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01
7월 초에 시작된 6차 유행의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사망자와 위중증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백신 접종이 부족했던 소아·청소년의 상황도 불안하다. 국민들의 면역력이 바닥을 찍게 될 10·11월에는 다시 한 번 큰 파도가 밀려올 것이라고 한다. 새 정부가 호기롭게 외치던 '과학방역'이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방역 당국이 '과학·자율·표적'으로 열심히 간판을 바꿔달고 있지만 정부의 방역이 '각자도생 방역'이라는 평가는 여전하다.
상황은 만만치 않다. 2324만명이 감염됐고, 2만6764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률이 45.3%로 세계 평균 7.58%의 6배나 된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11위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K방역'을 자랑하던 우리가 한 순간에 세계 최악의 감염대국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누적 치명율이 0.12%로 세계 평균 1.07%보다 크게 낮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방역 당국의 입이 너무 거칠고, 감정적이고, 정치적이다. 독선적인 내로남불의 흔적도 보인다. 새로 구성된 국가감염병위기대응 자문위원회의 이야기다. 전 정부의 K방역이 '비과학적 정치방역'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기석 위원장의 모습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생경하다. 철저하게 실패해버린 메르스 방역의 경험에 대한 반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껏 들떠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철부지 초선의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K방역에 대한 당장의 평가는 정치판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치 방역'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요란했던 K방역을 실패로 끝나게 만든 진짜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다. 음지에서 은밀하게 방역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무책임하고 무능했던 비선 조직의 존재도 심각했고, 선거를 지나치게 의식한 무리한 '일상회복'도 문제였다.
우리가 '치료제·백신 후진국'이라는 정 위원장의 발언도 경솔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모든 나라가 각자 치료제·백신을 개발해야만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야 한다는 인식은 유치한 '1등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발언은 연구개발 현장에서 땀 흘리는 과학자의 창의적 노력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30조 원에 가까운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정부가 예산을 아끼려고 치료제·백신 개발을 소홀히 해서 오히려 수백 조 원을 잃게 되었다는 주장은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전형적인 '비과학적 억지'였다. 연구비만 쏟아 부으면 치료제·백신이 개발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진행 중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치료제·백신 개발에 올인해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오히려 우리가 세계 최초로 '진단키트' 개발에 성공했던 역사적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줬어야 한다. 2020년 1월 20일에 중국에서 첫 감염자가 입국하고 2주일 만에 PCR과 신속 진단키트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던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자랑스러운 쾌거였다. 진단키트는 K방역의 핵심이었던 3T(검사·추적·치료)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기적과도 같은 성과였다. 방역 전문가가 그런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자문위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합리적·전문적'이고, 냉정하고 겸손해야만 한다. 실제 감염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감염 상황 전망의 불확실성을 애써 감춰야 할 이유도 없다. 전 정부의 실패에 대한 가혹하고 선정적인 평가를 이용해서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겠다는 치졸하고 어쭙잖은 시도는 부질없는 것이다.
과학·자율·표적 방역에 대한 지나친 자화자찬도 볼썽사납다. 전 정부와의 맹목적인 차별화가 방역 정책의 목표가 될 수도 없다. 새 정부가 각자도생 방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방역 정책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에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이덕환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