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38
금오 채규판 시인
금오(金烏) 채규판(蔡奎判) 시인을 처음 마난 것은 내가 한국예총에서 총무부장으로 봉직할 당시 그가 전북 이리지부장에 재임하면서 ‘예총 전국대표자대회(아마도 수안보 파크호텔로 기억됨)’에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었으나 오랫동안 특별한 교감은 없이 지내던 어느 날 김해성 시인이 주재하는 『한국시』문학상 시상식에서 조우(遭遇)하게 되었다.
나는 문협 시분과회장으로서 축사의 부탁을 받고 참석했는데 채규판 시인과 오랜만에 그동안 적조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면서 그가 원광대학교를 정년퇴임하고 문학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그날은 내방한 축하객들이 붐벼서 그냥 헤어지고 다음 날을 기약하였다.
그후 『서울문학』최실장의 연락을 받고 행사장에 갔더니 채규판 시인이 착석해 있었다. 서울의 문학행사 초청을 받고 전북 익산시에서의 나들이는 상당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리라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참석해 축사를 하는 연유를 물었다. 다름아닌 지역문학회 제자 한 사람이 오늘 신인상을 수상해서 등단을 축하하기 위해서 상경했다는 설명이었다.
1940년 전북 옥구 출생. 원광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졸업.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속에 서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신춘시’동인으로 주요 작품은「이미지 연습」「목상(木像)」「산폴 시행(詩行)」등이 있다. 그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감각과 적확한 비유를 나타내는 상상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어문각 편『한국문예사전』에서
이와 같이 채규판 시인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서 추출하는 이미지가 인간의 문제에까지 탐색되는 주제를 선호하는 시인답게 ‘<시는 자기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 이 말을 묻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다 보니까 간혹 관념에 젖을 수 있는 위험도 없지 않다’라고 그의 시선집 『그리움은 산꽃처럼』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채규판 시인은 훤칠한 키에 동안의 인자한 풍모에도 잔잔한 성품이 많은 문인들에게 흡인력을 풍기고 있다. 그는 내가 원불교문인회가 주관하는 시창작연수(원불교 흑석교당에서 주 1회)에서 상임 지도시인을 맡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지속적인 지도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가 원광대학교 재임시에 ‘원광문학회’와 ‘원불교문학회’ 등에서 문학을 지도하면서 나의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원광대학교 인문대 교수로서 문학강의에 매진하면서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문협 군산지부장과 이리지부장 그리고 예총 이리지부장을 역임하고 첫 시집『바람 속에 서서』(1967. 8. 인간사)를 비롯해서『풀길 산책』『환각유희』『아침의 강』『허망의 노래』『만경강』『소금장수의 눈』등 13권의 시집과 시선집 『그리움은 산꽃처럼』(2009. 5. 서울문학)과 『채규판 시선집 Ⅰ.Ⅱ.Ⅲ』3권, 시조집『구름이 걷히는 날은』(1992. 3. 신아출판사)를 비롯해서 『어머니의 눈』(2007. 3. 맘) 등 5권의 역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수필집『그리움이란 옷을 벗으십시오』(1983. 9. 시문학사) 등 4권과 장시『잠자는 병사의 기도』(1992. 4. 신우기획)를 상재하여 우리 문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또한 그는 하교에서 연구서 논저를 발간하였는데『한국현대비교시인론』(1982. 6. 탐구당)『창작 기술론 및 시론』(2001. 2. 대영사) 과『채규판 문학전집』6권 등 많은 저서를 발간하였다.
더구나 이『한국현대비교시인론』은 학술적으로 한국문단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으로 김소월과 감영랑과 신석정의 시, 박두진과 서정주의 시세계, 김춘수와 문덕수와 송욱의 실헙정신 등 시인들과 작품세계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해서 문학적 유산으로 포용하여 현대시 발전에 절대 공로로 공감을 형성하였다.
1982년 7월에는 한국현대시인협회에서 한국시단의 큰 수확을 거둔 역작으로 평가되어 그 내용이 인정됨으로써 이 평론집 출판에 따른 공시적인 토론회를 개최할 만큼 비중을 차지한 역저로 평가되는 등 우리 문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쌓았으며 시화전을 이리, 부안, 군산 등에서 4회나 개최하여 우리 문인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갈채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문학적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서 전라북도 문화상, 한국시문학상, 예총이리지부 예술대상, 백양촌문학상, 한국평론가문학상, 표현문학상, 상화문학상, 마한문학상, 서포문학상 그리고 대한불교 문학인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산에 둘러 / 구름 / 흔들다 / 깨면, 우루루 / 몰리는 적요 // 산과(山果) / 차분히 익는 / 녘에 / 빈 손 / 제 혼자 / 시린데, 여울져 / 흩인 / 그림자, 길다랗게 짜 늘인 / 막 / 숨 쉬는 / 꽃잎 // 여치도 / 물풀에 섞여 / 겨울을 우는 / 아아, 넘치는 / 생각.
채규판 시인에게서는 위 작품「그리움은 산꽃처럼 . 2」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 행마다 호흡이 짧지만 강렬한 어조(語調)가 곁들여지는 감응(感應)을 느기게 한다. 그가 항상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마지막 결어(結語)에서는 우리들의 관습적인 표현, 종결어미 그러니까 ‘서술투의 끝맺음에 대한 변화(시저선집『어머니의 눈』’책머리에‘ 중에서)’라는 지론을 존중하고 있다.
그는 시조에서도 ‘마음이 크는 것을 / 차마 말릴 수 없이 // 가만히 문을 밀치며 / 뜰 밖을 내다본다. // 기적이 왔다 갔는가 / 소리들이 까려 있다. // 무구(無垢)한 생각들이 / 나중에도 자지러질 때 // 저기 달빛처럼 / 되살아 눈에 찰까. // 까르르 웃어 제치던 / 그 웃음이 높이 날까 / 산책을 서둘다가 / 확트였다 개인 꿈 // 오월이 다가서듯 / 철쭉이 되어나듯 // 매화(梅花)의 더미를 헤치며 / 깊숙이서 사위는 한(限).’이라는 시조 「사념(思念)의 긴 창가에서」전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종결어미가 서술투의 ‘였다’는 등의 ‘다’로 끝나지 않고 무엇인가 긴 여운을 남겨 놓고 있어서 독자들의 사유(思惟)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어젠가 그와 나는 제주에서 또 만났다. 그곳 현용식 시인이 시집 『남자가 인신을 한다면』을 월간문학에서 출간(내가 해설을 썼음)하고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시집 해설과 축사를 부탁해서 제주시 어느 부둣가 선착장에 정박한 배에 도착했더니 그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제주 이금월 시인(채규판 시인의 심사로 등단)의 초청을 받았다고 했다.
이곳 제주에서 까지 함께 자리하여 축사를 하게 된 것은 보통의 인연이 아니라는 말로 제주의 야경을 감상하면서 함께 일박을 했다. 다음 날 그들의 안내로 제주시내를 돌아보고 일주도로를 통해서 서귀포까지 돌아보는 여행과 제주의 음식을 즐기고 제주공항에서 각자 헤어진 일이 있다.
그후에도 우리는『한국시』와『서울문학인』시상식에서 만나서 지금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문학적 근황을 교감하는 친근을 유지하고 있다. 부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