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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Quilter 1877 - 1953
Roger Quilter was known primarily as a gentle and gentlemanly composer of elegant songs. What is less well-known, however, is that he also wrote some lovely orchestral music and memorable piano pieces, that are distinctly impressionistic.
로저킬터 기품격있는 노래의 작곡가이자 신사적인 사람으로는 첫째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상의 의한 사랑의 오케스트라와 기억될만한 피아노 소곡집을 쓴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Life>
He was born at his parents’ home in Hove, Sussex, UK, on November 1st 1877.
Roger was the third of five sons, in a large family. His mother encouraged Roger’s artistic inclinations, and he was devoted to her. He attended a preparatory school in Farnborough and in January 1892, he began at Eton College, where, though the emphasis was upon sporting achievement, he was allowed to pursue his musical studies. However, Eton’s atmosphere was not congenial for someone of his sensitivity, and in later years, he was reported to have said that he hated his time there.
그는 1877년 11월 1일 영국. 서섹스주 HOVE에서 태어났다.
로거는 다섯 형제 중 셋째로 대가족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로거의 예술적 감각을 살려주었고 그는 어머니께 헌신적이었다. 그는 1892년 1월 Farnborough에있는 예비학교에 갔다. 그는 이튼 칼리지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곳은 학업 성적에 중점적인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음악적 학문을 수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튼의 분위기는 로거처럼 민감한 사람에게 맞지 않았고 그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싫었다고 말하고 있다.
Around 1896 a family friend suggested that he continue his musical studies in Frankfurt. To go abroad to study was still a common route at this time, since the English music academies were not especially well-established. So Quilter enrolled at the Hoch Conservatory at Frankfurt-am-Main; he took composition lessons with Ivan Knorr, as did Balfour Gardiner, Norman O’Neill, Cyril Scott, and the redoubtable Percy Grainger, though they were not all there at the same time. They had in common a dislike of Beethoven, and they became known as the ‘Frankfurt Group’.
1896년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Frankfurt에서 음악학문을 계속할 것을 권했다. 공부하기 위하여 해외로 나가는 것은 그 시대에 공통적인 길이었다. 특히 영국음악 학교는 잘 정착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퀄터는 Frankfurt에 있는 Hoch 음악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Ivan Knorr에게 작곡 수업을 들었다.
같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Balfour Gardiner, Norman O’Neill, Cyril Scott, Percy Grainger와 함께 공부했다. 그들은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졌고 그들은 Frankfurt Group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On his return, he continued to write songs, having begun while at Frankfurt, and in March 1901, his Songs of the Sea were performed by Denham Price at the Crystal Palace. Gervase Elwes, one of the leading tenors of the day, began to sing Quilter’s songs, and the song-cycle To Julia - which was dedicated to Elwes - put Quilter firmly on the map as a song composer.
그는 돌아와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했던 작곡을 계속 하였고 1901년 3월에 그의 “Songs of the Sea"는 Denham Price에 의해 Crysta 전당에서 연주되었다. 테너들을 이끌었던 Gervase Elwes는 Quilter의 음악을 노래하기 시작했고 가곡 “쥴리아에게” - Elwes에게 헌신적이었던 - 는 퀄터를 가곡 작곡가로 더욱 단단하게 하게 했다.
Over the succeeding years, Quilter continued to write songs for an appreciative audience. He also continued in poor health (his letters are peppered with references to how ill he was feeling), and consequently did not serve in the First World War. Instead, he organised concerts in various hospitals, and a series of chamber concerts that he was involved with continued after the war.
여러해 동안 퀄터는 눈높은 관객들을 위해 작곡을 계속했다. 또한 그는 계속적인 나쁜 건강상태로 그 결과 1차세계대전 동안 작곡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복잡하게 계속되는 전쟁 이후에 여러 병원에서의 오르간 연주회와 침실콘서트 시리즈를 했다.
Gervase Elwes was killed in an accident at Boston railway station, Massachusetts, in 1921. The Musicians’ Benevolent Fund, in the UK, was set up in his memory, and Quilter was a founder member, serving faithfully and attending the committee meetings regularly until his death. In 1923, he met a young baritone, Mark Raphael, whom he encouraged and worked with closely. He also had a private secretary, Leslie Woodgate, during the 1920s, and both Raphael and Woodgate remained lifelong and loyal friends.
Gervase Elwes는 1921년 매사추세츠주에있는 보스턴역에서 사고로 죽었다. 영국에서 Elwes를 기억하기 위해“The Musicians’ Benevolent Fund”를 설립하는 멤버로 그가 죽기 전까지 후견인으로 열심히 일했다. 1923년 그는 젊은 바리톤 Mark Raphael을 만났고 그는 용기를 주고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또한 1920년 개인적인 비서 Leslie Woodgate를 만났고 Raphael과 Woodgate는 그의 평생에 좋은 친구로 남았다.
In 1911, the children’s play Where the Rainbow Ends was premièred at the Savoy Theatre, London; Quilter wrote the incidental music for it. Produced by Italia Conti, who subsequently founded the Italia Conti School (now the Italia Conti Academy of Theatre Arts), it was immensely successful, and for many years Quilter conducted the opening matinée of the season. The parties for the cast of children, that he held at his home in Montagu Street, London, were also well-known.
1911년 런던 Savoy극장에서 Italia Conti의 연출로 퀼터가 작곡한 부수음악 <Where the Rainbow Ends>가 초연되었다. 연출가 Italia Conti에 의해 Italia Conti학교(현재 예술극장의 Italia Conti Academy)가 그후에 설립되었다. 그 곡은 대성공을 거둬 , 매년 퀼터는 크리스마스시즌에 opening공연에 지휘를 맡았다. 또한 잘 알려진 아이들이 출연하는 파티는 Montagu Street에 있는 그의 집에서 행하여졌다.
Most of his best work was produced before 1923, though there are some superb songs produced after this time. He collaborated with Rodney Bennett on a number of projects, including the light opera, Julia, which was premièred at 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in December 1936. For many years, his songs were broadcast frequently on radio.
그의 최고의 작품은 대부분은 1923년 전에 만들어 졌지만 몇몇 최고의 노래는 그 후에도 만들어졌다.
그는 1936년 12월 Covent Garden에 있는 Royal Opera House에서 초연한 경가극 “Julia"를 포함해 Rodney Bennett과 공동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했다. 그리고 수년동안 그의 음악은 라디오를 통해서 지금도 종종 방송에 나오기도 한다.
He was a nervous, anxious man, cultured, well-read and well-travelled, but not happy with others of his social class unless they shared his love of the arts. His favourite nephew, Arnold Vivian, was killed in tragic circumstance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 shock was immense, and was possibly (given Quilter’s nature, the pressures on him as a result of his homosexuality, and other events) the final straw responsible for the triggering of his severe mental illness. In his last years, he was undoubtedly extremely difficult to live with, and there are allegations of blackmail; the events of these years are however open to different interpretations.
그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남자이고, 격식이 갖추어져 잘 읽고 잘 여행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하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이외에는 다른 사회적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
그의 가장 좋아하는 조카 Arnold Vivian은 이차세계대전의 비극적인 사회 환경 때문에 죽었다. 그에 대한 충격은 막대했고 아마(그의 세계에 기여했던 동성애와 다른 사건들) 그의 한계를 넘는 심한 마음의 병이 유발하는 것은 초래했다. 마지막 해에 그는 의심 할 필요도없이 극도로 삶이 어려워져있었다 삶에 그리고 공갈에 대한혐의가 있었다. 그러나 사건들은 요즘에 다른 해석들을 낳고 있다.
In 1952, his 75th birthday was marked by the BBC with a celebration concert, conducted by Leslie Woodgate. He died within the year, at his home in St John’s Wood, London, on the 21st September 1953, and was buried in the family vault at Bawdsey church, Suffolk. A memorial concert in London was very well attended by family and fellow musicians, and by ordinary people who loved his music.
1952년 75세가 되는 생일에 BBC방송의 Leslie Woodgate 지휘한 축하 연주회로 주목받았다.
그는 그다음해인 1953년 9월 21일, 런던의 St John’s Wood있는 그의 집에서 운명하였고, Suffolk의 Bawdsey 교회의 가족무덤에 묻혔다.
런던에서 열린 기념연주회에는 가족과 동료음악인들 그리고 그의 음악을 사랑한 일반사람들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MUSIC>
QUILTER 의 COME AWAY DEATH
1. 시 저자 SHAKESPEARE 에 대하여
셰익스피어는 세계 연극사상 최대의 극작가이며 영국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이다. 18세기 이래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발전했고, 모든 비평원리의 선례로 이용되며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 극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되어 있다.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인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의 중부지방에 있는 워릭셔의 스트랫퍼드 온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반농반상으로 한때는 공직에도 재직했으며 어머니는 농가의 딸로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1568년 읍장으로 선출되어 유복한 시민의 아들로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며 마을의 문법학교에서 공부했으나 13세 때 집안이 몰락하여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 때 8살 연상인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으나 그들은 모두 요절, 18세기 이후 그들의 자손은 단절된 것으로 추측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년시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이 없고 연극과의 관계도 분명치 않으며 런던으로 나온 이유나 연대도 자세하지 않다. 런던 시절 배우로서의 생활은 1580년대 말로 추정된다. 런던의 극장 고용원이 되어 어깨너머로 연극이나 문학에 대한 소질을 익혔다. 레스터 백작 밑에서 일을 하다가 엘리자베스 1세 사망 이후 배우단에 가담하여 무대에도 출연하는 한편, 상연용 각본을 가필하는 극단 전속작가로 근무하다가 차차 독립하여 희곡작가가 되었다. 1590년부터 약 20년 동안 극작에 전념하여 모두 37편을 발표하는 등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1608년부터 창작력이 쇠퇴하여 1611년에 ‘눈보라’를 끝으로 붓을 꺾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평화스런 여생을 보내다가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심리의 통찰에는 깊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과정에 있던 근대영어의 잠재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의 최고를 창조했다.
그의 희곡은 총 36편이며 시집은 3권을 남겨 극 시인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국이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다 해도 셰익스피어를 지킨다고 자랑할 만큼 그는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2. COME AWAY DEATH
간단한 해설
‘Come away death’ 는 퀼터가 셰익스피어의 3개의 시에 곡을 붙힌 3개의 가곡(3 Shakespears Songs - 1. Come away, Death 2. O Mistress mine 3. Blow Blow, thou Winter wind ) 중 첫 번째 곡이다. 1905년에 작곡 되었으며 죽음과 고독 속에서 번뇌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낸 이 시의 가사에 매우 감상적인 선율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극찬을 받고 있으며 가장 많이 연주되는 퀼터의 가곡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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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lter의 작품>
Songs
O Mistress Mine, from the first set of Shakespeare Songs, Op. 6 No. 2
Now Sleeps the Crimson Petal, the second of Three Songs, Op. 3
I Arise from Dreams of Thee, Op. 29
Go, Lovely Rose, the third of Five English Love Lyrics Op. 24
Drooping Wings
Chamber music
Three Poor Mariners, for piano trio
Piano music
At A Country Fair Op. 16 No. 3 (the third of Three Pieces for Piano)
The third Study, from Three Studies for piano, Op. 4
Orchestral, theatre and incidental music
A Children's Overture, Op. 17
Suite from the Incidental Music to Where the Rainbow Ends
Love Calls through the Summer Night, from the light opera Love at the Inn which is included in its duet version on both the Naxos CDs mentioned below.
http://www.minuet.demon.co.uk/로저퀼터의 영국홈페이지 발췌, 블로그
곡 해석
Come away, death 죽음이여, 내게로 오라
Come away, come away, death
And in sad cyprus let me be laid
Fly away, fly away, breath
I am slain by a fair cruel maid
My shroud of white stuck all with yew
O prepare it
My part of death no one so true
Did share it
오라 오라 죽음이여(죽음이여 내게로 오라)
슬픈 실삼나무 안에 눕게 해주오.
날아가 버리오 날아가 버리오 숨이여.
나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여인에 의해 죽었소.
나의 흰 수의가 모두 주목으로 덮여 있소.
오~~ 그것을 준비하오.
아무 누구도 진실한 나의 죽음을 나누지 않았소.
Not a flower, not a flower, sweet
On my black coffin let there be strown
Not a friend, not a friend, greet
My poor corpse where my bones shall be thrown
A thousand thousand sighs to save
Lay me, O where
Sad true lover never find my grave
To weep there
그 달콤한 꽃을
나의 검은 관 위에 뿌리지 마오.
단 한 명의 친구도
내 불쌍한 나의 뼈들이 내팽개쳐진 송장을 달갑게 반겨줄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소
천 번의 한숨은 거두오.
오 나를 슬프고 진정한 여인이 절대로 나의 무덤을
찾아서 울 수 없는 곳에 묻어주오.
첫댓글 래주가 노래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오늘따라 새삼스럽게 음악이 더 좋게 들리네여..음악성은 솔직히 후천적인 요소보다 타고나는게 훨씬 강하다고 생각하는데..래주는 그런점에서 음악성면에서 굉장한 강점을 갖고 있다고 갠적으로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어딕션이라는 압박때문인지 몇몇 발음처리가 사알짝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맞는 딕션일지는 모르겠지만...약간 딕션이 뒤쪽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조금더 이탤리적인 딕션을 한다면 매력적인 소리와 음악성이 더 드러날 것 같다는 갠적인 생각을 해봅니다.(전적인 제생각;;)음악이 굉장히 애절하게 들리네여..내용은 모르겠지만..^^;;암튼..브라보 래주
오~ 좋은 노래 또 등장이네요...가사를 안보면서 들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상당히 간절하게 들리네요. 정말 음악성 대단하십니다~^^. 모음과 모음 사이의 연결과 자음이 좀 더 잘 들리면 좋겠어요~ 잘들었습니다.
래주오빠 목소리 넘 좋아요^^
oh!! 김대가!! 독어처럼 자음을 많이 하래..ㅋㅋ 나도 잘 못하지만.. 같이 해보자구.
큼직큼직한 글자가 눈 앞에 쫙!!!!!ㅋㅋㅋㅋ퀼터의 노래 이거 씨리즈자나요~~~수업시간에 함께들을 거 생각하니 기대가 완전!!!!!!!!되요........ㅎㅎㅎㅎ
래주오빠~~ 잘 했으면서 엄살은... *^^* 오빠... 역쉬 내가 첫눈에 반했던 오빠의 그 음악성은 여전하네요.. 오빠가 수업시간에 노래 부를 때 또 반하면 어쩌지? ㅋㅋㅋ 근데... 오빠.. *^^* 딕션을 조금만 더 독일어 처럼 했으면 좋겠어요... 음악성은 너무 좋은데.. 발음이 잘 안들리는 부분이 있어서.. 엄청 아쉬워요... 그래두 넘넘 좋아요... 넘 애절한 노래 넘 듣기 좋아요 *^^* 브라보~~` *^^*
거칠게거칠게 쥐어짜듯쥐어짜듯 숨을몰았다가뱉어내는
노래두 잘하시고 노래 너무좋아요~ㅠㅠ 감동감동~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의 음악성에 또한번 감탄을~~
저 많은 자료들>_<;오빠 진짜 노래 너무 잘하세요..슬픈 느낌이 그대로 느껴져요ㅜ_ㅜ정말 수고많으셨어요^^수업시간 기대되요^^
우와 음악최고! 수업시간에 들을 라이브 정말 기대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이 가사처럼 생각을 하기엔 정말 힘들지 않나 생각되네요. 이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 넘어 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멜로디를 들으면 죽음의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듯 합니다.
이 가사는 정말이지 가슴을....저리게 하는 가사인거 같아요... 자음이 조금 아쉬워용..^^
제컴이 완전 맛이 간듯하네요.....글씨가...너무커서....깜짝 놀랐네요....글구.....이노래 내가...진짜 좋아하는 노랜데....역시...멋지게 불렀네......1프로만...거칠게....^^
아름답다 우리 래주~! 양미간을 쥐어 짜내어 흐느끼는 래주의 모습이 눈에 서~ 언 하다. 앞의 말들 처럼 발음만 조끔 신경 쓴다면,,ㅎ~쪼아~!
수업시간 마치고 연습하는거 들으면서 호소력있고 음악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 아름답네 Diction은 위 선생님들 말씀 들으시고 조사한거 맘에듬 열심히해서 너무 흐믓^^ 로저가 이사람 이름이고 lovely orchestra는 사랑스런 오케스트라로, impressionistic은 인상주의적인으로 , chamber cocert는 그냥 챔버 컨서트로 고치세요 너무 알아보기 쉽게 올려 땡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인데 너무 잘하신거 같아요^^ 저두 한번 공부해 봐야 겠어요^^
오빠,,이노래 정말 잘 어울려요,,정말 노래가 나를 빨아들이는데요? 너무 호소력있어요,,지금 노래들음서 꼭 영화보는거 같이,,가슴이 울려지네요,,,자음이 정말 잘들리는데 가끔 모음이 조금 입안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해요.. 그것만 조금 앞으로 나오면 정말 완벽입니다..그리고 세상에 조사는 어찌 저러케 사진까지 해서 잘하셨어요,,나같은 컴맹은 사진같은것도 몬올려,,ㅠㅠ
반주와 조화로운 음색이 듣는이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굉장히 호소력있고 따뜻하고 애절한 기분이 듭니다. 중간중간 너무 조심스러워 보이는 부분이 조금만 자연스러우면 좋겠습니다^^.. 라인의 연결과 레가토가 부드러워 곡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한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