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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엔진
존재는 곧 변화다. 공간은 팽창하고 시간은 흐른다. 가만 있어도 환경이 변한다.변화에 대응하려면 능동적인 액션이 아니면 안 된다.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놀랍게도 변화에 대한 인간의 입장은 없다. 변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사물이 멈추어 있어야 편안해진다. 존재는 멈추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공간이 멈추지 않으므로 존재는 멈출 수 없다. 나란한 것과 나란하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존재라고 믿는 것은 나란한 것이다. 나란함은 관성력을 감추고 있다.
변화를 해명한다는 것은 존재의 나란함이 어긋났을 때 포착되는 관성력을 해명하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없다. 갈릴레이의 발견 이전에는 관성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고 갈릴레이의 등장 이후는 인간들이 죽어보자고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다.
변화와 관련한 말로 인과율이 있지만 부족하다. 인과율은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원인과 변화한 다음의 결과를 대칭시켜 비교한다. 변화 자체의 논리가 아니다. 변화 바깥에서 관측할 뿐 변화 내부로 쳐들어가지 않았다. 변화 내부에서 작동하는 엔진은 무엇인가?
변화는 동력, 엔진, 결정, 전달, 출력으로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의 관측을 배제한 객체 자체의 논리다. 에너지의 입력에서 출력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변화는 계 내부의 모순이라는 자체 원인에 의해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활이 쏜 것은 원인이고 과녁에 맞은 것은 결과다. 인과율은 활을 쏘았다고 말할 뿐 어떻게 쏘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성을 해명하지 않는다. 변화를 해명하려면 화살은 반드시 그 과녁에 맞게 조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축구선수의 슛은 골이 될 수도 있고 노골이 될 수도 있다. 왜 골이 되고 노골이 되는지 필연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과율은 공을 찼다는 원인과 골인 혹은 노골이 되었다는 결과를 연결만 할 뿐 동일하게 골을 복제하는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곧 복제한다는 것이다. 1+2를 알면 2+3도 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것은 지식의 복제다. 지식은 복제되어야 한다. 궁수의 명중을 다른 궁수가 복제하지 못하면 참 지식이 아니다. 인과율은 복제할 수 없으므로 인류는 변화에 대한 지식이 없다.
인과율은 추론의 단서를 제공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결과에서 원인을 추적하므로 귀납이다. 귀납은 진정한 추론이 아니다. 진짜는 연역이다. 연역은 원인에서 결과를 찾아간다. 활에서 화살을 타고 과녁을 따라가며 변화를 복제한다. 인과율로는 연역을 할 수 없다.
연역하려면 대칭의 상대성 이원론을 극복하는 비대칭의 절대성 일원론의 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인과율은 귀납하므로 화살의 존재를 모르고 활과 과녁 사이에서 순환의 오류에 빠진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오류가 순환논법이다.
상자의 입구와 출구가 있다. 입구로 A가 들어가면 출구로 B가 나온다. 상자 내부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인과율이다. 상자의 입구가 원인이고 출구가 결과다. 우리는 출구의 결과에 서서 입구의 원인을 찾는다. 상자 밖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상자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상자 내부에 구조가 있다. 구조의 세계로 쳐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무엇이 다른가? 복제할 수 있다. 귀납으로는 원인을 안다고 해도 복제하지 못한다. 복제하지 못하면 지식이 아니다. 점쟁이가 우연히 맞힌 점괘는 지식이 아니다.
귀납은 과녁에 맞은 화살을 보고 누군가 화살을 쏘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떻게 쏘았는지는 모른다. 귀납으로도 범인을 넘겨짚을 수는 있으나 수사는 완성되지 않았다.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해야만 추리가 완성된다. 재현은 복제다. 지식은 복제로 완성된다.
우리는 이원론의 상대성 세계에 살고 있다. 상자의 입구와 출구다. 선과 악이다. 진보와 보수다. 활과 과녁이다. 둘을 관통하는 화살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둘이 공유하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선과 악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회성을 찾지 않으면 불완전하다.
진보와 보수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명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사회성을 모르면 선과 악 둘 다 모르는 것이다. 하나의 광자를 모르면 흑과 백 둘 다 모르는 것이다. 흑과 백은 둘이지만 광자는 하나다. 진보와 보수는 둘이되 둘이 공유하는 문명은 하나다.
이물과 고물은 둘이지만 배의 키는 하나다. 일원의 절대성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상자 속의 기능function이다. 기능을 알기 전에는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배와 비행기와 자동차를 구분할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운전할줄 알아야 한다.
function 위주의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기능은 절대성이다. 기능은 일원론이다. 존재는 곧 기능이다. 기능은 입구와 출구를 연결한다. 입구와 출구는 기능을 공유한다. 인류문명은 입구와 출구를 번갈아가며 관찰할 뿐 내부로 들어가서 기능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언어의 엔진
labor, 노勞, 노老, 노櫓, 납拉, 늙다, 낡다, 낚다. 낚아채는, 나불대는 동작. 팔다리를 구부린 채로 반복하는 동작.
우리는 언어와 문자가 발달되어 있으므로 쉽게 가르치고 쉽게 배운다. 그러나 개는 힘들게 배운다. 왜? 우리가 잘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튜버 댕쪽이 상담소의 개대장은 잘 가르친다. 강형욱의 열 배나 되는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한다. 목줄 하나으로 굉장히 많은 정보를 개한테 전달한다. 강형욱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버벅댄다.
인간이 산책을 할 때는 그냥 산책한다. 개는? 100미터 앞의 간판이 수상하다. 멀리 있는 우산이 무섭다. 비닐이 무섭게 너풀거린다. 꼬마가 나를 보고 있다. 수상한 아저씨가 지나간다. 개가 내게 덤비려고 한다. 혼자 10가지 걱정을 하고 있다.
개가 그냥 산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굉장히 많은 것을 일일이 체크하고 일일이 반응한다. 산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견주가 개를 장악하고 ‘나만 따라와’ 하고 임무를 바꿔줘야 개는 편안해진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 개 입장에서는 이미 열 가지 상황이 벌어져 있고 그 열 가지 상황을 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발생할때마다 견주가 목줄로 신호를 보내서 ‘그거 내가 이미 파악했으니까 넌 나만 따라오면 돼’를 시전해야 개가 마음 놓고 산책할 수 있다.
10미터 앞에 고양이 발견. 내가 이미 파악했어. 넌 가만있어. 개한테 이 신호를 보내야 한다. 강형욱은 안한다. 개대장은 개가 고양이를 발견하고 반응하기 전에 견주가 먼저 발견하고 목줄을 채서 ‘내가 봤어.’ 하고 신호를 보낸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언어와 문자가 발달하지 못한 원시사회에서 원시인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다. 견주가 목줄을 채듯이 액션을 취한다. 즉 언어 이전에 액션이 있는 것이다. 말로 하기 전에 동작을 한다.
Labor가 무슨 뜻일까? lab이라는 동작이 있다. 그것은 팔이나 무릎을 구부리고 무언가를 낚아채며 반복하는 동작이다. 신체언어, 보디사인에서 언어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의미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원시인이 의미를 알아듣겠냐? 동작은 알아챈다. 의미는 모른다.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학계의 자의성설은 틀렸다. 언어는 의태어와 보디사인에서 나온 것이며 lab이라는 동작이 있다. 그 동작을 하는 사람이 노동자다. Labor는 노동자의 무릎이 늘어진다,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일이 힘들어서 무릎을 굽힌 상태다. 무릎의 릎과도 관련이 있다.
늙은 노인은 무릎이 구부러진 자세로 걷는다. 그러므로 노勞는 노老와 통하는 것이다. 왜倭는 나라이름이기도 하지만 왜소하다는 뜻도 있다. 한자는 발음이 비슷하면 의미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글자를 마구마구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아저씨들이 개나 소나 글자 하나씩은 만들어낸 것이다. 갑골문에 쓰인 글자들 중 다수는 특정인을 나타내기 위한 일회용 글자라서 해석이 안 된다. 글자는 한 번 써먹고 버리는 것이다. 임금들은 자기만 쓰는 전용글자가 있었다.
Lab은 낡은 것이 늘어져서 흔들리는 동작이다. 낡은 것은 대개 늘어져 있다. 너덜너덜해진다. 너절해진다. 너저분하다는 뜻도 있다.
Robber는 강도다. 날치기의 날, 낚아채기의 낚과 관계가 있다. 납拉, 납치하다의 납rob은 강도가 낚아채는 동작이다. 낚아채는 동작이 구부러진 동작이므로 노동자 혹은 노인이 무릎을 구부린 것과 같다.
robe 예복. 게르만족이 로마인의 옷을 날치기한게 예복이다. 게르만족이 결혼식과같은 행사에 참여할 때는 로마인 옷을 하나 뺏어와야 한다. 털가죽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rapid낚다. rudder노와 같다. 노櫓 젓는 배의 노. 노 젓는 동작이 팔을 구부리는 것이다. lever지렛대도 노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노젓는 동작이나 지렛대로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는 동작이나 같다.
잔디lawn가 구부러져 너덜너덜하다. 누더기다. 손질하여 너덜너덜하게 만든 가죽leather. row날, 익히지 않은 날 것은 늘어져 있다. 익히면 굳어진다Hard. 굳어진 고기가 뜨겁다hot. 날row것과 구워서 굳은Hard 것이 대칭을 이룬다.
ruffle러프한, 너풀대는,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rug러그, rag넝마, rabbit 갉아(낚아)먹는 토끼, rat랫, 갉아(낚아)먹는 시궁쥐, 낚는 동작과 갉는 동작이 같다. rash 너절한 행동, razor 너절하게 밀어낸 면도기의 찌꺼기, rub 보푸라기를 너절하게 밀어내는 문지르다.
모두 특정 동작에서 곧 보디사인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개한테 말로 하루종일 설명해봐라 개가 알아듣나? 원시인도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다.
언어는 동작에서 나왔고 모든 언어는 궁극적으로 특정 동작 혹은 소리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말이 발달해서 동작을 잊어버렸다. 정글의 부족민들은 사냥할 때 동작으로 많은 신호를 전달한다. 말을 하면 동물이 듣고 도망치잖아.
진화의 엔진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 개체수가 늘어났다. 얼음이 녹아 먹이의 종류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당연하다는듯이 북극곰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여기에 의문을 품고 꾸준히 추적해 왔다. 근래에 개체수 증가 사실이 확인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정치적 프레임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권력의 끼어들기가 문제다. 인간은 권력에 관심이 있다. 북극곰 개체수로 위협하여 말 안 듣는 인류를 제압하려고 한다. 딜레마가 있다. 착한 거짓말은 해도 되는가? 나는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왜? 구조론은 진실을 말하는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아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진화론이 특히 문제다. 왜 아직도 창조설을 떠드는 사람이 있는가? 과학자들의 말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을 모르면 말이 어눌해진다.
북극곰의 주적은 인간이다. 북극곰 개체수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사냥이다. 사냥만 안 하면 개체수는 자연히 늘게 되어 있다. 이런 것은 초딩도 알수 있다. 초딩도 안 속을 거짓말을 하므로 과학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종교가 서식할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자연선택은 진화의 원인이 아니다. 먼저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논리학의 영역이다. 능동적으로 액션을 취하여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 원인이다. 자연이 선택한다면 선택지는 누가 제공했는가? 자연이 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스카웃을 진행한다고? 선택은 인간이나 하는 것이고 자연이 선택한다는 표현은 형용모순이다.
이것은 과학가의 언어가 될 수 없다. 과학자는 애매한 말을 쓰면 안 된다. 이런 개소리를 하고 있으니 종교인이 발호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진화가 일어난 증거일 뿐 원인이 아니다.
진화는 명백하다. 진화의 엔진은? 검색을 한다고 해도 검색엔진이 사용된다. 인공지능도 엔진이 있다. 자연은 어떤 엔진을 사용하는가? 없다. 엔진은 DNA에 있다. 초딩도 알 수 있다. 자연에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종이다. 종의 DNA가 능동적으로 작업하여 필요한 변이를 생산한다.
DNA의 변이 생성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것을 해명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살인이 명백한데 범인은 잡지 못했다. 자연선택은 살인의 증거이지 범인의 체포가 아니다. 자연사도 아니고 자살도 아니고 살인이 맞는데 범인은 모른다.
지구에 80억이 있다. 역사시대 1만년 동안 인류는 관찰했다. 과거에는 영아사망이 많았다. 1만년 간 지구에 태어난 인간 총 숫자는 최소 500억이다. 살아남아서 성인이 된 숫자는 200억이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의미있는 변이는 한 차례도 관찰되지 않았다. 왜 아쿠아맨도,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안 생기는가?
개는 다양한 아종이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인간선택이다. 옥수수의 진화는 눈이 부실 정도이다. 볍씨도 인간에 의해 상당히 개량되었다. 분명 변이도 일어나고 선택도 일어나는데 그것이 자연선택은 아니다. 역사시대에 인간이 총 500억 개체 이상 지구에 출생했다면 인간이 관찰한 동물은 그 백배다. 5천억 아니 5조다.
페르미의 역설이다. 그 많은 외계인은 다 어디로 갔지? 그 많은 변이들은 다 어디에 숨었지? 신종 하나를 출현시키려면 변이가 몇 번 일어나야 할까? 한 종이 일백만 번 변이를 일으켜서 그 중에 하나가 살아남아 완전한 신종의 탄생에 성공한다면 인류가 관찰한 5조의 탄생 중에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10조에는 가능하다고 치고 10조에 백만을 곱하면? 터무니 없이 많은 돌연변이의 숫자가 필요하다.
사피엔스의 역사는 30만년이지만 인지혁명은 5만년 전에 일어났다. 5만년 전에 인류는 신종으로 바뀌었다. 10만년 전의 사피엔스와 현생인류는 다르다. 인류는 5만년 전에 명백히 진화했다. 5만년 전에 지구에 인류의 총 숫자는 몇이지? 인류는 많지 않았다.
5만년 전에 지구에 10조 곱하기 백만 명의 인류가 출생했다면 그 중에 하나가 유의미한 변이를 일으키고 자연선택을 받아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5만년 전 지구에는 그만한 숫자의 사피엔스가 살지 않았다. 투박하게 셈했는데 엄밀히 따져본다면 숫자가 더 많다. 100조 단위를 넘어간다고 볼 수 있다.
지구에 개미만 해도 몇 마리가 있겠는가? 인간이 관찰하는 동안 완전한 신종 개미가 출현한 일이 있는가? 아종은 출현했을 수 있다. 신종은 커녕 신종의 탄생 조짐을 보이는 의미있는 변이도 관찰되지 않았다. 미세한 개체변이는 있다. 당뇨병 유전자가 늘었거나 에이즈에 안 걸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에이즈에 안 걸리는 인류가 출현해서 현생인류를 완전히 대체했는가? 에이즈에 안 걸리는 인류가 현생인류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완전한 신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그와 유사한 가능성이 포착되었는가? 그런 일은 없다.
자연선택은 있지만 진화의 엔진이 아니다. 자연선택은 굳이 말하면 기어나 바퀴다. 엔진이 없으면 자동차가 아니다. 우리는 외계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고 신종이 출현하는 진화의 현장을 한 번도 포착하지 못했다. 왜? 엔진에 주목하지 않고 바퀴만 봤기 때문이다. 엔진은 DNA 구조 안에 장착돼 있다.
1. 진화의 엔진을 찾아야 한다.
2. 자연선택은 바퀴에 불과하다.
3. 바퀴가 있으므로 엔진도 있다.
한국인의 머리가 중두인 것과 코가 낮은 것은 관계가 있다. 백인은 눈이 깊으면 코도 크다. 백인 여성은 상대적으로 코가 낮다. 수염과 대머리는 관계가 있다. 머리카락은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부에 털이 사라지면서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난 것이다. 여기서 보상관계를 알 수 있다. 대머리와 수염은 상보성이 작용한다.
인디언은 대머리가 없다. 대머리가 없으므로 수염도 거의 없다. 몇 가닥 나는데 족집게로 뽑아버린다. 대머리와 털 없는 피부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왜 털을 잃어버렸을까? 자연선택? 천만에. DNA에 내장된 진화 프로그램은 적절한 생태적 지위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인류의 조상은 사헬지대에 살았다. 털 없는 피부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야 한다. 카우보이는 가죽으로 된 덧바지를 입는다. 말이 가시덤불을 달리면 허벅지가 쓸려서 피가 난다. 말은 털이 있어서 가시덤불을 방어하는데 인간은? 말이 시속 70킬로로 가시덤불을 달리면 카우보이는 허벅지가 찢어진다. 그런데 왜 인류는 털을 잃고 약해졌을까? 지구력을 이용하는 인류의 사냥법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글에서는 다르다. 털 없는 피부가 인류의 이동을 촉진한 것은 명백하다.
털이 없어서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일은 없고 털이 없으므로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하게 되었다. 채집경제에 의존하던 인류의 조상은 특유의 지구력으로 끊임없이 이동했으며 털 없는 피부가 도움이 된다. 다만 생존에 유익하지는 않다. 운좋게 살아남았을 뿐 털 없는 몸으로 생존경쟁에 승리한 것은 아니다.
구석기인들은 동굴에 살았다. 동굴이 바닥나면 박쥐는 증가할 수 없다. 동굴이 없으면 네안데르탈인은 살 수 없다. 털이 없어 얼어죽는다. 사피엔스 여성은 더 생존에 적합하지 않게 진화했다. 변이는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다. 10만년 전에는 여자나 남자나 같았다. 5만년 전후 인지혁명에 의해 자기가축화 현상이 일어나서 여자는 더 여자로 진화했고 남자도 상당히 여자로 진화했다. 특히 동아시아인은 거의 여자가 되었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순다랜드의 동아시아인은 남성호르몬이 감소하여 여성화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태적 지위 때문이다. 너구리와 렛서판다와 라쿤의 공통점은 눈을 감추는 것이다. 이들의 하는 짓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하고 서식지도 비슷하다. 그런데 진화의 경로는 다르다. 다르게 출발했는데 수렴진화로 같아진 것이다. 그것은 자연선택이 아니다. 너구리가 눈을 감춰서 얻는 이득이 없다. 라쿤은 왜 너구리 행세를 할까? 이들의 공통점은 미련하다는 것이다.
너구리는 콤바인이 벼를 베어가며 점점 좁혀지는 사각형 밖을 탈출을 못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틴다. 라쿤은 벽장 속의 좁은 틈에 숨는데 인간이 한 마리썩 목덜미를 잡고 꺼내면 마지막까지 버틴다. 라쿤의 전술과 너구리의 전술은 둘 다 수동적이다. 숨어 있거나 죽은 체를 한다. 이들은 미련하기 전략을 사용하므로 둘 다 눈을 감추는 것이다. 자기 시선을 숨긴다.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카밍 시그널이다.
개는 눈치를 보며 자기가 어디를 보는지를 견주가 모르게 한다. 고릴라 수컷 실버백은 사람을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 곰은 딴전을 피우며 몰래 사람을 감시한다. 사자나 호랑이나 고양이는 그러지 않는다. 너구리의 시선감추기는 생태적 지위와 관계가 있다. 너구리와 라쿤이 같은 생태적 지위를 찾아 수렴진화를 할 때 생김새도 결정된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 남성의 여성화와도 관계가 있다. 5만년전 인지혁명이 여성화를 시작했으며 호르몬의 변화가 생김새의 변화를 촉발하여 동아시아인은 더 털이 짧아졌다.
중앙아시아인은 팔뚝과 종아리에 털이 길다. 너구리의 죽은체 전략과 동아시아인의 자기가축화에 따른 여성화 현상은 같은 진화엔진에 의해 결정된다. 패턴이 비슷하다. DNA 내부에서 이런 것은 1천만년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다.
보통생각 – 우연히 변이가 일어났고 자연선택으로 고정되었다.
구조생각 – 원래 세트메뉴가 있고 환경적응 과정에 세트메뉴가 발현되었다.
진화는 생존과 별로 관계없고 환경변화와 밀접하며 적합한 생태적 지위를 찾아가게 되어 있고 이때 밸런스의 원리가 작동하고 하나가 변하면 많은 것이 연동되어 동시에 변한다. 이렇게 되면 짧은 시기에 많은 변이가 일어나고 진화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자연선택 모델로 진화하려면 5조 곱하기 백만 개체가 탄생하는 동안 유의미한 변이가 없었으므로 터무니 없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개체수가 많은 종이 잘 진화하고 개체수가 적은 종은 진화하지 않는다. 진화는 몇몇 숫자가 많은 종에 집중된다.
개미와 쥐는 숫자가 많으므로 많이 진화하고 맹금류와 맹수는 개체수가 적어 진화할 수 없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포식자는 진화가 불가능하다. 사슴이나 누떼, 순록처럼 무리가 많으면 대거 진화에 성공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1. 자연선택으로 진화하려면 개체수가 많아야 한다.
2. 개체수에 따라 많이 진화한 종과 못 진화한 종으로 갈려야 한다.
3. 포유류 종들은 개체수와 관계없이 충분한 진화를 했다.
4. 자연선택에 필요한 많은 개체수는 오히려 진화의 방해자다.
5. 종은 생태적 지위를 찾아낼때까지 급격하게 진화하고 거기서 멈춘다.
아프리카에서는 백인이 나올 수 없다. 왜? 우연히 백인이 나왔더라도 흑인과 결혼해서 다시 흑인이 되기 때문이다. 개체수가 많으면 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높지만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원래로 회귀하므로 자연선택이 없다. 개미는 1억년 동안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개체수가 진화의 방해자다.
진화하려면 멸종 위기까지 가야 한다. 환경변화가 종을 억압한다. 종이 위기를 느끼면 그 신호가 DNA에 전해져서 변이를 촉발하며 비로소 자연선택이 작동한다. 인류는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코카서스의 추위에 막혔다가 어느 순간 돌파했다. 인류는 추위에 약한 동물이므로 북진은 좌절되었고 동쪽으로 옮겨가서 순다랜드에 정착했다. 어느 순간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산맥을 넘었으며 그 과정에 급격히 진화한 것이다. 진화는 거의 한 순간에 일어났다. 많은 변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개체수는 방해자다.
개체수가 많으면 백인이 다시 흑인된다. 한국인의 유전자 중에 5퍼센트는 백인이지만 물타기가 되어 사라졌다. 한반도에서 많은 백인 인골이 출토되고 있다. 1만년 전에 백인이 다수였다. 일본의 조몬인은 5퍼센트로 줄었다. 한반도에 많았던 선주민 백인은 북중국에서 온 기장농사 그룹의 쪽수에 밀려 사라졌다.
백인끼리 결혼해야 백인이 되는데 이는 격리설이 작용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가능하다. 다 얼어죽고 굶어죽었는데 변이를 일으킨 백인 남매 두 명만 살아남아 근친혼을 해서 백인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처음으로 코카서스를 넘어가서 네안데르탈인을 죽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검은 피부였는데 점차 흰 피부로 바뀌었다.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이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과 경쟁하여 이긴 것이 아니라 흰 피부로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한 번 변이가 격발되면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에 의해 갑자기 많은 변이를 일으킨다. 이는 브리더들이 개의 품종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알 수 있다. 진돗개와 진돗개를 결합시켜서 새로운 견종을 얻어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진돗개와 웰시코기 사이에는 진도코기의 비전이 있다.
새가 날개를 얻은 이유는 공중환경이라는 임자 없는 땅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게 DNA에 전해져서 짧은 시간에 터무니없이 많은 변이를 일으켰다. 모든 동물은 원래 날 수 있다. 박쥐만 날 수 있는게 아니고 날다람쥐도 날 수 있다. 심지어 고양이도 나무 사이를 잘 날아다닌다. 고양이가 두 발을 아래로 향하여 착지하는 것은 날다람쥐의 비행능력이 고양이 유전자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다양한 변이를 일으켰다면 비막이 발생하여 날고양이가 생길 수 있었으며 실제로 날고양이 탄생 직전까지 갔을 수도 있다.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날고양이는 없지만 DNA 안에는 날고양이의 진화를 만들어내는 씨앗이 숨겨져 있다. 격발되지 않았을 뿐 가능성을 품고 거기에 맞추어져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족제비는 수달이나 해달이 될 가능성을 언제나 품고 있다. 유전자는 세트메뉴로 팔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을 했다가는 논리적 취약점이 찾아지고 종교인들이 그것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종교의 창조설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엉터리 과학을 하고 있다. 다 정치적 프레임 놀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