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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리스도인 시리즈 (1)
십자가에서 발견한 세 가지 진리
(참고: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The Cross of Christ))
롬 8:32
I. 서론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인데, 여러분은 올 한 해 동안, 얼마나 감사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하는 감사가 아니라, 범사에, 즉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광 목사님의 책, <평생 감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여 집사님이 장미 빛 꿈을 가지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신혼 초부터 남편이 매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결혼 생활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남편의 술버릇은 여전했고, 집사님은 홀로 가슴앓이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집 현관 입구까지 와서 쓰러졌습니다. 여집사님은 남편을 겨우 집안으로 끌어다 눕혀 놓고 나자, 자신의 신세가 참으로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주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하지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을 보자, 감사거리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한다는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감사거리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1. 한심한 남편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감사합니다.
2. 남편의 상태가 지금이 가장 밑바닥이니, 언젠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합니다.
3. 저렇게 술에 취했지만, 다른데 안가고 항상 집을 잘 찾아오니 감사합니다.
4. 술은 좋아해도 여자는, 제 밖에 모르니 감사합니다.
5. 다른 남편들은 술만 먹으면 손찌검을 한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그래도 잠만 자니 감사합니다.
6.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지만, 아직까지 술 때문에 병원을 한번도 안 갔으니 감사합니다.
7.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시고 들어와 주일에는 늦게까지 자니, 제가 교회 생활하는데 방해가 안되어 감사합니다.
말도 안 되는 감사였지만, 불평하기보다 이렇게 감사를 하니 어쩐지 속이 조금 후련해졌고, 얼굴에도 미소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남편이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나서 아내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물었습니다. “한밤 중에 안 자고, 지금 뭐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혼자 싱글벙글이야?” 이 말을 듣고, 여집사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래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드린 감사의 기도들을 남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10년 동안이나 술을 마시고, 당신 속을 썩였는데도, 나와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해줘서 고맙소. 이제부터는 술을 끊고, 당신이 그렇게 원했던 교회를 나가보겠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감사의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만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감사가 불신자의 감사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오늘 설교 주제가 이에 대한 해답을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현실을 볼 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변치 않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이시므로 당연히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도 관심이 있으시고, 그 모든 형편을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참고 도서로 다루고 있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잠시 책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20대 초반, 한국에서 사랑의교회 대학부를 다닐 때, 대학부 선배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책을 성경에 포함시켜야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만큼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알리스터 맥스래스는 이 책에 대한 해설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십자가에 관해 쓰인 가장 존경 받고 권위 있는 복음주의 저서입니다. 이 책은 그의 이력이 최절정에 오른 65세에 쓴 것인데, 마치 그가 평생에 걸친 신학적 정확성, 목회적 지혜, 수사학적 은사들을 추출해 낼 수 있도록, 십자가라는 위대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짧은 설교 시간에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을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 주제와 연관해서 이 책에 나오는 중요한 내용 한 가지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 책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 가지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 하나님에 대한 진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I. 본론
1.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겠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라는 주제가 인기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갈라디아서 주석>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너 때문에 여기에 있다. 내가 지고 있는 것은 너의 죄이며,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은 너의 저주이다. 내가 지불하고 있는 것은 너의 빚이며, 내가 죽고 있는 것은 너의 죽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십자가처럼 우리의 콧대를 완전히 꺾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받을 저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빚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말하는 첫 번째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달리 구원받을 방법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존 스토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쓴 때는 1986년입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92년에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님은 <십자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What was God doing on the Cross?>입니다. 이 책에서 맥그래스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리가 부러지면 목발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비유로 말씀 드리면, 우리 모두 다리가 부러졌으며, 모두에게 목발이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의 운명은 단순히 다리가 부러진 정도가 아닙니다. 맥그래스 교수님이 알기 쉽게 설명했기 위해서 “목발” 비유를 말했지만, 우리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절망적입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과 연관해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다시 닫아야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게 임대료는 1년 동안 못 내서 밀려 있고, 손님은 더 이상 오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 식구들의 생계는 지금까지 신용카드를 써서 해결했는데, 한도를 이미 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게의 문까지 닫아야 한다고 합니다. 딸을 대학도 보내야 하고, 생계도 유지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상태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도 사춘기 때 이런 절망적인 영적 상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1921년에 영국 런던에서 저명한 의사였던 “아놀드 스토트 경”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고, 날마다 성경을 읽고 자랐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당시 자신의 영적 상태를 고백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는 그분과 소원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좌절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며, 또한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격이 놓여 있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던 중, 1938년 2월, 그의 나이 17세 때, 성서 유니온 강사였던 에릭 내쉬 (Eric Nash)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내쉬 목사님이 설교한 본문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이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십대 존 스토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존 스토트는 그 날 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했고, 그 날 이후부터 일평생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지금도 문 밖에 서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이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의 영혼에 들리신다면,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다. 그래서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 둘째, 하나님에 관한 진리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에 관해서는 무엇을 말해 주겠습니까?
설교 초반부에 말씀 드렸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한 구절 보겠습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 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This is love.”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랑”의 정의가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이런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우리는 이 성경 구절에서 “속하다”는 개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한다는 것”은 납치된 사람이나 노예 신분의 사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몸값을 지불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납치된 사람이나 노예 신분의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저히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조금 전에 살펴본, 첫 번째 포인트, 인간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억류된 사람이 중요한 사람일수록, 지불해야 할 금액은 더 커집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의 자식이 억류되었을 때 지불해야 할 속전과 왕의 자식이 억류되었을 때 지불해야 할 속전은 확실히 달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지불한 속전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보시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다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배를 통하여 이 한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신다.”
3. 셋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겠습니까?
한 마디로, 예수님의 낮추심과 복종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의 낮추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낮추심과 복종하심의 마음을 우리가 품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낮추심과 하나님께 복종하심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신원을 밝혀 주는 표일 뿐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 주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떠한 나침반을 보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이 말하는 높아짐과 자기 성취의 삶입니까? 아니면,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까?
마지막으로, 존 스토트 목사님과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를 두 개 말씀해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 드리는 이유는 존 스토트 목사님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낮아짐과 복종함을 실생활에 적용할지를 예로 들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팀 체스터 목사님의 책 <십자가와 부활을 사는 일상 영웅>에 나오는 이야기로, 팀 체스터 목사님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론적인 책이라면, 팀 체스터 목사님의 책 <일상 영웅>은 실천적인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두 가지 책을 함께 읽으면, 더 좋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팀 스태포드 작가가 <Christianity Today>에 기고한 글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고한 글의 제목은 <A Plain, Ordinary Christian>입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팀 체스터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10대였을 때, 나는 존 스토트 목사님이 주강사로 오셨던 집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소에 몰려 들었고, 같이 온 친구가 갑자가 화장실을 가버리는 바람에 친구를 기다리며 혼자 수줍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 때, 나이 많은 한 신사가 내게 다가와서, 안부를 물으면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다정한 얼굴로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 주니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바로 그 때 친구가 돌아왔고, 그 신사는 자신을 우리에게 소개했습니다. “안녕, 나는 존 스토트라고 한단다.”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셨고, 그 집회의 주 강사였습니다. 그런데, 한쪽 모퉁이에 외롭게 서 있던 어리숙한 아이에게 관심을 쏟은 것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30권도 넘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을 읽었고, 설교도 많이 들었지만, 그 어떤 것도 그날의 첫 만남만큼 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어리숙해 보이는 10대 소년 한 명을 찾아간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르네 파디야의 이야기입니다. 남미의 신학자 르네 파디야 (Renee Padilla)가 젊은 시절, 존 스토트 목사님을 만나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숙소까지 걸어가느라 장화가 진흙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르네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니 문 앞에서 솔질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이 어젯밤 진흙범벅이 된 르네의 장화를 닦고 있었던 것입니다. 르네가 깜짝 놀라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스토트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르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의 발을 닦아 주라고 가르치셨네. 내가 자네의 발은 닦아 줄 필요가 없지만, 신발은 닦아 줄 수 있지 않나.”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깊이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붙들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 힘든 세상에서 존귀한 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낮추심과 복종하심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