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정토 면면, 화폭에 담아내다
극락정토, 대승불교의 이상 세계
“모든 이 구제” 서원 세운 ‘법장’
아미타불 되어 서방정토 주재해
정토 모습 도상화…신앙 이끌어
그림①. 둔황 제217굴 북벽에 그려진 〈관무량수경변상도〉의 모습. 성당시대에 조성됐다.
지난 연재에서 돈황 제220굴 〈서방정토변상도〉의 면면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서방정토는 어디에 있으며 과연 어떤 곳일까?
경전에 따르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 극락정토가 있으며, 이곳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주재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과 서방정토에 대한 대승경전이 편찬된 시기는 기원을 전후한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미타유스(Amityus)’와 ‘아미타바(Amitbha)’로, 번역하면, ‘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무량한 광명을 지닌 자’이다. 대중부 계통에서 여래의 위력과 수명이 한량없다고 함으로써 부처를 상징하는 두 설이 동일시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 근거하여 대승 보살의 이상적 형태로 출현한 부처가 아미타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방정토가 있다는 ’십만억불토‘의 거리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되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광년(光年)의 단위로는 환산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얼마 전 보도에서 “46억년 전 은하…135억년 전 빛도 찾는다” 는 기사를 읽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통해서 관측되었다고 하는데 이 우주망원경은 이전의 ‘허블망원경’의 100배로 현존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하다 보면 머지않아 십억불토의 서방정토도 관측되리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붓다는 이러한 관측기술을 통해서 서방정토를 보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눈 즉, ‘불안(佛眼)’을 통해 보신 것이니 그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무리 성능이 좋은 우주망원경이라도 결국은 인간의 육안(肉眼)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 잠시 〈금강경〉 제18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의 5안(眼) 즉,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을 떠올려 보았다.
아미타불을 주제로 한 경전으로는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 등이 있다. 이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일찍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 세상에 있을 때 법장(法藏)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 그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願)을 세웠다. 법장은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해 아미타불로서 ’극락(極樂)‘ 이라는 서방정토를 주재하게 되었다.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겁(劫) 전의 일이다.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淨土)의 대표적인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24원(大願)이었다가 점차 늘어난 듯하며, 〈무량수경〉과 〈무량수여래회〉에는 48원, 티베트 역에는 49원이 전해진다.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불행이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의 목숨이 한량이 없을 것,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내 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가서 나려고 하는 이는 열 번만 내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가서 나게 될 것, 그리고 내 국토에 가서 나는 보살들은 모두 나라연천(那羅延天)과 같은 굳센 몸을 얻게 될 것 등 오르지 중생구제를 위한 발심이다. 그리고 서방정토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내 국토는 땅 위나 허공에 있는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시냇물이나 연못이나 화초나 나무나 온갖 물건이 모두 여러 가지 보배와 향으로 되어 비길 데 없이 훌륭하며, 그 물건들에서 나는 향기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풍겨 그 냄새를 맡는 이는 모두 거룩한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사람들은 옷을 입을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옷이 저절로 몸에 입혀지게 되어 바느질한 자취나 물들인 흔적이나 빨래한 자국이 없을 것, 다른 세계 보살로서 내 이름을 들은 이는 부처님 법에서 물러나지 아니할 것 등이다. 즉, 서원의 내용은 첫째, 아미타불에 관한 것, 둘째, 아미타불의 국토에 관한 것, 셋째, 중생에 관한 것으로 나뉘는데, 그 중 중생에 관한 내용은 다시 그 불국토에 태어난 자에 관한 것과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자에 관한 것으로 이뤄져 있다.
이 48본원들은 아미타불이 중생들의 정신적인 완성은 물론, 그 정신적 완성의 환경인 국토의 장엄, 물질적인 완성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 정신의 극치라 하겠다.
이와 같은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정토에 태어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아미타신앙 즉, 정토신앙은 중국에서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이르는 사이 성행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를 저술하면서 정토신앙이 널리 퍼졌으며, 특히, 이 아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원효 대사의 공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후 아미타신앙은 특정 종파에 국한되지 않고 불교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잡았다. 일본에서는 12세기에 형성된 정토종과 13세기에 형성된 정토진종(淨土眞宗)이 오늘날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은 그 어느 종파보다도 아미타사상에 입각한 정토신앙이 널리 퍼지고 흥성했는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토변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정토변상도〉는 〈서방정토변〉 〈아미타오십보살도〉 〈미륵정토변〉 〈동방정토변〉 등 4가지 범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대 돈황벽화에서 이 네 가지 유형의 경변상도는 400여 곳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돈황 경변상도 중에서 가장 큰 유형이다. 그 중 〈서방정토변〉과 〈아미타경변〉의 예술적 성취가 가장 뛰어나 정토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현재 학술적으로 〈서방정토변〉을 일반적으로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는데, 〈무량수경변상도〉, 〈아미타경변상도〉 및 〈관무량수경변상도〉로 이 모두 화사(츐師)가 경전에 의거해 창작한 것이다.
둔황 제329굴 남벽에 조성된 〈아미타경변상도〉의 모습. 초당시대에 조성됐다.
둔황 벽화에는 〈서방정토변〉 125벽, 〈동방약사변〉가 64벽, 〈미륵정토변〉 64벽이 있다. 대부분 규모가 크고, 화풍이 강렬하고, 장엄하며, 화려하면서도 북위시대 벽화의 거친 분위기를 일소하고 있다. 화면 구도는 대체로 비슷한 편인데, 주존불은 중간에 있는 연꽃보좌에 앉아 있고, 좌우에는 양대 보살이 있고 사방에는 나한, 금강 등 다양한 권속들로 둘러싸여 있다. 하늘에는 비천이 날고 앞에는 기악(技樂)이 있고, 겹겹이 칠보 누각으로 가득하다. 제172굴 남벽과 제217굴 북벽의 성당시대 〈관무량수경변〉(그림①), 제220굴 남벽과 제321굴 북벽 초당 〈무량수경변〉, 제329굴 남벽 초당 〈아미타경변〉(그림②)은 모두 화폭이 크고 예술성이 높아 막고굴 〈서방정토변상도〉의 대표작품이다.
벽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서방정토변상도〉의 화면 구성은 상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 화면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상방 허공전, 중앙 상방 보수단(寶樹段), 중앙 삼존불, 중앙 아래 칠보지(七寶池), 그 아래에 칠보지단이 위치하며, 삼존불의 좌우에는 보각단이 있다. 벽면의 크기에 따라 그림 조합은 실제 상황에 맞게 축소하거나 삭제하고 있다.
주체 부분의 삼존불 주위에는 많은 불보살이 둘러싸여 있으며, 법회가 진행되는 입구 벽화 상방에는 각각 누각이 그려져 있다. 정자 아래에는 꽃이 가득하며, 환희의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비천이 높이 날면서 꽃을 뿌리는 등 여러 장면이 연출되고 있어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많은 건축물과 인물들은 화면상에서 주(主), 차(次)가 명확하고 질서정연하며 색채는 찬란하면서 통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당대(唐代) 화가의 웅장한 화면처리 능력과 표현 기술이 완벽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말한 〈서방정토변상도〉 3유형의 구분 방법은 〈아미타경변상도〉와 〈무량수경변상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고, 〈관무량수경변상도〉의 주존은 석가모니불이며 좌우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구분 방법으로 석가모니불 미간의 백호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경전의 ‘조편시방무량세계(照遍十方無量世界)’와 일치한다. 또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보관과 수인도 〈아미타경변상도〉와 〈무량수경변상도〉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과는 다르다.
〈관무량수경변상도〉의 주체화면 양측에는 ‘미생원(未生怨)’과 ‘십육관(十六觀)’이 있는데, 종종 상하 직사각형 연환화식(連環畵式) 구도에서는 〈무량수경〉의 ‘미생원’ 이야기와 ‘십육관(十六觀)’을 표현하고 있다. 〈아미타경변상도〉와 〈무량수경변상도〉는 이 두 부분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관무량수경변상도〉는 칠보지 부분에 3명 혹은 4명의 연화 화생동자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무량수경〉의 ‘삼배왕생(三輩往生)’을 표현한 것이다. 〈아미타경변상도〉에서는 절대로 ‘연화화생’을 표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양자의 결정적인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