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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冥府殿)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단층 목조건물로 자연석과 화강암 장대석을 섞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정면에는 어간과 좌우의 협간에 문이 달려있고 나머지는 판벽인데 판벽에는 희미하게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석등
명부전 앞의 일본식 석등은 점촌읍 일리 김동규 봉헌 병진년10월(店村邑 一里 金東圭 奉獻 丙辰年十月)이란 글로 미루어 보아 일제강점기인 1916년 10월에 세워졌습니다.
명부전 내부 불단에는 지장보살좌상 및 좌우 협시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비롯하여 시왕상과 금강역사상, 판관상, 사자상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입상의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피곤해 하실까 봐 가끔은 앉으시라고 앞에 의자를 준비해 두었고 뒤에는 원래 무량수전에 걸여 있었던 1876년 제작의 지장탱화가 걸려 있습니다.
명부전 지장탱화
고종13년(1876년)에 제작되었으며 원래 무량수전(無量壽殿)에 안치되었던 불화로 화면에는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시왕과 그 권속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중앙의 지장보살삼존 왼쪽에는 홀수의 시왕과 판관, 사자, 옥졸 등을 두었고 오른쪽에는 짝수의 시왕과 판관, 사자, 옥졸 등을 배치한 형태이며 여기에 화면 상단의 지장보살 주위에 6보살이 좌우 대칭으로 표현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문양의 생략, 음영이 심한 옷주름 표현, 적색, 녹색, 청색, 황색, 흰색 등의 두드러진 채색 등에서 19세기 말경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만은 천의 대신 가사를 입고 지옥문을 부순다는 석장 욱환장과 어둠을 밝히는 구슬 장상명주를 지물(持物)로 들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 지장상처럼 지물 없이 아미타 구품인 손갖춤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살 중에 으뜸, 관세음보살이 현실의 죄와 고통을 없애주는 데 비해 지장보살은 민중의 관심이 현실세계 못지않게 큰 사후세계 명부에서 중생을 구원하기에 관음보살과 함께 가장 폭넓게 숭배받는 보살입니다.
그런데 왜 머리가 초록인지 궁금해하다가 불교의 전형적 도상에서 지장보살과 부처 10대 제자를 비롯해
승려처럼 파르라니 깎은 존상의 머리를 초록색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0^
부처와 보살은 연꽃좌대에 올라 앉아 있지만 역시 지장보살만은 이렇게 보료에 앉아 있습니다.
연꽃과 연밥, 연덩굴 자수가 곱습니다
도명존자
좌협시는 승려 모습을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승려였던 도명존자입니다.
8세기 중국 양주에 있던 개원사 승려였다고 전해집니다.
저승사자에게 불려갔다가 명부에서 지장보살을 만나고 돌아와 명부와 지옥 그림을 자세히 그려 세상에 전했다고 합니다.
무독귀왕
후협시는 무독귀왕입니다.
지장보살의 전신인 소녀가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지려고 무간지옥에 갔을 때
친절하게 소녀를 안내해준 인연으로 지장보살 옆에 서게 됐다고 합니다.
이름처럼 사람의 악한 마음(毒)을 없애준다(無)고 해서 무독귀왕입니다.
그래서 귀신의 왕이면서도 이렇게 문관 또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자세히보면 시왕조각상에 모두 수염이 있습니다
제1대왕(진광대왕)
다른 사찰의 명부전 시왕들과는 달리 모두들 나름 멋진 수염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3대왕(송재대왕)
제5대왕(염라대왕)
시왕 중 가장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염라대왕입니다.
제7대왕(태산대왕)
제9대왕(도시대왕)
판관
녹사
사자
사자의 창에는 도끼날을 물고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금강역사
투구를 쓴 매부리코 금강역사가 한 방 단단히 먹이려고 꽉 쥔 주먹을 들어올렸습니다.
명부전 좌우에는 열분의 명부 시왕과 1구씩의 판관, 사자, 동자상이 있으며, 금강역사상이 1구씩 봉안되어 있습니다.
제2대왕(초광대왕)
제4대왕(오관대왕)
제6대왕(변성대왕)
제8대왕(평등대왕)
제10대왕(전륜대왕)
판관
녹사
사자
금강역사
투구를 쓰고 매부리코에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꽉 쥔 금강역사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어리숙하고 우수꽝스러워 보입니다. 대승사의 금강역사는 다른 절의 그것보다 옷차림이 화려하고 요란합니다.
극락전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단층 목조건물이며 정면에는 3칸 모두 4분합문을 달았고 좌측에는 평소의 출입문인 외 여닫이 문을 달았습니다.
극락전(極樂殿) 편액
아미타불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해 주는 부처입니다. 대승사 극락전에 모셔진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상의 머리 부분에서 고려 충렬왕 27년(1301)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다라니가 발견됨에 따라 14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손 엄지와 약지를 구부리고 있고, 손바닥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손금이 남아 있습니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 뒷편에 불단을 설치하여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불로 관음과 지장보살을 두고 있습니다.
극락전에는 중앙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좌협시)에 관세음보살과 왼쪽(우협시)에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14세기 중엽에 조성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표준 불상으로 인정되어 보물 제16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634호)
고려시대 후기에 조성된 이 불상은 조형적 완성도가 높고 보존 상태도 좋습니다. 높이 87cm, 무릎폭 63cm의 불상은 신체는 안정감을 보여주는데 옆에서 보면 상체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불상의 머리 중간과 정상에는 구슬 장식인 계주(髻珠)가 있는데, X레이 결과 이 계주 역시 몸체와 같은 재료인 구리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져, 처음 조성 때부터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계주의 경우 고려 후기 여래상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예입니다.
착의법은, 가사 위에 대의를 걸친 이중착의법인데, 가슴과 배 부분에 마름모꼴의 내의 일부분과 나비 모양의 띠매듭이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대의의 옷주름은 탄력이 넘치고 왼쪽 무릎에는 나무잎 모양 주름이, 오른쪽 발목 아래에는 팔(八)자 모양의 띠주름이 표현되었습니다.
긴 얼굴과 통통한 두 볼, 반쯤 감은 듯한 눈, 반듯한 콧날 및 살짝 올라간 입술에서 고려 중기 불상의 전통을 이은 고려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엿보입니다.
수인은 엄지와 약지를 약간 구부린 하품하생인입니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오른손 손바닥에는 井자 모습의 손금이 표현되었습니다.
이 불상 복장에서 나온 아미타삼존 다라니에 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宮闕都監錄事别將丁承說印出/대덕 5년 신축 5월 20일 궁궐도감 녹사별장인 정승설이 인출하였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려 충렬왕 27년(1301)에 불상이 제작되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시기, 13세기 말 14세기 초의 고려 불상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티벳 계통 불상이 개성 지역에서 유행했던 데에 비해, 이 불상 은 그 이전 시기인 고려 중기 불상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청양 장곡사의 약사불상(1346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복장에서 나온 유물은 대덕 5년 명 다라니, 아미타삼존다라니(1301년 제작), 금강계만다라(1292년 간행), 亞자 범자원상 태장계만다라, 향낭(8 cm)등등, 다라니 3종 12점 향남 1종 1점 등 모두 4종 13점입니다.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극락전 칠성단탱화
가운데에 오른손을 들고 설법하시는 모양의 부처님 한 분을 크게 그리고 (치성광여래 - 북극성의 상징)
그 양 옆으로 일곱 분의 부처님을 다소 작게 그립니다. (칠여래 - 북두칠성의 상징)
그리고 치성광여래 앞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여 있습니다.
부처님 좌측 : 일광보살 - 보관에 붉은색 원(태양)이 그려져 있거나, 붉은색 구슬을 들고 있음
부처님 우측 : 월광보살 - 보관에 흰색 원(달)이 그려져 있거나, 흰색 구슬을 들고 있음
치성광여래 (북극성의 상징)
사면석불
사면석불(四面石佛) (경북 유형문화재 제403호)
사불산 공덕봉 정상 부근 해발 약 600m.
바위는 약 3m 정도의 높이로 보이며 사각형의 네 면에 각각 부처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1기 정도는 뚜렷한 편인데 나머지 3기는 흐릿하고 그중 2기는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습니다.
587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그 돌.
1,400년이 지났습니다.
마멸이 심합니다.
윤곽선만 겨우 남아있습니다.
대승사 사면석불(大乘寺 四面石佛) (경북 유형문화재 제403호)
일연의 『삼국유사』 권2, 탑상제4. 사불산 · 굴불산·만불산 조”에 의하면 “죽령 동쪽 백리쯤 되는 곳에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 갑신(甲申)에 갑자기 사면이 한 길이나 되는 큰 돌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는 사방 여래의 불상을 새기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그 산마루에 떨어진 것입니다. 왕(진평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그 돌을 보고 나서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대승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연경(妙法蓮華經, 또는 法華經)을 외는 중을 청해 이 절을 맡겨 공석을 깨끗이 쓸고 향화를 끊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 산을 역덕산 (德山)이라 하고 혹은 사불산(四佛山)이라고도 합니다. 그 절의 중이 죽어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승사 사면석불은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현재 사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특이한 형태의 불상은 경주의 굴불사지사면석불과 예산화전리사면석불이 있습니다. 석불의 높이는 3.4m, 폭은 2.3m에 이르며, 동과 서는 좌상, 남과 북은 입상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동쪽은 약사여래를, 서쪽은 아미타여래, 남쪽은 석가여래, 북쪽은 미륵여래를 새김으로서 부처님 눈으로 보이는 사방의 땅이 모두 불국토 임을 알려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 쪽은 앉아 있는 여래좌상을 남북 쪽은 서 있는 여래입상을 조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면석불은 마모가 심하여 그 형체를 알아 불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그 중 유일하게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한 면뿐입니다.
사면석불
장군수
공덕산의 기운이 응집된 곳에서 솟아난다고 전해지며 이 물을 마시면 장군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장군들이 이 물을 마셨다고 하여 장군수(將軍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윤필암 가는 길에 부도
윤필암
윤필암(潤筆庵)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였던 청담(靑潭, 1902~1971)의 속가 둘째 딸이며,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성철(性徹, 1912~1993)의 비구니 제자였던, 묘엄(妙嚴, 1931~2011)이 출가 수행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합니다
사불전(四佛殿)
사불전(四佛殿) 편액
하촌 유인석(夏村 柳寅植) 선생의 글씨입니다.
사불전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통유리 너머로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면석불을 향해 예불을 올립니다.
관음전(觀音殿)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큰 건물입니다.
건물 전면에 윤필암이란 편액과 관음전. 적묵당 편액이 같이 걸려 있습니다.
윤필암(潤筆庵) 윤필암(閏筆庵) 편액
潤(윤택할 윤) 閏(윤달윤) 어떠한 글자가 바른 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윤필암(閏筆庵) 편액은 중진 서예가 마하 선주선(摩河 宣柱善 1953~)의 글씨입니다
관음전(觀音殿) 편액
양쪽 적묵당과 관음전 편액은 해인사 주지를 지낸 동곡 일타 (東谷 日陀 1929~1999) 스님이 썼습니다.
만년에 병 조리하러 윤필암에 와 있을 때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적묵당(寂默堂) 편액
대승사 윤필암 신중도 (경북 유형문화유산)
가로 114cm, 세로 158.5cm로 일반 신도가 시주하여 그렸고 1820년 부처님오신날에 봉안했습니다.
화승 두찬(斗贊)이 책임자로 참여한 유일한 그림입니다. 두찬은 사불산 화파(문경 대승사와 김용사에서 활동한 화승)의 신겸(信謙)의 제자입니다.
대승사 윤필암 신중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6호)
대승사(大乘寺) 윤필암(潤筆庵) 신중도(神衆圖)는 가로로 4폭의 비단을 이어 붙여 만든 세로 159㎝, 가로 114.5㎝ 크기의 신중도(神衆圖)입니다.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모두 28위의 존상들을 묘사하였습니다. 화면 하단부의 화기(畵記)를 통해, 1820년이라는 조성연대와 함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경상도에서 활동했던 두찬(斗贊)이 수화승으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면 구성이나 도상 배치, 인물 표현 등에서 사불산 출신의 대표적 화승인 신겸(愼謙)의 화풍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19세기 전반 사불산파의 전형적인 화풍을 따르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라 판단됩니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
마애불의 크기는 높이 약 6m, 어깨 너비 약 2.2m, 무릎 너비 3.1m이며, 연화대좌(蓮華臺坐)의 높이는 1.3m,
너비는 3.7m로 화강석의 자연석벽을 이용하여 음각된 이중연화좌(二重蓮華座) 위에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을 역시 음각하였으며, 머리 위로는 모서리가 깨어진 평편한 판석이
앞으로 밀려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천개(天蓋) 형식의 판석을 별석(別石)으로 마련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
머리 등 일부분 빼고는 돋을새김이 아닌 그냥 음각 선으로만 그려져 있습니다.
입술이 두껍고 목에는 삼도가 아닌 이도만 그려져 있습니다.
수인 모양으로 보면 아미타불 같기도 하고 이곳에 미륵사가 있었다고 하니 미륵불 같기도 합니다.
특이하게 마애불의 머리 위에 연꽃무늬를 한 뿔처럼 생긴 것이 2개 솟아 있습니다.
이러한 모양의 마애불은 흔치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