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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5, 6차산행
U(유턴)하기
5차 산행: 치재 출발 봉화상(918미터) 정상에서 광대치 거쳐 월경산(981미터)도착 중재, 중기마을로 이동 (산행시간 6시간 30분)
X-마스 연휴를 잡아 일박이일의 산행이었다. 팀들의 시간이 다 될 때 한 구간이라도 더 가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하이트 산행을 하며 크리스마스를 친구들과 함께 보내게 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7시 출발장소 럭키아파트에 모였다. 근데 당연히 먼저 와 있어야할 버스가 오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연락해도 폰을 받지 않는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일행들은 서부터미널로 가자는 사람, 다른 여행사에 차를 부르자는 쪽, 승용차를 가져가자는 등 이야기가 분분하다. 아스발트위에 놓인 우리 일행의 짐은 일박이일의 륙색 부피와 이브 날에 건배할 4리터짜리 와인통과 신혼여행을 가나할 정도의 아담한 가방에 온천 준비를 해 온 짐까지 그야말로 한 짐이었다. 결국 3대의 승용차로 출발이다. 연일 송년회다 술자리다 하여 가는 버스 안에서 밀린 잠이라도 자려고 벼르고 있던 남자들은 약간은 부담스런 운행이었겠지만, 3대의 차는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88고속을 지나 지리산 I.C를 빠져나오면서 순간 산행대장 영평이 아빠 차가 I.C를 지나쳐 버려 아찔한 유턴을 해야 했다. 이 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기사 아저씨 땜시 우리 산행 일정은 그야말로 유턴이었다. 산행도착점에서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러면서 생긴 우연곡절의 해프닝. 인생에는 유턴이 없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타이밍이 어긋나는 순간순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가 없다.
흥부와 박씨 부인이 마주 앉아 박을 켜는 마스코트가 성부마을의 상징이며 진입로다. 이제 4번을 오가는 운봉읍의 지형과 간판이 낯익고, 선두 차는 저번 산행의 마지막 지점인 치재 입구를 잘 찾아 들어선다. 마을을 벗어난 산길 초엽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눈 위의 선명한 노루 발자국처럼 우리의 첫 눈길 산행도 걸음마다 부드러운 각인이 되어 따라온다. 아이젠을 하지 않고 걷는 눈길은 적당한 긴장과 눈의 감촉을 느끼게 하면서 치재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오르막에 별 무리가 없다. 꽃이 없는 가지들이 힘차고 왕성하게 뻗어있는 철쭉 군락을 헤치며 나아간다. 철쭉이 한창일 5월이면 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오히려 꽃이 없는 나무에서 철쭉의 강인한 기질을 몸으로 느껴 보는 것도 인상적이다. 봉화산 정상쯤에 이르러서는 철쭉에서 낙엽송인 참나무들로 변하더니 또 억새평원이 나타난다.. 산의 능선을 타고 나무들도 끼리끼리 어울리고, 수종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걷는 즐거움이 참 좋다.
봉화산 정상이다. 봉화산은 남원시와 장수군 사이에 있는 높이 920미터 산이다. 일행이 서 있는 정상에서 전후좌우에 연봉들이 물결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구름에 까마득하게 닿아있는 천왕봉에서 반야봉 노고단 우리가 걸어왔던 만복대, 고남산 왼쪽으로 백운산 뒤로는 덕유산... 그들 산은 한 덩어리처럼 보이다가도 각자의 위용으로 뻗어져 가는 산의 골계가 참으로 멋있다. 눈 덮인 산야는 한 폭의 장대한 수묵화 같은, 그 장면을 되돌아보며 간다. 봉화산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의 인기메뉴는 능선따라님의 장모표 청국장이다. 즉석에서 뽀글뽀글 두부까지 넣고 끓여주는 그 별미는, 아무튼 우리 팀은 먹는 것 하나는 못 말린다. 먹는 것 말리려다 잘못하면 짤리(?)는 수도 있었으니.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팀을 만난다. 노익장 같이는 안 보이지만 우리보다 좀 더 원로 해 보이는 남자 3명은 벌써 대간 종주가 두 번째란다. 이 팀은 우리가 2주 전에 갔던 매요리에서 복성이재를 거쳐 왔는데 오늘 육십령 까지 간다고 한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반가움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고 길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랬는데 이 팀이 내가 2주 전에 잃어버렸던 내 스틱을 들고 올 줄이야! 복성이재에서 잠시 쉬다가 두고 온 스틱을 되돌아가기는 너무 멀어 단념하고 말았는데 그 스틱을 다시 보자, 잃어버린 자식을 만난 것처럼 감격스럽고 팀들도 얼마나 좋아 하든지. 세상에 우연치고 이런 우연히 있을까 싶기도 하고, 다시 유턴하여 돌아온 이 스틱은 아무래도 백두대간의 큰 상징이 될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황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다시 원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그렇게 고무된 기분으로 내리막 눈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광대치에 닿는다. 광대치의 표시목은 지형의 내리막 끝지점에 서 있고 다시 월경산을 향하는 오르막에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무수한 깃발들이 바람에 아우성인다. 이리로 오라고. 내리막과 오르막 그 능선으로 이어지는 980미터 월경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은 가빠르다. 스틱에 먼저 힘을 옮기고 미끄러지지 않게 한 발 한발 내딛으며 힘들게 오른 월경산 정상은 봉화산에서 보았던 그 장엄한 산들이 더 멀리 더 선명하게 아득하다. 산들은 마치 한 판의 춤사위를 벌이는 양 너울너울 하늘로 솟아 버릴 것 같기도 하고 바다에 잠겨버릴 섬 같기도 하다. 그 감동에 진땀도 식은땀도 좋은 것이다.
해가 지기 전 마지막 구간 중재에서 중기마을로 이동해야 하는 걸음은 빨라진다. 산행대장은 치재에 세워둔 차를 중기마을로 가져오기 위해 책에 나와 있는 콜택시에 미리 전화를 한다. 일행이 중기마을에 도착하자 콜택시도 도착하여 남자 셋은 승용차를 가지러 떠나고 남은 일행은 해가 꼴딱 넘어가 버린 스산하고 추운 산골에 남겨진다. 스물 가호가 채 되지 않는 민가는 오롯이 모여 있고 그 흔한 슈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왔으면 안 해도 되는 이 고생을 한다 싶으니 나쁜 기사 아저씨가 다시 꽤 심해진다. 능선따라님은 우리 부인네들이 딱해 보였는지 어디 따뜻한 잔술집이라도 있을 거라며 따라오란다. 마을에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온 마을을 진동하는 게, 마치 ‘사람 왔어요’하며 울어대는 휴대폰 같다. 겨우 찾아낸 곳은 노천의 평상에 찬 맥주 2병이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새침하게 걸려있고 어둠이 짙어지는 산골의 분위기를 감상하기에는 딱 좋았지만, 차츰 한기를 느끼는 추위에 마을회관은 어떨까 싶어 영평엄마가 일어난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럴 때는 여성이 재빠르고 용감하다.
신발을 벗고 따뜻한 아랫목에 앉은 것만도 오감는데, 커다란 스텐 오봉에 방금 구운 부침개를 내 놓는다. 그리고는 밀쳐있는 다라이를 끌어당겨 그 안에 있는 쑥떡까지 먹는 동안 우리가 앉은 방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들었다. 친정집 같은 그들의 따뜻한 인정에 우리는 별 눈치도 보지 않고 신나게 먹으면서 우리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치재에 세워둔 차를 가지러간 일행을 기다린다며, 그리고 내일도 무령고개까지 산행을 해야 하는데 그곳까지 차를 하나 보내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마침 마을에 봉고를 운행하는 아저씨가 있다며 그 사람을 불러들인다. 아저씨는 그곳까지는 길도 멀고 험하다며 5만원을 요구했지만, 맘씨가 좋아 보여 아무런 갈등없이 계약을 했다. 근데 차를 가지러 간 세 사람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하니 다 와 간다는 소리에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초저녁인데도 마을은 먹장같이 어두워 길이 잘 보이지 않고 하늘에는 별들이 무리지어 반짝이는게 참 신선하다. 한참을 걸어도 승용차는 오지 않고 차는 차대로 캄캄한 마을길을 잘못 들어 돌고 돈 끝에 어려운 상봉을 한다. 시간은 이미 8시를 지나고 다시 지리산 I.C를 빠져 남원을 향해 남원추어탕을 먹으러 간다. 뻑뻑하면서도 담백한 추어탕 한 그릇에 온 몸의 피로가 가시지만, 욕심대로라면 지리산 온천까지 하고 싶다. 숙소로 잡은 구례의 지리산 온천 관광호텔에 도착하니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그냥 잘 수야 있는가. 혼자 온 총각 (윤총무님) 방에 모여 예수님 탄생을 위한 축배도 들고 ‘오징어’를 외치며 부동산을 위해 건배도 한다. 밤새 마셔도 바닥이 날 것 같지 않는 와인이 있지만, 내일의 산행을 위해 절도 있게 품위를 지키며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산행일 2006년 12월 24일
산에서 잘 논다
제6차 산행: 무령고개에서 출발 백운산(1279미터)정상에서 중고개재도착 중재 넘어 중기마을 (산행시간 5시간 30분)
깨끗한 홑청의 이부자리와 뜨끈한 온돌방에서 숙면을 하고 아침 온천까지 한 일행의 얼굴들은 모두 훤하다. 날씨도 포근한 봄날처럼 아주 부드럽다. 기온이 떨어지면 산의 눈들이 빙판이 될텐데 걱정했었다. 지리산 온천 관광호텔에서 아침으로 콩나물 해장국을 가볍게 먹고 다시 중기마을로 향한다. 어제 저녁 그렇게 헤맨 길을 이른 아침 다시 찾아가는 그 거리 동안 구례 전라남도에서 함양 경상남도로 다시 남원 전라북도로 바뀌고 있음을 네비게이션이 알려준다. 백전면에 들어서니 마을들이 여러 개의 길로 나 있어 헤매는 것도 당연했겠구나 싶었다. 중기마을로 들어서니 백운산이 정면으로 솟아있다. 고도 5백미터까지 치고 올라가야 할 가파른 고생길이 눈에 보인다. 단장에게 무령고개에서 저 백운산을 넘어가면 어떨까 하는 건의가 나오고 우리의 승용차도 이 마을에 있어 다시 여기로 와야 하니, 무령고개에서 출발하여 중기마을에 도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었다. 어제 예약해 둔 아저씨께 전화를 해서 무령고개까지 지금 데려다 달라고 하니 흥쾌히 달려온다.
달려온 봉고는 안팎이 주글주글하고 그 안에 탄 우리일행은 장날에 팔려가는 돼지새끼들 같은 풍경이다. 언제 이런 차를 타겠냐며 재미있게 웃으며 무령고개를 향한다. 원래는 중기마을에서 중재-중고개재- 백운산- 무령고개를 가야하는데 완전히 역순으로 산행을 하는 셈이다. 그곳까지 봉고로 가는 일도 만만찮다. 계속 오르막 고개를 오르는 원통재를 지나 고불고불 이어지는 육십령을 지나고 다시 무령고개에 오르는 오르막은 눈으로 덮여있어 위험하고도 긴 거리였다. 뒤에 탄 일행들은 수려한 산야의 경치에 취하고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아저씨가 기어를 변속하며 그 난코스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른다. 옆에 앉은 윤총무님만 가슴 졸이며 지켜본 아저씨의 운전솜씨는 정말 능숙했단다. 그 거리를 차로 달리는 동안 지리산의 능선들이 따라오면서 앞으로 가야할 길들이 이정표처럼 또렷이 보인다.
무령고개에서 일행은 내리고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최서방하고 많이 닮았제’하고 중얼거리는 경숙씨 소리를 들고 아저씨는 혹시~? 하고 번지수와 통성명을 한다. 글쎄 이 아저씨가 경숙씨네 사촌여동생의 큰 시숙 되는 분일 줄이야! 참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절로 나오면서 이 기이한 만남도 생각해 보니 다 나쁜 아저씨 땜시 생긴 변수였다. 아무튼 예상치 않는 변수를 만나고 그 만남으로 또 다른 happy가 있으니,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볼 일이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생겨나니 이것이 있다’라는 연기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운산을 향한다. 좀 수월할 것 같아 반대능선을 타고 오르지만, 시작부터 급경사의 눈길 산행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온 신경이 집중된다. 남정네들은 이 정도쯤이야 싶은지 뒤에 처진 여자들에 별 신경을 안 쓰지만, 우린 네발로 안간힘을 쏟으며 말없이 올라간다. 같이 산행을 하는 동지로서 완벽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아님 푸대접을 받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너무 씩씩해 졌는지. 아무튼 우리 아줌씨들도 잘 걷는다.
백운산 가는 길은 유독 산죽으로 이어진다. 무릎에 닿는 것에서부터 키 높이로 뻗은 산죽은 밀도가 빽빽할 정도로 무성하다. 죽竹의 청청한 이미지는 없고 이 높은 고지에서 살아남으려는 듯 떼죽을 이루고 있다. 백운산 못 미쳐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어젯밤 남겨둔 와인을 쟁겨 오더니 한 잔씩 돌리고 건배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참 잘 논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기었는지 걸었는지 백운산 (1279미터)에 정상에 오르니, 좋은 날씨 덕으로 시계는 아주 넓고 맑다. 북쪽으로는 덕유산 자락과 앞으로는 지리산 주능선들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외촌님의 ‘산이 살졌다’라는 재미있는 말에 산을 유심히 보니 정말 산의 골격에 살집이 붙은 듯 풍성한 느낌이었다. 백운산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잇는 중요 통로로 이용되면서 빨치산이 활동한 흔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 상흔은 보이지 않고 이제는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문득 우리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과연 잘 살고 잘 버티고 있을지.....
백운산 표지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중고개재를 향한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하얀 눈으로 가리마가 나 있다. 바닥에 하얀 분필을 그어놓은 것처럼. 중고개재는 가파른 내리막으로 1시간 30분 정도 이어진다. 원래 코스대로라면 이 내리막을 반대로 올라와야할 길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꼬 싶다. 이제쯤 중재가 나타날까 기다렸는데 1.7킬로 더 가야한다는 표시목이 나온다. 여기 지름길이 있어 중기마을로 빠질수도 있지만 그러면 다음에 땜 방을 해야 한다니. 다른 일반 산행 같으면 충분히 걸었다고 만족하면서 샛길로 가도 되는데 말이다. 윤총무님은 아저씨한테 전화를 한다. 일행이 5시 정도 되면 도착되겠다고. 아마 그 때쯤 닭백숙을 준비해 놓으라는 말일테다.
중고개재에서 중재에 이르는 길에 해가 기울면서 숲속은 섬세한 정적이 감돈다. 나무들은 우수에 깃들고 적막한 기운들이 산을 감싸 안을 때는 왠지 모를 자연의 신성함과 겸허가 밀려온다. 다들 잰 걸음으로 중재를 벗어나면서 돌아본 백운산은 석양을 받아 붉은 레이저를 쏘아놓은 듯 아주 붉다. 산이 와인을 마신 것처럼. 드디어 마을로 접어드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마을회관이 아니고 최씨아저씨 집에서 닭백숙 잔치를 편다. 일행이 앉으니 한 방 가득 훈김이 돌고 닭 삶은 냄새가 진동하는 훈훈한 저녁이다. 할머니가 삶아놓은 촌닭을 뜯어 뒷다리 하나를 드니 그 맛은 약간 질긴 듯 하면서도 쫀듯하고 구수하다. 백숙의 국물은 표고버섯과 대추 약재가 듬뿍 들어 보약을 들이키는 듯 진짜 개운하고 맛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오미자와 매실주가 나오고 경숙씨네 사돈 최씨아저씨가 합석하면서 자리는 무르익는다. 최씨아저씨는 윤총무님이 친구들보다 10년은 젊어 보이고 총각 같다고 추켜세우자, 윤풀님은 약간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은 엄청 업이 된다. 그 수위가 얼마나 빠르든지, 오고가는 술잔은 좀 걱정스럽지만, 재미있다. 하여, 윤총장님이 서서히 깨지는 모습을 보는 날이기도 했다. 이 예기치 못한 일은 유턴이 될까? 아무튼 참 잘 논 일박이일의 산행이었다.
산행일: 2006년12월 25일
첫댓글 발가벗어 속살을 들어낸 겨울 산의 깨끗한 조망과 예기치 못한 우연이 만들어 내는 일들로 이틀 동안의 산행이 즐거웠는데 그런 풍경과 사연들을 추억의 한 페이지에 아름답게 저장시켜 주시는 초록님의 종주기가 고맙습니다.
그날 윤풀이실하게 무너져 내린 모양이제
나는 필름이 끊겨 잘 모르지만 뒤에 들어니 윤풀의 천진한 스마일 + 액션들이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단다. 술에 취해도 그렇게 멋지게 취해야 되는 시범을 보여줬다고 하니 좀 부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