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탱고
오창혁 / 통계학
벤탄시장에는 남국의 뜨거움이 넘친다. 외국인이 귀국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특산품이 많고 영어가 통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재래시장보다 서너 배 비싸다.
한 번은 아내의 부탁에 따라 기름에 튀긴 바나나 칩을 사러 갔다.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이웃 나라인 태국보다 비싸게 부른다. 반으로 뭉텅 깎았더니 안된다고 하며 십 프로는 빼줄 수 있다고 한다. 이십 프로는 안 되겠냐고 되물었더니 떠밀며 나가라고 한다.
시장을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파는 가게가 없다. 별도리가 없다. 아내를 생각하며 한 수 접고 다시 찾아갔다. 주인은 가게 저 안쪽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젊은 아가씨 점원이 대신 나를 맞이 한다. 다행이다. 다시 오는 나를 보고 주인 아주머니가 피한 것 같다.
십 프로 에누리한 가격으로 한 자루를 사서 들고는 주인 아주머니를 턱으로 가르키며 아가씨에게 물었다. “마?” 아니란다. 그래서, 힘주어 말했다. “마!” 아가씨가 얼굴이 활짝 펴지며 맞는 말이라고 하며 소리 내어 웃는다. 성조를 붙여 앞의 ‘마?’는 ‘어머니?’로, 뒤의 ‘마!’는 ‘마귀!’로 말한 것이다. 나의 안쓰러운 복수에 공감하며 동참한 아가씨가 고맙다.
반년 후, 호치민 시에 다시 가게 되었다. 사야 할 것도 있고 ‘마’ 아가씨도 궁금해 시장을 찾았다. 가게에 들어가니 ‘마’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표정이 묘해지며 민망해한다. 모르는 체하고 찾는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둘러보니 그때 그 동지는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시장 대신, 현지인이 가는 재래시장을 가보고 싶었다. 중심가 고층 빌딩이 많은 큰길을 걷다가 길 안쪽으로 작은 시장을 보고 발길을 들여놓았다. 열대 지방의 뜨거운 공기 탓인지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물전, 채소가게를 지나가니 길거리 음식점이 있고 젊은 남녀 대여섯이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식사하고 있다. 흰 셔츠와 검은 바지의 깔끔한 차림으로 보아 근처에 있는 빌딩 사무실의 회사원 같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청년이 먹고 있는 음식을 하나 가르키니 앉으라며 빨강색 의자를 내어 준다. 앉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다는 것에 창피스러운 마음이 있어 멈칫거리는데, 젊은이들이 의자를 엉덩이에 붙인 채 들썩여 가며 옆으로 옮기면서 자리를 만들어준다.
따뜻한 눈빛으로 환영하는 식당 아주머니, 담소하며 식사하는 젊은이, 그들과 어울려 고수 향이 짙은 쌀국수를 후루룩거리며 잡아당겼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따라 얼마를 더 가니 시장에 사람이 없다. 그러다가 길바닥에 앉아 떡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가래떡이 색깔별로 나뉘어 크지 않은 바구니 안에 촉촉하게 줄 세워져 있다.
앳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작은 체구에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며 외국인 남자의 눈빛을 피하는 것을 보니 장사의 초짜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스스럼없이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았다.
만 동 짜리 지폐 한 장과 떡 바구니를 사이에 두고, 나는 한국말과 손짓으로 그녀는 베트남 말과 손짓으로 거래를 시작하였다. 내가 하는 말은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고 그녀가 하는 말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했다.
아주머니가 바구니에서 떡 몇 개를 꺼내 내 앞에 놓는다. 만 동 어치다. 떡을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메콩강 맛이다. ‘메콩 삼각주 쌀일거야. 평야가 진짜 넓었어. 티베트고원에서부터 베트남 앞 바다까지 만 리가 넘게 흐른다고? 대단해! 이 떡에는 히말라야의 살을 에는 찬바람, 물소가 퍼질러 놓은 덩, 나의 베트남 친구와 그의 아내가 강가에서 속삭인 이야기가 녹아 있겠지?’ 머릿 속에는 이야기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앞에 놓인 것을 다 먹고 바구니에 담긴 떡 중에 몇 개를 골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당황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더 먹으면 안 된다는 소리 같다. 덤으로 먹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돈을 더 주겠다고 말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낭패한 표정을 짓더니 포기한다.
내가 떡에 관심을 가질 때부터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있던 길 건너 옷 가게 아주머니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후딱 끼어들어 떡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설명한다. 떡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안심하는 것을 보니 옷 아주머니가 돈을 더 낼 것이라고 잘 설명한 모양이다. 옷 아주머니는 맡지 않아도 될 일을 맡아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옷 아주머니가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알아들은 말은 없지만, 떡 몇 개를 더 집어먹고 계산해 달라고 하니 두 아주머니가 머리를 맞대고 덧셈을 한다. 그리고 검산도 한다.
떡값을 낸 후 먹은 떡값만큼을 '팁'이라고 하며 주니, 떡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옷 아주머니가 또 중재에 나섰다. 받으라는 여인과 아니라는 여인의 실랑이 속에 나는 돈을 든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옷 아주머니의 손짓, 발짓, 얼굴 짓을 분석해 보니 ‘고맙다고 주는 돈은 받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었다. 떡 아주머니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우며 어색하게 손을 내민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한바탕 난리까지 치고 난 떡 아주머니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고, 중재에 성공한 옷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친다.
그 이후 십 년도 더 넘게 호치민 시에 가지 못했다. 여인들, 모두가 궁금하다. 떡 아주머니가 시장에 번듯한 가게를 열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옷 아주머니의 오지랖에 장단 맞추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붉은 석양이 가득히 내리는 사이공강 가에서 다시 한번 탱고를 추고 싶다.
첫댓글 교수님, 옥고 고맙습니다. '마'아주머니, '마'아가씨, 떡 아주머니, 옷 아주머니의 모습까지 눈에 선합니다. 이 짧은 글에서 베트남의 인정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한편, 교수님은 시장에서 아주머니하고 흥정하는데 '도사'이시구나라는 생각이 얼핏 듭니다. 이번 가을 문화답사를 위해 사전 답사 갔을 때 녹동 어시장 아주머니하고 잘 이야기해서, 결국 우리팀에게 '근사한 점심'을 제공하셨던 일이 떠오르고, 그것이 다 베트남에서부터 훈련해오신 내공이 있어서였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 글로 자주 뵙기를!
와, 멋진 수필 문학작품을 쓰셨네요!!! 축하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