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물었다/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부활절 /김종삼
성벽에 일광이 들고 있었다
육중한 소리를 내는 그림자가 지났다
그리스도는 나의 산계급이었다고
죄없는 무리들의 주검 옆에 조용하다고
내 호주머니 속엔 밤 몇 톨이 들어
있는 줄 알면서
그 오랜 동안 전해 내려온 전설의
돌층계를 올라와서
낯모를 아이들이 모여 있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무거운 거울 속에 든 꽃잎새처럼
이름이 적혀지는 아이들에게
밤 한 톨씩을 나누어주었다
동트는 지평선(地平線)
연인의 신호처럼
동틀 때마다
동트는 곳에서 들려오는
가늘고 선명한
악기의 소리
그 사나이의 유목민처럼
그런 세월을 오래오래 살았다
날마다 바뀌어지는 지평선에서
그리운 안니·로·리 /김종삼
나는 그동안 배꼽에
솔방울도 돋아
보았고
머리 위로는 몹쓸 버섯도 돋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는
'맥웰'이라는
老醫의 음성이
자꾸만
넓은 푸름을 지나
머언 언덕가에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만치 하면 좋으리마치
리봉을 단 아이들이 놀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는
얕은
파아란
페인트 울타리가 보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처마밑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고
짜증을 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얼마 못 가서 죽을 아이라고
푸름을 지나 언덕가에
떠오르던
음성이 이야기ㄹ 하였습니다
그리운
안니·로·리라고 이야기ㄹ
하였습니다.
내가 죽던 날 /김종삼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주먹만하다 집채만하다
쌓이었다가 녹는다
교황청 문 닫히는 소리가 육중
하였다 냉엄하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비드상 아랫도리를 만져보다가
관리인에게 붙잡혀 얻어터지고 있었다
궂은 날 /김종삼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고통 견디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도 죽은 이가 있고
오늘은 딴 병실로 옮아간 네 살짜리가
위태롭다 합니다
곧 연인과 死刑 간곡하였고
살아 있다는 하나님과
간혹
이야기ㄹ 나누고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한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드빗시 산장/김종삼
결정짓기 어려웠던 구멍가게 하나를 내어놓았다.
'한푼어치도 팔리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오늘도 지나간 것은 분명 차 한 대밖에…
그새
키 작고 현격한 간격의 바위들과
도토리나무들의
어두움을 타 들어앉고
꺼먼 시공뿐.
선회되었던 차례의 아침이 설레이다.
- 드빗시 산장 부근
G·마이나 - 전봉래(全鳳來)형(兄)에게 /김종삼
물
닿은 곳
신양(神恙)의
구름밑
그늘이 앉고
묘연(杳然)한
옛
G·마이나
<십이음계, 삼애사, 1969>
올페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後世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된다
宇宙服처럼 月谷에 둥둥 떠 있다
귀환 時刻 未定.
꿈속의 나라
한 귀퉁이
꿈나라의 나라
한 귀퉁이
나도향
한하운씨가
꿈속의 나라에서
뜬구름 위에선
꽃들이 만발한 한귀퉁이에선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구스타프 말러가
말을 주고받다가
부서지다가
영롱한 달빛으로 바뀌어지다가
라산스카 3
미구에 이른
아침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소리
돌각담
광막한지대이다기울기
시작했다잠시꺼밋했다
십자형의칼이바로꽂혔
다견고하고자그마했다
흰옷포기가포겨놓였다
돌담이무너졌다다시쌓
았다쌓았다쌓았다돌각
담이쌓이고바람이자고
틈을타凍昏이잦아들었
다포겨놓이던세번째가
비었다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서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묵화(墨畵)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물 통
희미한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시인학교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金..(김..),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金素月(김소월)
金..(김..) 휴학계
金.來(김.래)
金宗三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校.(교.)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스와니강(江)이랑 요단강(江)이랑
그해엔 눈이 많이 나리었다. 나이 어린
소년은 초가집에서 살고 있었다.
스와니강(江)이랑 요단강(江)이랑 어디메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눈이 많이 나려 쌓이었다.
바람이 일면 심심하여지면 먼 고장만을
생각하게 되었던 눈더미 눈더미 앞으로
한사람이 그림처럼 앞질러갔다.
원정(園丁)
평과( 果)나무 소독이 있어
모기새끼가 드물다는 몇 날 후인
어늘 날이 되었다.
며칠 만에 한 번만이라도 어진
말솜씨였던 그인데
오늘은 몇 번째나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는 길을 기어이 가리켜주고야 마는 것이다.
아직 이쪽에는 열리지 않은 과수밭
사이인
수무나무 가시 울타리
길줄기를 벗어나
그이가 말한 대로 얼만가를 더 갔다.
구름 덩어리 얕은 언저리
식물이 풍기어오는
유리 온실이 있는
언덕 쪽을 향하여 갔다.
안쪽과 주위(周圍)라면 아무런
기척이 없고 무변(無邊)하였다.
안쪽 흙바닥에는
떡갈나무 잎사귀들의 언저리와 뿌롱드 빛깔의 과실들이
평탄하게 가득 차 있었다.
몇 개째를 집어보아도 놓였던 자리가
썩어 있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것도 집기만 하면 썩어갔다.
거기를 지킨다는 사람이 들어와
내가 하려던 말을 빼앗듯이 말했다.
당신 아닌 사람이 집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
서부(西部)의 여인
한 여인이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남자도 병들어가고 있었다
일 년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 일 년은 너무 기일었다
그녀는 다시 술집에 전락되었다가 죽었다
한 여인의 죽음의 문은
서부 한복판
돌막 몇 개 뚜렷한
어느 평야로 열리고
주인 없는
마(馬)는 엉금엉금 가고 있었다
그 남잔 샤이안족이
그녀는 목사가 묻어주었다.
소금바다
나도 낡고 신발도 낡았다
누가 버리고 간 오두막 한 채
지붕도 바람에 낡았다
물 한 방울 없다
아지 못할 봉우리 하나가
햇볕에 반사될 뿐
조류(鳥類)도 없다
아무것도 아무도 물기도 없는
소금 바다
주검의 갈림길도 없다.
풍경
싱그러운 거목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를 가진 아이와
손 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민간인(民間人)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孀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앙포르멜
나의 무지(無知)는 어제 속에 잠든 망해(亡骸) 세자아르 프랑크가
살던 사원 주변에 머물렀다.
나의 무지는 스테판 말라르메가 살던 목가(木家)에 머무렀다.
그가 태우던 곰방댈 훔쳐 내었다
훔쳐낸 곰방댈 물고서
나의 하잘 것이 없는 무지는
반 고흐가 다니던 가을의 근교 길바닥에 머물렀다.
그의 발바닥만한 낙엽이 흩어졌다.
어는 곳은 쌓이었다.
나의 하잘 것이 없는 무지는
장 폴 사르트르가 경영하는 연탄공장의 직공이 되었다.
파면되었다.
라산스카
바로크 시대 음악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掌篇 2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아우슈비츠 라게르
밤하늘 호숫가엔 한 가족이
앉아 있었다
평화스럽게 보이었다
가족 하나하나가 뒤로 자빠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인형 같은 시체들이다
횟가루가 묻어 있었다
언니가 동생 이름을 부르고 있다
모기 소리만하게
아우슈비츠 라게르
어부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회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5학년 1반
5학년 1반입니다.
저는 교외에서 살기 때문에 저의 학교도 교외에 있습니다.
오늘은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므로 오랜만에 즐거운 날입니다.
북치는 날입니다.
우리 학굔
높은 포플러 나무줄기로 반쯤 가리어져 있습니다.
아까부터 남의 밭에서 품팔이하는 제 어머니가 가물가물하게 바라다보입
니다.
운동 경기가 한창입니다.
구경 온 제 또래의 장님이 하늘을 향해 웃음지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져온 보자기 속엔 신문지에 싼 도시락과 삶은 고구마 몇 개와
사과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옮겨 놓는 어머니의 손은 남들과 같이 즐거워 약간 떨리고 있었
습니다.
어머니가 품팔이하던 밭이랑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고구마 이삭 몇 개를
주워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은 잠시나마 하느님보다도 숭고하게 이 땅 위에 떠오르고 있
었습니다.
어제 구경 왔던 제 또래의 장님은 따뜻한 이웃처럼 여겨졌습니다
술래잡기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 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가리개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김종삼 金宗三 (1921. 3. 19 - 1984)
황해도 은율 출생.
평양의 광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도요시마[豊島]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후 영화 조감독으로 일하였고 유치진(柳致眞)에게 사사, 연극의 음향효과를 맡기도 하였다. 6·25전쟁 때 대구에서 시 《원정(園丁)》 《돌각담》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57년 전봉건(全鳳健)·김광림(金光林) 등과 3인 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1968년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 3인 연대시집 《본적지(本籍地)》를 발간하였다.
초기 시에서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냈다.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하였다.
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1969), 《시인학교》(1977), 《북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