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야사 중종임금의 애절한 사랑
조선의 임금중엔 확실한 왕권을 행사한 임금이 있는가 하면 드센 신하들과 당파에 휘둘려 소신껏 왕권을 행사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요
연산군의 폭정을 뒤업은 반정으로 임금이 된 중종임금도 반정공신들의 권세에 눌려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임금 중의 한분입니다
대군의 신분으로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임금이 되였는데 ....
그의 부인은 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신수근의 딸이지요
운명의 장난인지 신수근의 누이가 연산군의 왕비이니.....
연산군이 처남이되고 진성대군(중종임금)이 사위였지요
반정의 주모자 박원종은 거사 전 신수근과 담판을 했대요
처남을 버리고 사위를 선택하라
그러나 신수근은 아무리 폭군이라 해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명분으루 누이와 처남을 선택합니다
거사가 거사 인지라 박원종은 신수근을 죽일 수 밖에요
반정에 성공한 공신들은 신수근의 딸인 왕비(단경왕후)가 거슬릴 수 밖에요
그래서 중종에게 왕비를 폐위 시켜야 한다고 간청하게 되지요
그런데 왕이 되기 전부터 욕심 없이 살아온 두 부부는 엄청 금슬이 좋았대요
왕이면서두 반정공신들의 드센 기세를 이기지 못하구 왕비가 된지 7일만에 폐위를 하게됩니다
왕이면 무어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처지가 너무너무 슬펐지요
싫어서 헤여진 것두 아니요 죽어서 사별하는 것두 아닌 ...
그것두 왕의 신분으루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을 해야하는 중종의 심정이 오죽 했겠습니까?
자나 깨나 사랑하는 사람을 한시두 잊을 수 가 없어서 .....
틈만 나면 떠나간 신씨의 집이 보이는 높은 누각으로 올라가 행여 먼 발치 모습이라도 보일려나 신씨의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리워 했다 합니다
떠나간 사람의 심정은 어떠 할까요?
버림 받은 것도 아니요 쫓겨 간것도 아니면서 사랑하며 행복했던 세월을 뒤로하고 왕비 7일만에 생이별을 하였으니 그 심정은 또 오죽할까?
왕이 자신을 몹씨도 보고 싶어서 자신의 집쪽을 바라보며 그리워 한다는 다는 소식을 접한 신씨는....
나보듯 보시오라 묘안을 냅니다
행복했던 시절 즐겨입던 분홍색 치마를 궁궐에서 잘 보이는 집 근처 바위에 펼쳐 놓았드래요
비록 몸이야 떠나 있지만 언제고 있을지 모를 후일을 위하여 마음만은 행여 잊지 마시라는 간절한 심정이 담겨 있었겠지요
이러한 애절한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바위는 "치마바위"가 되여 전설아닌 전설처럼 전해오기 시작 하였답니다
그 바위는 어딘지 확실히 전해오지 않지만 궁궐에서 보이는 바위라면 남산밑쯤 되지않을까?
혹은 사직터널 위쪽으루 보이는 인왕산밑이 아니였을까?
그들의 사연이 하도 애처러워 실없는 추측을 해보지요
그렇게 세월은 흘러 새로 책봉된 장경왕후가 왕자(후에 인종)를 낳고 어린 나이에 죽게 되지요
그때 중종은 신씨를 복위 시키려 무던히도 애를 태웠지만 여전히 힘이없는 까닭에 그들의 사랑은 이룰 수 가 없었지요
반정공신들은 자신들이 죽인 아비의 딸로 왕비를 다시 맞이하는걸 허용할 수 가 없었던게지요
그래서 새로 맞아드린 왕비가 문정왕후지요
그렇게 중종은 세월이 흘러 가면서 새사람과 정도들고 새로운 사랑두 하였겠지만 ....
젊은 나이에 과부아닌 과부가 되여서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기다리며 그리워 하다 원망도 하며 애절히 살아 갔을 테지요
그런데 내 생각엔....
정말루 그렇게 헤여지구 한번두 못 만났을까?
한밤중 민정시찰 겸해서 충직한 내관하나 대동하구 가끔은.....
아주 몰래 가끔은 만나봐야 하는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런지요?
그시절 그때라 해두 사랑은 변함이 없는 거라서 ...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거 같아서.....
그렇게라두 찿아주지 않았다면 신씨 혼자 너무너무 무지무지 불쌍해 보여서 괜한 상상 해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