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Text 엡4,13-27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1. 가히 엽기적이라 할 정도의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뉴스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최고 권력자와 그와 한 부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벌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나 있었던 극단적 주장과 일들이 공공연하게 전파되고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입니다.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그런 사회로 변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변이된 사회 속에서 변질된 모습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정신차려야 합니다. 기술과학과 기술 과학으로 창출된 부는 우리를 편리하게는 해줄지언정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 옛날 아모스 선지자의 말, “(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암5,4-6)를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망해가는 이 나라와 백성을 살릴 길입니다. 어쩌면 이 상태로 시간이 더 지나는 것은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께서는 우리에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본문은 먼저, 우리에게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14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죄에서 구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죄에서 구원 받는 것은 단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에서 건져주시는 것이 구원의 전부가 아니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구원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장성한 분량”이며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옛날 에덴동산에서처럼 인간이 죄에 빠져 불행하게 사는 존재가 되도록 속임수를 씁니다.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합니다. 우리가 지식에 있어서 쉽사리 강요당하는 어린아이처럼 되어 믿음과 판단력에 있어 모든 유혹에 굴복하고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좌우되게 하려 합니다. 중심이 안 잡힌 배와 같이 또는 공중의 구름과 같이, 진실함도 없고 견고성도 없으면서 바람처럼 넓게 펴져있는 교훈에 의해 이리저리로 흔들리게 합니다.
마13,24-40에 좋은 씨와 가라지 씨의 비유가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려놓은 원수가 밤에 몰래 밭에 와서 가라지 씨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하고 묻습니다.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하고 대답합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는 일꾼에게 주인은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합니다. 밤중에 잘 때에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이는 ‘원수’입니다. ‘원수’는 처음부터 우리가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성도의 원수입니다. 성도가 잘되는 꼴을 못 보고며 망하기만 바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간교한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는 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임을 명심하십시오. 성도는 또한 성도가 잘 때에는 언제든 몰래 와서 성도의 심령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늘 주의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원수인 사탄이 그냥 둘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본성이 타락했던 인간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누구든 계속해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안타까운 것은 ‘원수’인 것을 알면서도 그 원수에 대한 경계심이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속았음에도 또 속습니다. 마음이란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관리하기에 게으름을 피웁니다. 눅15장의 탕자처럼 떼를 쓰며 자기 분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심령은 안녕하십니까? 잘 관리되고 있기를 바랍니다. 혹 방치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채우려는 것이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2)...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옥토가 박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3. 다음, 본문은 성도에게 중요한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성도는 우선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주님에게까지 자라야합니다만, 성도는 다른 성도들 또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탄을 소홀히 여기고 사탄 앞에서 자기를 무방비로 노출시켜 가라지가 자라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 관계 속에 있는 교회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인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의 교회는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병들면 나도 주저앉게 되지만, 온 교회도 병든 나 때문에 흔들리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는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더욱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와 사랑과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그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숙함을 향하여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사람이야 말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상호간에 교통하며 연합하여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은혜 안에서의 영적인 발전과 심장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일치해야 하며 각각의 은사의 열매들을 더불어 나누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몸을 자라게 하며” 그 몸이 사랑 안에서 세워지도록 역할을 다하여야 합니다. 각 지체에게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지시하고 전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등이 성령님의 역사와 성경과 성례전 등 여러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자양분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마침내 온몸이 아주 건강하게 자랄 뿐 아니라 각 지체 자신도 건강하고 또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전체 몸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상호간 사랑은 영적인 성장을 가져오지만, 반대로, 서로 분열하여 싸우면 너도, 나도 모두 망한다는 진리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갈5,15절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여러분, 교회와의, 즉 모든 성도들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성도의 본분을 다하도록 성도는 늘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교회가 살며,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과 주시는 은혜가 원활하게 공급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 성도 각자가 그렇게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되도록 돕고 계신 성령님의 역사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의 나는 이 역할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나도 살고 교회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모든 성도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 그렇고 교회와 주님의 뜻 아래에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신체의 일부분이 병이 들면 온 신체가 아파할 수밖에 없듯이 내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만큼 다른 성도들이 힘이 들게 되고 주님의 몸을 전체적으로 힘들게 합니다. 이 일이 잘 될 수 있게 일꾼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역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역자들의 수고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말해주세요. “성경이 말하길 당신이 중요한 존재랍니다.” “성경이 말하길 목사님을 귀하게 여겨야 한답니다.”
4. 정말 중요하고 오늘 말씀의 핵심 같은 부분이 17-27절입니다. 좀 길지만 성도가 성도의 본분, 자라야 하는 존재이고 또 자라게 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도 연약한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든 본분을 망각하거나 이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다는 점(27절)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언제든 심령을 잡초밭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을 이겨낼 수 있기 위하여 성도는 자신을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늘 은혜 속에서 지낼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총명에서 떠나 있는 이방인의 허망한 것(17-18절)이 내 심령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합니다. 사탄은 모든 더러운 것을 행하게 하려고(19절)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게 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20-24절)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건 사고들과 주의 주장들을 보면 우리 국민들을 기술 과학 문명의 만능주의와 배금주의에서 다시 인간의 인격과 성품과 고상한 삶을 살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학교마다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고급 기술을 연마하고 돈이 되는 학과를 개설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마저 이런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이 사회를 지키는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었음을 통렬하게 회개하고 성도들의 심령과 품성을 은혜 속에서 가꾸고 돌보는 일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에 진력하여야 합니다.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 자신부터 일깨워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절)”는 말씀을 지키는 것임을 간곡하게 말씀드립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집 텅 빈 항아리들은 모양만 그럴듯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껍데기만 화려한 기술문명과 황금만능주의와 세속적 성공에 현혹된 눈길을 다시 주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무엇을 명하든지 시키시는 대로 하라고 했던 마리아의 훈계가 잔치집에 다시 웃음꽃과 행복이 피어나게 했음을 기억하십시다.
여러분, 은혜의 비가 내리는 곳으로 지금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