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한 줄
- 신현정(1948~2009)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의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 가면 된다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아, 이런 시를 만나면 출근하던 회사도 학교도 아내 심부름도 기꺼이 깜박 잊을 듯. 무슨 뜻인지 모른다 쳐도 얼마나 즐거운 ‘꽥꽥’이겠나. 그렇게 꽥꽥꽥(언론자유!)거리며 저수지 쪽으로 행진하는 오리 한 줄, 저 천진한 줄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깔깔깔 캴캴꺌 벌레 먹은 이빨도 다 내놓고 웃으면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바지도 추켜올리면서, 콧물도 훌쩍거리면서 덩달아 따라가는 게 인간적이다. 시치미 떼고 오리처럼 똥도 쪼끔 누고, 오줌도 찍 누고, 오리처럼 밥 먹고 오리처럼 낮잠도 고요히 좀 주무시고. 한 사나흘만 그러고 나면, 겨드랑이에 아무도 몰래 쪼그만 날개도 돋을 거라. 싱그러울 거라. 그거로 아직 날 수야 없겠지만. 뒤뚱뒤뚱!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사루비아
신현정(1948-2009, 61세)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게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전문-
▶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발췌)
신현정 시인은 1948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나 경동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66년에 서울대학교 주최 전국고교생 문예콩쿨대회에서 시「아기새와 능금나무」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1967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이시영, 송기원, 감태준, 이경록, 황충상, 김종철, 신용삼, 이진행, 김현숙, 김상렬 시인 등과 교우했다. 그리고 1974년 『월간문학』신인상에「그믐밤의 수」로 등단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서라벌고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다가 미국 다국적 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었다. 그러다가 2009년 10월 16일 간암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61세, 너무나 빠른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신현정은 1983년 첫 시집 『대립』을 출간했다. 그 후 2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3년 두 번째 시집 『염소와 뿔』을 펴냈는데, 이 시집으로 서라별문학상과 한국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시집『자전거 도둑』을 펴냈고, 이 시집으로 제38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8년에 발간한 시집 『바보 사막』으로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신현정은 자신의 슬픔이나 외로움을 극도로 절제하고 그것을 명랑성으로 바꾸어놓는 데 주력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에 대한 지속적인 옹립이며 철저한 긍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면성을 벗어나 놀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현정의 시 속에서 딱딱한 세계는 비로소 다정해지며 천진난만한 꿈을 품는다. 시인은 천진난만한 꿈을 끊임없이 생성시킴으로써 삶의 어둠과 슬픔을 닦아냈다."라고 평하고 있다.
신현정 시인의 고등학교 제자인 이관일 시인은 20여 년 전 어느 가을날 스승 신현정과 소주를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날 신현정 시인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는 "관일아 너는 시 쓰지 말아라. 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제자에게는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를 쓰지 말라던 그는 왜 그토록 시를 사랑했을까? 그가 사망한 후 문태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현정 시인은 저 건너편 어떤 나라로 가셨다. 그러나 그의 시집에는 그의 체적이 남아 있다. 조그마한 무람도 없이 세상과 상면한 대화가 담겨있다. 명랑하고, 천진하고, 또 부럽기까지 한 장난기도 섞여있다. 순응과 긍정과 운치와 웃음과 신명과 상승은 그의 시 특유의 소유이다. 이 아름다운, 우주를 달통한 시 묶음을 나는 지금 이편에서 읽노니, 그가 사는 나라가 예서 멀다고 생각하니 또 눈물을 감출 수 없다. 다시 올 요량으로 시인은 두고 가신 것이라 믿는다."라고. 시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시는 아름답고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당신에게는.
빙점...얼때는 닫는 것을 잊지마세요. 그러나 화창한 봄날, 닫는 것을 잊어도 좋습니다. 마음 안에 꽃 피게.
고 신현정 시인의 '빙점'을 읽고 덧된 생각입니다. 개안을 주는 상상력, 확장되는 세계를 보게 하는 이런 시가 좋습니다. 시의 본령입니다.
ㅡ 이하 드림
빙점 氷點
신현정
첫, 겨울
냇강을 오르내리며 살던 붕어가 세상이 어디인가 하고
아주 쬐끔 입질해 물을 열어보았던 것인데
그만 닫는 걸 잊고 가버린 거기에서부터
온 천지가 물 얼다
염소와 풀밭
신현정
염소가 말뚝에 매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발을 넣고 깨끗한 입을 넣고 몸을 넣고
줄에 매여 멀리 원을 그리는 안쪽은
그의 것
염소가 발을 넣고 뿔을 넣고 그리는 원을 따라
원을 그리는 하늘도 안쪽은 그의 것
그 안쪽을 지나가는 가슴 큰 구름이며, 새들이며
뜯어먹어도 또 자라는 풀은 그의 것, 그러하냐.
사루비아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도깨비바늘
신현정
한낮, 외진 길가 풀섶에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며
그림자도 없이 서 있는 도깨비바늘에는
도깨비가 살면서
이제나 저제나 언제나 세상에 나가볼까 하고는
거길 지나치는 하 세월의 것들에게
무심만 옷이나 한 벌 지어 입으라고
바늘을 꽂고 있으렷다
빨긴우체통 앞에서
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질을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안고 그냥 왔다.
"신현정은 , 서울 빈거리에 혼자 남아 시와 생애를 건 응전을 벌이고 있었지요. 이 무렵부터 신현정의 시가 순수의 궁극에 닿고 있었으며, 필생의 자신을 시와 바꾼 강한 硬度의 시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었지요."
ㅡ 이건청 시인의 회고 글에서
* 신현정 (1948~2006, 남. 61세 이른 나이에 귀천함)
ㅡ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서라벌문학상(2003), 한국시문학상(2004), 한국시인협회상 (2006)
ㅡ 시집 『대립』 , 『염소와 풀밭』, 『 자전거 도둑』 . 『바보사막』, 『난쟁이와 저녁식사를』. 『화창한 날』 , 유고시집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맛집 옆집
이명윤
긴 줄을 기다릴 수 없어 간
옆집은 한가하고
옆집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어서려다 마침
물병과 메뉴판을 들고 나오던
주인 여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눈이 마주칠 때 세상은 수평이 된다
우리는 동시에 앉았고
어른들이 읽는 동시처럼 무척 슬펐다
황량한 사막에서
조용히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낙타가 멀뚱 큰 눈을 굴리며 창밖을 지나갔다
옆집은 억울하여
깊은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주문한 음식을 하나둘 내려놓고
먼 나라 여인처럼 돌아앉은
옆집의 등을 본다
누군가 찾을 때마다
수학 문제 정답처럼 알려준
맛집의 옆집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자에게
숟가락을 든 채 돌아보며 나는
찌개가 참 얼큰하고 맛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고 대신 눈이 시리도록
차가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한 번도 맛집이 되어본 적 없는
옆집의 날들이 있다
나도 맛집 옆집에 산다
담에 빗자루 기대며―신현정(1948∼2009)
이 빗자루 손에 잡아보는 거 얼마만이냐
여기 땅집으로 이사와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한다
얼마만이냐
땅에 숨은 분홍 쓸어보는 거 얼마만이냐
마당에 물 한 대야 확 뿌려보는 거 얼마만이냐
땅 놀래켜보는 거 얼마만이냐
어제 쓸은 마당, 오늘 또 쓸고 한다
새벽같이 나와 쓸 거 없는데 쓸고 또 쓸고 한다
마당 쓸고 나서
빗자루를 담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놓는다
빗자루야 그래라 네가 오늘부터 우리집 도깨비하여라
길 위에서 / 신현정 (1948~2009)
신발끈을 고쳐 맬 때가 있다.
길 가다가 신발끈이 풀어져서 신발끈을 고쳐 매주었다
도중에 쭈그리고 앉아 가슴을 무릎에 돌처럼 눌러놓고
신발끈을 엇방향으로 집어넣어 빼내면서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단단히 옭맸다
신발끈이 또 풀어졌다
나비로 해서 그런가
다른 것은 없을까
두루미 같은 것은 어떨까
저 청산(靑山)을 훨훨 가고 있는 두루미로 어찌 안 될까
두루미로 하면 영 안 풀어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어디서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내가 불현듯 나타나더니
야 이놈아
신발끈 풀지 말고 그래 길 위에서 평생 살아라 소리치는 게 아닌가
바람난 모자 / 신현정 (1948~2009)
모자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휘파람새 같은 것으로
너구리 같은 것으로
물고기 같은 것으로
아니 사르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으로
푹 눌러쓰고 싶을 때가 있다.
모자를 쓰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모자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악어 같은 것으로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 신현정 (1948~2009)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질을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
1차 대전 당시 잘 훈련시킨 새의 발목에 내용을 적은 종이나
작은 메시지 통을 매단 통신수단이 흔하게 사용되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런 새나 편지나 모두 먼 아날로그 통신
수단인 점에서는 동격이라 굳이 은유라고 할 것 까지도 없겠다.
고전적인 통신수단은 요즘 세상의 즉각적인 통신문화와는
달리 이런 망설임이 자주 개입된다. 밤새 편지를 썼다가도
구겨버리고 머리맡에 둔 간밤의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으면
또 선뜻 봉투에 넣기가 주저되었다.
긴 사연을 담은 편지를 봉투에 넣고 겉봉에 주소와 우편번호까지
확인한 다음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까지 붙이고서도 우체통
앞에서 한번 더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 과거의 편지였다.
그만큼 발효의 공정을 거쳤기 때문에 진하고 또 뜨거웠던
것이다. ‘오후 3시’ 우체통이 한창 빨갛게 달아오른 시간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슴 속 설렘은 한층 더 고조되어 주체할 수
없었고 ‘냉큼 발길을 돌려서’ 그냥 돌아서는 어처구니 없는
결단도 감행되었을 것이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만만하게
소통되는 사이가 아니면서도 절절했던 그대는 아마 '첫사랑'쯤
아닐까 짐작된다.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부화되고 새가
되어 날아갈 터이지만 아직은 알일 수도 있는 이 편지를
손에 꼭 거머쥐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 편지에는 그대여 사랑하는 나의 그대여 ‘사랑한다.’라는
뜨거운 첫 고백이 뜨거운 마그마의 핵처럼 담겨있었던 건
아닐까. 안에서는 ‘알 껍데기를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줄탁동시의 때가 아니라 여겼던 게다.
내 안의 사랑은 우체통처럼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현실화된
욕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엔 아직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무장무애 잠복된 그 사랑의 온도가 그래서 더 뜨겁게 느껴진다.
‘그냥 왔다’고 반복해서 내뱉는 말이 그 사랑의 여운을 더욱
넓게 퍼지게 하여 우리들 가슴까지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