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동해복수법(Lex Talionis)의 의도와 의미는?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죄인인 인간에게는 누구나 복수심이 있다.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속이 시원하고 발을 뻗고 잠이 든다. 그런데 이 법은 복수를 허락할 뿐만 아니라 복수의 방법까지 정해 주는 것 같다. 한마디로 '당한 대로 갚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마 5:39)거나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롬 12:17)거나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롬 12:20)와 같은 유명한 신약의 교훈들과는 충돌된다. 무슨 뜻인가? 흔히 '동해복수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레위기 24장 19~20절, 신명기 19장 21절에도 축약된 형태로 언급되어 있다. ‘이는 이로'에 근거하여 흔히 '치아 법'(law of the tooth)이라고도 불린다.
이 법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 법이 어떤 문단에 속하여 있으며 어떤 맥락에서 언급되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출애굽기 21-23장은 '재판에 관한 법전이다. 이 법전은 시민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재판장들이 어떻게 재판해야 할지를 안내하는 규례이다. 이 법전은 "네가 백성 앞에서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출 21:1)로 시작한다. 그리고 간간이 "재판장의 판결을"(출 21:22) 따를 것과 “재판장 앞에"(출 22:8~9) 나아갈 것을 권한다. 동해복수법은 바로 이 '재판에 관한 법전에 속해 있다. 이것은 이 법이 결코 개인의 사적 복수에 관한 교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 구절을 개인의 복수를 정당화할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복수심은 늘 상승 효과가 있다. 뺨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리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성정이다. 여기에 대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원칙은 자기가 당한 손해 이상을 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제한선이다. 더군다나 이것도 개인이 시행할 것이 아니라 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판단하는 재판장이 고려해야 할 원칙이다. 그렇다. 동해복수법은 시민 개인의 복수 원칙이 아니라 분쟁을 판단하는 재판장이 지켜야 할 재판상의 배상 혹은 보상 원칙이다. 그 의미는 선명하고 간단하다. 손해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은 그가 당한 손해의 범위에서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핵심 원리이다.
그런데 위의 원리를 문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오히려 공평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 선수가 외과의사의 손을 다치게 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의사는 자기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달리기 선수는 손을 잘린다고 해도 달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평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 원칙이 언급된 직후에 곧바로 이어서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출21:26~27)고 하였다. 법규 자체가 '눈과 이를 상하게 한 경우의 보상이 문자적으로 '눈과 이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상응하는 '놓아줌'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핵심 원리는 동일한 보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법을 '동해복수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오해를 야기한다. '동해배상법이나 '동해보상법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
이 법은 어떻게 원수를 갚아야 하는지를 규정한 복수 법규가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상 법규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법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 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마 5:38~40), 유대인들은 동해복수법을 개인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였다. 그래서 예수계서는 개인의 관계에서는 아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였다.엘렌 G. 화잇은 이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분은 슬픔에 잠긴 음성으로 그들을 향해,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명령하신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교훈을 반복한 데 불과한 것이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레 24:20)는 말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의 한 조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국가적 법령이었다. 어떤 사람도 복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었다(보훈, 70).
끝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약의 윤리적 권면이 구약보다 고차원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은 오해라는 것이다. 다음의 세 구절들이 구약의 인용인지 신약의 인용인지 생각해 보자. 하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하라.” 둘,“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셋,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신약의 인용 같지 않은가? 그러나 세 구절 모두 구약이다. 순서대로 레위기 19장 18절, 잠언 25장 21절 그리고 잠언 20장 22절이다. 왜 화잇이 예수의 산상보훈을 '구약의 교훈을 반복한 것'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