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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우리 토종 음식이 된장찌개다. 여기에 우렁이까지 넣어 보글보글 끓인 우렁된장찌개는 구수한 국물 맛이 특히 일품이다. 쫄깃쫄깃한 우렁이를 건져 된장이나 쌈장을 듬뿍 발라 상추에 쌈 싸 먹으면 거의 밥도둑 수준으로, 잘 차린 요리가 부럽지 않다. 사실 밥은 이렇게 먹어야 더 맛있는데, 우렁된장찌개는 덤으로 어머니의 손맛까지 떠오르게 만드는 추억의 음식이니 맛도 맛이지만 음식 속에 담긴 진한 향수 때문에 더 애틋하다.
우렁된장찌개는 현대를 사는 우리한테도 남다른 음식이지만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우렁이를 넣은 음식을 각별하게 여겼다. 바로 우렁이 때문인데 사람들은 우렁이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우렁이 껍데기 속에서 예쁜 각시가 나와서 일도 도와주고 결혼까지 하지만 못된 원님 때문에 결국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새가 됐다는 전래 동화 우렁 각시 이야기가 그렇다.
우렁이는 또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우렁이는 자기 몸속에 알을 낳고 그곳에서 부화시켜 새끼가 될 때까지 키운 후에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새끼들은 그동안 어미 몸을 뜯어 먹고 자라므로 결국 새끼가 나올 무렵이면 어미는 빈껍데기만 남아 물 위에 둥둥 떠다니게 된다.
그래서 옛날 조상님들 중에는 우렁이 먹기를 거부한 선비들도 있었다. 18세기 초반 유학자인 권상하가 그의 문집인 《한수재집》에 ‘우성서’라는 진사의 행장을 적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집에서 우렁이로 된장국을 끓였다. 식구들이 모두 맛있게 먹는데 오직 우공만이 홀로 상을 물리며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안사람이 이유를 묻자 우공이 말하기를 “우렁이는 어미의 살을 뜯어 먹고서야 세상에 나온다고 하니 차마 입에 댈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우공을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우렁이를 자식들에게 퍼주기만 하는 모정(母情)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우렁된장찌개나 우렁쌈밥을 먹으면서 특별히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는 것 역시 우렁이가 상징하는 지극한 모성이 무의식적으로 입 속에 전달되기 때문은 아닐까.
된장국에다 우렁이를 넣고 끓여 먹은 역사는 꽤 깊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우렁된장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논농사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우렁이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13세기 중국 송나라 때도 당시 수도였던 항저우의 야시장에서 우렁잇국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한국이나 중국이나 우렁이 사랑이 남다르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우렁이가 몸에 좋다고 여겼다. 우리 의학서인 《동의보감》에서도 우렁이는 열독을 풀어주어 갈증을 멈추게 하며 부은 것을 낫게 하고 대소변을 잘 보게 하여 배 속에 열이 몰리는 것을 없앤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리법까지 적었으니, 우렁이는 논밭에서 사는데 생김새는 둥글고 빛깔은 푸르스름한 것이 가을에 잡아서 쌀뜨물에 담가 진흙을 뺀 후에 삶아 먹는다고 설명했다. 《동의보감》은 광해군 무렵에 나온 의학서이니 조선 중기에도 우리 조상들의 밥상에는 우렁된장국이 자주 오른 모양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 역시 우렁이는 황달과 숙취에 좋으며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 《동의보감》에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 부은 것을 낫게 하고 술로 인한 열을 식혀준다는 것이니 우렁된장국을 해장국으로 먹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우렁이를 아예 약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우렁이가 자주 등장하는데, 연산군은 음력으로 8월 말에 경기관찰사에게 약으로 쓸 우렁이 40개를 연달아 바치라는 전교를 내리기도 했다. 추수가 끝나 물이 빠진 논에서 우렁이를 잡으러 돌아다니는 농부들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조선의 임금 중에서는 종기에 시달린 왕이 많은데 정조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그런데 우렁이로 고약을 만들어 종기가 난 곳에 붙였더니 붓기가 가라앉았다는 기록이 역시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우렁이는 농부 남편을 돕는 헌신적인 사랑과 자식을 위해 몸을 버리는 살신성인의 모정을 상징하는 생물인 동시에 종기도 낫게 하고 숙취도 없애준다. 이처럼 우렁이는 동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우렁된장찌개와 우렁쌈밥은 잃었던 입맛까지 되살려주니 진짜 우렁 각시가 따로 없다.
#음식#역사일반
글 윤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