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란 무엇인가
洪聖民
끊임없는 질문 속에 탄생한 지식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깨달음을 주며 참 생명의 양식이 된다.
인류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 천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순수의식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인간의 문제, 시대의 문제와 과제를 깨달아 구세대의 판도를 바꾼 시대의 개척자였으며, 뉴 패러다임의 선구자들이었다.
교육의 기초는 배움, 질문, 탐구, 정리의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기초를 고등학교 때까지 잘 배워야 대학의 교육에 잘 적응하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배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오늘은 교육의 기초 두 번째 질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대체로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특징을 살펴보면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고 질문을 잘하면 우등생에 가깝고, 질문을 못 하거나 안 하면 평범한 수준의 학생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질문을 하더라도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가 또 중요하다.
과연 질문이란 무엇인가. 정의부터 내리고 시작해 본다. ‘질문이란 무언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다양한 물음의 형태로 표현한 것을 질문이라고 한다.’(필자) 다시 말하면 무지의 발견, 알고 싶은 욕구, 다양한 형태의 물음으로 표현한 것을 질문이라고 말한다.
그냥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우는 것과, 스스로 질문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즉 선생님께 배우는 지식은 주입식 공부가 되어 그 지식 하나밖에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질문하며 배운 지식은 자기 주도학습이 되며, 메타인지가 이루어지면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메타인지가 이루어지면 그 지식으로 다른 것을 적용하는 지혜가 생긴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관찰, 발견, 통제, 판단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즉 학문의 지식을 스스로 배우고, 인지하여, 깨닫는 모든 과정을 메타인지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정상적인 메타인지를 한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한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가 질문하면 그것에 합당한 답을 말해 줄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왜냐하면 그 전문가는 메타인지를 가진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어설픈 전문가는 난해한 질문이 오면 그것을 대답할 지혜가 부족하다. 그 이유는 메타인지가 안 되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충분한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질문의 기초는 무엇인가.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내면에서 무언가 알고 싶은 강한 지적인 욕구가 질문의 기초이다. 초등학생부터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서부터 어린 학생에게 반강제적 주입식으로 지식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아이가 공부하고 싶은 내면의 지적인 욕구는 막아버리고, 공부를 부모의 강요로 하게 되면, 그 학생은 공부를 하기 싫은 것, 지겨운 것이 되고 만다. 이것으로 공부의 걸림돌이 된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부모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질문의 기초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의한 자기 내면의 지적인 욕구가 강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물으면 부모는 즉답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글쎄 그것 참 흥미로운 질문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질문에 대한 칭찬을 해 주고 나서, 다시 질문을 아이에게 돌려주면 질문을 한 아이가 자긍심을 가지면서 공부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참 멋진 질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 책에서 한번 같이 찾아볼까. 이렇게 하면 학업에 대한 자존감이 생기고, 자기 주도학습의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다.
질문의 핵심은 무엇일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어와 개념에 근거한 전체적인 질문이 있다. 즉, 단어, 개념, 기초, 핵심, 과정, 목적, 본질, 근원의 8가지를 말한다. 만약 이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그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교육, 예술, 과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이렇게 8가지로 정리하면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글은 대체로 전체적인 질문에 근거해서 작성한 글들이다. 그래서 비록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서 그 개념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이 핵심적으로 간략하게 녹아 있다.
질문의 핵심 두 번째는 좌뇌적 질문이다. 즉 논리적 질문, 과학적인 질문, 학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좌뇌는 논리와 지식과 학문의 질문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질문을 말한다. 논리와 과학과 학문적 질문이 여기에 속한다. 모든 논문은 과학적, 논리적 질문으로 발견한 지식을 근거로 작성하는 것이다.
질문의 핵심 세 번째는 우뇌적 질문이다. 즉 순수의식의 질문, 전체적인 질문, 본질과 근원에 대한 질문을 우뇌적 질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누구인가, 왜 태어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등을 묻는 것이다. 질문의 핵심을 정리하면 좌뇌적 질문, 우뇌적 질문, 전체적 질문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말하기로 한다.
질문의 과정은 기본 3원칙 질문, 육하원칙 질문, 혁신의 질문, 메타인지 질문, 전체 질문, 좌뇌 질문, 우뇌 질문 등 7가지이다. 여기서 전체, 좌뇌, 우뇌 질문은 질문의 핵심에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먼저 기본 3원칙 질문이란 무언가를 물을 때 왜, 무엇을, 어떻게로 묻는 것이다. 모든 질문은 이 기본 3원칙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인간은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든 질문은 이 기본 3원칙에 근거해서 먼저 물어야 한다.
육하원칙 질문은 신문 기사와 어떤 사건의 기록, 또는 책을 쓰는 요령에 해당하는 질문이다. 즉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신문, 독후감, 사건의 피의자 조사 등에 쓰인다.
혁신의 질문은 어떤 제품에 대해서 ‘장점, 단점, 문제점, 해법, 비전’ 등을 조사하면 기업 혁신과 제품의 혁신을 할 때, 중요한 질문이 된다. 이 질문은 제품에만 질문하는 것은 아니고 매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메타인지 질문법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이해한 것과 체험한 것(검증), 깨달은 것과 완성한 것’을 묻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을 정리하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모르는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또 자신이 그 지식의 전문성으로 문제를 고찰할 수 있으며, 또 누군가를 가르치고 설명해 줄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얻은 지식을 메타인지라고 하고, 메타인지의 지식이 될 때 그 지식은 넓고 깊은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제 질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질문의 목적은 학문, 자연, 인간, 진리에 대한 바른 탐구를 위한 것이다. 둘째, 질문의 목적은 그 지식을 탐구하여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비판적 사고력이란 바로 자신의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진실과 거짓으로 옳게 분별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정직한 인간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질문의 목적이다. 즉 진리 탐구, 참과 거짓의 분별, 정직한 인생을 살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째, 그대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질문을 통해서 풀어나가라는 의미이다. 둘째, 그대 자신이 논리적인 질문이나 순수의식으로 질문하고 탐구하면 언젠가는 그 해답을 얻는 시간이 온다. 그대가 질문해서 얻은 그것이 실제적인 지식이며, 직관적인 참지식이며, 깨달음에 이르는 지식이 되는 것이다. 셋째, 질문을 통해서 그대 자신이 참지식을 바르게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질문의 본질인 것이다.
끝으로 질문의 근원은 무엇일까. 인간 내면의 영적인 호기심과 진리에 대한 갈망이 호기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과 인간, 자연과 진리에 대한 영적인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그러한 질문은 끝없이 계속된다. 스스로 본질과 근원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면 그 진리에 대한 갈증은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인간은 참 진리와 참지식을 모르는 무지한 존재다. 둘째 질문하는 이유는 영혼의 호기심을 통해서 참지식과 깨달음을 얻으라는 메시지이다. 셋째 질문하는 이유는 그대 안의 영혼, 참나, 전지한 존재를 만나서 하나가 될 때, 그대는 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영생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가 우리가 질문해야 할 질문의 세 이유인 것이다. 이 세 가지 질문과 해법을 찾을 때까지 우리의 질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제 세 가지 유형의 질문을 소개하고 마치려고 한다. 먼저 논리적인 질문의 이야기다. 고대 철학에서 소피스트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이다.
이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제자와의 궤변 재판으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날 한 청년이 프로타고라스에게 그의 논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청년은 돈이 없어도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프로타고라스는 ‘그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고 하며, ‘공부가 끝난 뒤, 치른 첫 재판에서 이기면 그 돈으로 수업료를 내라’고 했다. 외상 술이 아닌 외상 학원비였다. 그러나 청년은 수업이 끝났으나 어떤 재판도 치르지 않고 놀기만 했다.
결국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를 받기 위해 제자를 고소했다. 재판정에서 청년에게 ‘너는 어차피 수업료를 내야 한다. 재판에서 네가 이기면 나와의 계약으로, 지면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청년은 오히려 스승에게 ‘저는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기면 수업료를 안 내도 된다는 판결로, 지면 스승과의 계약에서 지면 안 줘도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프로타고라스는 큰 곤역을 치렀다. 논리적 오류, 논리적 모순이 담긴 재미있는 일화이다. 논리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논리에는 상대적으로 헛점의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 책에 보면 장자와 혜자가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자가 저기 물고기 노는 것을 보라, 저것이 물고기의 낙이라네,’ 이에 혜자가 ‘아니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낙을 아는가.’ 이에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하는가. 이에 혜자가 그래 내가 자네가 아니라서 모르네, 하지만 자네도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낙을 아는가, 이때 장자 왈 나도 물고기가 아니지만 나는 물고기와 하나가 되니 직관으로 그냥 알았다네’
혜자는 지극히 부분만 보는 논리적인 좌뇌형 인간이다. 장자는 부분 보다는 전체를 보고 내면의 영혼이 가르치는 느낌으로 깨닫고 판단하는 우뇌형 인간이다. 좌뇌형의 인간만 있으면 평생 당파 싸움으로 그 사회는 피가 마를 날이 없다. 좌뇌형과 우뇌형이 함께 있어서 서로 조화롭게 타협해야 지구촌에 평화가 올 수 있다.
성경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나와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예수님을 책망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 왔느냐, 사람으로 왔느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부터 왔노라 하면 어찌 그를 믿지 않느냐 할 것이요, 사람으로 왔노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우리가 알지 못한다. 하니 예수께서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이 질문에는 질문과 답이 내 안에 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 안의 양심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대고 우리가 분명하게 주님께 모든 것을 여쭤보면 그러면 모든 문제에 참 대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칸트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통합한 학자이다. 통합한다는 것은 전체를 보고 판단하려는 것이다. 과학에서 초끈이론은 지상에 있는 네 개의 힘을 통합하여 나온 이론이다. 캔 윌버는 심리학을 통합했으며, 필자는 인문학, 자연과학, 진리학을 부분으로 통합하고 전체를 다 통합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헤겔의 절대정신에 의한 변증법적 정반합의 원리는 인류 역사의 전체를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지금 21세기는 인류의 세속적인 시대의 마지막 시대이며 진리주의를 향한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려는 시대이다.
‘질문이 위대한 인물을 만들고, 그 질문이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질문이 없는 인생은 인생을 대충 살아가는 것이지만 질문하는 인생은 자기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참 인생을 살아가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Qi7JQ_KljG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