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김형진
거실 뒷방에 들어가 컴퓨터 책상 앞에 앉는다. 조금 앉아 있으니 창문 쪽 다리가 시리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반쯤 닫는다. 닫았는데도 무릎이 시릿하다. 창문을 조금 더 닫는다. 차가운 기운이 오금에 파고든다. 창문을 다 닫는다.
창밖을 내다본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며칠 전이 추석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추석 후에 계속 퍼부은 비 때문이다. 한여름 장마 못지않게 비를 쏟아내는가 하면 끈적끈적한 더위가 밤잠마저 설치게 하던 며칠이었다. 어젯밤에도 앞뒷문을 다 열어놓고 지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을 다 닫으니 다리 시린 기운이 가신다.
초여름에서 일어나면 침실 창문부터 열었다. 창문을 열면 시원했다. 밤새 시들었던 세포가 활기를 되찾은 듯 생기가 돌았다. 어떤 땐 창밖 세상 구석구석까지도 볼 수 있을 듯 눈이 밝아진 느낌이었다.
차츰 날씨가 더워지면서 거실문도 열었다. 아침에는 반쯤 열었다가 낮에는 활짝 열었다. 한여름에는 집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열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도 침실 문을 열어 놓았다. 거실 창문뿐 아니라 발코니와 베란다 문도 다 열어 놓았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이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면 이웃하고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재재거리는 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오기도 했다.
창문을 다 닫으니 몸은 편안해졌는데 자꾸 창밖에 신경이 쓰인다. 창밖에 눈을 준다. 창을 열어놓았을 때와 별로 달라 보이는 게 없다. 바로 앞에 줄지어 선 집들, 그 사이로 난 좁은 찻길, 길가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와 보안등….
그런데 보이는 것들이 더 멀리 느껴진다. 은빛 자동차가 시가지 쪽을 향해 간다. 아침 산책을 나간 노부부가 손을 잡고 무어라곤가 이야기를 나누며 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릴 적 좁은 광에 갇힌 적이 있었다. 왜 갇히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광에는 창문이 없었다. 바깥쪽 벽 높은 곳에 봉창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낮인데도 어둠침침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도 났다. 답답하고 무서웠다.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모님은 들일을 나가시고 누나는 학교에 갔던 걸까? 아마 부모님이나 누나가 집에 있었다 해도 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때 내가 살던 한옥 안방 아랫목 쪽 문에는 어른 눈높이쯤에 손바닥만한 유리 조각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겨울 아침에는 그 유리 조각에 한쪽 눈을 대고 바깥을 내다보며 서리가 내렸는지, 눈이 내리는지를 확인하곤 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날 때에도 눈을 가져다 대었다. 띠살문 창호지로 빛이 들어오고 소리가 드나드는데도 유리 조각을 붙여놓고 살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모으고 낑낑거리다 보니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시곗바늘이 정오 직전을 가르키고 있다. 글은 아직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했는데 어느새 정오라니. 자판기에서 손을 떼고 모니터를 응시한다. 금세 다 보일 듯한데 뚫어지게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 가슴이 답답하다.
창문 밖에 눈길을 준다. 가을의 맑은 햇빛이 길에 넘친다.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트인다. 창문을 반쯤 연다. 시원한 기운이 들어와 얼굴을 감싼다. 건너편 야산의 말잔등 같은 능선은 금세 녹색 갈기를 세우고 달릴 듯하다. 그 산 위로 높이 트인 하늘이 부드럽다. 좁은 찻길에 젊은이 둘이 걸어오고 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무언가 열심히 이야길 하며 걷는다.
창문을 열고 "어이." 부르면 금세 달려와 "알았어, 알았어." 내 마음에 맞장구를 쳐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