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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멜기세덱 - 영원한 대제사장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엘 나무 강단 강의를 계속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의 어휘를 찾아서 함께 연구하는 어휘 연구 시간입니다. 목적에 대해서는 누누이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생략하고요, 오늘 살펴볼 35번째 어휘는 '멜기세덱'입니다. 어휘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이름이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성경에서 그 중요성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표상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실제적인 인물이었으면서 또한 그 인물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7절에서 24절을 보면 하나의 삽화가 나옵니다. 삽화라는 것은 책을 읽어가다가 가운데에 넣어두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그림을 뜻하지요. 마치 멜기세덱은 성경 역사 속 한 폭의 삽화와 같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삽화와 같은 사건이에요. 매우 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매우 깊은 것입니다. 그 장면은 전투에서 돌아오는 아브라함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조우, 즉 만나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은 하나의 위대한 표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중요한 모습을 우리에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분의 이름이 멜기세덱입니다. '멜기'라고 하는 것은 '~의 왕'이라는 뜻이고, '세덱'은 '의(義)'라는 뜻입니다. 즉, 그의 이름 자체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우선 그의 이름 자체가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왕은 의롭다' 또는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두 가지 다 의미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의 의미를 히브리어로 풀어서 히브리서 7장 2절에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의로운 임금이시요 유일한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가리키는 어떤 단어나 물체, 혹은 사람들은 '의롭다' 하는 칭호로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중 한 분입니다. 여기 보십시다. 예레미야 23장 5절과 6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타나실 것을 '가지', '순'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라는 표현처럼 그리스도가 아주 연약한 존재로서 나타나 자라날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예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선언하지요. 예레미야 23장뿐만 아니라 33장에도 똑같이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어야말로 진정한 의의 왕이십니다. 참으로 천하를 공의로 다스릴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그 이름으로써 예표하면서 나타나는 왕이 바로 멜기세덱, 즉 의의 왕입니다. 이름의 의미가 의의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둘째, 그의 신분은 '살렘 왕'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살렘 왕이라 합니다. 살렘 왕은 '살렘'이라는 말이 '샬롬'과 같은 어원입니다. 즉 '평강의 왕', 그가 다스리면 평화로워지는 왕을 뜻합니다. 멜기세덱의 신분이 살렘 왕이라고 한 것은 히브리어로 '샬렘'인데, 평화 또는 평강을 나타내는 '샬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렘 왕은 평화의 왕, 평화의 도시 즉 예루살렘의 왕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칭호인 살렘 왕 역시 영락없이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그분이 평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이사야 9장 6절에서 그를 일컬어 여러 가지 칭호를 붙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평강의 왕'입니다. 이사야 9장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그것을 보존하는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한 아기로 태어나실 때에 대한 예언을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이 구절이 가사로 들어간 헨델의 메시아 노래를 듣지 않습니까? "그 이름은 평강의 왕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는 노래의 가사가 바로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처럼 단순히 평강의 왕이기도 하지만, 문자 그대로 '살렘의 왕', 즉 예루살렘의 왕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앞으로 예루살렘의 왕이 되십니다. 지상에서는 왕 노릇 하지 않으셨고 구주로 오셨기 때문에, 하늘의 새 예루살렘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살렘 왕, 즉 평강의 왕이 되셔서 영원한 평화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리적으로는 이 땅 이스라엘의 수도요, 성경의 예언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이 앞으로 함께 가서 살게 될 나라의 수도입니다. 우주의 왕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도성이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 평강의 왕 예수님을 가리키는 인물이 바로 멜기세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참된 교회, 즉 그의 신실한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것을 다스리는 왕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모든 예언이 우리 주님을 향하여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의 직분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또 다른 직분입니다. 그의 신분과 직분이 이렇게 아주 철저한 것들인데, 모든 것 하나하나가 우리 주님이 어떤 역할을 하실지 보여줍니다. 왕으로서 다스리기도 하고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실 것을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었을뿐만 아니라, 매우 존귀한 직분인 '하느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는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창세기 14장에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누구의 제사장이냐 하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굉장히 존귀한 제사장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어떤 직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서 봉사하실 것인지를 예감케 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의 표상으로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모습은 제사장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매우 상세하게 논증하는 책이 바로 신약의 히브리어 성경,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 4장, 5장, 6장, 7장의 네 개의 장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아주 오해의 여지없이 풀어헤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몇 구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과 15절을 같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이 아닙니다. 다 경험하셨습니다. 인간이 되셔서 우리 인생의 모든 짐을 다 경험해 보신 분이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다 받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통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시고 체휼하시는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명시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유대인의 제사장 지파인 레위 족의 제사장 직분보다도 더욱 뛰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110편 4절에 나오는 다윗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참 신비해요. 시편 110편은 다윗이 쓴 시인데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히브리서 5장 6절에 인용했고, 6장 20절에서도 거듭 말하기를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강조합니다.
이 논쟁은 7장에 가서 또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7장 11절 이하를 보십시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온전하게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논리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예언대로 네 번째 지파인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본래 제사장이 되려면 셋째 지파인 레위 지파의 후손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레위인이 아니고 유다 지파로 오셔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유다 지파가 제사장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땅의 제도 시스템으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레위 계통 제사장 족속의 후예로 오시지 않은 것은, 그보다도 더 온전하고 특별한 신적 제사장 직분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 이유를 여기서 설명합니다. 별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레위 지파에 대해서는 제사장이 될 것을 많이 말했지만 유다 지파는 없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의 통상적인 제사장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레위 계통이 아닌 유다 지파에서 특별하게 세워진 제사장이 되셨다는 영원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즉 레위 지파의 혈통을 따라서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된 것이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무궁한 능력으로 된 것입니다.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7장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예언적으로 노래했던 시편 110편의 성취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었다" 할 때의 이 '너'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말합니다. 메시아를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는데, 우편은 항상 권위와 힘의 자리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그리고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예언합니다. 다윗은 시를 통해 앞으로 나타나실 특별한 메시아 제사장 한 분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편에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는 시가 많습니다. 시편 150개 가운데 한 40개가 예수님에 대한 노래입니다. 앞으로 오실 구주를 다윗이 글로 많이 남겼습니다. 시편 23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할 때의 그 여호와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 외에도 시편 45편, 89편, 110편 등을 '메시아 시편'이라 부릅니다.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되겠다고 한 사상은, 아브라함 시대에 나타났던 그 멜기세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직 레위가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레위의 아버지 야곱, 야곱의 아버지 이삭, 이삭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잖아요. 아브라함을 만난 특별한 제사장 멜기세덱처럼, 인위적인 계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한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리라는 것을 다윗이 미리 예언한 것이 시편 110편입니다. 그것을 지금 여기다 적용하는 책이 히브리서 7장입니다.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만든 기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선언에 의해 세워진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서 세습되었거나, 아들에게 계승되는 혈통적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과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앞사람에게서 세습되거나 후임자에게 양도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그냥 제사장 직분만 뚜렷하게 나타났다가 끝이 났고 그 외에는 족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제사장 직분은 독특하고도 고유한 것입니다. 특별하게 세운 것이며, 예수님이 그렇게 특별하게 세워지실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점에서 멜기세덱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매우 직접적으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멜기세덱이 그렇게 했듯이 그의 제사장 직분을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받으셨고, 또 물질로 된 기름이 아니라 즐거움의 기름, 희락의 기름으로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시편 45편 말씀처럼 왕의 동료들보다 뛰어 나게 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의 시가 성취되어 존귀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의 제사장 직분에는 전임자도 후임자도 없습니다. 구주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가 제사장도 아니셨고 물론 아들도 이 세상에 없으시며, 오직 그분만이 영원히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왔다고 한 구절도 제가 보기에는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어이지요? 바로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성만찬 예식에서 쓰신 성물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고, 그 만찬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떡은 내 살이요, 이 잔은 내 피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내 살이 찢기고 내 피가 흘려지는 나의 희생을 기념하라는 뜻입니다. 빵을 먹으려면 떼어서 씹어 먹지 않을 수 없고, 포도즙을 만들려면 포도 알갱이를 짓짜야 만들어집니다. 고난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이 성만찬 예식을 통해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떡과 포도주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적으로 배가 고파서 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이 예물을 가지고 온 것은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는 실물 교훈입니다. 이와 같이 함축된 의미를 지닌 떡과 포도주를 멜기세덱이 가지고 왔다는 사실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존재, 즉 고난당하실 그리스도의 표상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 멜기세덱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좀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이 보여주고 있는 신비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의 근원에 관한 정보가 성경에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어디 출신인지, 누구의 아들인지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문득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뒤, 구약에서는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딱 한 번 언급된 곳이 시편 110편 4절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구절뿐이니 참 신비하지요. 히브리서 7장 3절에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도 실제 역사 속에서 부모에게서 태어났던 인간이었을 텐데 어찌 아버지가 없고 족보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고의로 누락되어 있어서 문득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 같습니다. 원래부터 부모가 없었거나 출생과 사망이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족보와 후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사항을 짐짓 감추시고 성경 기자들이 이에 대하여 깊은 침묵을 지키도록 인도하심으로써, 멜기세덱으로 하여금 더욱 뚜렷한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등장하게 하셨습니다.
비유컨대, 그리스어야말로 그의 인성의 측면에 있어서는 남자의 혈통으로 말미암아 잉태된 것이 아니므로 아비가 없으십니다. 물론 법적인 족보상의 아버지는 요셉이지만, 요셉은 그의 피를 직접적으로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성의 측면으로 보면 그분의 본질은 원래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 말씀처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하셨으니, 이 땅의 육신적 계보를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혈통 관계를 초월하여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며 족보가 없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계시는 분이므로 예수님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으십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즉 닮은 모형이었지만 예수님은 아들 그 자체이십니다. 이런 조화를 오묘하게 연결시키는 책이 히브리서입니다. 참 재미있는 책이지요. 간추려서 말하면, 멜기세덱의 근원에 대한 성경의 완전한 침묵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자존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근원에 대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한 사상은, 멜기세덱이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창세기 14장에 슥 나타났다가 다 사라진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전후 계보가 없는 이 특징이, 마치 예수님이 하늘에서 사람이 되어 오신 영원한 존재이심을 암시하고 함축적으로 상징한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침묵이 이러한 영적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10분의 1을 그에게 주었느니라"고 논증합니다. 레위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들에게서 10분의 1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습니다. 레위 자손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제도를 따라서 12지파로부터 십일조를 거두어 생활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더 존귀한 권위를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그 약속을 받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축복한 것입니다. 보통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축복합니까,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합니까? 높은 자가 아래 사람에게 축복합니다. 히브리서 7장 7절 말씀처럼 "논쟁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머리에 손을 얹고 복을 빌었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존귀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분의 계통을 따라 이 땅에 오신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위대한 논리인 것입니다.
또한 10분의 1을 받는 레위조차도, 당시 조상인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칠 때 레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후손으로 나타날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장차 나타날 레위 계통 제사장 제도를 포함하여 멜기세덱에게 바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태어나지 않았던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도전을 던집니다. 레위 제사 제도가 절대적으로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가 나온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봉사가 가장 온전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되어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도 레위 지파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구속 계획에 의하여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반차(Order)'라는 말은 특별한 계통이나 서열을 말합니다.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멜기세덱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여러 가지 유사점과 평행을 이루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귀중한 표상(Type), 즉 모형이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 본문을 다시 보면,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레위 제사장들보다 훨씬 오래전, 그들의 증조할아버지 시대의 인물임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이 멜기세덱의 신비가 다윗의 시편 110편 1절 이하에 예언적으로 투영되어 나타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라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메시아를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우편, 즉 권위와 힘의 자리에 있으라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그리고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권능의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첫째, 이름은 '멜기세덱'이고 그 뜻은 '의의 왕'인데,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의로운 가지이시며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둘째, 그의 신분은 '살렘 왕'입니다. 곧 평강의 왕이시며 새 예루살렘의 주인이자 우리의 화평이 되시는 분입니다.셋째, 그의 존재적 특징은 성경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묘사되었는데, 실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 자체이십니다. 멜기세덱은 모형이었고 예수님은 실체이십니다.넷째, 그의 직분은 혈통적 세습이 없는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귀중한 신학적 포인트를 멜기세덱을 통해 우리에게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가 아브라함을 맞이할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축복했습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성만찬 예식에 사용되는 성물로서, 그것의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 즉 대속의 희생을 우리에게 미리 말해주는 실물 교훈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멜기세덱이 보여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아담도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의 조상이 될지 몰라도, 영적으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 구주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마셔야만 구원을 얻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멜기세덱을 통해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보여주는 대단한 모형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취하고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않은 이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조상에게서 예물을 받고 복을 빌어준 이 정황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빌림을 받는다는 원칙에 따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영적으로 더 우월한 존재였음을 논증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십일조를 받고 축복을 베푸는 자가 십일조를 바치고 축복을 받는 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세상 이치로도 당연합니다. 바치는 자가 낮은 것이고 복을 받는 자가 복을 비는 자보다 낮은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탁월함과 위대함을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요한복음 8장에 천명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선재하신 분이고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신 분임을 밝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 멜기세덱 사건을 결부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점에 있어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방불한 모형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멜기세덱은 참으로 제사장이고, 평강의 왕이며, 의의 왕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신분,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시는 대속 사역을 미리 보여준 영원한 대제사장의 모형입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우리 주님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모형과 표상이 참 많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인물이 바로 우리 주님의 그림자였구나" 생각하시면서, 성경이 우리 주님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히 계시해 두신 귀한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제목으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멜기세덱(Melchizedek) 연구의 목적과 의의: 성경의 중요한 인물이자 어휘인 멜기세덱을 연구하는 것은, 그가 구약 성경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표상(모형, Type)'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의 이름과 신분의 영적 의미:
이름의 뜻 (의의 왕): '멜기(왕)'와 '세덱(의)'이 합쳐진 이름으로 '의의 왕'을 뜻합니다. 이는 공의로 천하를 다스리시며 '여호와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예레미야 예언)를 직접 예표합니다.
신분의 뜻 (평강의 왕 / 살렘 왕): 평화와 평강을 뜻하는 샬롬에서 유래한 '살렘(예루살렘)의 왕'입니다. 이는 이사야 9장의 예언대로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시어 하늘 새 예루살렘의 왕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레위 제도를 초월하는 우월한 제사장 직분 (반차):
반차(서열)의 차이: 통상적인 구약 제사장은 레위 지파(아론의 자손) 중에서 혈통으로 세습되었으나, 예수님은 레위인이 아닌 유다 지파 출신이십니다.
멜기세덱의 반차: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생기기도 전(아브라함 시대)에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위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임명된 제사장입니다. 다윗의 시편 110편 예언대로, 예수님은 아론 계통의 불완전한 제사 제도를 폐하고 '멜기세덱의 서열(반차)을 따르는 영원하고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음을 히브리서(4~7장)는 강력히 논증합니다.
성경의 침묵이 지닌 신비성 (신성과 자존성):
창세기 14장에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진 멜기세덱은 성경 기록상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과 죽은 날의 기록이 전무합니다.
이러한 기록상의 침묵은 인간적 혈통을 초월하여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자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적 영원성'을 완벽하게 암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적인 감추심입니다.
떡과 포도주, 그리고 십일조의 교훈: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가지고 나온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뜻하는 성만찬의 모형이며,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라 할지라도 오직 메시아의 대속 희생을 통해서만 구원받는 존재임을 가르치는 실물 교훈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복 빌림을 받은 것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원칙에 따라 멜기세덱(그리스도의 모형)이 아브라함 및 그의 허리에 있던 레위 제도보다 훨씬 우월하고 탁월한 존재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