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더 2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라기 2;5-6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첫째로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는 45cm 이내의 거리이다.
상대방의 숨결을 느껴질 정도의 거리로 ..
애인이나 엄마와 아기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둘째로 사적 거리(personal distance)는 45~120cm정도의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친구와 가까운 지인끼리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셋째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로 120~360cm 정도인데
보통목소리로 말할 때 들을 수 있는 거리이다.
사무적인 대화로 정중한 격식과 예의가 요구되는 업무나 일로
맺어진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넷째로 공적 거리(public distance)로 360cm 이상의 거리이다.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들을 수 있는 거리인데
공연장의 가수와 청중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피커를 사용하여야 한다.)
오늘은 사회적 거리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회적 거리는 일로서
혹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친밀하지는 않은 관계를 말합니다.
좋은 예 ‘하나’
예) 남 연회에서 같이 10년 동안 목회한 분이 있습니다.
연회 일을 하면서 자주 만났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굴도 알고, 교회 사정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총무 할 때 같이 하고
심사위원 할 때 같이 했습니다.
어느 날 둘만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있었습니다.
서로 출신을 묻다가 같은 고등학교 출신임을 알았고
더구나 동기였던 것을 알게 되어 너무 놀라서
제가 몇 반 이었는지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목사님이랑 저랑 1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요.”
제가 너무 놀라서 언제 알았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두 번째 만날 때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사회적 관계입니다.
같은 반이고 같은 조직 안에 있으면서도 일로써 업무적으로는
알지만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지요.
공동의 경험이 있는가?
공동의 스토리가 있는가?
아브라함과 롯
아브라함의 애굽 행으로 인한 문제
그러나 전화위복을 만들어 주었다.
다시 이번에는 재산이 많음으로 인하여 문제가 생겼다.
성숙한 모습으로 롯을 대한다.
먼저 선택권을 준다.
불평등한 선택이다.
한쪽은 잘 발달된 도시를 택한 반면
한쪽은 동서남북이 열려있으나 보장이 없는 땅을 선택하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언약뿐이다.
이 동서남북의 땅을 네게 주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주하며 거기서 단을
쌓았다.
각 주
‘강하다’는 뜻. 마므레의 이름을 딴 지역으로 추정된다.
헤브론 인근 지역으로(창 13:18) 상수리나무 숲이 유명한데,
아브라함은 이곳에 천막을 치고 거주했다(창 14:13).
훗날 아브라함이 사라의 장지(葬地)로 구입하여 족장들의 묘소가
된 막벨라 동굴은 마므레 앞(동쪽)에 위치하였다.
(창 23:17; 25:9; 49:30; 50:13).
그 후 이곳은 이삭을 비롯한 후손들의 중심 거처가 되었다
두 번째는 그 약속을 믿고 행한 아브라함의 모습이다.
사람을 키우며 자기 방비에 충실하였다.
즉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였다. 그 약속을 믿고 신실한 삶의
증거이다.
그런 열매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좋은 땅을 택한 조카 롯을
구원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 들어가는 데에는
사회적인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언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약속된 장소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
그리고 그 언약을 믿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수용하여 믿음으로 인해 복된 자리에
한 걸음 더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벨기에에서 한 소녀가 전쟁 중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어머니와 함께 잿더미 위에서 굶주렸다.
어머니와 그녀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처참한
쓰레기통을 뒤지는 지경까지 갔다.
그녀는 굶어죽기 직전에 아동구호단체의 도움을 통해서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았다.
그 소녀는 그때 생각을 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살아남는다면 이 후에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어린아이를 위해서 일평생 내가 살겠다.’
마침내 전쟁은 끝이 나고 그 소녀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과거의 그 고통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세계인이 바라보는 유명인이 되었다.
부와 명예를 한 몸에 지니고 세계가 바라보는 정상의 산에 아주
우뚝 섰을 때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 내가 이 정상의 산에 신비적 황홀의 세계에 이렇게 서있는
것은 내려가기 위한 것이다.
내가 옛날 굶주렸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자.’
‘유니세프’라고 하는 아동 구호단체를 위해서 자원봉사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일했다.
그녀의 이름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년 5월 4일~1993년 1월 20일)이다.
2010년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있는 기념우표가 경매에
나왔는데
6억 7천만 원에 팔렸고 그 매각대금은 3분의 2는 오드리
헵번 아동기금에,
나머지는 헵번이 숨지기 전까지 홍보대사로 지낸 유엔아동기금
(UNICEF)에 쓰였다.
자신의 주어진 삶에 대해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부자를 판가름하는 것은 얼마의 재산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아름다워 미인이 아니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삶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름다운 삶의 여적을 만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약에서의 사건
일군의 세워짐
7집사의 세워짐
갈등으로부터 시작된다.
히브리파 유대인 – 디아스포라 (성령의 역사 경험)
히브리오 혹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다.
헬라파 유대인 –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쉽게 표현하면 식사 대접의 문제였다.
예) 유대인들의 복귀 (나이 많아져서)
남편 잃은 과부들의 모습이 있다.
그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결론은 사회적 봉사 (식사대접)의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말씀 봉사, 즉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일을 나누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그들에게 동역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적어도 세 가지
메시지를 가진다.
1.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다.
2. 갈등을 화해로 만들어 간다.
3. 갈등을 통해 이루어질 일이 여전히 우리를 성장 시켜갈
일이기에 우리는 그 일에 모두가 참여하기를 원한다.
루터(M. Luther)와 쯔빙글리(Ulrich Zwingli)는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신념은 하나였지만
서로 의논만 하면 의견이 합해지는 법이 없었다.
서로 일치하지 않아 다투기만 하다 헤어졌다.
그러나 헤어지고 보면 서로 아쉬웠다.
도무지 의견의 일치가 되질 않자 두 사람은 깊은 산중으로 머리를 식히려 함께 갔다.
계곡의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걸어가던 그들은 외나무다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외나무다리 양쪽에서 염소 한 마리씩 건너오고 있다.
한 가운데서 염소가 만났다.
바라보던 두 사람은 염소가 서로 받으며 싸우는 모습을 연상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 엎드렸다.
그 순간 반대편 염소가 힘껏 밟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밟고 건너갔다.
그 염소가 건너가고 난 후 엎드려 있던 염소는 그때서야 갈 길을 갔다.
염소의 양보하는 모습에서 루터와 쯔빙글리는 큰 교훈을 얻고
서로 힘을 합쳐 종교개혁에 같이하는 마음으로 동반자가 되었다.
방법은 알고 있는데....
누가 먼저 엎드릴 것인가를 놓고 다투지 맙시다.
염소보다 못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같이 하는 마음이 되면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이야기?
경험은 사회적 관계로의 초대
무너진 곳을 수보하는 시작
한나의 기도
복이 없는 것을 위해 울었다.
근시안적인 복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질 복을 위해
이런 기도가 자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역사로 이어졌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
나실 인 – 지나치다.
그런데 균형을 위한 것이다.
모자람을 채워야 한다.
치우침이 위기다.
그것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중심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