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퇴적물
제주도는 신생대 제4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이지만 서귀포층, 해빈, 사구 등과 같은 퇴적암과 퇴적물이 소규모로 분포한다.
이러한 퇴적암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퇴적암이 지시하는 고환경 등을 소개하고 있다.
현미경 실습공간에서는 제주해변 모래의 특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제주도는 신생대 제4기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이지만 서귀포층, 해빈, 사구 등과 같은 퇴적암과 퇴적물이 소규모로 분포한다.
이러한 퇴적암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퇴적암이 지시하는 고환경 등을 소개하고 있다.
현미경 실습공간에서는 제주해변 모래의 특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제주도의 지형
제주도의 지형적인 특징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특히 제주도가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되던 신생대 제4기 동안의 해수면의 변화에 따른
육지와 제주도의 연결가능성, 즉 연육설에 대하여 그래픽을 통하여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의 지형적인 특징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특히 제주도가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되던 신생대 제4기 동안의 해수면의 변화에 따른
육지와 제주도의 연결가능성, 즉 연육설에 대하여 그래픽을 통하여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주의 지하수
제주도는 대부분의 음수, 생활용수, 공업용수 등을 지하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제주지하수의 생성조건, 부존형태, 제주의 물 사용역사, 제주용천의 분포와 종류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지하수분포형태 중 담수렌즈를 보여주는 모형은 계속 작동하는 모형으로 제주지하수의 부존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제주도는 대부분의 음수, 생활용수, 공업용수 등을 지하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제주지하수의 생성조건, 부존형태, 제주의 물 사용역사, 제주용천의 분포와 종류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지하수분포형태 중 담수렌즈를 보여주는 모형은 계속 작동하는 모형으로 제주지하수의 부존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제주돌박물관 - 돌갤러리
화산섬 제주도의 손길로 빚어낸 기묘한 형태의 돌들을 아름답게 배치해 놓은 자연석 갤러리다.
여러 번의 화산활동에 의해 태어난 갖은 형태의 용암구와 화산탄을 전시해 놓았으며, 거친 비바람이 빚어낸 두상석들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을 형상화하여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그리고 제주바다 파도에 씻겨 빚어진 자연석들에서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추상적인 자연미를 한껏 맛볼 수 있다.
또한 감상하는시선을 옮김에 따라 돌들이 짓는 표정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화산섬 제주도의 손길로 빚어낸 기묘한 형태의 돌들을 아름답게 배치해 놓은 자연석 갤러리다.
여러 번의 화산활동에 의해 태어난 갖은 형태의 용암구와 화산탄을 전시해 놓았으며, 거친 비바람이 빚어낸 두상석들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을 형상화하여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그리고 제주바다 파도에 씻겨 빚어진 자연석들에서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추상적인 자연미를 한껏 맛볼 수 있다.
또한 감상하는시선을 옮김에 따라 돌들이 짓는 표정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용암구(돌갤러리1)
돌갤러리 진입부 양옆으로 20여개의 크고작은 용암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용암구는 제주도의 곶자왈을 형성한 아아용암이 흐를 때 내부의 용암이 굳은 표면의 조각을 감싸면서 굴러 공모양의 큰 용암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용암구의 표면은 치밀하고 매끄러우나 내부는 거칠고 엉성한 경우가 많은데, 전시된 용암구들은 그 내,외부의 특징을 한눈에 잘 관찰할 수 있다.
돌갤러리 진입부 양옆으로 20여개의 크고작은 용암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용암구는 제주도의 곶자왈을 형성한 아아용암이 흐를 때 내부의 용암이 굳은 표면의 조각을 감싸면서 굴러 공모양의 큰 용암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용암구의 표면은 치밀하고 매끄러우나 내부는 거칠고 엉성한 경우가 많은데, 전시된 용암구들은 그 내,외부의 특징을 한눈에 잘 관찰할 수 있다.
영상실
영상실은 18.2m²(약 60평)로 벽면은 돌천으로 마감되어 있다.
이 돌천은 천연의 암석 현무암을 고열로 용융시켜 만든 돌실로 직조한 천으로 불과 열에 강하고 환경친화적이며
향균 탈취 효과와 다량의 원적외선 방사와 음이온 발생으로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준다.
영상내용
지금으로부터 160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초 한반도 남해안의 얕은 대륙붕에서 마그마분출로 시작된 제주화산도 생성초기의 수성화산활동단계에서부터,
약60만년 전 용암들이 육상에서 주로 분출하여 용암대지를 형성하는 육상화산활동단계를 거쳐,
섬의 중앙부에 한라산체가 형성되기까지의 제주화산도에서의 다양한 화산활동과 그 진화과정을 3D 그래픽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영상길이 : 3분18초, 화면크기: 7.6*4.25m)
영상실은 18.2m²(약 60평)로 벽면은 돌천으로 마감되어 있다.
이 돌천은 천연의 암석 현무암을 고열로 용융시켜 만든 돌실로 직조한 천으로 불과 열에 강하고 환경친화적이며
향균 탈취 효과와 다량의 원적외선 방사와 음이온 발생으로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준다.
영상내용
지금으로부터 160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초 한반도 남해안의 얕은 대륙붕에서 마그마분출로 시작된 제주화산도 생성초기의 수성화산활동단계에서부터,
약60만년 전 용암들이 육상에서 주로 분출하여 용암대지를 형성하는 육상화산활동단계를 거쳐,
섬의 중앙부에 한라산체가 형성되기까지의 제주화산도에서의 다양한 화산활동과 그 진화과정을 3D 그래픽영상으로 표현하였다.
(영상길이 : 3분18초, 화면크기: 7.6*4.25m)
제주의 두상석(돌갤러리2)
이곳에 전시된 사람머리 모양의 돌은 모두 제주자연석이다. 이돌들은 기증자가 서귀포시 법환동 바닷가에서 수집한 것과 수석상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형상화하는 실험적 작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으로 설치미술의 전시물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사람머리 모양의 돌은 모두 제주자연석이다. 이돌들은 기증자가 서귀포시 법환동 바닷가에서 수집한 것과 수석상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형상화하는 실험적 작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으로 설치미술의 전시물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구상의 제주돌 (돌갤러리3)
나란히 크기 순으로 놓여 있는 둥근 돌들은 흡사 사람이 정교하게 만든 것 같이 그 모양이 동그랗다.
이런 둥근 돌들은 제주의 바닷가나 계곡의 오목하게 패인 곳에 돌덩이가 갖혀 오랜 세월동안 뱅글뱅글 돌면서 마모되어 둥글게 된 것 들이다.
그 나란히 정렬된 크기와 모양새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나란히 크기 순으로 놓여 있는 둥근 돌들은 흡사 사람이 정교하게 만든 것 같이 그 모양이 동그랗다.
이런 둥근 돌들은 제주의 바닷가나 계곡의 오목하게 패인 곳에 돌덩이가 갖혀 오랜 세월동안 뱅글뱅글 돌면서 마모되어 둥글게 된 것 들이다.
그 나란히 정렬된 크기와 모양새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풍화혈 (돌갤러리4)
제주의 바닷가에서 흔히 돌에 오목오목하게 구멍이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암석이 풍화에 의해 형성된 구멍으로 풍화혈이라 한다.
풍화혈은 흔히 집단적으로 나타나며, 각각의 크기는 수cm에서 수m에 달한다.
작은 풍화혈들이 열을 이루어 반복적으로 생성된 것을 특히 “벌집풍화”라고도 한다. 이러한 돌을 제주에서도 "벌집석"이라고 부른다.
제주의 바닷가에서 흔히 돌에 오목오목하게 구멍이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암석이 풍화에 의해 형성된 구멍으로 풍화혈이라 한다.
풍화혈은 흔히 집단적으로 나타나며, 각각의 크기는 수cm에서 수m에 달한다.
작은 풍화혈들이 열을 이루어 반복적으로 생성된 것을 특히 “벌집풍화”라고도 한다. 이러한 돌을 제주에서도 "벌집석"이라고 부른다.
리본형 화산탄 (돌갤러리5)
제주의 오름(분석구)을 만드는 화산분출 시 분출된 마그마 방울들이 공중을 날아올라 굳어져 지표에 떨어진 것들 중
그 크기가 64mm이상이면서 각지지 않은 것들을 화산탄이라 한다.
이런 화산탄들은 그 모양에 따라 방추형, 원형, 빵껍질형, 리본형, 소똥형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뉜다.
이 전시공간에는 마치 엿가락처럼 길쭉길쭉한 리본형 화산탄들을 볼 수 있다.
제주의 오름(분석구)을 만드는 화산분출 시 분출된 마그마 방울들이 공중을 날아올라 굳어져 지표에 떨어진 것들 중
그 크기가 64mm이상이면서 각지지 않은 것들을 화산탄이라 한다.
이런 화산탄들은 그 모양에 따라 방추형, 원형, 빵껍질형, 리본형, 소똥형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뉜다.
이 전시공간에는 마치 엿가락처럼 길쭉길쭉한 리본형 화산탄들을 볼 수 있다.
용암석순과 용암수형 (돌갤러리6)
지표로 흘러나온 용암은 지표의 숲을 흘러가면서 나무를 둘러싸고 흘러 용암수형을 만들기도 하고,
지하의 공동에 방울방울 떨어져 마치 탑처럼 쌓여 용암석순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기이한 형태의 돌들을 감상할 수 있다.
지표로 흘러나온 용암은 지표의 숲을 흘러가면서 나무를 둘러싸고 흘러 용암수형을 만들기도 하고,
지하의 공동에 방울방울 떨어져 마치 탑처럼 쌓여 용암석순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기이한 형태의 돌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물개처럼 보이나요?
나무가 만든 제주의 돌들-용암몰드, 용암수형, 용암수형캐스트 (돌갤러리7)
용암류가 수목을 둘러싸면서 흐를 때, 수목은 타고 흔적으로 구멍이 남은 것을 용암몰드라고 한다.
만약 나무를 둘러쌓던 용암이 다시 그 수위가 낮아져 나무를 둘러쌓던 용암이 굳어 마치 굴뚝처럼 서있는 것을 용암수형이라 한다.
용암몰드와 용암수형 내부 안쪽 벽에는 수목의 표면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렇게 용암몰드나 용암수형이 만들어질 때 내부에 타다 남은 숯 혹은 나무잔재물의 틈으로, 그 후에 흘러온 용암이 흘러 들어가 생성된
독특한 형태의 용암주조물을 용암수형캐스트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이를 "부채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암류가 수목을 둘러싸면서 흐를 때, 수목은 타고 흔적으로 구멍이 남은 것을 용암몰드라고 한다.
만약 나무를 둘러쌓던 용암이 다시 그 수위가 낮아져 나무를 둘러쌓던 용암이 굳어 마치 굴뚝처럼 서있는 것을 용암수형이라 한다.
용암몰드와 용암수형 내부 안쪽 벽에는 수목의 표면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렇게 용암몰드나 용암수형이 만들어질 때 내부에 타다 남은 숯 혹은 나무잔재물의 틈으로, 그 후에 흘러온 용암이 흘러 들어가 생성된
독특한 형태의 용암주조물을 용암수형캐스트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이를 "부채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제주돌 (돌갤러리8)
대형 화산탄, 용암수형, 용암수형캐스트, 괴상의 자연석 등 기이한 형태의 제주돌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조각미술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대형 화산탄, 용암수형, 용암수형캐스트, 괴상의 자연석 등 기이한 형태의 제주돌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치 조각미술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화산탄 (돌갤러리9)
제주의 오름(분석구)을 만드는 화산분출 시 분출된 마그마 방울들이 공중을 날아올라 굳어져 지표에 떨어진 것들 중
그 크기가 64mm이상이면서 각지지 않은 것들을 화산탄이라 한다.
이런 화산탄들은 그 모양에 따라 방추형, 원형, 빵껍질형, 리본형, 소똥형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뉜다.
이 전시공간에서는 마치 동물을 연상시키는 화산탄들을 관람할 수 있다.
제주의 오름(분석구)을 만드는 화산분출 시 분출된 마그마 방울들이 공중을 날아올라 굳어져 지표에 떨어진 것들 중
그 크기가 64mm이상이면서 각지지 않은 것들을 화산탄이라 한다.
이런 화산탄들은 그 모양에 따라 방추형, 원형, 빵껍질형, 리본형, 소똥형 등의 여러가지 형태로 나뉜다.
이 전시공간에서는 마치 동물을 연상시키는 화산탄들을 관람할 수 있다.
용암종유와 용암석순 (돌갤러리10)
용암종유와 용암석순은 흔히 용암동굴내에서 생성된다.
용암동굴내를 흘러가는 용암은 그 온도가 용융점이상으로 매우 높아 기존의 용암동굴벽면을 녹일 수 있다.
동굴내를 흘러가는 용암에 의하여 녹은 용암방울이 천정에 매달려 굳은 것이 용암종유이다.
또한 용암종유의 아래쪽 바닥에는 용암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마치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서 용암석순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용암종유와 용암석순은 흔히 용암동굴내에서 생성된다.
용암동굴내를 흘러가는 용암은 그 온도가 용융점이상으로 매우 높아 기존의 용암동굴벽면을 녹일 수 있다.
동굴내를 흘러가는 용암에 의하여 녹은 용암방울이 천정에 매달려 굳은 것이 용암종유이다.
또한 용암종유의 아래쪽 바닥에는 용암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마치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서 용암석순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야외돌갤러리 (돌갤러리11)
제주의 곶자왈 숲과 어우러진 자연석 전시공간으로 두상석(사람머리모양의 돌), 대형 화산탄, 풍화혈 등 아름다운 제주의 돌들이 전시되었다.
제주의 곶자왈 숲과 어우러진 자연석 전시공간으로 두상석(사람머리모양의 돌), 대형 화산탄, 풍화혈 등 아름다운 제주의 돌들이 전시되었다.
사실 돌문화공원을 세번째로 방문하는 거라 2코스와 3코스의 관람은 하지 않고 바로 오백장군 갤러리로 이동하였다.
아래 2코스와 3코스는 예전 방문했던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2코스와 3코스는 예전 방문했던 사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빌레못동굴 (재현)
빌레못동굴은 굴 근처에 ‘빌레못'이라는 연못이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굴과 여러 개의 가지굴로 이루어진 용암동굴이며 전체길이는 11,749m이다.
1973년 굴 입구에서 약 900m 들어간 지점에서 갈색곰, 붉은 사슴, 노루 등의 뼈화석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갈색곰의 턱뼈와 다리뼈화석은 중국 주구점의 중기 홍적세층에서 출토된 것과 같고
붉은 사슴, 노루 등은 유럽의 후기 홍적세층에서 번성하였던 동물이다.
이처럼 북반구에서 서식하던 대륙성동물 뼈가 제주도에서 발견된 것은 제주도가 육지와 이어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자료이다.
(구석기시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2호,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동굴은 굴 근처에 ‘빌레못'이라는 연못이 있어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굴과 여러 개의 가지굴로 이루어진 용암동굴이며 전체길이는 11,749m이다.
1973년 굴 입구에서 약 900m 들어간 지점에서 갈색곰, 붉은 사슴, 노루 등의 뼈화석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갈색곰의 턱뼈와 다리뼈화석은 중국 주구점의 중기 홍적세층에서 출토된 것과 같고
붉은 사슴, 노루 등은 유럽의 후기 홍적세층에서 번성하였던 동물이다.
이처럼 북반구에서 서식하던 대륙성동물 뼈가 제주도에서 발견된 것은 제주도가 육지와 이어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자료이다.
(구석기시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2호,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2. 북촌리 바위그늘 유적 (재현)
용암동굴의 무너진 곳을 이용한 대표적인 바위그늘유적이다.
발굴 조사에 의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탐라시대 전ㆍ후기로 이어지는 4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어
이 동굴이 지속적으로 주거공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규모는 정면폭 11m, 높이 2.5m, 길이 3m 가량이다.
신석기시대층에서는 토기의 입술부분을 밖으로 접어 붙인 겹아가리토기, 입술부분에 삼각형 또는 원형의 무늬를 줄지어 찍은 점렬문토기, 석기, 골각기,
불에 탄 열매 등이 출토되었다. (제주도기념물 제42호)
용암동굴의 무너진 곳을 이용한 대표적인 바위그늘유적이다.
발굴 조사에 의해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탐라시대 전ㆍ후기로 이어지는 4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어
이 동굴이 지속적으로 주거공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의 규모는 정면폭 11m, 높이 2.5m, 길이 3m 가량이다.
신석기시대층에서는 토기의 입술부분을 밖으로 접어 붙인 겹아가리토기, 입술부분에 삼각형 또는 원형의 무늬를 줄지어 찍은 점렬문토기, 석기, 골각기,
불에 탄 열매 등이 출토되었다. (제주도기념물 제42호)
7. 용담동 무덤유적 (재현)
용담동 무덤유적은 중앙의 돌담을 경계로 석곽묘 3기가 확인된 남쪽묘역과 석곽묘 1기, 옹관묘 7기가 확인된 북쪽묘역으로 구분된다.
남쪽묘역에서는 구멍ㆍ골아가리토기, 검은간토기 등과 대팻날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북쪽묘역의 석곽묘에서는 장검, 단검, 창, 끌형 철기, 고사리형 철기, 도끼 등 많은 양의 철제무기류와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으며
옹관묘는 곽지리식토기가 사용되었다.
석곽묘에서 출토된 철제무기류는 2세기대의 영남지역 고분출토품과 비슷하여 당시 해로를 통한 문물의 유입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탐라시대 전기, 제주도기념물 제40호)
용담동 무덤유적은 중앙의 돌담을 경계로 석곽묘 3기가 확인된 남쪽묘역과 석곽묘 1기, 옹관묘 7기가 확인된 북쪽묘역으로 구분된다.
남쪽묘역에서는 구멍ㆍ골아가리토기, 검은간토기 등과 대팻날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북쪽묘역의 석곽묘에서는 장검, 단검, 창, 끌형 철기, 고사리형 철기, 도끼 등 많은 양의 철제무기류와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으며
옹관묘는 곽지리식토기가 사용되었다.
석곽묘에서 출토된 철제무기류는 2세기대의 영남지역 고분출토품과 비슷하여 당시 해로를 통한 문물의 유입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탐라시대 전기, 제주도기념물 제40호)
10. 역사속의 돌문화
역사속의 돌문화 전시동은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돌문화 역사를 연표로 작성하여
제주의 돌에 관련된 유적과 유물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연표에 기재된 각 유적과 유물, 그리고 생활 속의 돌문화를 기능별로 분류한 돌민속품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설치되어 있는 정보검색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속의 돌문화 전시동은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돌문화 역사를 연표로 작성하여
제주의 돌에 관련된 유적과 유물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연표에 기재된 각 유적과 유물, 그리고 생활 속의 돌문화를 기능별로 분류한 돌민속품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설치되어 있는 정보검색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2. 원두막휴게소
15. 돌문화영상
제주도의 돌문화를 역사편과 생활편으로 분류하여
선사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돌에 관련된 유적과 유물, 그리고 제주인들이 생활 속에서 돌을 이용하면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지혜롭게 살아온 모습을
생생한 영상으로 보고 느끼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돌문화를 역사편과 생활편으로 분류하여
선사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돌에 관련된 유적과 유물, 그리고 제주인들이 생활 속에서 돌을 이용하면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지혜롭게 살아온 모습을
생생한 영상으로 보고 느끼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6. 생활속의 돌문화
화산섬 제주도는 돌의 고장이다. 제주의 돌은 검은빛 다공질(多孔質) 현무암으로, 제주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고 있다.
사는 집 자체가 돌이며 그 울타리도 돌이고, 집 안팎을 이어주는 올레도 돌이다.
의ㆍ식ㆍ주생활에, 농업ㆍ어업ㆍ축산 등의 생산활동에, 운반ㆍ통신ㆍ방어시설에도 돌을 이용해 왔다.
또한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ㆍ잣성ㆍ성담 등도 돌로 쌓고, 놀이기구도 돌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심지어 돌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신의 집인 당터를 둘러 싼 것도 돌이다.
제주의 돌은 삶의 환경을 척박하게 한 주요인이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슬기롭게 살아왔다.
제주도 여기 저기 널려있는 돌 그 자체가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더불어 면면히 그 역사를 이어오면서 돌의 생활문화를 창조해 왔던 것이다.
생활 속의 돌문화를 사진과 함께 기능별로 분류한 도표를 제작하여 전시해 놓았다.
이 도표에서 돌의 쓰임새의 다양성을 한층 깊게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화산섬 제주도는 돌의 고장이다. 제주의 돌은 검은빛 다공질(多孔質) 현무암으로, 제주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고 있다.
사는 집 자체가 돌이며 그 울타리도 돌이고, 집 안팎을 이어주는 올레도 돌이다.
의ㆍ식ㆍ주생활에, 농업ㆍ어업ㆍ축산 등의 생산활동에, 운반ㆍ통신ㆍ방어시설에도 돌을 이용해 왔다.
또한 경계를 나타내는 밭담ㆍ잣성ㆍ성담 등도 돌로 쌓고, 놀이기구도 돌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심지어 돌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 신의 집인 당터를 둘러 싼 것도 돌이다.
제주의 돌은 삶의 환경을 척박하게 한 주요인이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슬기롭게 살아왔다.
제주도 여기 저기 널려있는 돌 그 자체가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더불어 면면히 그 역사를 이어오면서 돌의 생활문화를 창조해 왔던 것이다.
생활 속의 돌문화를 사진과 함께 기능별로 분류한 도표를 제작하여 전시해 놓았다.
이 도표에서 돌의 쓰임새의 다양성을 한층 깊게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원두막휴게소
23. 동자복과 서자복 (복제)
동자복과 서자복은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성안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었다.
구전으로는 ‘복신미륵ㆍ자복ㆍ자복미륵ㆍ미륵ㆍ큰어른' 등으로 불려져 왔다.
미륵불은 득남, 해상안전, 풍어 등을 기원하는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즉 복신미륵으로 전하는 동자복과 서자복은 제주도의 미륵신앙을 나타내고 제주목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된다.
동자복과 서자복의 제작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후기 혹은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민속자료 제1호)
동자복과 서자복은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성안을 지키는 듯 세워져 있었다.
구전으로는 ‘복신미륵ㆍ자복ㆍ자복미륵ㆍ미륵ㆍ큰어른' 등으로 불려져 왔다.
미륵불은 득남, 해상안전, 풍어 등을 기원하는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즉 복신미륵으로 전하는 동자복과 서자복은 제주도의 미륵신앙을 나타내고 제주목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된다.
동자복과 서자복의 제작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후기 혹은 조선시대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민속자료 제1호)
26. 존자암지부도 (복제)
제주도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종모양의 부도(사리탑)이다.
팔각형 받침돌 위에 원형의 고임돌을 놓고 종모양의 몸돌과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장식한 지붕돌을 얹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붕돌과 보주를 하나의 돌로 조성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지붕돌의 윗면은 둥글게 만들어 제주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고, 그 위에 얹힌 보주에서는 세련된 조각 솜씨가 엿보인다.
(고려시대 후기~조선시대 초기,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7호)
제주도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종모양의 부도(사리탑)이다.
팔각형 받침돌 위에 원형의 고임돌을 놓고 종모양의 몸돌과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장식한 지붕돌을 얹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붕돌과 보주를 하나의 돌로 조성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지붕돌의 윗면은 둥글게 만들어 제주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고, 그 위에 얹힌 보주에서는 세련된 조각 솜씨가 엿보인다.
(고려시대 후기~조선시대 초기,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7호)
27. 원당사진오층석탑 (복제)
원(元) 순제의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간청에 의하여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제주도내의 유일한 불탑인 오층석탑만 남아있다.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조립되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1층 몸돌의 정면에만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감실이 마련되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처마끝처럼 살짝 올려 마무리하였으며 끝에 풍탁이 달려 있었던 구멍이 뚫려있다.
받침돌에는 앞면과 좌ㆍ우면에 안상을 새겨 장식하였다.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받침돌이나 지붕돌의 모양 등으로 볼 때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지정 보물 제1187호)
원(元) 순제의 제2황비였던 기황후의 간청에 의하여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와 함께 불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제주도내의 유일한 불탑인 오층석탑만 남아있다.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조립되었다.
각 층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1층 몸돌의 정면에만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감실이 마련되었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처마끝처럼 살짝 올려 마무리하였으며 끝에 풍탁이 달려 있었던 구멍이 뚫려있다.
받침돌에는 앞면과 좌ㆍ우면에 안상을 새겨 장식하였다.
원당사지 오층석탑은 받침돌이나 지붕돌의 모양 등으로 볼 때 지방색이 강했던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지정 보물 제1187호)
30. 이장묘터
제주에는 이장할 때 묏자리에 버드나무를 심고 그 자리에 계란 3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귀신이 이장묘를 찾아왔을 때 시신은 없고 계란 3개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계란에게 시신의 행방을 물으면,
하나는 "나는 눈이 없어 못 보았습니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입이 없어 말을 할 수 없다"는 시늉을 하고,
나머지 하나는 "귀가 멀어 어디로 갔는지 듣지 못했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버드나무는 바람따라 흔들거리면서 귀신을 어지럽게 하여 결국 귀신은 시신을 찾지 못하고 가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는 이장할 때 묏자리에 버드나무를 심고 그 자리에 계란 3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귀신이 이장묘를 찾아왔을 때 시신은 없고 계란 3개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계란에게 시신의 행방을 물으면,
하나는 "나는 눈이 없어 못 보았습니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입이 없어 말을 할 수 없다"는 시늉을 하고,
나머지 하나는 "귀가 멀어 어디로 갔는지 듣지 못했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버드나무는 바람따라 흔들거리면서 귀신을 어지럽게 하여 결국 귀신은 시신을 찾지 못하고 가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의 무덤
제주도 무덤이 육지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산담에서 볼 수 있다.
산담은 무덤 주위를 원형이나 타원형 혹은 장방형으로 쌓은 돌담으로 죽은 자의 영혼의 울타리로 인식된다.
원래 산담은 경작지와 무덤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마소의 출입으로부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또 화재가 났을 때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 형태로 쌓은 것이다.
산담의 형태는 외담(홑담)과 겹담으로 구분되며, 산담의 크기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타원형의 산담은 외담 형식으로, 비석이나 상석 등 가장 기본적인 석물조차 설치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의 산담은 겹담형식으로, 비석 등의 기본적인 석물은 물론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등도 갖추고 있어 지위가 있거나 부유한 이의 무덤으로 보인다.
그 밖에 제주도의 무덤 중 고려시대 말기~조선시대 초기의 직사각형 호석이 둘려진 방묘 보다는 축소된 형태로 직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쌓은 무덤의 형태도 드물게 찾아 볼 수 있다.
제주도 무덤이 육지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구조적 특징은 산담에서 볼 수 있다.
산담은 무덤 주위를 원형이나 타원형 혹은 장방형으로 쌓은 돌담으로 죽은 자의 영혼의 울타리로 인식된다.
원래 산담은 경작지와 무덤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마소의 출입으로부터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또 화재가 났을 때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 형태로 쌓은 것이다.
산담의 형태는 외담(홑담)과 겹담으로 구분되며, 산담의 크기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타원형의 산담은 외담 형식으로, 비석이나 상석 등 가장 기본적인 석물조차 설치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무덤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의 산담은 겹담형식으로, 비석 등의 기본적인 석물은 물론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등도 갖추고 있어 지위가 있거나 부유한 이의 무덤으로 보인다.
그 밖에 제주도의 무덤 중 고려시대 말기~조선시대 초기의 직사각형 호석이 둘려진 방묘 보다는 축소된 형태로 직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쌓은 무덤의 형태도 드물게 찾아 볼 수 있다.
21. 하원동 탐라왕자묘 1호, 2호 (재현)
37. 하원동 탐라왕자묘 3호 (재현)
서귀포시 하원동에 ‘왕자묘'라 전하는 무덤 3기가 있다.
무덤의 형태는 목관을 매장하고 방형의 곽을 짜서 봉토가 흘러내리지 않게 만든 방묘(方墓)이다.
3기의 무덤은 시기적인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으며 맨 위에 위치한 3호 무덤이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호와 3호는 잘 다듬은 판석을 세워 곽형태로 짜서 만들었으며 2호는 다듬지 않은 편편한 석재를 여러 단 쌓아 곽을 만들었다.
각 무덤의 바깥으로는 묘역을 표시하는 사각의 넓은 담장이 돌려져 있다. (고려시대 후기~조선시대 초기, 제주도기념물 제54호)
37. 하원동 탐라왕자묘 3호 (재현)
서귀포시 하원동에 ‘왕자묘'라 전하는 무덤 3기가 있다.
무덤의 형태는 목관을 매장하고 방형의 곽을 짜서 봉토가 흘러내리지 않게 만든 방묘(方墓)이다.
3기의 무덤은 시기적인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으며 맨 위에 위치한 3호 무덤이 가장 먼저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1호와 3호는 잘 다듬은 판석을 세워 곽형태로 짜서 만들었으며 2호는 다듬지 않은 편편한 석재를 여러 단 쌓아 곽을 만들었다.
각 무덤의 바깥으로는 묘역을 표시하는 사각의 넓은 담장이 돌려져 있다. (고려시대 후기~조선시대 초기, 제주도기념물 제54호)
38. 조천석 (복제)
옛날 산지천이 자주 범람하여 성안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이에 물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았던 관리가 산지천에 조천석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로는 범람하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현무암으로 제작된 조천석은 원래 산지천 광제교 옆 자연암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현재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가슴에는 '조천' 뒷면에는 '경자춘우산서' 라고 음각되어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의 조천석은 남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제주에 도임한 김영수 겸방어사가 1780년(경자년)에 세운 것이다.
옛날 산지천이 자주 범람하여 성안 사람들의 피해가 컸다.
이에 물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았던 관리가 산지천에 조천석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로는 범람하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현무암으로 제작된 조천석은 원래 산지천 광제교 옆 자연암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현재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가슴에는 '조천' 뒷면에는 '경자춘우산서' 라고 음각되어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의 조천석은 남도병마절도사로 재임 중 제주에 도임한 김영수 겸방어사가 1780년(경자년)에 세운 것이다.
40. 김녕서문하르방당 (재현)
이 당의 유래는 김녕 마을 한 어부의 꿈에 돌이 나타나 “나를 곱게 모셔 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에게 자식 낳게 해 주겠다”고 하자,
어부는 바다에서 돌을 건져 올려 미륵으로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륵돌을 신체로 삼고 그 앞에 잘 다듬은 제단을 놓았다.
자연석으로 높이 약 60cm의 안쪽 울타리를 쌓았고, 바깥쪽으로 높이 2m의 울타리를 더 둘러쌓았다.
'서문하르방, 은진미륵' 2신위를 모시는 당이며, 신목은 예덕나무이다.
이 당의 신은 기자신앙과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합된 형태의 산육신으로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제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택일해서 다닌다.
이 당의 유래는 김녕 마을 한 어부의 꿈에 돌이 나타나 “나를 곱게 모셔 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에게 자식 낳게 해 주겠다”고 하자,
어부는 바다에서 돌을 건져 올려 미륵으로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륵돌을 신체로 삼고 그 앞에 잘 다듬은 제단을 놓았다.
자연석으로 높이 약 60cm의 안쪽 울타리를 쌓았고, 바깥쪽으로 높이 2m의 울타리를 더 둘러쌓았다.
'서문하르방, 은진미륵' 2신위를 모시는 당이며, 신목은 예덕나무이다.
이 당의 신은 기자신앙과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합된 형태의 산육신으로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제일은 정해져 있지 않고 택일해서 다닌다.
43. 제주동자석
동자석은 평균 신장 1m 이하의 작은 석상이다.
다공 현무암이라는 재질의 특수성과 단순하면서도 영적 분위기를 잘 살린 표현 방법은 제주 동자석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문인석과는 달리 민머리이거나 머리를 길게 땋은 모양, 쪽진 모양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반신만 표현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 술병, 술잔, 꽃, 부채, 표주박, 홀 등의 물건들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보기도 한다.
무덤을 이장할 때 동자석은 보통 그 자리에 묻어 놓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당 등에 옮겨져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자석에는 무속신앙, 불교 및 유교적인 요소들이 융합되어 제주인들의 심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
동자석은 평균 신장 1m 이하의 작은 석상이다.
다공 현무암이라는 재질의 특수성과 단순하면서도 영적 분위기를 잘 살린 표현 방법은 제주 동자석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다.
문인석과는 달리 민머리이거나 머리를 길게 땋은 모양, 쪽진 모양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반신만 표현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 술병, 술잔, 꽃, 부채, 표주박, 홀 등의 물건들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보기도 한다.
무덤을 이장할 때 동자석은 보통 그 자리에 묻어 놓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신당 등에 옮겨져 신앙의 대상이 된다.
동자석에는 무속신앙, 불교 및 유교적인 요소들이 융합되어 제주인들의 심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
44. 잃어버린 석상 재현
이문교의 사진집『悔恨의 濟州童子石들』(1996)에 수록된 제주동자석 중 일부와 문인석, 돌코냉이, 거북형 받침대 등을 복제하여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지금 이 동자석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그 흔적 조차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 사진으로 남아 있어
과거의 어느 때 제주섬에 존재했던 동자석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복제된 전시물 중 머리는 거북, 꼬리는 물고기 모양의 받침대가 있는데 그 용도는 확실치 않습니다.
돌코냉이는 신엄리 마을에 세워졌던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허약한 곳을 보강하고 재앙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과
마을의 경계석 또는 과원을 알리는 표석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4기가 있었으나 2기는 분실되었고, 신엄중학교 입구와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각각 1기씩 옮겨져 있습니다
이문교의 사진집『悔恨의 濟州童子石들』(1996)에 수록된 제주동자석 중 일부와 문인석, 돌코냉이, 거북형 받침대 등을 복제하여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지금 이 동자석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그 흔적 조차 확인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 사진으로 남아 있어
과거의 어느 때 제주섬에 존재했던 동자석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복제된 전시물 중 머리는 거북, 꼬리는 물고기 모양의 받침대가 있는데 그 용도는 확실치 않습니다.
돌코냉이는 신엄리 마을에 세워졌던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허약한 곳을 보강하고 재앙을 막는 수호신의 기능과
마을의 경계석 또는 과원을 알리는 표석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모두 4기가 있었으나 2기는 분실되었고, 신엄중학교 입구와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각각 1기씩 옮겨져 있습니다
45. 정주석
제주도 민가에는 마을길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올레가 있다.
올레 양 어귀에는 구멍이 뚫려있는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을 세워 놓았다.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을 정주목, 돌로 되어 있는 것을 정주석이라 불렀다.
정주석에는 1~5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구멍에 걸쳐 놓는 나무 막대기를 정낭이라 부른다.
정주석에는 경계표시, 소와 말의 출입방지, 주인이 집안에 있고 없음을 전달하는 수단 등의 기능이 있다.
제주도 민가에는 마을길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올레가 있다.
올레 양 어귀에는 구멍이 뚫려있는 나무기둥이나 돌기둥을 세워 놓았다.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을 정주목, 돌로 되어 있는 것을 정주석이라 불렀다.
정주석에는 1~5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이 구멍에 걸쳐 놓는 나무 막대기를 정낭이라 부른다.
정주석에는 경계표시, 소와 말의 출입방지, 주인이 집안에 있고 없음을 전달하는 수단 등의 기능이 있다.
50. 돌하르방 (복제)
돌하르방이란 말은 '돌 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어로,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옹중석 등으로 불렸다.
돌하르방은 성문 입구에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마을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는 수호신적 기능,
벅수나 장승과 같이 사악한 것을 막아 주는 주술ㆍ종교적 기능,
성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구분이나 성문 출입을 제한하는 위치 표시 및 금표적 기능 등을 지닌다.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 김몽규 목사가 세웠다고 한다.
대정현과 정의현에는 동ㆍ서ㆍ남문 밖에 각각 4기씩 12기를 세웠으며 제주목에는 23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동ㆍ서ㆍ남문에 각각 8기씩 세웠으나 1기는 없어져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제주도에는 45기의 돌하르방이 남아있고 2기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제주목의 것이 181.6cm, 정의현 141.4cm, 대정현 136.2cm 이다.
제주목의 것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음각선이 굵고 힘찬 느낌이 강한 반면, 정의현과 대정현의 것은 작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 제주도민속자료 제2호)
돌하르방이란 말은 '돌 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어로,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옹중석 등으로 불렸다.
돌하르방은 성문 입구에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마을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는 수호신적 기능,
벅수나 장승과 같이 사악한 것을 막아 주는 주술ㆍ종교적 기능,
성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구분이나 성문 출입을 제한하는 위치 표시 및 금표적 기능 등을 지닌다.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 김몽규 목사가 세웠다고 한다.
대정현과 정의현에는 동ㆍ서ㆍ남문 밖에 각각 4기씩 12기를 세웠으며 제주목에는 23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동ㆍ서ㆍ남문에 각각 8기씩 세웠으나 1기는 없어져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제주도에는 45기의 돌하르방이 남아있고 2기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제주목의 것이 181.6cm, 정의현 141.4cm, 대정현 136.2cm 이다.
제주목의 것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음각선이 굵고 힘찬 느낌이 강한 반면, 정의현과 대정현의 것은 작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 제주도민속자료 제2호)
1. 제주전통초가(세거리집)
안거리-4칸 초가, 밖거리-3칸 초가, 이문간-3칸 초가
안거리-4칸 초가, 밖거리-3칸 초가, 이문간-3칸 초가
2. 비석거리 (재현)
설촌 연대가 오랜 마을에는 중심지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마을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의 공적이나 관리들의 치적, 열부나 열녀, 효자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이를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설촌 연대가 오랜 마을에는 중심지나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마을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의 공적이나 관리들의 치적, 열부나 열녀, 효자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이를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3. 제주전통초가(두거리집)
안거리-4칸 초가, 밖거리-3칸 초가
안거리-4칸 초가, 밖거리-3칸 초가
4. 말방앗간
말방아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찧을 때 사용되는 것으로 연자매(연자방아)를 말한다.
이것은 방애, 고레라고도 불렸으며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4~5개씩으로, 30호(戶)에 1개 정도 설치되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의 사거리에 초가집 형태로 지붕을 이고 담을 둘러 말방앗간을 마련하였다.
말방아는 받침돌인 아랫돌 위에서 중수리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윗돌이 회전하면서 탈곡한 곡식을 정미한다.
사람이 주로 돌렸으나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하여 돌리기도 했다.
원동기와 전기의 보급으로 정미소가 세워지면서 말방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말방아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찧을 때 사용되는 것으로 연자매(연자방아)를 말한다.
이것은 방애, 고레라고도 불렸으며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4~5개씩으로, 30호(戶)에 1개 정도 설치되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의 사거리에 초가집 형태로 지붕을 이고 담을 둘러 말방앗간을 마련하였다.
말방아는 받침돌인 아랫돌 위에서 중수리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윗돌이 회전하면서 탈곡한 곡식을 정미한다.
사람이 주로 돌렸으나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하여 돌리기도 했다.
원동기와 전기의 보급으로 정미소가 세워지면서 말방아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8. 관덕정기와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세종 30년(1448) 안무사 신숙청이 목재를 마련하고 기와를 굽고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성종 11년(1480)에 목사 양찬(梁瓚)이 중수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개축을 거쳤다.
전시된 기와는 2004년도 관덕정 해체보수과정 중 지붕을 새로운 기와로 교체하면서 걷어낸 것으로,
1990년대 초 관덕정 지붕을 보수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시 삼도2동 43-3번지)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세종 30년(1448) 안무사 신숙청이 목재를 마련하고 기와를 굽고 돌을 쌓아 대를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성종 11년(1480)에 목사 양찬(梁瓚)이 중수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개축을 거쳤다.
전시된 기와는 2004년도 관덕정 해체보수과정 중 지붕을 새로운 기와로 교체하면서 걷어낸 것으로,
1990년대 초 관덕정 지붕을 보수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시 삼도2동 43-3번지)
9. 항아리 야외전시
자연적인 흙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여 '공기가 통하고 숨을 쉬는 그릇'이라 칭해지는 옹기는
우리 생활 속에서 그 쓰임새가 다양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지방마다 기후나 풍토에 따라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육지의 항아리는 잿물을 입히고 환을 쳐 문양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제주의 항아리는 잿물을 입히지 않고 연료인 나뭇재가 떨어져 입혀진 자연유만으로 처리되어 있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문양도 단순미가 돋보인다.
야외전시장 외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100여점의 항아리에서
작은 것은 높이 12cm, 밑굽지름 11cm, 입지름 10.7cm이고, 가장 큰 것은 높이 142cm, 밑굽지름 36cm, 입지름 87cm으로
약14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웠다고 한다.
대형 항아리들은 1940년대에 전남 강진에서 들여와 막걸리를 숙성하는 용구로 쓰였던 것이라 한다.
성형, 유약, 가마불 등 어려운 제작과정과 현재 수요가 줄어들어 안타깝게도 대형 항아리를 제작하는 도공들도 단절되어 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만들어진 과학적이고 기능성을 갖춘 전통적인 옹기의 멋과 빛깔을 자연 속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자연적인 흙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여 '공기가 통하고 숨을 쉬는 그릇'이라 칭해지는 옹기는
우리 생활 속에서 그 쓰임새가 다양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지방마다 기후나 풍토에 따라 독특하게 만들어졌다.
육지의 항아리는 잿물을 입히고 환을 쳐 문양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나
제주의 항아리는 잿물을 입히지 않고 연료인 나뭇재가 떨어져 입혀진 자연유만으로 처리되어 있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문양도 단순미가 돋보인다.
야외전시장 외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100여점의 항아리에서
작은 것은 높이 12cm, 밑굽지름 11cm, 입지름 10.7cm이고, 가장 큰 것은 높이 142cm, 밑굽지름 36cm, 입지름 87cm으로
약14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웠다고 한다.
대형 항아리들은 1940년대에 전남 강진에서 들여와 막걸리를 숙성하는 용구로 쓰였던 것이라 한다.
성형, 유약, 가마불 등 어려운 제작과정과 현재 수요가 줄어들어 안타깝게도 대형 항아리를 제작하는 도공들도 단절되어 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만들어진 과학적이고 기능성을 갖춘 전통적인 옹기의 멋과 빛깔을 자연 속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10. 훈장묘 (재현)
제주시 공설묘지 내에 매우 특이한 묘 하나가 있다. 약 100여 년 전의 묘이다.
최근 세워진 묘비에는 '서계 안용식거사의 묘 단기 4255년 6월26일 순명(西溪居士安鏞植之墓 檀紀 四二五五 六月二十六日 順命)'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묘에 세워진 무릎을 끓고 앉은 동자석과 모자를 쓰고 있는 문인석은 제주도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며
상석 옆에 놓여진 돌벼루, 향석, 묘자리 또한 특이하다.
동자석의 형태나 돌벼루 등을 볼 때 글을 가르치던 분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제주도내의 유일하고 귀중한 석상으로, 한때 동자석과 문인석은 도난을 당해
문인석은 수개월 만에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동자석 2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제주시 공설묘지 내에 매우 특이한 묘 하나가 있다. 약 100여 년 전의 묘이다.
최근 세워진 묘비에는 '서계 안용식거사의 묘 단기 4255년 6월26일 순명(西溪居士安鏞植之墓 檀紀 四二五五 六月二十六日 順命)'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묘에 세워진 무릎을 끓고 앉은 동자석과 모자를 쓰고 있는 문인석은 제주도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며
상석 옆에 놓여진 돌벼루, 향석, 묘자리 또한 특이하다.
동자석의 형태나 돌벼루 등을 볼 때 글을 가르치던 분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제주도내의 유일하고 귀중한 석상으로, 한때 동자석과 문인석은 도난을 당해
문인석은 수개월 만에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동자석 2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11. 어머니를 그리는 선돌
불타는 마그마가 지면을 타고 흐르다 멈춘 순간, 응축작용에 의해 세 토막으로 금이 간 용암석이다. 원형대로 있고 70cm 받침대 위에 올려 세웠다.
전체높이 6m다. 허허로운 곳의 액막이를 위해 방사탑을 쌓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 공원의 교차로 빈 터에 이 선돌을 세웠다.
또한 이 선돌은 설문대할망 전설 속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막내아들의 모습을 연상토록 한라산 영실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선돌 사면에는 범상치 않은 추상미가 흘러내려 복된 안목을 지닌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불타는 마그마가 지면을 타고 흐르다 멈춘 순간, 응축작용에 의해 세 토막으로 금이 간 용암석이다. 원형대로 있고 70cm 받침대 위에 올려 세웠다.
전체높이 6m다. 허허로운 곳의 액막이를 위해 방사탑을 쌓던 옛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 공원의 교차로 빈 터에 이 선돌을 세웠다.
또한 이 선돌은 설문대할망 전설 속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막내아들의 모습을 연상토록 한라산 영실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선돌 사면에는 범상치 않은 추상미가 흘러내려 복된 안목을 지닌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백장군 갤러리에 들어가니 그림전시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미디어아트와 사진과 조형물들의 전시를 했었는데 바뀐 모양이다.
지하에 있는 '조록나무 형상목 전' 상설전시실은 그대로 였다.
'백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조록나무 뿌리(조록형상목) 2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조록나무 형상목 전은 탐라목석원에서 이전해 와 전시하는 것이다.
지하에 있는 '조록나무 형상목 전' 상설전시실은 그대로 였다.
'백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조록나무 뿌리(조록형상목) 2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된 조록나무 형상목 전은 탐라목석원에서 이전해 와 전시하는 것이다.
한낱 나무의 뿌리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예전에 탐라목석원에서 관람했던 기억 때문에 친숙한 느낌도 들었지만 여전히 갖가지 기이한 형상들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내게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해서 함부로 언급해서 상상력을 빼앗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꾹꾹 참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내게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해서 함부로 언급해서 상상력을 빼앗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꾹꾹 참는다.
오백장군 갤러리를 나와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에 어머니의 방이 보인다.
"어머니의 방"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안에는 들어가면 돌에 불빛을 비춰서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다.
흡사 어머니가 아이을 안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머니의 방이라고 꾸며놓은 듯 하다.
맞은 편에도 모자상의 돌이 놓여져 있다.
"어머니의 방"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안에는 들어가면 돌에 불빛을 비춰서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다.
흡사 어머니가 아이을 안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머니의 방이라고 꾸며놓은 듯 하다.
맞은 편에도 모자상의 돌이 놓여져 있다.
돌문화공원을 모두 관람을 하려면 꽤 많은 관람시간을 할애하여야 한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숙소인 제주절물휴양림으로 갔다.
이틀동안 묵은 숙소였지만 예약 경쟁이 치열해서 같은 방이 아니라 각각 따로 방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
11월 13일 숲속의 집 - 왕벚나무실 2층(6인실)
11월 14일 숲속의 집 - 수선화실 2층(6인실)
다자녀가구 50% 할인받아서 1박당 25,000원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짐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걱정이었는데...
짐을 그대로 두면 알아서 다음에 묵을 방으로 짐을 옮겨준단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무지 걱정했었는데...다행이다.
숙소로 가지고 갈 짐을 챙기면서 이번 여행에서 든든한 발이 되어준 허군의 사진을 찍었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숙소인 제주절물휴양림으로 갔다.
이틀동안 묵은 숙소였지만 예약 경쟁이 치열해서 같은 방이 아니라 각각 따로 방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
11월 13일 숲속의 집 - 왕벚나무실 2층(6인실)
11월 14일 숲속의 집 - 수선화실 2층(6인실)
다자녀가구 50% 할인받아서 1박당 25,000원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짐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걱정이었는데...
짐을 그대로 두면 알아서 다음에 묵을 방으로 짐을 옮겨준단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 무지 걱정했었는데...다행이다.
숙소로 가지고 갈 짐을 챙기면서 이번 여행에서 든든한 발이 되어준 허군의 사진을 찍었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예약했던 왕벚나무실2층과 수선화실2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가까운데 만약 숙소간 짐이동 서비스가 없었다면 짐들고 왔다갔다 차에 싣고 내리고 무지 힘들뻔했다.
지난번 여행때는 산림문화휴양관에서 묵었었는데...개인적인 견해지만 숙소 상태는 그곳이 조금 더 좋은 것 같다.
그래도 서귀포자연휴양림과 비교하면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이 조금 더 좋은 것 같고...
그래도 서귀포자연휴양림과 비교하면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이 조금 더 좋은 것 같고...
이렇게 방이 하나 있고...
안에 뭐가 있는지 일일이 써 붙여 놓아서 안 열어 보아도 뭐가 있는 지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 절물오름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 절물오름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지난번 여행때 묵었을 때는 눈이 많이 와서 휴양림 구경을 제대로 못했는데...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산책길들이 예쁘게 잘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절물유래>절물은 옛날에 절 옆에 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절은 없으나 약수암이 남아 있으며,
솟아나는 용천수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어 약수(음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절물오름은 두 봉우리가 있는데 큰 봉우리(큰절물오름)를 큰 대나오름 작은 봉우리(족은 절물오름)를 족은 대나오름이라 하며
큰 대나오름은 표고687m 비고147m 둘레2,498m 이고 이 큰 대나오름 기슭에서 자연 용출되어 나오는 물이 절물약수이다.
솟아나는 용천수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어 약수(음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절물오름은 두 봉우리가 있는데 큰 봉우리(큰절물오름)를 큰 대나오름 작은 봉우리(족은 절물오름)를 족은 대나오름이라 하며
큰 대나오름은 표고687m 비고147m 둘레2,498m 이고 이 큰 대나오름 기슭에서 자연 용출되어 나오는 물이 절물약수이다.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니...절물약수터에서 물한바가지씩 마시고...
약수터의 용천수는 제주시 먹는물 1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약수터의 용천수는 제주시 먹는물 1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숙소가 아니더라도 이곳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을 탐방하러 방문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제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절물오름(큰절물오름)
높이 : 해발 697 m
면적 : 40 ha
둘레 : 2,459 m
거리 : 800 m
절물오름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절 옆에 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사악(寺岳)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 절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고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현재 약수암이 남아있다.
절물오름은 두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봉우리를 큰대나오름, 작은 봉우리를 족은 대나오름이라고 부른다.
오름 동 사면에는 원형의 분화구가 있으며 울창한 자연림으로 덮혀 있어 오름트레킹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 정상이 코 앞에 있듯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 서/북쪽으로는 제주시 전경과 관탈섬, 비양도, 추자군도 등
제주도의 절반정도를 관망할 수 있다.
전망대가 있는 절물오름(큰절물오름)까지 800m만 걸으면 된다.
뒤로 보이는 족은절물오름은 작은 절물오름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막내아들(셋째아들)을 조근놈(족은놈)이라고 부른다.
큰아들은 큰놈, 둘째아들은 샌놈, 딸인 경우에는 큰년, 샌년, 조근년...
절물오름(큰절물오름)
높이 : 해발 697 m
면적 : 40 ha
둘레 : 2,459 m
거리 : 800 m
절물오름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절 옆에 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사악(寺岳)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 절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고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현재 약수암이 남아있다.
절물오름은 두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봉우리를 큰대나오름, 작은 봉우리를 족은 대나오름이라고 부른다.
오름 동 사면에는 원형의 분화구가 있으며 울창한 자연림으로 덮혀 있어 오름트레킹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 정상이 코 앞에 있듯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성산일출봉, 서/북쪽으로는 제주시 전경과 관탈섬, 비양도, 추자군도 등
제주도의 절반정도를 관망할 수 있다.
전망대가 있는 절물오름(큰절물오름)까지 800m만 걸으면 된다.
뒤로 보이는 족은절물오름은 작은 절물오름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막내아들(셋째아들)을 조근놈(족은놈)이라고 부른다.
큰아들은 큰놈, 둘째아들은 샌놈, 딸인 경우에는 큰년, 샌년, 조근년...
지난번 절물오름에 오를 때는 눈이 많이 와서 엄청 고생하면서 올라갔었는데...이렇게 편한 길을...
한가지 주의사항!
말소리를 자제하고 조용히 걸어야 한다. 노루가 놀랄 수도 있으니...노루?
그렇다...노루가 등산로 주변에 나타나서 멀뚱멀뚱 쳐다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금방 도망을 가버린다.
어? 한놈이 아니고 두놈이다.
야생 노루를 보다니...가족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말소리를 자제하고 조용히 걸어야 한다. 노루가 놀랄 수도 있으니...노루?
그렇다...노루가 등산로 주변에 나타나서 멀뚱멀뚱 쳐다보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금방 도망을 가버린다.
어? 한놈이 아니고 두놈이다.
야생 노루를 보다니...가족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땀을 뻘뻘흘리며 아빠의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는 호영이...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지난번처럼 제1전망대까지 150m만 더 가보기로 하였다.
지난번처럼 제1전망대까지 150m만 더 가보기로 하였다.
뒤로 제1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제1전망대 도착!
아~이 뿌듯함~
아~이 뿌듯함~
오름의 분화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경외감...굳이 그 옛날 불을 내뿜으며 용암을 흘러 보냈을 그 모습을 상상치 않더라도...
음푹패인 산정상의 모습에서 신비롭고 신령스러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수 있다.
음푹패인 산정상의 모습에서 신비롭고 신령스러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수 있다.
오름을 사랑하는 아빠 때문에 고생이 많은 우리가족들...ㅋㅋㅋ
지금은 제주도 해안가 올레길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언젠가 제주도의 다양한 오름의 모습들이 재조명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날이 꼭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제주도 해안가 올레길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언젠가 제주도의 다양한 오름의 모습들이 재조명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날이 꼭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그만 내려가보기로 하였다.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내는 저녁준비를 하러 숙소로 혼자가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번 방문때 눈 때문에 접근을 할 수 없어서 아이들이 너무나 아쉬워했던 도전프로그램장으로 갔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번 방문때 눈 때문에 접근을 할 수 없어서 아이들이 너무나 아쉬워했던 도전프로그램장으로 갔다.
다양한 도전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해서 걱정했는데...녀석들 무지 신나는 모양이다.
막내 민수까지 꽤 무서울텐데...용기내어 성큼성큼 발을 내 딪는다.
막내 민수까지 꽤 무서울텐데...용기내어 성큼성큼 발을 내 딪는다.
프로그램 하나 끝날 때마다 "미션 클리어"를 외치며 뿌듯해 했다.
행여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따라 다니다보니 아이들은 쌩쌩한데...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조금 위험해 보이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위험해 보이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들 땅에 발을 내딪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다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참 재미나게 놀았다.
뭔 프로그램 종류가 이렇게 많은 지 슬슬 지켜워져서 조금 비슷해 보이는 것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녀석들의 반대로 차근차근 순서대로 단 하나의 프로그램도 놓치지 않았다.
녀석들의 반대로 차근차근 순서대로 단 하나의 프로그램도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도전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려 했는데...
아이들의 눈에 놀이터가 들어왔다.
"아빠,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면 안돼요?"
그래라...녀석들 저녁밥은 아주 맛있게 먹겠구나!
아이들의 눈에 놀이터가 들어왔다.
"아빠,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면 안돼요?"
그래라...녀석들 저녁밥은 아주 맛있게 먹겠구나!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 이쁜 연못이 보여서 잠시 멈추었다가...
떼지어 헤엄치는 잉어들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휴양림입구에서 숙소까지 오른편 사진에 보이는 리어커를 이용하여 짐을 옮긴다.
사진처럼 세워두었다가 나중에 퇴실시 짐을 운반할 때 다시 이용하면 된다.
숙소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나서 씻고 내일 서둘러 일정을 소화하려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피곤한데 잠은 잘 안오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그렇게 제주도 여행 다섯쨋날의 밤은 깊어갔다.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여섯쨋날)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 무료관람과 흐트러진 일정을 감안하여 새로 일정을 잡았다.
일찍 제주도의 3대폭포인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 그리고 정방폭포를 둘러볼 생각이다.
깜깜한 새벽에 숙소를 나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에 도착했더니 아침7시가 되었다.
사진처럼 세워두었다가 나중에 퇴실시 짐을 운반할 때 다시 이용하면 된다.
숙소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나서 씻고 내일 서둘러 일정을 소화하려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피곤한데 잠은 잘 안오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그렇게 제주도 여행 다섯쨋날의 밤은 깊어갔다.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여섯쨋날)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 무료관람과 흐트러진 일정을 감안하여 새로 일정을 잡았다.
일찍 제주도의 3대폭포인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 그리고 정방폭포를 둘러볼 생각이다.
깜깜한 새벽에 숙소를 나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에 도착했더니 아침7시가 되었다.
폭포일정을 잡고 뜬금없이 일찍 중문대포주상절리를 찾은 이유가 있다.
이른 시간에 방문하면 주차요금 징수하는 사람이 없어서 주차료가 없지만...관람시간대에 방문하면 주차요금 1,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입장료만 무료고 주차요금을 내야한다는 거~
그까잇 껏 1,000원?
일정을 조금만 일찍 시작하면 1,000원을 아끼는 것 뿐 아니라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만 무료고 주차요금을 내야한다는 거~
그까잇 껏 1,000원?
일정을 조금만 일찍 시작하면 1,000원을 아끼는 것 뿐 아니라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추운 것 같기고 하고 아이들이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해서 아내와 둘만 둘러보기로 하였다.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스레 부서지는 파도와 신이 다듬은 듯 정교하게 겹겹이 쌓은 검붉은 육각형의 돌기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중문관광단지 동부지역 해안가의 주상절리대는
자연의 위대함과 절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천연기념물 제443호(2004. 12. 27)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상절리대 앞에 서면 새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속에 석수장이의 애달픈 사연이라도 금세 실려 오는 듯 한데,
파도가 심하게 일 때는 높이 20미터 이상 용솟음 치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상큼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천혜의 절경과 함께 하는 테마여행지로 각광 받으면서 여행객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ing)란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다각형(보통은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곳의 주상절리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k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면에서 최대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주상절리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서귀포시 중문동이며 이곳의 옛이름인 "지삿개"를 살려 "지삿개바위"로 부릅니다.
[사이버 제주]
중문관광단지 동부지역 해안가의 주상절리대는
자연의 위대함과 절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천연기념물 제443호(2004. 12. 27)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상절리대 앞에 서면 새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속에 석수장이의 애달픈 사연이라도 금세 실려 오는 듯 한데,
파도가 심하게 일 때는 높이 20미터 이상 용솟음 치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상큼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천혜의 절경과 함께 하는 테마여행지로 각광 받으면서 여행객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ing)란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다각형(보통은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곳의 주상절리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k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면에서 최대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주상절리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서귀포시 중문동이며 이곳의 옛이름인 "지삿개"를 살려 "지삿개바위"로 부릅니다.
[사이버 제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ing)는 암석이 규칙적으로 갈라져 기둥 모양을 이룬 것으로
지각변동, 습곡작용, 풍화작용, 지표침식에 의해 압력의 변화가 생길 때 마그마가 지표 암석의 갈라진 틈을 뚫고 들어오며 형성된 것이다.
지각변동, 습곡작용, 풍화작용, 지표침식에 의해 압력의 변화가 생길 때 마그마가 지표 암석의 갈라진 틈을 뚫고 들어오며 형성된 것이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면서 굳을 때 육각 기둥모양으로 굳어져 생긴 지형이다. 제주도 남부해변에서 볼 수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인데, 기둥의 단면은 4각~6각형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급격히 냉각되면 큰 부피변화와 함께 수축하게 된다.
이때 용암이 식으면서 최소한의 변의 길이와 최대의 넓이를 가지는 "육각기둥"의 모양으로 굳는 경향을 보인다.
(원은 선의 길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길이 대비, 다른 도형보다 넓이가 크지만 원으로는 빈틈 없이 조밀한 구조를 생성할 수 없다.)
수축이 진행되면서, 냉각중인 용암표면에서 수축이 일어나는 중심점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지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면서, 그 점을 중심으로 냉각,수축이 진행되면 다각형의 규칙적인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균열들이 수직으로 발달하여 현무암층은 수천 개의 기둥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들은 용암의 두께, 냉각 속도 등에 따라 높이 수십 m, 지름 수십 cm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달하게 된다.
[위키백과]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은 것인데, 기둥의 단면은 4각~6각형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류가 급격히 냉각되면 큰 부피변화와 함께 수축하게 된다.
이때 용암이 식으면서 최소한의 변의 길이와 최대의 넓이를 가지는 "육각기둥"의 모양으로 굳는 경향을 보인다.
(원은 선의 길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같은 길이 대비, 다른 도형보다 넓이가 크지만 원으로는 빈틈 없이 조밀한 구조를 생성할 수 없다.)
수축이 진행되면서, 냉각중인 용암표면에서 수축이 일어나는 중심점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지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면서, 그 점을 중심으로 냉각,수축이 진행되면 다각형의 규칙적인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균열들이 수직으로 발달하여 현무암층은 수천 개의 기둥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들은 용암의 두께, 냉각 속도 등에 따라 높이 수십 m, 지름 수십 cm의 다양한 모습으로 발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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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이곳의 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대포동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약 2km에 걸쳐 발달해 있다.
약 25만년에서 14만년 전 사이에 '녹하지악' 분화구에서 흘러온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기둥형태의 주상절리는 뜨러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하여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형태가 흔하다.
가지런한 주상절리기둥의 묶음을 콜로네이드(colonnade)라고 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엔타블러쳐(entablature)라고 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대포동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약 2km에 걸쳐 발달해 있다.
약 25만년에서 14만년 전 사이에 '녹하지악' 분화구에서 흘러온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기둥형태의 주상절리는 뜨러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하여 만들어지는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형태가 흔하다.
가지런한 주상절리기둥의 묶음을 콜로네이드(colonnade)라고 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엔타블러쳐(entablature)라고 한다.
이상하리만큼 바다가 잔잔하여 하얗게 부서지는 거친 파도의 장관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서 주상절리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상절리의 형성 - 천연기념물 제443호
현무암질 용암에서 주상절리는 약 900 ℃ 에서 만들어 지는데, 용암의 상부에서는 아래로, 하부에서는 위로 각각 진행되어 중앙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용암의 전체 두께를 10m로 가정하면, 상부에서는 대략 6m 규모로, 하부에서는 4m 규모로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위쪽 주상절리가 더 길다.
용암이 빨리 식을수록 주상절리 기둥의 굵기는 가늘어지고, 주상절리 겉면에 발달한 띠구조의 간격은 좁아진다.
현무암질 용암에서 주상절리는 약 900 ℃ 에서 만들어 지는데, 용암의 상부에서는 아래로, 하부에서는 위로 각각 진행되어 중앙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용암의 전체 두께를 10m로 가정하면, 상부에서는 대략 6m 규모로, 하부에서는 4m 규모로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위쪽 주상절리가 더 길다.
용암이 빨리 식을수록 주상절리 기둥의 굵기는 가늘어지고, 주상절리 겉면에 발달한 띠구조의 간격은 좁아진다.
지구과학사에 있어서 주상절리의 가치
18세기 중반까지 주상절리 기둥은 물론 현무암까지도 원시 바다 속 환경에서 침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에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주상절리와 연결되는 것이 관찰되면서,
지구 내부에서 높은 온도의 물질(마그마)이 흘러나와 현무암과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지구과학 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다.
18세기 중반까지 주상절리 기둥은 물론 현무암까지도 원시 바다 속 환경에서 침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에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주상절리와 연결되는 것이 관찰되면서,
지구 내부에서 높은 온도의 물질(마그마)이 흘러나와 현무암과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지구과학 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산책로는 많이 걷지 못하고 아이들에게로 달려가야 했다.
그렇게 중문대포주상절리의 관람을 마치고 본격적인 폭포관람을 위해 먼저 가까운 천제연 폭포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중문대포주상절리의 관람을 마치고 본격적인 폭포관람을 위해 먼저 가까운 천제연 폭포로 이동하였다.
천제연폭포는 중문관광 단지 동쪽, 중문천의 천제교 아래로 떨어지는 3단 폭포로 평균 길이는 20m에 이른다.
천제연은 천제(하느님)와 연(연못)을 뜻한다.
이 폭포에는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7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폭포에는 '선임교'라는 아치형의 다리가 있으며 교각에는 7선녀의 전설을 상징하는 일곱 선녀상이 조각되어 있다.
천제연은 천제(하느님)와 연(연못)을 뜻한다.
이 폭포에는 하늘에서 옥황상제의 7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폭포에는 '선임교'라는 아치형의 다리가 있으며 교각에는 7선녀의 전설을 상징하는 일곱 선녀상이 조각되어 있다.
역시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으로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어서 요금은 지불하지 않고 입장했다.
미리 관람시 유의사항을 잘 읽고 숙지하여 여러 제반사고도 예방하고 제1폭포에 도착해서 떨어지는 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기분 상하는 일이 없길...
천제연 난대림지대 - 천연기념물 제378호
천제연 난대림지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서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빽빽히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난대림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희귀식물인 솔잎란과
백량금, 죽절초, 담팔수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감탕나무, 바람들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된 담팥수의 자생지이고, 특정야생동식물로 지정된 솔잎란과 백량금이 자라는 희귀식물 분포지이다.
이곳의 암벽에 자라고 있는 솔잎란은 뿌리와 잎이 없고 줄기만 있는 유관속 식물 중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식물이며, 멸종위기의 희귀식물로서,
제주도에서도 희귀하다.
천제연 난대림지대는 희귀식물과 난대성식물이 풍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난대림지대 중의 하나로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제연 난대림지대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서쪽으로 500m 지점에 위치한 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은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빽빽히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난대림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희귀식물인 솔잎란과
백량금, 죽절초, 담팔수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감탕나무, 바람들칡, 마삭줄, 남오미자, 왕모람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된 담팥수의 자생지이고, 특정야생동식물로 지정된 솔잎란과 백량금이 자라는 희귀식물 분포지이다.
이곳의 암벽에 자라고 있는 솔잎란은 뿌리와 잎이 없고 줄기만 있는 유관속 식물 중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식물이며, 멸종위기의 희귀식물로서,
제주도에서도 희귀하다.
천제연 난대림지대는 희귀식물과 난대성식물이 풍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난대림지대 중의 하나로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제1폭포에 도착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물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신비스러운 물빛과 조금은 음산한 분위기가 어우려져 몽환적인 자태를 뽐낸다.
떨어지는 물은 없는데 어디어 물이 흘러들어오나 궁금했는데...오른편 동굴에서 물이 유입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굴 천정에서는 늘 차갑고 맑은 물이 떨어진다. 동굴에서 용이 나와서 기우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도 하며,
아기 못 낳는 사람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얻는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백중날과 처서날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이 낫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동굴 속에 드러누워 물맞이를 하였으나
관광지가 되면서 지금은 물맞이 풍속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기 못 낳는 사람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얻는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백중날과 처서날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이 낫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동굴 속에 드러누워 물맞이를 하였으나
관광지가 되면서 지금은 물맞이 풍속이 자취를 감추었다.
제1폭포에서 300여미터 밑으로 이동하여 제2폭포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도 반갑고 아름다운 주변의 풍광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가득채워주는 것 같다.
흘러내리는 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폭포속 숨은 비경을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흘러내리는 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폭포속 숨은 비경을 엿볼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폭포인데...왜 물이 떨어지지 않냐고 불만이었던 아이들이 이제서야 제대로된 제2폭포의 위용앞에 하얀이를 드러낸다.
제주도 3대폭포 중 첫번째 방문지였던 천제연폭포의 매력은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한 각기 다른모습의 세가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난대림지대의 폭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폭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난대림지대의 폭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폭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올라가서 제3폭포로 이동하려면 500m 라는 만만치 않은 거리를 가야한다.
또한 유량이 많아서 제2폭포처럼 밑으로 내려가서 관람할 수 없고 위쪽에서 관람해야 한다.
하지만, 난대림과 어우러진 폭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제3폭포다.
낙차는 크지 않지만 유량이 많아서 가장 폭포다운 모습을 갖춘 폭포의 면모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또한 유량이 많아서 제2폭포처럼 밑으로 내려가서 관람할 수 없고 위쪽에서 관람해야 한다.
하지만, 난대림과 어우러진 폭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제3폭포다.
낙차는 크지 않지만 유량이 많아서 가장 폭포다운 모습을 갖춘 폭포의 면모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다만,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걷고 결국 도착해서는 낙차가 크지 않은 폭포의 모습에 실망하는 관람객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제2폭포까지만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제2폭포까지만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다.
폭포와 중문관광단지를 이어주는 아치형 철제다리인 선임교를 둘러볼 차례다. 일명 칠선녀다리!
그리 길지는 않지만 꽤 경사가 있어서 가파른 언덕의 느낌을 준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꽤 경사가 있어서 가파른 언덕의 느낌을 준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엄청 높아서 밑을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날 만큼 아찔하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한라산 정상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는 선명하게 보이는데 똑딱이로 찍어서인지 한라산 정상이 사진에는 너무 흐리게 나와서 아쉽다.
실제로는 선명하게 보이는데 똑딱이로 찍어서인지 한라산 정상이 사진에는 너무 흐리게 나와서 아쉽다.
줌으로 당겨서 찍어봤지만...그래도 역시 부족하다.
선임교에서 바라본 제1폭포와 제2폭포의 모습
안내판에 붙어있는 사진을 사진찍어본 것이다.
이정도 유량이면 여름 장마때의 사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정도 유량이면 여름 장마때의 사진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양쪽 옆면에는 칠선녀의 전설을 살려 각각 다른 악기를 든 일곱 선녀상이 양쪽에 조각되어 있다.
한개의 길이가 20미터나 되는 14개의 선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선임교를 건너면 전통적인 건축형태인 누각인 천제루와 폭포전망대에 갈 수 있다.
폭포전망대에서 보면 조금 더 좌측으로 이동하여 각도상 천제연폭포의 모습을 조금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
한개의 길이가 20미터나 되는 14개의 선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선임교를 건너면 전통적인 건축형태인 누각인 천제루와 폭포전망대에 갈 수 있다.
폭포전망대에서 보면 조금 더 좌측으로 이동하여 각도상 천제연폭포의 모습을 조금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천제루는 계단을 올라
피안의 신선도와 선녀도가 그려진 2층 누각에 오르면
한라산과 폭포, 탁트인 바다의 절묘한 조화로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천제루 앞에는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만든 '오복천(五福泉)'조각상이 있다.
이 오복천 조각상 꼭 대기에서 샘솟는 원형의 자그마한 복주머니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오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관람객은 동전을 던지며 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실은 이 돈으로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에서 주변 불우이웃을 돕는다.
복을 전해준다는 다섯가지 동물은 각각 수(壽)·귀(貴)·부(富)·애(愛)·자(子)를 상징하는 거북·용·돼지·원앙·잉어다.
원하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앞에 서서 동전을 넣어 가운데 복주머니에 넣으면 된다.
원하는 복을 상징하는 동물앞에 서서 동전을 넣어 가운데 복주머니에 넣으면 된다.
오복천 오른편으로 길을따라 돌계단을 올라가면 폭포전망대가 있다.
각도상 선임교에서 보다 천제연폭포를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이긴 하나 직접 폭포를 둘러보았다면 굳이...
천제연폭포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번엔 제주도 3대폭포 관람 두번째인 천지연폭포로 이동하였다.
천제연폭포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번엔 제주도 3대폭포 관람 두번째인 천지연폭포로 이동하였다.
천지연폭포 입구 천지연광장에 주차를 하고...
역시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었다.
역시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었다.
들어서자 마자 제주도 전통배인 테우의 모습이 보여서 잠시 멈춰섰었는데...
오른편으로 오리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오른편으로 오리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바로 앞에서 먹이사냥에 여념이 없어서인지 전혀 경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
원앙의 모습도 보이고...
내가 만만해 보이나?
원앙의 모습도 보이고...
그런데 멀리서 우아하게 한마리 백로가 날아오더니 이내 자지를 잡고 자태를 뽑낸다.
동물원에 온 느낌이 들만큼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미처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팔뚝보다 큰 잉어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천연기념물 제27호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처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팔뚝보다 큰 잉어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천연기념물 제27호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천지연은 천제연과 함께 난대림지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천지연 난대림지대 - 천연기념물 제379호
천지연 난대림은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천지연폭포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빽빽히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난대림은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새덕이, 사스레피나무, 후추, 보리장, 송악, 마삭줄,
제비꼬리고사리, 담팔수, 솔잎난 등과 많은 종류의 고사리들이 자라고 있다.
천지연 난대림은 희귀식물인 솔잎난과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많은 종류의 나무와 고사리 종류들이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록수림 중의 하나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천제연 난대림지대가 천연기념물 제378호이고 천지연 난대림지대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함께 지정되었다.
천지연 난대림지대 - 천연기념물 제379호
천지연 난대림은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천지연폭포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빽빽히 우거져 숲을 이루고 있다.
난대림은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새덕이, 사스레피나무, 후추, 보리장, 송악, 마삭줄,
제비꼬리고사리, 담팔수, 솔잎난 등과 많은 종류의 고사리들이 자라고 있다.
천지연 난대림은 희귀식물인 솔잎난과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많은 종류의 나무와 고사리 종류들이 자라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록수림 중의 하나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천제연 난대림지대가 천연기념물 제378호이고 천지연 난대림지대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함께 지정되었다.
민수가 덥다고 옷을 차에 두고 오는 바람에...뒤에 오던 아내에게 챙겨오라고 했다.
아무리 더워도 그래도 11월인데...
아무리 더워도 그래도 11월인데...
천지연폭포를 만나려면 이 천지연계곡 난대림지대를 따라 나있는 약 1km의 산책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천지연 하류에 서귀포 수력발전소가 있었다.
1943년에 세워졌었는데...이때부터 서귀포시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게 되었다.
천지연 생태계 보호를 위해 1972년에 철거되었지만 그 터를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다.
1943년에 세워졌었는데...이때부터 서귀포시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게 되었다.
천지연 생태계 보호를 위해 1972년에 철거되었지만 그 터를 설명해 주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에도 오리들이 떼지어 있었다.
천지연폭포에 도착했다.
조면질 안산암의 기암절벽이 하늘높이 치솟아 마치 선계(仙界)로 들어온 것같은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폭포의 절벽은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조면질(組面質)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폭포수의 폭은 약 12 m이고 높이 22
m에서 세찬 옥수가 떨어진다.
수심 20m의 호(湖)를 이루는 천지연의 맑고 깊은 물 또한 폭포 못지않은 시원함을 전해준다.
수심 20m의 호(湖)를 이루는 천지연의 맑고 깊은 물 또한 폭포 못지않은 시원함을 전해준다.
야간조명시설이 돼있어 11~4월에는 밤 10시까지 5~10월까지는 밤 11시까지 야간관광이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최적지이다.
매년 서귀포칠십리축제가 천지연광장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매년 서귀포칠십리축제가 천지연광장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유량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천지연'이라는 이름이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란 뜻일 만큼 폭포의 절벽과 폭포의 모습이
절묘하게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천지연폭포는 천제연폭포와 비교하면 잘 정돈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제연폭포가 비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 나무계단 돌길을 지나 어렵게 닿는 곳이라면
이곳 천지연폭포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넓은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천제연폭포가 비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 나무계단 돌길을 지나 어렵게 닿는 곳이라면
이곳 천지연폭포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넓은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천제연폭포가 원시적인 느낌의 난대림지대와 함께 한다면 천지연폭포는 정원사가 이쁘게 가꿔놓은 듯한 난대림지대와 함께한다.
천제연폭포가 탐방이라면 천지연폭포는 산책이다.
만약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 중 한곳만 간다면 어디를 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라면 쉽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천지연폭포가 좋을 듯 하고
조금 힘들지만 다양한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한다면 천제연폭포를 추천한다.
천제연폭포가 탐방이라면 천지연폭포는 산책이다.
만약 천제연폭포와 천지연폭포 중 한곳만 간다면 어디를 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라면 쉽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천지연폭포가 좋을 듯 하고
조금 힘들지만 다양한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한다면 천제연폭포를 추천한다.
천지연폭포로 들어가는 길과 나가는 길이 구분되어 있는데...나가는 길에도 산책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중간에 다리를 건너면 반대편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중간에 다리를 건너면 반대편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천지연계속 건너편에서 걷다가 징검다리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다리를 다시 건너면 처음 들어온 진입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가벼운 산책코스로 난대림지대의 폭포를 만날 수 있는 천지연폭포의 관람을 마치고...
이제 제주도 3대폭포의 마지막 세번째 정방폭포를 만나러 가야 한다.
1박2일에 소개되면서 무지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정방폭포로~
천지연폭포에서 불과 2km 차로 5분여 거리에 있기 때문에 금방 도착했다.
1박2일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다른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주차장이 차들이 가득차있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서복전시관의 주차장을 임시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서복전시관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쪽 주차장을 이용해서 별 불편함은 없다.
가벼운 산책코스로 난대림지대의 폭포를 만날 수 있는 천지연폭포의 관람을 마치고...
이제 제주도 3대폭포의 마지막 세번째 정방폭포를 만나러 가야 한다.
1박2일에 소개되면서 무지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정방폭포로~
천지연폭포에서 불과 2km 차로 5분여 거리에 있기 때문에 금방 도착했다.
1박2일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다른 관광지들과는 다르게 주차장이 차들이 가득차있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서복전시관의 주차장을 임시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서복전시관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쪽 주차장을 이용해서 별 불편함은 없다.
계단을 내려가 5분정도 걸으면 된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정방폭포의 모습
주변의 해안절경의 모습과 더불어 제주도 3대폭포 관람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정방폭포의 모습
주변의 해안절경의 모습과 더불어 제주도 3대폭포 관람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폭포도 폭포지만 주름잡혀있는 듯한 해안절벽의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찌 저런 모양이 될 수 있는지...해안절경의 모습이 신기하고 신비스럽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소정방폭포도 그렇지만 소정방폭포도 정방폭포니까...
작은 무지개의 모습도 보인다.
소정방폭포도 그렇지만 소정방폭포도 정방폭포니까...
작은 무지개의 모습도 보인다.
높이 23m의 두 줄기의 폭포가 까만 절벽에서 쏴 하는 장쾌한 폭포음과 시원한 바다와 어울려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게다가 폭포 주위의 수직절벽과 노송들이 더해져 예부터 이 경관을
게다가 폭포 주위의 수직절벽과 노송들이 더해져 예부터 이 경관을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았다.
정방폭포 절벽에는 `서불과차(徐不過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 진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왔던 서불이라는 사람이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돌아가다가 정방폭포의 아름다움 에 흠뻑 취해
정방폭포 절벽에 `서불과차` 라는 글자를 새겼다 하는데, 실제 이 글을 찾을 수는 없다.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에서 서귀포라는 지명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량이 많지않아 돌을 밟고 지나 반대편에서 찍어본 사진이다.
물보라 때문에 주변 돌들이 다 젖어 있어서 미끄럽다.
혹시 다칠까봐 아이들은 건너오지 못하게 했다.
물보라 때문에 주변 돌들이 다 젖어 있어서 미끄럽다.
혹시 다칠까봐 아이들은 건너오지 못하게 했다.
『탐라록』에는 “이곳 정방연못에서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거북이들이 수면으로 떠올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전해오며,
『지영록』에는 정방폭포를 경노연이라 부른다고 하고 있다.
『지영록』에는 정방폭포를 경노연이라 부른다고 하고 있다.
물보라가 심해서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몇장 찍고나면 어느덧 축축한 느낌이 든다.
바람이 불지않아 다행이었지만 만약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물보라가 엄청 심할 것 같다.
바람이 불지않아 다행이었지만 만약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물보라가 엄청 심할 것 같다.
이렇게 원래 여행일정에는 없었지만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기념으로 급하게 이벤트로 구성한 제주도 3대폭포의 관람을 모두 마쳤다.
폭포를 소개하면서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곳이 있다.
역시 1박2일에 소개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엉또폭포
평소에는 폭포를 볼 수 없지만 비가 오면 생기는 엉또폭포
제주 여행시 비가 많이 오면 너무 불평만 하지말고 엉또폭포를 찾아가면 조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 소개한다.
2009년 6월 30일 엉또폭포
폭포를 소개하면서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곳이 있다.
역시 1박2일에 소개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엉또폭포
평소에는 폭포를 볼 수 없지만 비가 오면 생기는 엉또폭포
제주 여행시 비가 많이 오면 너무 불평만 하지말고 엉또폭포를 찾아가면 조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 소개한다.
2009년 6월 30일 엉또폭포
우선 엉또다리에 도착하면
엉또폭포 안내문이 보인다.
주차를 시키고 길을 따라 250미터 가면...
엉또폭포를 만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날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비의 양이 많지 않아 폭포의 물줄기가 너무 갸녀리다.
보일듯 말듯 숲 속에 숨어지내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 때 위용스러운 자태를 드러내 보이는 엉또폭포의 높이는 50m에 이른다.
주변의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폭포 주변의 계곡에는 천연 난대림이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되어 있으며 사시사철 상록의 풍치가 남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서귀포시 강정동 월산마을을 지나 500여m 악근천을 따라 올라가거나
신시가지 강창학경기장(월드컵보조경기장)앞 도로에서 감귤밭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800m 정도 가면 엉또폭포를 만날 수 있다.
엉또폭포는 서귀포 70경 중의 하나이다.
[한국관광공사]
주변의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폭포 주변의 계곡에는 천연 난대림이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되어 있으며 사시사철 상록의 풍치가 남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서귀포시 강정동 월산마을을 지나 500여m 악근천을 따라 올라가거나
신시가지 강창학경기장(월드컵보조경기장)앞 도로에서 감귤밭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800m 정도 가면 엉또폭포를 만날 수 있다.
엉또폭포는 서귀포 70경 중의 하나이다.
[한국관광공사]
(2010년 8월 26일 전날 밤새도록 비가 내려서 엄청난 물을 쏟아내는 엉또폭포를 한국야구명예의 전당 주차장 전망데크에서...)
비오는 날 보다는 비가 많이 온 다음날에 찾아가면 폭포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
한가지 팁을 하면....
서귀포 신시가지 강창학경기장 옆에 위치한 한국야구명예의 전당 입구 주차하는 곳에 엉또폭포 전망대가 있다.
지나는 길에 이곳에서 폭포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면 헛걸음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제주도 폭포관람을 마무리하고...다음은 이제 숨겨진 비경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린 쇠소깍으로...
비오는 날 보다는 비가 많이 온 다음날에 찾아가면 폭포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
한가지 팁을 하면....
서귀포 신시가지 강창학경기장 옆에 위치한 한국야구명예의 전당 입구 주차하는 곳에 엉또폭포 전망대가 있다.
지나는 길에 이곳에서 폭포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면 헛걸음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제주도 폭포관람을 마무리하고...다음은 이제 숨겨진 비경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린 쇠소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