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 C.S 루이스 (홍성사)
#1
시계를 보니 5시다. 또
하루가 간다.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어 먹을 거리를 만들다 보면 실컷 놀다 땀에 젖은 아이가
현관문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책을 읽히고 재우다, 잠들면 안 되는 나도 같이
잔다. 갑자기 깨어나면 꼭 자정이 넘어있다. 그제야 책을
잡아 겨우 몇 장을 읽어낸다. 1부를 소화하는 데에 한 주가 걸렸다.
2부부터는 어색한 단어들, 예를 들면 유령이나 빛나는 영들, 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내었지만 없는 시간 쪼개어 읽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2
이렇게 산다. 이렇게 읽는다. 겨우겨우
하루하루. 바쁘게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면 시간이 꽉 차는 인생 리스트에 내 이름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와 같이 평범하게 열심히 피곤하게 살아온 인생을 거쳐 유령이 된 투명하고 연약한 형체들이 책 속 주요인물이다. 이승에 몸을 지니고 사는 사람과는 다른 형체인데다, 죽음
이후 천국이든 지옥이든 어디론가 끝내 도착하기 전, 모든 것이 가짜인 회색도시에 머문다. 이들은 자신을 인도할 영과 만나며 실랑이를 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유령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조언을 하며 지침을 주는 영들이 있다. 이미
모든 과정을 지나 스스로 무엇이 진짜이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존재인 영들. 그들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했고, 잘 들렸다.
#3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께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 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진지하고도 끈질기게 기쁨을 갈망하는 영혼은 반드시 기쁨을 얻게 되어 있네.”
불만족으로 칭얼거리며 못다 이룬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고집 피우는 유령들에게 영들은
절제된 언어로 조언을 건넨다. 그러나 조작하는 사랑, 성공을 위한
집착, 차마 버릴 수 없는 습관 등등을 두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후물거리는 유령은 자신을 변호하며 지옥을 선택한다. 그나마 있던 형체도 사라져 버린다. 소설
배경은 예상하기 힘든 회색지대라는 공간이지만 마치 그곳은 내가 사는 현실과 아주 비슷하다. 유령들은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모든 것으로 채워보려는 인간과 흡사하고, 그렇게 기를 쓰고 간신히
살아가는 인간의 세월에 나와 우리가 열심히 걷고 있다.
시간은 쉬지 않고 빠른데 몸은 쉽게 지치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새로운 곳 가고 싶지만 같은 매일이 반복되는, 수입은 줄고 나가는 건 계속 커지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고통을 경험하는 인간의 일생, 나의 일생을 알아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진다. 그리고 여기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 갖은 힘을 다 쓰기 보다 완전하며 완벽하고,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선이신 하나님을 보라는 저자 루이스의 당부를 듣는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고,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선은 오직 하나, 하나님뿐이라네. 그
밖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는 선하고, 등을 돌리고 있을 때는 악한 게야.”
#4
가방 속에 담겨 몇 주간 내 일상을 공유한 ‘천국과
지옥의 이혼’은 집착인지 사랑인지 저녁 밥 먹으러 나가는 길에도 나와 같이했다. 다른 이의 차에 잠시 두었는데 결국 다 읽지 못한 채로, 몇 페이지를
남겨둔 채로, 그 차에 실려 가버렸다.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말에 찾으러 갈 예정이다. 아직 읽지 않은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다. 또한 다가올 나의 시간도 궁금하다. 끝내지 못한 책으로 간신히 그러나
전력을 다해 글을 쓰는 지금처럼, 내게 주어질 다음 페이지를 하나님과 함께 천국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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