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전의 그날이 떠 오른다. 1945년 8월 15일.
나는 11살의 어린 나이에도 우리 민족 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몰려가는 꽁무늬에서 나도 흥분되어 따라 다닌 일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기쁜 날인가... 일제의 압박과 설음에서, 36년 간을 얽메이다가 해방이 된 그날이 우리나라가 숨통이 트인 날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 바쳐 독립을 위해 헌신 했던가...
그 감사를 잊어 버리고, 그냥 아무일도 없었던듯 그날을 지나치려 한다.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을 쉽게 잊어 버리는 잘못된 민족성을 어이하랴... 듣건데, 그때 시골에선 해방이 되었다고 소 를 다- 잡아 먹었다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쳐보자.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어느날 해방이 되던 날, 그들은 여호와께 찬양을 드렸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것 같았도다. -중략-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 시 126 편 -
해방된 서울은 아수라장 이었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 활기를 띄고, 대학생들도 '이데오로기'가 갈리고... 통일된 나라에서, 차근 차근 안정된 사회를 이룩해야 함이 급선무 이련만... 북한에선, 김일성 이 괴뢰정부를 세우고,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비극의 38선을 만들지 않았던가...
남한에선, 이승만 박사의 귀국과, 해외에서 독립을 위하여 애쓰시던 분들과 함께 독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함이 꼭 60주년을 맞는 8.15가 바로 내일 모레이다..... 아울러, 빨갱이들을 퇴치 한다고 '서북 청년단'이 설치되어 많은 결실을 얻었으나, 무척 시끄러웠다.
공산주의가 싫다고 이북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 하여 38선을 넘어와 시장에서 장사를 하니 서울 사람들이 38따라지 라고 무시 하기도 했지만, 결국 상권은 이북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군 (軍) 의 처지는 어떠했던가?... 군대에도 공산주의자가 있었다. 다행히 6.25 전쟁이 나기 전해인 '49 년에 '숙군 작업' 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박정희 장군의 주도 아래 일어났던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은 분명한 공산주의자 로서의 도발 이었으나 '숙군 정치' 때에, 반공으로 돌아섰다. 그때에 군인들이 정리되어 인민군의 남침에도 요동이 없었음은 그나마 큰 다행한 일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원수같은 김일성이 독재자 스탈린의 허락을 받아 남침을 감행했다. 그때의 희생자가 200만이 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별하여 불행한 삶을 살았던가...
임민군이 낙동강 까지 진격 했을때, '맥아더 장군' 이 인천 상륙 하고, 북으로 북으로 북진 할때에 모택동이 중공군을 데리고, '인해전술' 을 펼치니, 서부 전선은 개성을 빼앗기고 동부전선은 철원의 북쪽을 조금 찾고 '53년 7월에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오늘에 이른다.
6.25 에 대해선 모두 아는 바이니 생략 하고, 그때에 '신조어' 가 탄생하여 유행하던 말이 있다. "왕년에 금 송아지 없던 사람 있는가?"... 이말은, 지게꾼 까지 밥을 굶지 않고 살았는데, 6.25 로 인해 밥을 굶으니 그때가 그리워 옛날엔 잘 살았는데.... 해서 나온말 "왕년에 금송아지 없던 사람 있었나...
그 전쟁으로 북한은 중국에게, 백두산의 중국쪽을 넘겨 주었다. 중국은 장백산 관광 이라고 '천지'까지 다~ 개발하여 통째로 먹고 있는데, 미국의 '지명 위원회' 의 기록에 중국령이라 기재 되어 있다. 또 북한의 동남부의 땅이 러시아 령 이라고 기재 되어 있다.
김일성은 중요한 부분 까지 팔아먹은 원흉이다. 북한에 얼마나 많은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졌나.... 북한에서 가장 크게 세워진 김일성의 동상은, 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요 역사가 오래된 '장대현 교회'를 허물고 그자리에 동상을 세웠으니, 그 죄를 다- 어이할꼬.....
금강산 박왕자씨 사건
여행은 기분이 좋아서 흥분 되기도 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홀로 나선 박왕자씨 불의의 객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너무나 불쌍하고 분통이 터진다. 고히 잠드소서....
4년전에 뉴욕의 노인들이 금강산을 찾았다. 우리 3형제도 신청을 하여, 북한의 입국 수속 절차를 밟는데 내가 제일 마지막 이엇다. 그 직원이 나에게 하는 말... 그사람 "왜 미국에 가서 삽네까?" 나 "미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요" 그사람 "뭬가 그리 좋습네까?" 나 "나는 미국에서 생활비 다-주고 너무 행복 하게 살고 있어요" 그사람 "그렇습네까 (포기한듯)
2박 3일 하고, 마지막날. 우리 일행의 아주머니 사진을 찍는데, 특유의 걸음걸이로 다가선 인민군이 시비를 건다. 결국 '필름'을 빼버리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주머니 기념사진 다-없어졌지 않아...
내가 느낀것은, 얼마나 열심히 '세뇌공작'을 했는지 인민군과 북한주민들이 우리 미주 교포 들이 싫은것 같다. 우리들은 북한정부는 못마땅 하나 북한사람들에겐 연민의 정을 느끼는데..... 통일은 요원 한것 같다.
일본의 심뽀
옛날에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침략할때, 선구자 '우찌무라 간조' 가 말하길 동북아의 평화를 추구해야 할 일본이 이렇게 침략만 일삼으니 하늘의 불벼락이 내릴 것이다. 그의 말대로 원자탄을 맞고 항복한 것이다.
나는 요즘 자꾸 죄를 짓는다. 일본이 독도를 저희 땅이라 우기니까... 일본이 몽땅 물속에 잠겨 버리는 상상을 자꾸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것이라 여기면서도 그 생각이 자꾸만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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