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33장 밤 - 비할 바 없이 뛰어난 가수
유배당한 죄수가 난롯가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듯, 우리 모두는 겨우내 얼어붙은 바람과 쌓인 눈 때문에 다가갈 수 없는 독수리 둥지를 그리워했다.
스승은 어느 봄날 밤을 택해 우리를 독수리 둥지로 인도했다. 빛은 부드럽고 밝았으며, 공기는 따듯하면서도 향기로웠고,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잠에서 깨어 활발해지게 만드는 밤이었다.
독수리 둥지 안에서 스승이 베타르에게 끌려간 날처럼, 우리들의 걸상이 된 여덟 개의 평평한 돌이 반원형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독수리 둥지를 찾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각자는 언제나처럼 자리에 앉아 스승의 얘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스승은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보름달조차 우리를 환영하는 듯 동굴 밖에서 살며시 기웃거리며, 스승의 입술에 조바심 치며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계곡의 격류는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를 급강하하면서 격렬한 멜로디로 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침내 올빼미가 우우 우는 소리와 귀뚜라미의 노랫소리가 간간이 귓전에 들려왔다.
오랜 시간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 있다가, 스승은 고개를 들고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밤의 고요함 속에서 미르다드는 그대들에게 밤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밤의 합창에 귀를 기울이라. 밤은 진정 비할 바 없이 뛰어난 가수이니까.
가장 어두운 과거의 틈에서, 가장 밝은 미래의 왕궁에서, 하늘의 꼭대기에서, 대지의 심장에서 밤의 소리는 솟아올라 우주 끝까지 밀려간다. 그 밤의 소리는 그대들의 귓전에 강력한 물결을 일으켜 소용돌이치게 한다. 그 소리가 잘 들리도록 귀에서 무거운 짐을 깨끗이 없애 버리라.
소란스러운 낮이 무심히 없애 버린 것을 유유한 밤은 훌륭한 마법으로 복원한다. 달이나 별들은 눈부시게 환한 대낮에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가? 낮이 삼라만상의 온갖 다양함 속으로 침잠시킨 것들을 밤은 느긋하고 편안한 법열 속에서 한껏 노래한다. 풀잎의 꿈조차 밤의 합창에 감동한다.
별들에게 귀를 기울이라.
별들이 하늘을 돌아다니며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라.
유사(流砂)의 요람 속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거대한 아기에게,
가난한 자의 누더기를 걸친 왕에게,
질곡에 빠져 있는 번개에게,
배내옷에 싸인 신에게
불러 주는 그 자장가를 들으라.
대지에 귀를 기울이라.
대지는 일시에
산기(産氣)를 느끼고, 젖을 빨고, 길러주고, 결혼하고,
매장한다.
숲 속에선 야수들이 배회하면서
울부짖고 으르렁거리고 서로 물어뜯는다.
땅을 기어다니는 것들은 자기 길을 따라가고
온갖 벌레는 신비의 노래를 읊조리며
새들은 꿈 속에서 그것을 되풀이한다
초원의 이야기나 시냇물의 노래를.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숨쉬는 모든 것은
죽음의 잔으로 생을 퍼마신다.
봉우리와 계곡에서
사막과 바다에서
대기 속에서, 그리고 땅 속에서
시간의 베일에 가려진 신을
불러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상의 어미들이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는지 들으라.
세상의 아비들이
어떻게 고뇌하고 신음하는지 들으라.
그들의 아들과 딸이
무력으로 치닫고, 무력을 믿고 까불며
신을 매도하고 운명을 저주하는 소리를 들으라.
사랑을 가장하고 증오를 호흡하며,
질투를 삼키고 공포를 발산하며,
웃음의 씨를 뿌리고 눈물을 거두며,
수위(水位)를 높여 가는 홍수의 분노를
진홍빛 피로 자극하는 소리를 들으라.
그들의 굶주린 배가 홀쭉해지는 소리와
눈물로 부어오른 눈꺼풀의 껌벅이는 소리,
쭈굴쭈글해진 손가락으로
죽어버린 희망을 더듬는 소리를 들으라.
그들의 심장은 부풀어오르다 터져
차곡차곡 겹겹이 산처럼 쌓인다.
악귀 같은 병기가 철커덕 울어대는 소리와
오만한 마을이 무너지는 소리,
강대한 요새가
스스로 조종(弔鐘)을 울리는 소리를 들으라.
그리하여 옛 기념비는
진흙과 피의 늪에 흠뻑 젖는다.
외로운 자의 기도가
음탕한 자의 교성(嬌聲)과 함께 울리는 소리와
어린아이의 순수한 조잘거림이
사악한 잡담과 함께 광시곡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
소녀의 뺨을 물들이는 미소가
매춘부의 간교함과 함께 구르는 소리,
용사의 환희가
악당의 음모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라.
모든 종족과 씨족의 집과 거처에서
‘밤’은 인간의 전투를 찬양하며 나팔을 분다.
그러나 마법사 ‘밤’은
자장가, 도전장, 전투가,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을 교묘히 섞어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한 노래로 완성한다.
더없이 장엄하여 끝없이 퍼져 나가는 노래,
곡조는 더없이 깊으며 후렴은 너무나 달콤하다.
천사들의 합창과 교향곡도 여기에 비하면
떠들썩한 소음에 불과할 뿐.
이것이야말로 극복자의 승리의 노래.
밤의 무릎에서 졸고 있는 산들,
사구(砂丘)와 함께 추억에 잠기는 사막들,
꿈 속에 떠도는 바다, 방황하는 별들,
죽은 자의 도시에 머무는 이들.
‘성스러운 삼위일체’ 와 ‘전능의 의지’ 가
극복자를 찬양하며 갈채를 보낸다.
듣고서 이해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홀로 밤과 함께 있으면서,
밤처럼 고요함과 깊이와 광활함을 느끼는 자는 행복하다.
어둠 속에서 저지른 악행 때문에
어둠 속에서 얼굴을 얻어맞지 않는 자들,
동포들의 눈물을 흘리게 한 탓으로
눈꺼풀이 그 눈물로 고통스럽지 않은 자들,
나쁜 짓과 탐욕으로 손이 간지럽지 않은 자들,
욕정이 끓는 소리로 귀가 공격당하지 않는 자들,
시간의 구석구석에서 끝없이 몰려드는
온갖 근심이 마음에 우글거리지 않는 자들,
공포가 머릿속에 파고들지 못한 자들,
밤에게 대담히 ‘낮을 보여 다오’ 말할 수 있고
낮에게도 ‘밤을 보여 다오’ 말할 수 있는 자들.
그렇다, 그들은 정말로 행복하다.
홀로 밤과 함께 있으면서,
밤처럼 더없이 조화롭고, 고요하며, 무한을 느끼는 자들.
그들에게만 밤은 극복자의 노래를 부른다.
낮이 중상모략을 하더라도 고개는 꼿꼿이 들고 눈은 신념으로 빛내며 응수하고 싶다면, 서둘러 밤의 우정을 얻으라.
밤의 벗이 되라. 마음을 자기 생명의 피로 완전히 씻어 내려 밤의 마음에 바치라. 밤의 가슴으로 파고들려는 그대의 솔직한 갈망을 믿으라. 그리고 ‘성스러운 이해’를 통해 자유로워지려는 야망을 빼고는 모든 야망을 밤의 발 밑에 제물로 바치라. 그렇게 할 때 낮이 갖고 있는 온갖 창(槍) 은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밤은 사람들 앞에서 그대가 참된 극복자임을 증명할 것이다.
열기 띤 낮이 그대를 여기저기 던진다 해도,
별도 없는 밤이 그대를 어둠에 휘감는다 해도,
길을 알려줄 이정표도 발자취도 없이
세상의 십자로에 던져진다 해도,
그대는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낮과 밤은 사람들이나 사물들처럼
늦든 빠르든 그대를 찾아와,
명령을 내려 달라고
몸을 굽히면서 빌리라는
그대의 확신에는 의심의 그림자도 없다.
그대는 ‘밤’ 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밤’ 의 신뢰를 얻은자는
다가올 낮도 쉽게 명령할 수 있다.
‘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라. ‘밤’의 마음 속에는 극복자의 마음이 고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눈물이 있다면, 오늘 밤 나는 반짝이는 모든 별과 티끌들에게 그 눈물을 바쳤을 것이다. 온갖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작은 냇물에게, 노래 부르는 귀뚜라미에게, 향기로운 영혼을 공중에 감돌게 하는 제비꽃에게, 질풍에게, 산과 계곡에게, 나무와 풀잎에게 ..... . 이 ‘밤’의 오묘한 평안과 아름다움 전부에 대해 인간의 배은망덕과 야만스런 무지에 대한 사죄로써 나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극악한 ‘돈’을 보고 모여든 인간들은 그 주인을 섬기느라 정신없이 바빠, 그 외의 소리나 의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주인이 하는 일은 끔찍하다. 인간 세상을 도살장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도살하는 자이자 도살당하는 자이다. 피에 취한 인간들은 더 많이 도살한 자가 도살당한자들에게 주어진 대지의 선물과 하늘의 은혜 모두를 받으리라 믿고서 끝없이 서로를 도살한다.
불행하도다, 쉽게 속는 자들이여! 일찍이 늑대가 다른 늑대를 물어뜯는다고 해서 양이 된 적이 있는가? 일찍이 뱀이 친구 뱀을 꿀꺽 삼킨다고 해서 비둘기가 된 적이 있는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자의 슬픔을 없애고 희열만을 지속시킨 적이 있는가? 귀가 다른 귀에 마개를 틀어 막는다고해서 삶의 음률을 더 잘 맞춘 적이 있는가? 눈이 다른 눈을 도려낸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곳에 더 민감해진 적이 있는가?
빵이든 포도주든, 빛이든 평화든 하늘이 내려주신 모든 것을 한 시간 만에 다 소비해 버린 인간이나 집단이 있는가? 대지는 스스로 키울 수 있을 만큼의 자식밖에는 낳지 않는다. 하늘은 자기 자식을 위해 양식을 훔치지도 않고 조르지도 않는다.
‘제 몫에 만족하지 못하다면 죽이라. 그리하여 죽은 자의 소유물을 차지하라.’ 이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살인지가 어떻게 죽은 자의 눈물과 피와 고뇌를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단 말인가? 죽은 자는 자신의 사랑과, 대지의 젖과 꿀, 하늘의 깊은 사랑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친 사람인데.
‘모든 나라는 자기를 위해’ 이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만약 지네의 수많은 발이 제각기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하거나, 다른 발이 가는 것을 막으려 하거나, 다른 발을 짓밟으려고 일을 꾸민다면 지네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지 않은가? 인류는 거대한 지네가 아니던가? 그 수많은 다리는 국가가 아니던가?
‘지배하는 것은 명예요. 지배 당하는 것은 치욕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당나귀에 올라탄 사람은 당나귀 꼬리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던가? 구속하는 자는 구속당하는 자에게 속박받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진정 당나귀는 마부를 인도하고 있다. 죄수는 간수를 구속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빠른 자이며, 정의는 강자에게 있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인생은 근력과 완력의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자나 불구자가 종종 건강한 자보다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달한다. 모기조차 검객을 쓰러뜨릴 수 있다.
‘악을 바로잡는 것은 악으로써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악 위에 겹친 또 다른 악은 결코 정의를 가져오지 못한다. 악을 내버려 두라. 그리하면 악은 자신이 한 일을 원래 자리로 스스로 되돌릴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신들이 떠받드는 온갖 신들의 철학에 쉽게 속는다. 인간들은 ‘돈’의 신과 그를 둘러싼 욕심 많은 신들을 경건히 떠받들고 있으며, 그 신들의 부당한 요구까지도 충실하게 들어 준다. 그러나 해방 -신까지도-을 노래하고 역설하는 ‘밤’을 인간은 신뢰하지 않으며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 결과 동행자들이여, 그대들은 뭇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나 사기꾼으로 낙인 찍힐 것이다.
인간의 배은망덕과 가시 달린 비웃음에 대해 분노하지 말라. 그들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해방과 머지 않아 그들을 뒤덮을 불꽃과 피의 홍수로부터의 해방을 깨우칠 수 있도록 격려하라. 끝없는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도살하는 짓을 멈춰야 할 때다.
태양과 달과 별들은 자신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긴를 영원한 옛날부터 기다리고 있다. 대지의 알파벳을 해독할 수 있기를, ‘공간’의 대로를 통과할 수 있기를, 뒤얽힌 시간의 실이 풀리기를, 우주의 향기로운 냄새를 들이마실 수 있기를, ‘고통’의 지하묘지가 철거되기를, ‘죽음’이 사는 곳을 구석구석 수색 할 수 있기를, ‘이해’의 빵을 맛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인간, 즉 베일을 드리운 신은 베일이 벗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약탈하는 짓을 멈추고, 마음을 합쳐 공동의 일에 힘써야 할 때다. 그 일은 뼈가 부서질 만큼 힘들지만, 승리의 맛은 달콤하다. 이 맛에 비하면 그 밖의 모든 것들은 하잘 것 없다.
그렇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리는 자는 극히 적을 것이다. 다른 자들은 또다른 부름 -또다른 새벽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