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05
5년 가까이 탈원전 주장하다 대선 앞두고 돌연 원전 강조
누가 믿나…진심이라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지시를
문재인 대통령이 뜬금없이 원전을 주력 전원이라고 주장했다. 어안이 벙벙하다.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현재 건설하고 있는 원전을 빠른 시간 내 정상 가동토록 하라”고 주문했다. 탈원전을 강조해온 대통령이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 말이 진심인지 의구심이 든다.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나 인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에 관한 구체적 언급 없이 추상적으로만 원전 주력론을 폈으니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는 것이다.
향후 60여 년 동안 원전이 주력 기저전원인가부터 따져보자. 주력 기저전원이 되려면 최소한 30% 정도의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만든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원전 비중이 6.1~7.1% 수준이 된다. 어떻게 이것이 향후 60년 동안 주력 전원이라는 말인가? 대통령은 자기가 만든 계획도 모르거나 알면서도 왜곡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국민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는 발언일 뿐이다.
‘2050년 원전 비중 6%대’, 이게 무슨 주력 전원인가
원전을 빠른 시간 내에 정상 가동하라는 말도 안전 원칙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원전은 안전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점검할 항목을 빠뜨리지 않게 된다. 빠르게 진행하다 잘못하면 짚어야 할 것을 놓쳐서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원전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편의에 따라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말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신뢰하기 어렵다.
▲ 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정책을 밝히고 있다. 이날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권의 본격적인 탈원전 정책이 시작됐다./ ⓒ연합뉴스
사실 대통령의 본심은 이어진 발언 즉,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들어있다. 이 주장은 정권 초기부터 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원전 밀집도가 왜 사고와 연계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원자력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은 특정 원전 부지의 안전성은 해당 부지 내 호기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호기의 설계 특성과 호기 간 종속성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이를 반영하는 규제 요건을 만들었고, 발전소 위치 및 방사선 영향을 점검했으며 안전설비 공유 금지 등 다수 호기 동시 사고에 대한 안전성도 검증했다. 미국의 경우 인디언포인트 원전의 경우 우리보다 더 많은 인구(약 2000만 명)가 발전소 인근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밀집도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원전 밀집도와 사고를 연계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거짓말일 뿐이다. 사실 지난 5년 동안 문 대통령은 탈원전 추진을 위해 거짓을 말하고 내용을 과장해온 장본인이다. 후쿠시마 사망자 수 과장, 계속운전을 세월호에 비유해 원전이 위험하다고 하면서 해외에서는 최고의 안전성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이율배반,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에 대한 방관 등이 있었다. 원전의 안전을 중시한다면서 원전 전문가 대신 탈원전 지지자를 원전 관련 기관의 수장에 앉히기까지 했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원전 주력론은 원전 지지하는 여권표 결집용인 듯
그러면 어떤 이유가 있어 원전 주력론을 폈을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에너지 수급 상황이 위기에 봉착했고 선거가 코앞에 닥쳐왔다는 것과 연관하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전은 작년 5조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10조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적자 폭이 20조원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 굴지의 석유·가스 생산국인 러시아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가 계속되면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자원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그 여파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면피용으로 에너지 자원 파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원전의 중요성을 들고나왔을 뿐이다. 게다가 원전의 발전단가는 60원/kWh이기에 120원/kWh의 가스발전이나 180원/kWh의 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제성이 뛰어나니 에너지 위기 때 들고나오기에 적절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원전을 이용해 단기적으로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정권 초·중기에 강제로 낮추었던 원전 이용률을 이미 최대한 높여왔고 새로 건설하는 원전은 절차를 따라 가동해야 하기에 가동 시간을 앞당기기 어렵다. 더구나 무너진 공급생태계로 인한 영향을 단기간에 개선시킬 수도 없다. 그렇기에 원전이 주력 전원이라는 발언은 에너지 위기를 핑계 삼아 선거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원전을 지지하는 국민이 70%이고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은 55%다. 이 말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다수가 문 대통령의 탈원전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결국 선거를 여당에 유리하도록 끌고 가기 위해 집토끼를 묶어두려는 얕은 전략이 아닌가. 탈원전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운 야당 후보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선 거짓말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작동한 게 아닌가 싶다.
진심으로 원자력을 주력 전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신한울 3, 4호기의 건설 재개를 지시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의 계속운전도 추진해야 한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가담한 사람들을 법에 따라 응분의 조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원자력 관련 부서에 임명한 탈원전 지지자들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 조치 없이 원전이 주력 기저전원이라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은 또 한 번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말까지 거짓말을 계속하는 문 대통령 때문에 억장이 무너진다. 원전에 대한 대통령의 정책이 바뀌었다고 국민이 믿을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원전 주력론’은 표를 의식한 립서비스다. 문 대통령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속지 말아야 한다.
박상덕 /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spark3388@snu.ac.kr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