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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사태를 역전시키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경 본문 : 에스더서 4장 15절-17절
설교 자 : 지 명숙 목사 <2023년 5월3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의 도움도 중요하고, 나라의 도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믿던 못 믿던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붙잡고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진실한 믿음은 틀림없이
하늘의 보좌를 움직이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의 눈에 아무런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내가 붙잡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소망하던 것들이
주님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모든 실망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실로 사모해 보십시오.
우리는 한 생애를 살면서 수많은 실망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 남편과 아내에 대한 실망, 부모와 자녀에 대한 실망,
환경에 대한 실망, 사회에 대한 실망, 사업에 대한 실망, 이웃에 대한 실망,
자신의 운명에 대한 실망. 이런 실망들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차오르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분노는 한탄을 낳고 한탄은 신세타령을 낳고 맙니다.
결국 두 손에 맥을 놓고 아무 것도 하기 가 싫어집니다.
이런 낙심과 실망이 자신을 황폐한 광야의 한 가운데로 몰아냅니다.
그리고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자신을 한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병자 아닌 병자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인격은 파괴되고
생활은 무덤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우리가 버텨야 합니다.
믿음이란 환경적인 실망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하늘의 능력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나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됩니다.
이런데 쉽게 넘어지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 속에는 실망과 분노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내 눈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는 하나님의 믿음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환경이 나를 짓누르고, 실망과 염려가 나를 엄습해올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믿음을 붙 들어야. 됩니다.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운 때일수록 더욱
내 영혼에 생기를 채워야 됩니다. 성령을 채워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모든 삶의 미완성을 수용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실망과 환경적인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나의 실패와 좌절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는 이 믿음이 있습니까?
성경에 우리 하나님에 대한 별명이 수백 가지입니다.
제가 또 하나의 하나님의 별명을 지을 테니 들어보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 입니다”
어떻습니까? 틀린 말 아니지요?
하나님은 무척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평범하게 역사하시 기보다
인간의 소망의 줄이 다 끊어졌다고 생각될 때
스릴 있게 역전 시키시기를 즐기시는
멋진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사태를 역전시키시지
기도 없이 사태를 역전시키시지 않으십니다.
그럼 사태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1). 금식 기도입니다.
<이사야> 58장9절 말씀에
9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있다하리라 그랬습니다.
이 구절은 금식기도의 약속입니다.
<에스더서>의 <에스더>이야기 잘 아실 것입니다.
<페르시아>에 많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큰 시험이 닥쳤습니다.
<모르드개>가 <아말렉>출신 <하만>에게 절하지 않자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모르드개>가 속한
<유다인> 모두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하만>에게는 절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온 <유다인>들은
하나님 앞에 사흘을 금식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온통 마음이 팔려 있었고,
그 정신 팔린 왕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왕이 부르지 않을 때 나아가면
왕후라도 죽이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식기도의 결과 불과 며칠 사이에
<에스더>가 베푼 잔치를 통해서 왕의 마음은 <에스더>에게 기울고
또 <하만>의 궤계가 밝혀지면서 왕이 노하여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장대에 <하만>자신이 달리고 <유다인>을 모두 죽이고자 한
그 날에 <하만>의 민족이 대신 죽는 역전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식기도의 능력입니다.
이런 금식기도의 능력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왜 금식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생명을 바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2) 사태를 역전시키는 기도는 눈물과 통곡의 기도입니다.
<이사야> 38장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과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래서 사흘 만에 건강하여 성전에 올라가게 해 주셨고,
수명을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고, <앗수르>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태가 역전 되었습니다.
<이사야> 38장1절 말씀을 보면
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그런데 <히스기야>왕은 그 통고를 받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눈물의 기도를 드립니다. 체크아웃 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눈물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명령을
취소하시고 생명을15년을 연장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태어나고 죽는 것, 그리고 복을 누리고 화를
경험하게 되는 만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생명을 이 땅에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욥기서>1장 21절 말씀을 보세요.
21절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 이다.”
그렇습니다.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갑니다.
보내 주신 분도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위대한 종, 사도 <바울>의 <아덴>에서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을 향해 설교한 내용을 보세요.
<사도행전>17장 24절~25절 말씀을 보면.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절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그렇습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하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라 하시면 가야 합니다.
왜요? 우리 생명이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과 역할이 다 끝났으면 가야 합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에 앞으로 100년 후에
이 땅에 남아 있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가는 순서가 좀 빠르고 늦을 뿐이지, 다 갑니다.
그러기에 생사화복이 인생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금방 죽을 것 같다가도 오래 살고, 어떤 이는 건강해서
오래 살 것 같은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떠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원망도 하지 말고 감사와 찬양으로 맡겨진
사명 다 감당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이 오라 하시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죽을병이 들었다고 너무 놀라거나 낙심하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말하기를 “암은 하나님의 초대장”이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로봇처럼
비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교제의 특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고
온전한 교제로 복을 누리며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눈물의 기도는 벽을 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체크아웃 명령을 받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사야>38장 2절~5절 말씀을 보세요.
2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절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이른바 “벽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하나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즉각 응답하십니다.
4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사야>가 왕에게 통고하고 돌아가 성읍 가운데
이르기 전에 응답하셨습니다.
아마도 시간차이로 보면 한 시간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눈물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곧 바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5절을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네 수한에. 15년을 연장시켜 주겠다.” 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응답이 빨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를 잘해서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해서일까요?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살펴볼 때 그의 기도 속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과 정직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갈급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벽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왜 벽을 향하여 기도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간절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는 일국의 왕입니다. 그런데 병이 들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왕실 주치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화과> 반죽으로 상처에 얻어 나았다 하는 것을 보면
피부병이나 종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의술적인 치료를 시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종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죽을 준비를 하라 통고 받았기에 그 선지자를 붙잡고
매달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낯을 벽을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께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벽면 기도는 무엇일까요?
제가 설교 준비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나의 벽면 기도는 뭡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 새벽 기도가
벽면기도라 하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새벽 시간입니다.
만민이 잠들어 있는 새벽시간, 그 시간에 오로지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해 교회로 나옵니다.
나와서 찬송과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홀로 기도합니다.
그 기도 시간이 벽면기도입니다.
물론 교회만이 아닙니다. 어디서든지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독대하며
기도하는 그것이 벽면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통곡하며 부르짖는 눈물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선지자를 Stop시키고 하신 말씀을 보세요.
5절 말씀입니다.
5절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 네 눈물을 보았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돌아보세요.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고 있나요?
<히스기야>처럼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오로지 해결 자는
하나님뿐 이라는 것을 믿고 기도 하시나요?
하나님만이 길이고 하나님이 방법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응답의 비법입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의 기도는 보통기도보다 더 갚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면서 애써서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7절 말씀에
7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다. 고 했습니다.
그 기도가 있었기에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큰일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새벽마다 “울자”는 표어를 놓고 울며 기도했더니
해결 되더랍니다.
3). 사태를 역전시키는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시편>50편15절 말씀에
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묵상기도도 들으시 지만
환난 날에 부르짖으라 했지 묵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 위험이 닥쳐오는데 어찌 조용히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로 천사가 나타나 구해 주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도 소리 질러 부르짖을 때
예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구박을 주어도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부르짖었습니다.
누에고치의 나방도 애쓰다 나와야
건강하여 제 구실을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 영혼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능력 받으려면 발성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몸에 땀이 날 정도로 기도하면 심령에 기도의 불이 붙습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도 부르짖을 때 능력을 받았습니다.
식물은 습기가 많아야 잘 자라듯이
교회도 기도와 눈물의 습기가 많아야
부흥되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4). 사태를 역전시키는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기도해도 회개하지 않아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 66편18절 말씀에
18절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듣지 않으실 기도는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7장 말씀에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모아놓고
3절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회개하고 기도하면 병도 고쳐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5). 끝까지 낙심치 않고 하는 기도가 역전의 기도입니다.
<히브리서>10장 38절 말씀에
38절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30장 18절 말씀에
18절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가장 큰 적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문제일수록 더 큰 영적 싸움일수록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18장 말씀에
원한을 가진 과부처럼 끝까지 물러서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야 맙니다.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말씀에도
떡 세 덩이 빌리러 간 친구의 비유도 같은 교훈입니다.
강청하니까 잠자던 친구가 할 수 없이 떡 세 덩이를 내다 주면서
8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능력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신비한 힘을 말합니다.
이러한 신비한 힘을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을까?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기도할 때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에 불가능하던 것도 가능해 집니다.
영적인 능력의 사람은 보기에는 보잘 것 없지만
그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꿈을 꾸며 거룩한 변화를 일으키는
영적인 능력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능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무한한 능력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 말을 많이 하면 수다쟁이가 됩니다.
자고로 수다쟁이는 시끄럽습니다. 덕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말을 많이 하면 능력자가 됩니다.
그는 겸손하게 덕을 이룹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줍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말을 많이 해서
능력자로, 겸손히 덕을 세우는 자로, 헌신자로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사태를 역전 시키는 강력한 기도가 있습니다.
금식기도, 피땀 눈물의 기도, 부르짖는 기도, 회개의 기도,
낙망치 않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그래서 <에스더>의 승리와 같이 <히스기아>의
생명 연장의 놀라운 역전의 승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