다면 영화제 참여를 더욱 고취시키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홍보 3. 태권도 가족 UCC 콘테스트
- 영국의 수잔 보일, 기타 신동 정성하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UCC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인물들이다. 태권도공원이 완성되면 공원과 무주를 배경으로 한 태권도 가족 UCC 콘테스트를 개최하여 이 영상들이 자연스레 유투브나 기타 UCC 제공 사이트를 통해 전파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태권도’라는 이미지를 제공하고, 무주 태권도공원과 함께 천혜의 관광지 무주도 홍보 할 수 있을 것이다.
☞ UCC 콘테스트 분야를 정식수련, 코믹, 엽기 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 공모한다면 생활의 일부로 태권도 수련이 인식 될 수 있을 것이다.
홍보 4. 어린이 창작 태권 동요제
- 수련자 중 가장 많은 비중(한국 기준 90% 이상)을 차지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주제로 한 창작 동요제를 개최함으로써 태권도공원의 지속적인 고객이 될 어린이들의 태권도에 대한 관심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더불어 동요제를 통해 호국무술로서 태권도의 기본 정신과 수련 자세를 부지불식중에 아이들에게 각인 시킬 수 있다.
- 노래라는 것 자체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한 번 인식된 노래는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에 한곡만이라도 한곡만이라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회자된다면 태권도의 이미지 제고와 태권도공원에 대한 홍보 효과는 극대화 될 것이다.
☞ 추후 이를 발전시켜 태권도 청소년 가요제, 대학 가요제, 성인 가요제, 국제 가요제 등으로 그 계층과 지역적 범위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홍보 5. 태권도 문화 축제와 함께 문화 엑스포 확대
- 태권도와 관련된 문화 박람회를 개최하고 이에 따른 우수작품들을 포상한다.
태권도를 주제로 한 영화, 가요, 연극, 그리고 문학 분야에서는 수필, 시, 장․단편 소설, 예술분야의 목각, 석각, 동상, 서각, 도자기분야, 기타 한지제품등 기타 태권도 용품의 신 개발품에 대한 출시 등 태권도를 소재로 한 문화적 작품을 총 망라하여 엑스포 행사를 확대 추진한다.
☞ 우리의 전통문화와 태권도문화가 우리의 전통문화와 태권도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명실상부한 한국고유의 무도로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 기타
1.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태권도공원 운영에 관한 홍보
태권도공원 완공 전 모든 시설 현황과 예상 관람객 수를 컴퓨터 시뮬레이터에 입력하여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여 실제 공원을 개원하고 운영에 따른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CD에 담아 홍보함으로써 공원의 실제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공원을 방문하려고 하는 고객들에게 더욱 더 방문욕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 태권도공원 안내용 휴대용 단말기 활용
휴대용 단말기는 공원 내 모든 시설현황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불어 등 세계 10개 언어로 들을 수 있고, 글로 볼 수 있다. 또한 단말기 내 전자 결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어 공원 내 시설 이용료 및 기념품 구매 결제도 가능하다. 현재 서울 우면산 생태공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단말기(PDA)를 설치된 센서에 접촉할 경우 해당 관찰물에 대한 설명정보를 영상,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시스템이다. 태권도공원에 설치하게 될 단말기의 경우 운영센터에서 무선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설치가 가능할 것이다.
3. 공원 내 이동보도(무빙워크) 설치 운영
이동보도 보행자는 서 있고 보도가 움직이는 시설이다. 이 시설은 몸이 불편한 어르신 들과 어린이, 장애우를 위해 설치하는 시설이다. 현재 김포공항, 인천공항, 몇몇 지하철에 설치되어 있다. 태권도공원의 경우 야외 시설이기 때문에 지붕을 함께 설치하거나 폐쇄형 돔(하우스식)의 형태로 설치 할 수 있을 것이다.
4. 네이밍 스폰서 쉽 경기장 도입
네이밍 스폰서 쉽이란 경기장 이름에 일정 기간 동안 기업의 이름을 붙여 주고 돈을 받아 경기장 건설 자금으로 쓰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 프로야구 경기장 중 뉴욕 양키즈의 양키 스타디움, 밀워키 브루어스의 밀러(맥주 회사) 파크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부산 MBC가 창사 50주년을 맞아 기존 MBC 아트홀을 리모델링하여 오는 5월 29일 뮤지컬전용극장 ‘MBC 롯데아트 홀’로 새롭게 문을 여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태권도공원의 경우에도 예를 들어 ‘ㅇㅇ태권도 멀티 스타디움’ 등과 같은 네이밍 스폰서 쉽을 도입하여 자연스레 경기장건설과 운영에 관한 자금을 조달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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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성삼 사범님..축하드립니다..^*^
김사범님 감사 합니다. 그리구 삼계탕도 잘 먹었구요.
김 사범님! 수상을 축하드리며 저 글을 쓰게한 저력을 믿습니다. 열심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