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의 애처로운 울음이 자애로운 부모의 부름이다
일체중생은 모두 나의 부모이다
중생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일본의 오래된 와카(和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ほろほろと鳴く山鳥の声聞けば、父かとぞ思い、母かとぞ思う。」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새가 애처롭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저것이 전생의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인가,
혹은 나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부름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중생은 생사에서 유전하며, 그 누구인들 전생의 친족이 아니겠는가?
불경에서는 말합니다. 모든 중생은 육도 속에서 무시이래 윤회하며 떠돌기를, 마치 수레바퀴가 시작과 끝 없이 도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에서 하늘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했으며, 또 수없이 고양이와 개 같은 가축이 되거나 들짐승과 산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와 모든 중생은 이미 깊고 무거운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때로는 부모가 되었고, 때로는 자녀가 되어 세세생생 서로 은혜를 주고받았지만, 한 번 생을 달리하면 곧 잊어버리기에 전생을 알지 못하고 옛 부모 또한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는 고인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들짐승과 산새 가운데, 누가 옛 친족을 알아보랴.”
만약 삼세인과와 육도윤회의 도리를 밝히 안다면, 다시 중생을 바라볼 때 더 이상 낯선 존재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자연히 친근함과 자비로운 연민의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袖ふりあうも、多生の縁。」
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길을 가다 옷소매가 스치는 일조차도,
모두 여러 생에 걸친 인연이다.”
버스나 기차에서 우연히 같은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이나,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 또한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인연이 없다면,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생의 부모에 대한 이러한 감회는, 염불하는 이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즉, 그 산새의 울음소리 또한 어찌 우리를 향한 아미타불의 애처로운 부름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육도 속에서 무량겁을 윤회하며 이미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미타불께서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듯, 잠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갖가지 인연을 통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만일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인연조차도 여러 겁에 걸친 인연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면, 이번 생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를 듣고, 그것을 믿으며 부를 수 있게 된 일은 더욱 우연일 수 없습니다. 이는 아미타불께서 십겁 이래 끊임없는 자비로 우리를 보살피고, 서서히 성숙하게 이끌어 오신 결과입니다.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아미타불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며, 아미타불의 구제에 수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한 번의 만남이 아니라, 끝없는 윤회 속에서 마침내 자애로운 부모의 부름을 듣고, 부처님의 광명에 섭취되어 편안히 정토로 돌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첫댓글 산새의 애처로운 울음이 자애로운 부모의 부름이다.너무나 큰 마음의 울림이 일어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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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곧
아미타불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며,
아미타불의 구제에
수순하는 것입니다.
염불의 의미가 새롭습니다.
즉 염불은 신수미타구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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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 우리를 보살피고,
서서히 성숙하게 이끌어 오신
결과입니다.
우리가 부르는게
아닌 아미타불께서 부르심이라는
법문이 마음을 체웁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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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극락자부의 부름에 큰 소리로 대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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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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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念佛真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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