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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줄거리>
어느 날, 북해 용왕은 우연히 병을 얻게 된다. 그래서 병을 낫게 해 줄 약을 백방으로 찾았지만 효험이 있는 약은 어느 곳에도 없고, 용왕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한 도사가 나타나 용왕의 병에는 토끼의 간이 특효약임을 알려 주자, 용왕은 기뻐하며 육지로 나가 토끼를 잡아올 신하를 찾는다. 여러 신하가 모인 중에 자라가 앞으로 나서며 자기가 토끼를 잡아올 것임을 아뢰자,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의 충성심을 칭찬하다. 이리하여 육지에 올라온 자라는 토끼를 만나 아름다운 용궁의 경치와 풍성한 먹을거리를 자랑하기도 하고, 육지에서 살다가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고 협박도 하면서 자기와 함께 수궁으로 가자고 토끼를 꼬드긴다. 결국, 토끼는 자라의 꼬임에 넘어가 지난 해에 새로 맞이한 아내와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용궁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발단>
1. 용궁에 온 토끼
「토끼는 별주부와 함께 물가로 내려와 별주부의 등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잠시 후, 몸이 두둥실 뜨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바다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오색 구름이 찬란하게 궁궐을 휘감고 있었는데, 문 위에는 '북해 용궁'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비현실성, 공간적 배경의 변화) 「용궁 문 앞에는 많은 졸개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용왕의 권위, 위협적인 분위기)
2. 용왕 앞에 잡혀 온 토끼
별주부가 토끼에게 이르기를,
"내 잠깐 들어갔다 올 것이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게."
하고는, 용왕 앞에 나아가 토끼 잡아온 사연을 아뢰었다.
수궁 신하들은 만세를 부르고, 병든 용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토끼를 바삐 잡아 들이라 분부하니,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나졸을 거느리고 나가보니 토끼는 홀로 앉아 별주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 나타난 금부도사가 어명을 전하자, 나졸들은 좌우로 달려들어 토끼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 그리고는 바람같이 급히 몰아 용왕 앞에 무릎을 꿇렸다. 토끼가 겨우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는 우뚝한 관을 쓰고 비단 옷을 걸친 용왕이 앉아 있고, 좌우에는 온갖 신하들이 빽빽하게 지켜서 있었다.」(용왕의 권위적인 모습)
<전개>
3. 토끼의 간을 꺼내 오라는 용왕
용왕이 토끼에게 가로되,
「"과인(寡人)은 수궁의 으뜸인 임금이요, 너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라. 과인이 우연히 병을 얻어 고생한 지 오래 되었도다. 네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별주부를 보내어 너를 데려왔으니, 너는 죽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지 마라. 너 죽은 후에 비단으로 몸을 싸고 구슬로 장식한 관에 넣어 천하의 명당 자리에 묻어줄 것이니라. 또한 과인의 병이 낫게 되면, 마땅히 사당을 세워 너의 공을 표하겠노라. 이것이 산중에서 살다가 호랑이나 솔개의 밥이 되거나 사냥꾼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 어찌 영화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과인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니, 너는 죽은 혼이 되더라도 조금도 원망하지 말지어다." 」(당시 지배층에 대한 횡포)
하고는, 즉시 토끼의 간을 꺼내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뜰 아래에 늘어서 있던 나졸들이 토끼의 배를 가르려 일시에 달려 들었다.
※ 풍자 대상
• 용왕 : 으뜸인 존재 → 우연히 변을 얻음 → 토끼의 간을 뺏으려 함 : 당시의 지배층
↑ ↑ ↓
대조 헛된 욕심 욕심과 이기심 횡포
↓ ↓ ↓
• 토끼 : 보잘 것 없는 존재 → 부귀영화를 바라고 용궁에 옴 → 죽음의 위기에 직면함 : 당시의 서민층
※ 풍자 : 정치적 현실과 세상 풍조, 기타 일반적으로 인간생활의 결함 ·악폐(惡弊) ·불합리 ·우열(愚劣) ·허위 등에 가해지는 기지 넘치는 비판적 또는 조소적(嘲笑的)인 발언.
4. 묘한 꾀를 생각해 내는 토끼
이 때, 토끼는 용왕의 말을 듣고는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귀 영화를 누리게 해 준다는 별주부의 말에 속아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이렇게 왔으니, 어찌 이런 재앙이 없을쏘냐?」(헛된 욕심에 대한 반성, 자책) 이제는 날개가 있어도 능히 하늘로 날아가지 못할 것이요, 축지법을 쓸지라도 여기서 능히 벗어나지 못하리니 어찌하리요?'
토끼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하되,
'옛말에 이르기를 호랑이 굴에 가서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였으니, 어찌 죽기만 생각하고 살아날 방책을 헤아리지 아니하리요?'
하더니, 문득 한 묘한 꾀를 생각해 냈다.」(토끼의 침착한 성격)
5. 토끼의 거짓말(계략)
이에, 얼굴빛을 태연스럽게 하고 고개를 들어 용왕을 우러러보며 가로되,
"제가 비록 죽을지라도 한 말씀 아뢰리다. 용왕님은 수궁의 임금이시오, 너는 산중의 하찮은 짐승일 따름이옵니다. 만일 제 간으로 용왕님의 병환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어찌 한낱 간 따위를 아끼겠나이까? 게다가 죽은 뒤에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고 사당까지 세워주신다고 하시니, 그 은혜는 하늘과 같이 넓고 크나이다. 비록 지금 죽는다고 한들 어찌 조금이라도 여한이 있겠사옵니까. 「다만 애달픈 바는 제가 비록 하찮은 짐승이오나 보통 짐승과 달라, 지금은 간이 없나이다. 저는 본래 하늘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까닭에 아침이면 옥 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밤낮으로 향기로운 풀을 뜯어먹고 사옵니다. 제 간이 영약(靈藥)이 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저를 만날 때마다 간을 달라고 심히 보채지요. 저는 이런 간절한 부탁을 매번 거절하기 어려워 간을 염통과 함께 꺼내 맑은 계곡 물에 여러 번 씻어 높은 산, 깊은 바위 틈에 감춰두고 다닌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별주부를 만나 여기에 따라온 것이니, 만일 용왕님의 병환이 이러한 줄 알았던들 어찌 가져오지 아니하였겠나이까?"
하며, 도리어 자라를 꾸짖었다.
"네 진정 임금을 위하는 정성이 있을진대, 어이 이러한 사정을 일언반구도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 인물 간의 갈등
• 토끼 : 살기 위해 용왕을 속이려 함. ↔ • 용왕 : 토끼의 꾀에 속지 않으려 함.
6. 토끼를 꾸짖는 용왕
용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너야말로 진실로 간사한 놈이로다. 천지간에 어느 짐승이 간을 내고 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네가 얕은 꾀로 살기를 도모하나 과인이 어찌 허무맹랑한 거짓에 속으리오? 네가 과인을 기만하고 있는 죄 더욱 크도다.
너의 간을 내어 과인의 병을 고침은 물론이요, 임금을 속이려 한 죄를 엄한 벌로 다스리리라."
7. 용왕에게 신중한 태도를 요구하는 토끼
용왕의 지엄한 꾸짖음을 들은 토끼는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젠 속절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며, 곰곰이 앉아 생각다가 다시 웃으며 가로되,
「"용왕님은 제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고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제 배를 갈라 간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없으면 용왕님의 병환도 고치지 못하고 부질없이 저만 죽을 따름이오니 어찌 다시 간을 얻겠나이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용왕님은 깊이 헤아리소서." 」(용왕에 대한 은근한 협박)
8. 토끼의 꾀에 속기 시작한 용왕
용왕이 토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거니와, 또 토끼의 얼굴색이 태연한 것을 보고 심히 의아해졌다.
"네 말과 같을진대, 간을 들이고 내는 표적이 과연 있는가?"
토끼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생각하되, 이제는 내 살아날 방도가 생겼도다 하며 바로 여쭈었다.
"이 세상의 온갖 날짐승, 길짐승 가운데 저만 홀로 특별히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이 있사옵니다."
용왕이 그 말을 듣고 짐짓 노하여 꾸짖어 가로되,
"네 말이 진실로 간사하다. 모든 날짐승, 길짐승은 물론이려니와 네 어찌 간을 출입하는 곳이 있겠는가?"
9. 토끼가 간을 들이고 내게 된 내력
토끼가 다시 여쭈오되,
"제가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의 내력을 말씀드리리다. 대개 하늘은 자시(子時)에 열려 하늘이 되옵고, 땅은 축시(丑時)에 열려 땅이 되옵고, 사람은 인시(寅時)에 생겨 사람이 되옵고, 만물은 묘시(卯時)에 나와 짐승이 되었사오니, '묘(卯)'라 하는 글자는 곧 저의 별명입니다. 날짐승, 길짐승의 근본을 따져 올라가면 제가 모든 짐승의 처음이 되니,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는다(존귀함)는 기린도 저의 아래이고, 굶주리되 좁쌀을 주워 먹지 않는다(존귀함)는 봉황도 저만 못하옵니다. 저는 특별히 하늘과 해와 달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용왕님께서 만일 믿지 아니 하신다면 그만이려니와 믿으신다면 제 몸을 자세히 살펴보옵소서."
10. 간의 출입 장소를 말하는 토끼
토끼의 말이 하도 그럴 듯하여 용왕이 그 말이 사실인가 나졸에게 확인해 보라고 하니, 과연 엉덩이에 간을 들이고 내는 듯한 구멍이 별도로 있었다. 그래도 용왕은 의혹이 가시지 아니하였다.
"네 말대로 간을 내는 곳이 있는 듯하나, 간을 넣을 때도 그리로 넣는가?"
토끼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는 내 계교가 거의 맞아 간다.'
하고 여쭈었다.
"저에게는 다른 짐승과 같지 아니한 일이 많사오니, 잉태를 할 때는 보름달을 바라보아야 잉태를 하고, 새끼를 낳을 때에는 입으로 낳습니다. 이런 까닭에 간을 넣을 때에는 입으로 넣나이다."
11. 용왕의 마지막 의심
용왕이 더욱 의심하여 가로되,
"네가 간을 들이고 낼 수 있다 하니, 뱃속에 간이 있는데 혹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배를 갈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12. 간을 출입하는 때가 따로 있음을 말하는 토끼
토끼가 다시 여쭈었다.
"제가 비록 간을 들이고 낼 수 있으나, 그 또한 정해진 때가 있사옵니다. 매달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뱃속에 넣어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천지의 기운을 온전히 간직하고,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배에서 꺼내 옥처럼 깨끗한 계곡 물에 씻어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깨끗한 바위틈에 아무도 모르게 감춰 둔답니다. 그렇기에 제 간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영약 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자라를 만날 때에는 곧 오월 하순이었습니다. 만일 별주부가 용왕님의 병환이 이렇듯 위급함을 미리 말했던들, 며칠 기다렸다 간을 가져왔을 것이니 이는 모두 별주부의 미련한 탓이로소이다."
<절정>
13. 꾀에 속아 토끼를 대접하는 용왕
대개 수궁은 육지의 사정에 밝지 못한 까닭에 용왕은 토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속으로 헤아리되, '만일 제 말과 같을진대,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애써 잡은 토끼만 죽일 따름이요, 다시 누구에게 간을 얻을 수 있으리오?(불안한 심리 상태) 차라리 살살 달래어 육지에 나가 간을 가져오게 함이 옳도다.' 하고, 「좌우에게 명하여 토끼의 결박을 풀고 자리를 마련해 편히 앉도록 했다.」(갈등 해소)
토끼가 자리에 앉아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거늘, 용왕이 가로되,
"토 선생은 과인의 무례함을 너무 탓하지 마시게."
하고, 옥으로 만든 술잔에 귀한 술을 가득 부어 권하며 재삼 위로하니, 토끼가 공손히 받아 마신 후 황송함을 아뢰었다.
14. 자가사리의 간언을 물리치는 용왕
그때, 한 신하가 문득 앞으로 나와 가로되,
「"신이 듣사오니 토끼는 본디 간사한 짐승이라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토끼의 간사한 말을 곧이듣지 마시고 바삐 간을 내어 옥체를 보존하옵소서." 」(갈등이 해소된 국면에 다시 긴장감이 유발됨)
모두 바라보니, 간언(諫言)을 잘하는 자가사리였다. 「하지만 토끼의 말을 곧이듣게 된 용왕은 기꺼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용왕의 어리석음)
"토 선생은 산중의 점잖은 선비인데, 어찌 거짓말로 과인을 속이겠는가? 경은 부질없는 말을 내지 말고 물러가 있으라."
결국 자가사리가 분함을 못 이기고 하릴없이 물러났다.
※ 인물 간의 갈등
• 자가사리 ↔ • 용왕
15. 토끼를 위한 용궁의 잔치
용왕이 이에 크게 잔치를 열어 토끼를 대접하였다. 온갖 귀한 음식은 옥으로 만든 쟁반에 쌓여 있고, 세상에 보기 드문 귀한 술은 잔마다 가득하고,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미녀들은 쌍쌍이 춤추고 노래하였다. 토끼가 술이 흠뻑 취해 속으로 생각하되,
「'내 간을 줄지라도 죽지 아니할 것 같으면 이 곳에서 평생 살고 싶구나.' 」(용궁의 생활을 부러워하면서도 용궁에 살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남)
하였다.
16. 용왕이 토끼를 재차 회유함
용왕이 다시 토끼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수궁에 거하고 그대는 산중에 살아 물과 땅으로 나뉘어 있더니,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됨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 그대가 과인을 위하여 간을 가져온다면, 과인이 어찌 그대의 두터운 은혜를 저버리리요? 후하게 보답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부귀를 함께 누릴지니, 그대는 깊이 생각할지어다."
17. 용왕을 안심시키는 토끼
「토끼가 웃음(용왕의 어리석음에 대한 웃음)을 참지 못하나, 조금도 얼굴 색을 바꾸지 아니하고(속마음을 감추고) 기쁜 듯이 대답하였다.」(토끼의 능청스러움)
"대왕은 너무 염려치 마옵소서. 분에 넘치는 용왕님의 너그러운 덕택에 보잘것없는 목숨이 살아났으니, 그 은혜를 어찌 생각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물며 저는 간이 없더라도 죽고 사는 것에는 관계가 없으니 어찌 아끼겠나이까?"
이에 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용왕의 어리석음)
18. 육지로 가겠다고 자청함
잔치를 마친 후, 용왕이 곁에 선 신하에게 명하여 토끼를 모셔다가 편히 쉬도록 하였다. 토끼가 따라 들어가 보니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병풍과 진주로 엮은 주렴이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고, 저녁 식사를 받고 보니 인간 세상에서는 듣지도 보도 못하던 진수 성찬이었다. 그러나 토끼는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기만 했다. '내 비록 잠시 속임수로 용왕을 속였지만,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겠지.' 하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용왕을 뵙고 가로되,
"용왕님의 병환이 심상치 않은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육지에 나가 간을 가져오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저의 작은 정성을 굽어살피옵소서."
19. 육지로 떠나는 자라와 토끼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별주부를 불러들였다.
"그대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다시 토 선생과 함께 인간 세상에 나갔다 오라."
하니, 「별주부는 하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려 명을 받들었다.」(별주부의 맹목적인 충성심) 용왕은 다시 토끼에게 당부하기를,
"그대는 속히 다녀 오라."
하고 진주 이백 개를 주어 말하였다.
"이것이 비록 변변치 않으나 과인의 정성을 표하기 위해 우선 주노라."
토끼가 공손히 받은 후 용왕에게 하직하고 나오니, 「수궁의 모든 신하들이 대궐 문밖에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그러나 자가사리만은 그 자리에 나오지 아니하였다.」(인물 간의 성격이 대조적임)
※ 인물의 성격
• 신하 - 토끼에 대한 믿음 : 어리석음 ↔ • 자가사리 - 토끼에 대한 불신 : 소신있고 강직함
<결말>
20. 육지에 올라 기뻐하는 토끼
그리하여 토끼는 다시 별주부의 등에 올라 앉아 너른 바닷물을 건너 육지에 이르렀다. 별주부가 토끼를 내려놓으니, 토끼는 기쁨에 겨워 노래하되,
"이는 진실로 그물을 벗어난 새요, 함정에서 도망 나온 범이로다. 만일 나의 묘한 꾀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고향 산천을 다시 볼 수 있었으리오?"
하며 사방으로 팔짤팔짝 뛰놀았다.
21.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사라지는 토끼
별주부가 토끼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우리의 갈 길이 바쁘니, 그대는 속히 돌아갈 일을 생각하라."
토끼가 큰 소리로 웃으며,
"미련한 자라야, 뱃속에 든 간을 어이 들이고 낼 수 있겠느냐? 이는 잠시 나의 묘한 꾀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너의 용왕과 수국 신하들(풍자 대상)을 속인 말이로다. 또한, 「너의 용왕이 병든 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냐? 예로부터 전해지는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이란 말은 이를 두고 이름이라.」(용왕이 병든 것=풍마, 나=우, 관계가 없다=불상급) 그리고 이놈, 별주부야! 아무 걱정 없이 산 속에서 한가로이 지내던 나를 유인하여 너의 공을 이루려 하였으니, 수궁에서 죽을 뻔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털이 꼿꼿이 서는 듯하다. 너를 죽여 나의 분을 풀어야 마땅하겠지만, 네가 나를 업고 만리창파 너른 바닷길을 왕래하던 수고를 생각하여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 「죽고 사는 일은 모두 하늘의 명에 달린 것이니, 다시는 부질없는 생각을 내지 말라고 용왕에게 전하거라.」(헛된 욕심에 대한 경계) 나는 청산으로 돌아가노라."
하고는, 소나무 우거진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22.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죽는 별주부
이때 별주부는 토끼가 간 곳을 바라보다 길게 탄식하여 가로되,
"충성이 부족한 탓에 간특한 토끼에게 속아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우리 용왕과 신하들을 대하리오? 차라리 이 곳에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도다."
하고, 토끼에게 속은 사연을 적어 바위에 붙이고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죽었다.
22.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죽는 용왕
별주부가 떠난 뒤 소식이 없자 용왕은 거북을 보내어 자세한 사정을 알아 오라 분부했다. 거북이 즉시 물가에 이르러 살펴보니, 바위 위에 글이 붙어 있고 곁에 별주부의 시체가 있었다. 거북이가 돌아와 용왕에게 아뢰니, 용왕이 불쌍히 여겨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러나 용왕에게는 산중의 하찮은 토끼가 수궁의 군신을 속인 죄를 묻기 위해서 토끼를 잡아들여야 한다는 여러 신하들의 상소가 올라왔다. 하지만 용왕이 이르기를,
「"여러 신하들의 말은 옳지 않다. 과인이 하늘의 명을 모르고 무고한 토끼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였으니 어찌 현명하다 하겠소? 그대들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용왕의 반성)
하고는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죽으니, 「그 때 용왕의 나이 일천팔백 세였다.」(비현실성) 태자와 여러 신하들은 애통해하며 성대하게 장사를 치르니, 그 광경이 매우 엄숙하였다.
■ 등장 인물
• 토끼 - 명예욕이 강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꾀가 많으며 말주변이 좋다.
• 자라 - 충성심이 강하고, 마음이 한결같으나 사물의 이치를 살펴 판단하기보다 자기의 목적에 급급하므로 처음에는 토끼를 속였으나 나중에는 토끼의 속임수에 빠지고 만다.
• 용왕 -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지혜도 없는데다 탐욕이 지나쳐 토끼의 꾀에 넘어 간다.
■ 핵심정리
갈래 : 고전 소설, 판소리계 소설, 우화 소설
작가 : 미상
연대 : 조선 후기
성격 : 풍자적, 우화적, 해학적, 교훈적
표현 : 동물을 의인화하여 인간 사회를 풍자하는 우회적 수법으로 표현. 고사 성어와 속담, 한자어가 많이 쓰였다.
제재 : 용왕의 병과 토끼의 간
주제 :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 허욕에 대한 경계와 왕에 대한 충성심
■ 이해와 감상
[토끼전]은 조선 후기 판소리계의 동물 우화 소설이다. 따라서 그 이본(異本) 역시 판소리계 이본과 소설계 이본으로 양분되며, 그 이본의 명칭 또한 다양하다. [수궁가]와 같이 '-가'로 불려지는 작품들은 판소리이고, [별주부전], [토끼전]처럼 '-전'으로 불려지는 작품들은 판소리가 정착하여 소설로 향유되던 것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설화는 다른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인도에서는 [자타카 본생경(本生經)]의 원숭이와 용왕 사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별미후경}에서는 자라와 원숭이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구토지설(龜兎之說)]이 우리 나라에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유신전(金庾信傳)]에서이다.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잡혔을 때에 이 옛 지혜를 이용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토끼전]은 외국의 전래 설화가 토착화되어 우리의 구전 설화가 되었다가 판소리로 불려지고, 판소리 대본이 소설로 정착되어 문자화된, 형성 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전파와 전승의 과정에서 수많은 향유자에 의해 착색되고 변개된 과정을 거친 [토끼전]은 유동 문학(流動文學), 적층 문학(積層文學)이라고 할 수 있다.
[토끼전]은 동물들을 등장시켜 풍자적으로 묘사한 의인 소설(擬人小說)이자 우화 소설(寓話小設)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산중에 사는 토끼가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 자라의 말에 현혹되어 용궁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우리 인간들 세계에 있어서는 흔히 볼 수가 있는 광경이다. 이렇게 토끼처럼 자기의 분수에 넘치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 첫째 교훈이다. 또 만약 용왕 이하 신하들이 깊이 생각하여 토끼의 말을 분석했다면 절대 속아 넘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무슨 일이든지 경솔하게 행하지 말 것이며 비밀을 함부로 미리 말하지 말라는 것이 둘째 교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토끼가 용왕을 속이는 지혜, 즉 불충(不忠)을 주제로 하느냐, 자라가 용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용왕의 병을 고치는 내용, 즉 충(忠)을 위주로 하느냐에 따라 이본을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토끼의 지혜와 자라의 충성은 모순 관계를 이루며 이본의 개작 의식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 '토끼'와 '별주부'의 상징성
토끼는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대상으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개인적인 향락이다. 그는 남을 헤치려고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강자에게 많은 위협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토끼는 당시의 약자,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별주부는 용왕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육지로 간다. 이 별주부에게는 임금에 대한 충성이 개인의 안위보다 우선시되고, 그러한 충성 논리 속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욕심 때문에 그는 토끼의 생명 따위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는 당시 지배층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수궁 대신들의 용궁 세계는 당시 정치 지배 관료층의 세계를,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 세계는 피지배 서민층의 세계를 각각 반영한다.
■ <토끼전>의 이면적 주제
<토끼전>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이 인간의 여러 부류를 빗댄 것이라면 용왕은 지배층의 최상층이고, 별주부는 그런 상층에 끝내 충성을 다하는 복고적 주변 세력이며, 토끼는 상층부의 수탈과 주구에 시달려 온 평민이거나 그 이하의 신분층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세 봉건 시대 당시 임금에 대해서는 비판적 눈길조차 드러낼 수 없었음을 감안할 때 <토끼전>의 풍자는 매우 신랄한 면이 있다. 일방적으로 희생만 강요당하는 암울한 시대에서 평민들은 이제 스스로 슬기나 기지를 발휘하면서 억압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된다. 토끼는 앞장서서 그 일을 하는 인물이다.
용왕의 병은 중세 봉건 사회의 총체적 몰락을 예고한다. 이본에 따라서는 별주부도 용궁으로 돌아가길 포기하고 토끼와 더불어 육지에서 사는 것으로 처리한 것도 있는데, 이를 통해 자아를 각성하는 근대적 사고가 민중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이 소설의 이면적 주제는 지배층에 대항하여 민중이 뭉치고 새 시대를 열어 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김승호,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이해)
■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로 불려졌던 소설을 포함하여 판소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소설을 함께 부르는 명칭이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을 비롯하여 [배비장전], [옹고집전], [장끼전], [토끼전] 등이 이에 속한다. 판소리계 소설은 평민 계층의 발랄함과 진취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승, 재창작(再創作), 개작(改作)되었고, 그들의 체험과 원망을 투영하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전대(前代) 소설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초경험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현실적인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의 독자가 양적(量的), 계층적으로 확대되면서 군담 소설(軍談小說)의 인기를 판소리계 소설이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가 지닌 개방적 면모와 향유층(享有層)들의 다양한 관심사, 자유로운 수용 태도,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를 기본으로 하는 평민 계층의 문화적 역동성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판소리는 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의 사설을 소설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이본이 많아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오는 동안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이 이야기의 형성에 관계하여 마치 퇴적물이 쌓이듯 형성되었다고 하여, 이를 가리켜 적층 문학(積層文學)이라고도 한다. 판소리계 소설들은 서민들의 발랄함과 해학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http://jongry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