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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효소 담그는 날
기억과 추억 사이/발길 닿는 데로 여행
2009-05-19 19:42:42
백초효소를 아는가. 백가지의 산야초를 넣은 만들었다는 백초 효소, 답답한 항아리 속에 들어앉아 끈질긴 인내로 우려낸 그 달콤한 맛을, 오늘 하루 백초효소 담그는 이벤트를 벌인 것은 아마 올해 야생화 모임의 하이라이트가 될지도 모른다. 매월 험한 산을 타며 야생화와 즐겼던 아기자기한 대화도 잠시 밀쳐두고 전 회원들이 합심하여 백초효소를 담그는 일은 두고두고 추억이 될 만하다. 그러나 말이 쉽지 백초효소 담그는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허비해야만 한다. 먼저 백가지 종류의 산야초를 구하는 일이고 전 회원들이 협동심과 단합을 갖고 일에 뛰어드는 일이다. 백가지는 되지 않아도 맛과 성질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산야초가 백초효소의 원료로 들어간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억새님이 바위를 타고 올라 산야초 잎을 훑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산야초를 구하려면 산도 깊고 식생이 풍부한 산이 좋은데 마침 금산 쪽이 천혜의 조건을 갖춘 산들이 많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오전 중에 산행을 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지겹도록 쏟아져 내린 어제의 빗줄기가 산야를 촉촉이 적신 탓이다. 다행히 날은 개었지만 하늘을 무섭게 용트림치는 먹구름이 또 한번 비를 흩뿌릴 것만 같아 간이 조마조마했다. 오후 들어 날이 갤 거라는 기상대의 예보를 믿고 무작정 금산 쪽을 향해 달린 시간은 10시, 우선 백당님의 지인이 살고 있는 양촌면 모촌리에 들러 점심을 때우고 만목리 부근의 산을 타기로 했다.
아픈 개가 지키는 빈집엔 적막만 흐르는데
한참동안 차를 달려 모촌리에 당도해 보니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먼저 일행을 반기는 것은 흠험한 집안 분위기였다. 뜨락에 진열된 화분들과 좁은 마당에 우후죽순 솟아오른 풀들이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구석구석 거미줄이 날리는 흰 벽이며 곧 쓰러질 듯한 낡은 담장, 잔뜩 먼지가 쌓인 가구들이 그런 분위기를 더욱 풍겼다. 거기다 아픈 개조차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산길에서 만난 정자, 이곳에서 또 하나의 길이 왼쪽으로 갈라진다
마당엔 싱그러운 산야초 냄새가 가득하다
얼마나 굶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쳐다보는 것조차 안쓰러웠다. 살집이 바싹 메말라 등이나 다리를 타고 툭툭 뼈들이 불거져 나왔다.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죽을 갖다 주어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곧 죽을 날을 예감한 듯 말라 비뚤어진 육신에는 죽음의 그림자만 일렁거렸다. 알고 보니 이 집 주인은 중국에 가 있다고 했다. 주인이 바다건너 이역만리에 떠나 있으니 그 때부터 주인과 연결된 것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뿐이 아니라 집이나 개, 심지어 말 못하는 미물까지도 한 핏줄처럼 주인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개도 주인이 없는 집을 지키기가 적적해 아마 배까지 굶으며 시름을 달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일행들이 집안으로 몰려 들어가 주방에 가스레인지를 켜고 거실에 불을 활짝 밝히자 일순간 집안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체온이 집안 구석구석 스며들어 차갑게 식어갔던 집에 슬쩍 피돌기가 시작된 것이다. 객들이 들이닥쳐 주인 노릇을 하는 순간, 쓰러져가던 집은 살아나고 거기서 만든 따스한 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워 산행에 대비하게 된 것 만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만목리, 깊은 산 속엔 산야초도 많구나
만목리는 오지 못지 않는 깊고 험한 산에 안겨있는 마을이다. 바람개비가 도는 마을 입구 승강장엔 만목리 인근 산의 지형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표시한 안내판 한 폭이 걸려 있었다. 산의 지형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근육질처럼 울퉁불퉁한 산능선과 골의 지형이 처음부터 기를 죽였다. 마치 강원도의 어느 험준한 산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금산에도 이렇게 험준하고 깊은 산이 있었던가. 낮고 볼품없는 산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의 상식을 일순간 깨우쳐 주는 순간이었다.
구절초, 아직 가을이 멀었는데도 성급하게 꽃을 활짝 피웠다
벌깨덩굴
마을 입구를 벗어나 한참 산길을 타고 올라 차를 주차한 곳은 까만 천을 덮어씌운 하우스 앞이었다.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표고버섯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굵은 나무둥치들이 비스듬히 등을 맞대고 꽉 들어차있었다. 아마 표고장인 모양이다. 이 표고장을 중심으로 산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일행은 각자 장갑과 포대를 챙기고 두 팀으로 흩어졌다. 난 나이가 많고 산야초에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 팀들을 따라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역시 안내판처럼 산세는 험준하고 골이 깊은 지형이다.
회원들이 표고장 앞에서 만반의 산행 준비를 갖추고 있다
여태 시멘트 포장을 하지 않는 산길 옆으로 펼쳐지는 울창한 수림들, 끝없이 전개되는 풀들의 행렬, 햇살마저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그늘이 내려 깔린 산길이 되레 무섭기까지 했다. 울창한 수림 속으로는 수종도 다양하다. 아름드리 고목들과 억센 넝쿨들이 서로 뒤엉켜 아비규환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 다투는 와중에도 산길을 따라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야생화들이 꽃봉오리를 활짝 열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야생화들과 친구 되어 한나절을
산길 초입부터 내 눈길을 제압한 것은 괴불주머니라는 놈이다. 괴불주머니, 참 이름도 희한하다. 괴불이란 물고기를 닮아 이름이 붙었다는 괴불주머니, 그러나 그보다는 어린애가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모양의 노리개를 닮아 그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괴불이란 물고기를 닮았으면 차라리 이름자체를 괴불로 지으면 될 일이지 주머니란 말을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괴불주머니는 종류가 다양하다. 산괴불, 큰괴불, 염주괴불, 자주괴불, 선괴불 등, 이름이 다양해도 가느다란 줄기 끝에 비스듬히 매달린 꽃부리들은 특이하게 깔때기를 닮았다. 그러나 꽃들이 특이하게 생긴 만큼 독성도 품고 있으니 꽃의 세계는 참 깊고도 오묘하다.
괴불주머니
자칭개
독성을 품고 있는 놈 중에 때죽나무도 있다. 세월의 때 한 점 묻지 않는 순백의 꽃들이 종처럼 거꾸로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종을 치며 세상을 향해 섬뜩한 경고를 하는 모습이다. 온몸에 독이 있으니 누구라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경고인지 모른다. 옛날에는 때죽나무 잎이나 열매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들을 찧어 물에 풀어놓으면 물고기들이 기절하여 물에 둥둥 떠 다녔다고 하니 틈만 나면 종을 치는 때죽나무의 경고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찔레꽃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이란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를 아는가. 노래가사처럼 찔레꽃은 순백의 꽃이다. 너무나 하얀 빛이라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산이나 들판을 가리지 않고 피는 것을 보면 가히 민중의 꽃이라 할만하다. 유년시절에 난 찔레 순을 많이 꺾어 먹었다. 껍질을 쭉쭉 벗겨 내린 연한 줄기를 깨물면 오도독 씹히며 물씬 단물이 올라오는 그 맛에 빠져 버릇처럼 찔레순을 꺾어 먹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똬리를 틀고 있는 알록달록한 꽃뱀에 놀라 혼비백산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쪽동백나무
산길 옆 공터엔 쑥부쟁이도 오복이 꽃을 피웠다. 웬일인가. 아직 가을이 오려면 멀었는데. “그리움” 이란 꽃말처럼, “기다림” 이란 꽃말처럼 그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 같다. 쑥을 캐러간 불쟁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처럼 쑥부쟁이의 전설을 생각해도 소슬한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처럼 애잔함만 밀려든다.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 피어오르는 향기 때문일까. 늦봄에 쑥부쟁이를 보아도 이상하게 가을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만난 벌깨덩굴도 특이하긴 마찬가지다. 잎 모양이 깻잎을 닮아 이름이 붙은 벌깨덩굴,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습이 연출된다. 입을 헤 벌린 것 같고 약 오른 뱀이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누군가를 물려고 하는 것도 같다. 아니면 위 아래로 갈라진 입술 아래에 나비 한 마리가 앉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벌깨덩굴이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오는 것도 그 오랜만의 만남 탓이리라.
물방울을 머금은 빨간 열매가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뿜고 있다
지칭개는 오랑캐꽃과 비슷하다. 쭉 뻗은 꽃대에 보라색 꽃을 함초롬히 매달고 있는 모습은 비슷한데 어딘가 빈틈이 보인다. 오랭캐와는 달리 꽃대도 가늘고 꽃도 시원찮고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눈치 보지 않고 피는 꽃이다. 인생사처럼 잘나고 못난 꽃들이 마구 뒤섞어 피어나는 산야지만 지칭개만큼 당당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꽃도 없다. 힘이 센 놈이나 권력이 있는 놈 앞에서 눈치 보거나 기죽지 않고 당당히 고개를 쳐드는 모습을 보면 용기가 충천하고 두 주먹에 불끈 힘줄이 솟는다. 지칭개를 담고자 하는 꽃들이 많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까. 엉겅퀴는 물론이고 뻐꾹채, 조뱅이, 산비장이, 방가지똥을 보면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든다.
느림과 여유로 산길을 걷다
하늘거리는 꽃향기를 맡으며 인적 없는 산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쏠쏠한가. 비포장길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동안 부대끼며 살았던 몹쓸 세월의 집착이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지고 병으로 굳어질 듯한 마음의 속앓이들이 산안개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길을 제쳐두고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토닥거리며 살았던 일들이 괜히 부끄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천천히 걷고 느리게 사는 삶이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었다.
가수원 은아아파트 뒷산의 산장풍경, 한 폭의 그림같다
사립문 앞에 설치한 황금빛 조각상
벌거벗은 조각상
골짝이 얼마나 깊은지 오직 지루한 산길만 눈앞에 전개됐다. 몽실거리며 오르는 물안개들이 깊은 산골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산 하나를 무너뜨릴 듯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여간해서 잠잠해지지 않았다. 산길에서 보니 산등성이에 비좁게 들어찬 참나무들이 너울너울 파도를 치는 모습이었다. 나뭇잎을 뒤집어 하얀 배때기를 드러낸 나무들, 어찌 보면 하얀 꽃이 핀 것 같아 황홀해지기까지 했다. 정자 한 채 들어선 지점에서 또 길이 갈라졌다. 일행이 타고 올라왔던 큰길에서 작은 산길이 곁가지처럼 붙어 갈림길을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왼쪽 길로 접어들어 애초 차를 받쳐 놓았던 표고장에 약속된 시간에 합류할 작정이다. 일행들의 포대가 두툼하게 부풀어진 것만 봐도 시간이 꽤나 흐른 듯하다. 무거운 그늘이 내려 깔려 더욱 선득해진 날씨, 지친 듯 울어대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설핏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산을 타고 처음 출발했던 표고장으로 돌아오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내려온 다른 팀들이 한데 모여 삼겹살을 굽고 거나하게 술잔을 돌리며 떠드는 소리들이 깊은 골짝을 타고 한없이 퍼져 흘렀다.
백초효소, 몇 달 후면 달콤한 속 맛이 우러나겠다
가수원 은아아파트 뒷산에 위치한 산장은 단출해서 보기 좋았다. 작은 밭들이 올망졸망 칸칸이 경계를 이룬 산자락, 그 산자락 안에 작은 산장 한 채가 마치 부화한 알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야생화 회원으로 활동하는 백 교수의 산장이다. 허술하게 담장을 대신한 낡은 싸리울, 사립문 입구에 서있는 황토 빛 조각상, 싸리울에 가려 낡은 쓰레트 지붕만 슬쩍 보이는 집, 아기자기한 꽃들이 수놓은 작은 마당, 싸리울 바깥으로 심어놓은 연두빛 채소들이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산장주인의 삶을 엿보게 한다.
산야초를 썰고 있는 회원들
백초효소를 담그는 백선님
마당에 산야초를 쏟아놓고 백초효소를 만들기 시작한 시간은 우후 다섯시, 산에서 갓 뜯어온 산야초를 한꺼번에 쏟아놓자 마당이 상큼한 냄새로 가득 차 올랐다. 얼핏 세어보아도 여러 종류의 산야초가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어림잡아도 10가지 종류는 훨씬 넘는 듯하다. 까치수영, 지칭개, 쑥, 칡. 청미래넝쿨, 씀바귀, 둥굴레, 산뽕나무, 초피나무 잎들과 이름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윽고 작두와 가위 몇 개가 대령하는가 싶더니 일행들이 각자 일을 분담하여 잎들을 한데 모아 잘게 쓸기 시작했다.
산장 앞 텃밭 풍경, 나무막대기에 걸쳐놓은 밀집모자가
꽤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활짝 꽃을 피운채 담벼락을타고 올라가는 인동넝굴
그래도 산야초를 써는데 작두만한 물건이 없다. 한참 쓸다보면 가위는 손이 아픈데 아가리가 큰 작두는 한 무더기 잎들을 왕창 밀어 넣고 쓸어도 힘든 줄 몰랐다. 꼭 어린 시절 여물을 썰던 때의 풍경이다. 그 와중에도 백초효소를 담그는데 일등공신은 백선님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식을 총동원하듯 팔을 걷고 백초효소를 만드는 폼이 영락없이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잘게 썬 산야초 잎들을 대야에 쏟아 붓고 설탕과 훌훌 섞어 항아리에 척척 쟁여 담고 뚜껑을 덮어놓으면 그만이다.
항아리에 꼭꼭 채워놓은 산야초들
절게 썬 산야초에 설탕을 뿌려 썪는 모습
그렇게 해서 일을 마친 시간이 되자 꾸역꾸역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항아리에 뚜껑을 덮고 헛간에 놓아두고 세월만 보내면 된다. 빛도 들지 않는 어둑한 항아리 속, 오직 끈질긴 인내만이 달콤한 냄새를 풍길 줄 안다. 잎들과 설탕이 서로 뒤섞여 부둥켜않고 인고의 세월을 보낼 때 밑바닥부터 달착지근한 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백초효소의 단맛을 내는 데는 끈덕지게 참고 견디는 인내뿐이 없다. 다름 아닌 인내가 숙성된 백초효소의 맛인 것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