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종의 믿음
하나님과의 모든 문제는, 사람의 나태와 방종에서 비롯되며, 식어버린 하나님께 대한 열정과. 비전 없는 맹목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하나님의 지식에 근거한, 냉철한 비전이 있을, 때에 온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이를 때까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떨쳐버리고, 날마다 자신을 성결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결의 삶을 통해서만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명목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같은 믿음에 의해 실체적으로 의로워지는 과정이 바로 성화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당신의 택한 자녀들을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날까지 훈련 시키시고 가르치신다.
이러한 양육은 성도들의 믿음과 행위가 성숙하여져서 그리스도를 닮는 데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이, 한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고난과 핍박이 따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영들과 싸워 능히 이길 만한 힘을 키우기 위하여 늘 긴장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지속적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끊임없는 자기 개혁이 필요하다.
거룩한 연습은 금세와 내세에 유익을 가져다준다.
거룩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만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폭적인 순종과, 끈질긴 인내, 굳건한 믿음, 3가지가 요구된다.
1). 전폭적인 순종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지기를 바라시며, 그 가운데서 사람의 의지를 인정하시고 또 사용하려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우리 쪽의 의지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그를 섬겨야 한다.
예수는 믿어야, 하는 것이지만, 성령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이 순종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며, 그분의 인격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으로써, 그분의 사랑에 대한 사람의 사랑 표현이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쌓는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헛될 뿐이다.
그러나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미한 존재라 하더라도 순종으로 일관하는 신앙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인물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순종이지만, 무작정 믿습니다.를 외치는 맹신은 순종과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오히려 계시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은 반드시 순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열심히 들으면서도 말씀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신앙이 법이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이 법이 되고 기준이 되어서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일반양심, 곧 자기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도덕과 윤리가 아무리 완전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기가 선천적으로 술을 먹지 않는다. 하여 그것이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먹고 싶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셨기에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지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인 것처럼 어리석음도 일종의 영적상태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은 거만한 태도를 의미한다.
그의 정하신 뜻에 어그러지거나 도전하는 것이 악한 것이다.
성경을 보는 방법이나 우리의 태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상고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은 내 말을 취사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알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에는 다시 해석을 요구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그 말씀에 복종할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아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으로 복종하며 순종할 뿐이지 또 다른 해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말씀의 해석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순종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기, 때문에,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분의 지도자만을 모시고 있을 뿐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간에 우리는 그대로 순종할 뿐이다.
사람의 이성으로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대신 그것은 오직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통하여 가능하다.
(고전2:10-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의 영안을, 개안 시키셔서 당신의 실체를 계시해 주시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이 다시 확인되고 체험될 때 더 깊은 이해와 헌신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일방 통행식의 사랑을 싫어하신다.
그분 역시 짝사랑을 싫어하신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에게 가까이하신다.
순종이야 말로 성경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순종은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하신 것과 같이 완전한 순종을 원하신다.
가부도 묻지 않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지도자를 믿고 그의 지시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정예 부대의 군사가 될 자격이 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순종하는 태도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할 때 모든 것은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일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자기의 전부를 순종으로 내맡기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요, 자기의 육체와 영혼을 바친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 속에서 하나님 앞에 전적인 순종하는 자로 존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끈질긴 인내
자신의 삶 속에서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한 신앙, 그것이야말로 개인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현실에 만족하며 안주해 버리는 사람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현재에 대해 항상 고상한 불만족을 품고 사는 사람은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기의 불만족을 채우려 선한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없으면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체험을 자신의 신앙 성장의 계기로 삼는 성도는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를 갖는다.
그는 장차 나타날 영광과 상급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자기 앞에 가로막힌 어떤 장애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도한 후 어떠한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보고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 상황을 왜 우리가 상관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주께서 책임지셔야 할 주님의 차례이다.
우리의 형편을 주님께 상달시킨 후에는 그 형편이 점점 악화되어 간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손을 펴야 하실 차례이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차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기도한 다음, 악화되는 현실의 상황을 보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기하고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한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고 기도는 하면서, 고민은 여전히 계속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정식으로 거부하는 결과를, 빗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 사역에서, 뿐, 아니라 개인 사역에, 있어서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말며 또 유혹에도 너무 빨리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기도하여 응답받기 직전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좀 더 강해져야 한다.
결과에 대해 좀 더 태연해져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응답받는 마법의 주문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맹목적인 탄식의 기도는 기도가 아닌 단지 중언부언하는 신음소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욕을 채우는데, 쓰려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믿음이 없이 기도하기 때문이고 그 밖에도 장기간 기도케 함으로써 성도를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의로움을 앞세워 여러 가지 요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위치를 망각한 기도이다.
내 안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엉뚱한 것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자기 영혼에 치명적인 것을 구하면서도, 우리는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응답은 주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뜻을 고집한다고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실 것임을 믿고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언제나 무응답 하시는 분이 아니요, 오직 당신의 주권적 계획에 따라 적절한 때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도는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임의로 해결하지 않으려 하기에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로 작정하기에 기도하는 것이다.
(롬8:26-30) 하나님의 뜻은 무조건 선하시고 의로우시다는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하에 그분 뜻에 맡기는 기도를 하면, 응답이 반드시 온다.
그 응답이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니고, 좌절케 하는 것일지라도, 그 응답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케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한다.
기도는 엄밀히 말하면 응답받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한 행위이다.
기도는 애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내 마음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즉 기도란 자신의 성취 욕구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자신의 현주소를 바로 이해하는 참 신앙의 자리이다.
한마디로 기도란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치성드리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도는 나의 의지와 계획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것에 나의 육신과 의지를 복종시키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또 다른 방법의, 기도의 응답이다.
이 같은 점에서 기도는 모두 응답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때가 찰 때까지 잠잠히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며 기다려야 한다.
성도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험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때에 느끼는 절망감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대개가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소망을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을 교훈하기 원하시고 또한 우리 인격을 연단하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에 대해 원망할 이유가 없으며 기다리면 해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미래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히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그분의 뜻 가운데 순종하며 인도 받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일 중 가치 있는 일치고 굳은 결심과 피땀 어린 인내의 결실이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진보는 점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한꺼번에 얻으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싸워야 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 좌절하기보다는 소망과 인내를 가져 단련한 정금처럼 연단된 새 사람으로 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지며 성숙되는 곳이 바로 인내의 시련을, 필요로 하는 뜨거운 용광로 속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내의 고통은 정련, 중에 있는 금과 같다.
만약 그 과정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금과 같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로 순화되어 나오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인내는 하나님의 일꾼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질 중의 하나이다.
성도는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도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