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국가범죄, 기억, 과거청산
사회복지사로서 학생들을 만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학생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이다. 1:1의 갈등상황에서는 언제나 하나같이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1:다수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 명의 학생은 다수가 가해자라고 말하고, 다수의 학생은 한 명의 학생이 그럴만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판사가 아니어서 학생들의 말을 충분히 듣고 서로를 화해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을 해버린 학생들은 동일한 일로 다시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처럼 개인간의 행위, 이로인한 갈등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동일한 일이 반복해서 나타나게 된다.
하물며 개인이 겪게 되는 국가범죄 그리고 이를 기억하며 살아가야하는 개인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과거사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제주4·3과 관련해서 권귀숙은 ‘사회적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개인적 기억의 사회화 과정과 집단적 기억의 개별화 과정을 통해 제주 4·3을 재해석 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가해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독일 나치 전범들이 자신의 가해 사실에 대해 주장하는 방법과 너무도 유사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해자들은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다’ ‘공무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나는 잘못이 없다’ 이런식의 주장들 말이다.
광주5·18민주화운동 역시 시민에게 누가 발포했는지에 대해 공식적인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스탠리 코언은 이에 대해 ‘부인(deni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해자들의 이런 ‘부인’이 부인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작은 공감 그리고 다수의 비인간성에 대한 작은 저항”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코언은 또한 인권보장을 위한 법의 유형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권을 해석하는 지배적인 언어가 법용어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법을 통한 가해자 처벌이라는 행위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 뿐 아니라 ‘고통에 대한 공감’과도 멀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승은 ‘국가범죄’라는 책에서 캄보디아 특별법정에 대한 사례를 설명한다. 극좌 무장단체 크메르루즈에 의한 200만명 학살이라는 범죄에 대해서 무려 20년이 지난 후에야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이 재판을 국내에서 할 것인지, 국외에서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가에 의해 희생된 한 개인개인은 그 피해에 대해서 어떻게 국가로부터 보상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기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지 못한, 형식적인 민주주의만이 존재할 때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또한 많은 국가범죄 피해로부터 제대로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볼 때 어떠한 연대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