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복습에 임하며.
금강경은 1분 부좌이좌 (좌)로 시작해서 32분 응작여시관 (관)으로 끝난다.부좌이좌의‘ 앉는다는 의미’는 어떤 정신상태로 앉았느냐? 정념을 말한다.
정념부동이란 움직이지 않는 마음 챙김으로 정정(正定)이 되고 -正見으로 나아간다. 다른말로 “守義(자기 생각을 지킨다)” 라 한다.
덧붙이자면 “불소행찬(마명보살)”에서 말하기를 정념을 ‘성곽’이라 했다. 성곽이 있어야 성이 지켜지듯이 우리 마음의 성곽인 ‘정념’을 잘 지켜야 선정에 들 수 있고, 이 지혜는 그 성을 환하게 비춰주는 햇빛과 같다.
이렇게 마음챙김(정념부동)을 항상 잘 해야 안정이 되고 거짓되고 허망된 게 내 마음에 못 들어오도록 마음을 성곽처럼 잘 지켜내는 것이다.‘
벽관’ 수행의 의미가 거짓되고 허망된 게 내 마음에 못 들어오도록 벽을 보고 번뇌 망상을 여의는 것이리라.
1차 금강경에서 짚어본 내용이었다.
2차 금강경에서는 1차에서와 달리 뜻이 조금 더 깊어짐을 알아가면서
다시 정리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흡하지만 스님의 강의를 나름대로
다시 짚어보고자 조심스럽게 정리를 해 본다.
법회인유분 - 경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금강경에서 처음 시작이 “여시아문” 이다. 다른 경전에서도 첫 구절에 항상 이 여시아문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습니다.’ 로 시작됨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 시불, 어느때에, 부처님께서
재 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여 대비구중 1250인... 비구 1250인과
이렇게 경전의 조건을 충족함에 따라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우리에게 올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경전이 되기까지 ‘육사성취’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하기 때문에 다문제일의 아난의
여시-이와같이 (신성취)에서,
아문 –나들 들었습니다.(문성취),
일시–한 때의 (시성취) 부처님의 설법한 시간
불(佛)-부처님 (주성취) 설법한 사람 이 부처님,
재(在) -장소(기수급고독원) (처성취) ,
여대비구- 대중(중성취) 설법을 듣는 대중 (1250인 비구) 으로 법회인유분에서 육사성취를 만족함에 따라 경전의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의 주변이야기를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금강경은 대승경전이다.
경전의 분류를 보면 반야부, 법화부, 화엄부, 정토부, 열반부, 유마부로 6등분으로 나눈다. 이 중 큰 것은 반야, 법화, 화엄 으로 대승 3부라 하며, 여기에 정토부, 열반부를 포함하면 대승 5부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승 3부 안에 대승불교가 다 들어 있다.
양으로 보면 반야부가 제밀 많다. 660년 시작해서 663년 번역한 현장스님의 반야부만 해도 600권이다.
화엄경이 방대하다지만 3역본 다 합쳐도 200권이다.
반야부는 현장스님번역본과 구마라집역 등 등 합치면 800권이다. 그렇게 많다.
이렇게 많은 반야부 중에 1권인 금강경은 577권째가 된다.
그럼 이게 왜 중요한가?
많은 반야부가 있지만 다 통용되지 않고 금강반야바라밀경만 통용되었기 때문이며, 주석서 역시 그렇게 많다.
대승경전중에 대표적으로 공부하고 유통시켰기 때문에 대표경전이 되었으며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여러 번역본 중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구마라집(402년)본을 독송하고 신앙화 하고 있는 경전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의 이름으로 “경명”이라 한다.
이 경명은 종이와 글씨인데 제목만 읽어도 중요한 것이 여기 있다.
‘금강’은 순금의 비유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실천이고 완성이다.
순금은 아무런 잡철이 안들어간 순금으로 불변성, 광명성, 효용성이 있다.
이런 걸 따와서 반야를 비유했다. 여기서 반야지혜는 보통의 지혜가 아닌 깨달음의 지혜로 생사해탈한 지혜다.
바라밀은 완성인데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완성,
반야는 늘 오고갈 때나 실천하는 힘이 있다.
반야는 장애가 하나도 없다.
반야의 눈을 뜨고 보면(혜안) 모든 것이 다 없다.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에 집착하면 달을 볼 수 없듯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한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열쇠와 같다고도 한다. 열쇠는 ‘탁’ 열고 들어가야 한다.
반야가 3세 제불과 모든 부처님이 이 경에 나왔다.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하듯 이름을 통해 실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자기모습을 보는 거울이다, 열쇠다, 손가락인 것이다.
1,2차 금강경 시작에서 핵심적으로 이야기 해 주신 부분을 적었다.
다음 1분부터 복습합니다.
일화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