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와 오손도손 살아가는 법
갈수록 아파트 청약 경쟁률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뉴스를 보면 아파트 평당 가격이 몇 천만원을 호가하는 지역도 생겨났다. 화장실 크기만 한 면적이 몇 천만원이라면 우리 같은 서민들의 설자리는 없어진다. 몇 달 지나면 우후주순처럼 아파트 숲이 치솟아 오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지 하나같이 아파트 생활의 편리한 점을 조목조목 말한다.
경비원 때문에 도둑들 염려가 없고, 생활이 편리하고, 겨울에도 내부가 따뜻해 옷을 훌훌 벗고 산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속셈은 그게 아니다. 툭하면 치솟는 아파트 가격 때문이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돈벌기 힘든 세상에 아파트만한 투자처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를 쓰고 아파트 분양권을 따내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물론 나도 한동안 아파트를 구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유천동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근 10년 넘게 살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을 때 잠시나마 아파트 생활을 꿈꾼 적이 있다. 30년 정도 된 한옥이라 기왓장이 낡을대로 낡아 비가 새고 겨울이면 수도관이 얼어 파열되는가 하면 전도 교인이나 잡상인들이 들락거려 불편을 느낀 적이 한두번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아파트를 얻어 남은 여생 꿈처럼 살아보자고 어린아이처럼 아내와 새끼손가락을 굳게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꿈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오로지 우리부부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 뒤에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재 87세, 은빛의 백발을 한 노인은 한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지 않았다. 그 지겨운 한평생을 흙과 씨름하며 지냈으니 더욱더 아파트가 생리에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아파트에서 살 꿈을 접고 마당 딸린 집을 얻게 되었다.
마당 딸린 집, 듣기만 해도 가슴이 트이고 눈앞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현재 산성동으로 이사와서 마당 딸린 집의 가치를 풍성히 체험하고 있다. 마당이 넓다보니 1/3 정도는 채소를 갈아먹을 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올 봄 시장에서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이 이제는 내 허리춤까지 키가 자라있다. 감나무와 향나무의 그늘 속에서도 고추는 아무 탈없이 자라 갓난아기의 고추 같은 풋고추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다. 얼마 더 지나면 고추는 빨갛게 약이 오르리라. 고추를 송송 썰어 토장국 끓이는 양념으로 쓰면 맵고 얼큰한 그 맛에 눈물 한번 찔끔 쏟으리라.
정말 상상만 해도 멋진 풍경이다. 이 멋진 풍경을 만든 분은 다름 아닌 어머니이다. 현재 활동은 뜸하지만 어머니는 가끔씩 텃밭으로 나오셨다. 그리고는 호미를 들어 잡풀을 긁어내고 물조리로 물을 뿌렸다.
허리가 푹 수그러진 불편한 상태지만 어머니는 그 옛날 시골에서 농사 짓던 흉내를 내며 손바닥만한 텃밭의 고추를 가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의 텃밭은 시골 고추밭의 축소판이다. 몇 안되는 고추대하며 흰수건 찔끈 동여맨 어머니, 그리고 호미 등도 갖췄다. 시골의 뙤약볕 아래서 짓는 농사보다 슬슬 놀이 삼아 짓는 이 단촐한 농사가 전원의 맛과 여유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래서 이 맛에 취해 여태껏 마당 딸린 집을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게 된 마당 딸린 집의 잇 점은 몇 가지 더 있다.
첫째, 아침 기상하여 창문을 열면 먼저 새소리가 시끄럽게 반긴다는 점이다. 향나무와 감나무 사이를 포롱포롱 날다 날이 밝아지면 기상하라는 신호를 보내니 그 얼마나 즐거운가,
둘때, 흙을 밟으니 건강에 이롭다는 점이다. 사실 하룻동안 흙을 밟는 횟수가 어느 정도일까. 안방에서 대문을 벗어나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까지 그리고 사방이 온통 시멘트 벽으로 치장된 사무실까지 시멘트만 밟고 다니는 발의 고충을 생각하면 흙을 밟는 것도 일종의 축복이나 다름없다.
세째, 노인만 모셔도 도둑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집 마당가 텃밭을 왕래하는 어머니의 그림자 때문에 집은 늘 평온한 기분이 든다. 비록 늙고 힘없는 어머니의 그림자만 비쳐도 도둑은 쉽사리 집안으로 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내 개인적이 견해일수가 있다. 아무리 내가 마당 딸린 집이 좋다고 한들 단독주택이 생리에 맞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한 마디만은 마음 속에 꼭 기억하고 있다.
몇 달 전 아파트를 구하러 다닐 때 한 아낙네가 던지며 지나가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마당 딸린 집, 참 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