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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종로5가에 있는 광장시장에 참말로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주로 주말 오후 도봉이나 수락에 올랐다가 하산한 다음, 동무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나누기 위해서였지요. 지글지글, 달구어진 기름 철판 위에서는 빈대떡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면서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었고, 곤이와 함께 보글보글 끓고 있던 대구탕 냄비가 우리를 반겨주던 추억의 장소.
뿐 아닙니다. 어묵과 잡채, 국수, 돼지부속이라 하여 이름만으로는 왠지 기계적 냄새가 나지만 한 점 씹으면 감칠맛 대박인 간, 허파, 순대, 곱창 등등…. 얄팍한 지갑이 두렵지 않을 만큼 음식 값이 저렴했기에 삶에 찌든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었지요.
2016년, 아이구야! 오랜만에 찾은 광장시장은 아예 관광지로 변해버렸더라구요. 옛날의 호젓하고 넉넉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만 겁니다. 자주 들렀던 대구탕 집 앞에 길게 줄지어진 중국인 관광객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매대마다 손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외국인들이 웃고 떠들고 사진까지 찍어대느라 번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서운하긴 했지만 뭐, 나 좋으라고 다 옛날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세상은 늘 변하며 또 변해야 하니까요. 자리 잡지 못하고 얼쩡얼쩡 시장통을 기웃거리다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메뉴가 떡하니 붙은 걸 보았습니다. ‘마약김밥’. 모양은 예전 그대로 가늘고 짤막하여 한입에 쏙 넣을 수 있는 ‘꼬마김밥’이었는데 이름만 달라졌네요. 한번 맛보면 중독되어 다시 찾아먹게 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속절없이 한 팩 구입, 질겅질겅 씹어봅니다. 옛날 맛 그대로, 호기심으로는 중독될망정 맛은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다.
자낙스, 스틸녹스, 할시온…. 아십니까?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마약류 지정 의약품들이랍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총 1천 110알을 사들여 836알이나 먹어치웠다는군요. 프로포톨이라는 주사약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정 질병 치료에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미용 시술에 필요한 것들이라 합니다. 에구∽ 그 집 마약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렵니다.
마약이 과연 인류에게 해악만 끼치는 괴물에 불과할까요? 우리는 단 한 번도 마약과 접하지 않았을까요? 마약의 사전적 정의는 ‘마취작용을 하며 습관성을 가진 약으로 장복하면 중독증상을 나타내는 물질’입니다. ‘네선생님’ 말씀으로는 대내피질 등 중추신경계의 여러 부위와 고통의 전달 통로인 척수 등에 존재하는 수용체와 결합, 통증 전달을 차단하여 강력한 진통작용을 하는 동시에 특유의 쾌감을 만들어 낸다는군요.
그런데 마약 성분이 첨가된 중추신경억제제들은 감기약에서부터 수술 진통제, 말기 암환자 등의 고통경감을 위해서 널리 쓰이고 있다니, 대다수 사람들이 마약에 어느 정도는 의존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마약이 우리 인류에게 해악만 끼치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문제는 질병치료가 아닌 환각 목적으로 다량 복용함으로써 빚어지는 습관성 복용인 거죠. 그래서 지금 세상이 떠들썩한 거고요. 아무튼 마약 복용은 결코 권장할 일이 아닙니다. 마약김밥만 빼고요.
중독되어도 무방한 것으로 따지자면 마약김밥만이 아닙니다. 마약재즈도 있답니다. 재즈의 하위 장르인 애시드 재즈acid jazz가 그것이죠. 애시드acid를 번역하면 화학적 용어인 신맛의 ‘산酸’이 됩니다. 새콤한 재즈? 아니죠. 애시드는 속어로 마약이라는 뜻도 가지니 마약재즈가 됩니다. 1980년대 중반 영국 런던의 클럽 디제이들이 펑크funk, 디스코, 힙합 등의 리듬을 가미하여 춤추기에 아주 적합하게 조합한 음악이죠. 비교적 곡이 길고, 같은 음절이 반복되며 경쾌한 것이 특징이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쉽게 끊을 수 없는 재즈라는 뜻도 되고요.
우리나라에도 홍대 부근을 근거지로 하여 여러 훌륭한 애시드 재즈 팀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팀이 프로젝트 그룹인 클래지콰이Clazziquai입니다.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가수 알렉스와 호란이 한때 객원 보컬을 맡기도 했었지요. 클래식과 재즈를 합성한 팀 리더 이름 클래지Clazzi와 영국의 애시드 재즈 대표 격인 그룹 자미로콰이Jamiroquai를 헌정하여 붙인 거라 하네요. quai는 곧 재즈의 근본인 groove란 의미를 가진다네요.
모르고 살아도 아무 지장 없는 음악 장르 해석을 굳이 왜 하느냐?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 바로 자미로콰이Jamiroquai와 함께 애시드 재즈를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밴드 어스쓰리US3의 저 유명한 캔털루프 아일랜드Cantaloupe Island이기 때문이죠.
퓨젼 재즈의 대가 허비행콕Herbie Hancock의 대표곡이자 같은 타이틀, 같은 멜로디의 곡이 원곡입니다. US 3가 ‘리메이킹(커버cover가 정확한 표현입니다)’한 거죠. 허비의 버전이 연주곡으로서 좀 클래식한 재즈에 가깝다면 US3 버전은 진행이 빠른데다가 랩이 곡을 주도함으로써 젊은이들의 귀애 더 쉽게 들어온다는 점이 차이라 할 수 있지요. 훨씬 신나는 버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곡의 도입부에 라는 한 여인의 멘트가 흘러나옵니다.
“Ladies and gentlemen 신사숙녀 여러분, As you know we have something special down here at Birdland this evening 아시는 것처럼 오늘 저녁 우리는 이 버드랜드 클럽에서 특별한 행사를 가지려 합니다. A recording, for Blue Note records. 오늘 블루노트 레코드 사에서 실황녹음을 해요.”
1954년 2월, MC 피위마켓Pee Wee Marquette이 뉴욕의 재즈클럽 버드랜드Birdland에서 밴드를 소개하기에 앞서 한 말입니다. 블루노트 레코드사Blue Note records는 재즈 레이블 발매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서 종종 여러 아티스트들의 연주를 실황녹음하곤 했었는데, 그 날이 그날이었던 거죠. 그녀의 말대로 이 날, 드럼의 아트 블래키, 피아노의 호레이스 실버, 베이스의 컬리 러셀, 앨토 색소폰의 루 도날슨, 트럼핏의 클리포드 브라운 등 쟁쟁한 멤버들이 총동원되어 협연한 연주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음반으로 나오게 됩니다. <A Night at Birdland>라는 타이틀로요. 캔터루프 아일랜드는 한참 후에 작곡되었으니 이 날 연주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놀랍게도 US3가 캔터루프 아일랜드를 녹음한 연도는 1992년이네요? 어찌하여 1954년 그녀의 목소리가 이 음반에 담겨졌을까요?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선배 재즈인들을 기리기 위해 옛 재즈 음반에서 샘플링해서 쓴 것이랍니다. 물론 이 곡을 녹음한 곳도 블루노트사였습니다.
고백하건데 저도 중독자입니다. 20대부터 무려 40년간 꾸준히 담배에 중독되어 있으며, 애시드 재즈를 접한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쭉 그 음악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담배는 멀리하는 게 옳지만, 마약김밥이 그러하듯 애시드 재즈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그런 마약이 아닙니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한번 들으면 자꾸 듣고 싶은 마약 같은 음악일 뿐 오히려 삶에 활기를 주니까요.
첫 번째 화면은 1992년 녹음실 버전이며, 두 번째 화면은 2011년 이탈리아 볼로냐 브라보 카페Bravo Caffè에서의 실황버전입니다. US3 역시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곡에 따라 연주가와 가수가 바뀌는 그룹을 프로젝트 그룹이라 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멤버와 2001년 그리고 지금의 멤버가 다릅니다. 신나는 애시드 재즈 Cantaloupe Island와 함께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종로5가 추억을 하는데 나는 육군본부에서 복무할 때 제대말기에 삼각지에서 술을 정신 없이 마시고 왕십리 가는 차를 타야하는데 청량리 가는 차를 타고 가다가 보니 동대문이 나오기에 혼비백산하여 신설동에서 내려 왕십리로 걸어가니 밤 아가시들이 하아에나처럼 달려들기에 총각 정조 지킨다고 줄행낭을 치고 왕십리까지 걸어간 추억이 납니다.
ㅎㅎㅎ 그러셨군요. 요즘 그동네는 아파트촌으로 변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