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한담 / 박현숙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곳이라 언제나 정겨움이 넘친다. 대략 2주에 한 번쯤 들리는 통영이 내겐 꿈의 도시이다. 처녀 시절, 거제도에서 머물던 연유로 익숙한 곳이라 골목길조차 낯설지 않다. 규모가 크지 않아 아기자기한 소도시 이곳은 강구안을 중심으로 차를 달리면 온통 꿀빵 가게와 김밥가게들로 붐빈다.
통영의 주민이 되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전이다. 남편의 절친이던 농장주인이 실버타운에 들어간다고 하기에 통영이 좋아서 망설임 없이 농장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농장은 박경리 기념관 맞은편 언덕 아래에 있다. 천 평이 넘는 땅에 헛개나무, 오가피나무, 엄나무, 석류나무, 동백 등 온갖 나무들이 즐비하다.
통영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서호시장이다. 동호 시장은 저녁장이고 서호 시장은 아침장이다. 오후에 가면 파장 분위기여서 상인들 모습에서 활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서호시장은 주로 활어나 해물 등을 거래하고 있어 주변에 횟집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건 생선 가게에 들르면 어느새 새들도 생선가게 옆에 주인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얼른 생선 한 마리를 낚아채 가기 위함이다. 날마다 오는 새들이라 생선 주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농사도 잘 모르면서 농장을 매수하고 보니 농기구도 낯설고 해야 할 일도 한둘이 아녔다. 우선 인부를 불러 함께 밭을 일구고 옥수수를 심고 고구마도 심었다. 인건비가 비싸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었다. 옥수수는 제법 실하게 자라 수염을 달고 의젓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울산 집에 다녀 오는 동안에 멧돼지가 철망을 뚫고 침입해 알맹이는 다 따먹고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울타리도 소용이 없었다. 고구마밭도 아직 알이 여물지 않았는데도 주둥이로 골을 파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노루랑 멧돼지 덕분에 농사는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했으니 그 녀석들이 나를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짐승들인지 모른다.
싱그러운 풀냄새와 온갖 벌레들의 사랑 노래를 들으며 군데군데 심어진 과수목을 관리하고 한 번씩 찾아와서 힐링하는 곳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미륵산 정상아래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농장을 손자들은 숲속의 집이라 한다. 방 한 칸, 거실 한 칸, 창고 등으로 지어진 스무 평 농막 형태이지만 마음을 힐링할 만한 충분한 위안처가 된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힘든 여행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여행이라 했다. 머리로는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되지만 마음에서 해결이 되지 않고 머리 따로 마음 따로 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진단다. 새들은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노화도 없다고 한다. 새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편안하면 그 자리에 있고 불편하면 날아가면 그만이다. 새를 닮고 싶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못지않게 남편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사건들로 마음을 다치면 나는 통영으로 날아간다. 비록 머리에서 마음까지 닿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농장에 도착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가끔은 공간적 쉼표를 찾아 커피숍 나들이도 하고 여러 문학관에도 들러 그분들의 작품을 조용히 감상한다. ‘꽃’이라는 시를 좋아해 김춘수 기념관에 자주 들르고 해저터널에서 더위를 피해 보기도 한다. 수륙터 해수욕장에서 킥보드를 타고 해변을 달리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통영은 볼거리 놀거리가 많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가 법정 스님이 첫출가했다는 미래사에 들리면 편백숲이 반겨준다. 통영을 둘러싸고 있는 한산도, 비진도, 사량도, 만지도, 욕지도, 등의 작은 섬을 들러보며 지난날 묻어 두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통영의 또 다른 매력임이 틀림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곳에 가면 마음의 응어리들이 스르르 풀리기 때문에 나는 섬 여행을 좋아한다.
디피랑은 올해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이다. 남망산 공원을 이용해 레이저 쇼를 하고 있다. 물고기가 경사로를 헤엄치고 꽃과 나비가 어울려 춤을 추는 디피랑은 길이 완만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좋고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곳이다. 절벽은 깎아 세운 것처럼 아주 높이 솟아있어 위험이 내포된 험한 낭떠러지인데 절벽의 순우리말을 피랑으로 표현한 것은 얼마나 정겨운가.
해저터널을 지나 통영대교 아래쪽 둘레 길은 전혁림 화가의 대형벽화도 감상할 수 있고 물 위로 흐르는 야간 조명에 어울려 누구하고라도 대화가 무르익을 수 있는 길이다.
미륵산은 458.4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바로 아래에는 내가 살고 있는 산양읍과 당포성지, 사량도, 연화도, 욕지도행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삼덕항과 중화항이 보인다. 특히 한려해상 다도해 조망이 압권이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미항인 통영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내가 어느 별에서 이리도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차곡차곡 담을 수 있을까
새들이 둥지를 찾듯이 나들이하고도 돌아올 집이 있어 좋다.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뒷면처럼 숲으로 덮인 농장은 생명이 흐르는 통로이다. 소음에서 벗어나 명상을 통해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에너지를 얻는다. 온전히 자신이 되어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통영은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는 나의 퀘렌시아이다.
첫댓글 3단락에선 새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3단락에서 새를 가져오지 않아도 4단락에서 새를 이야기하면 됩니다. 김수환추기경님이 아니라 김수환추기경입니다.
10단락에선 산행코스를 자세하게 적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적으론 1인칭인 '나'의 사용이 많습니다. 뺄 수 있다면 최대한 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