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붕어와 거문고>
먹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금붕어라 할지라도, 그것은 진흙 속의 미꾸라지만도 못할 것이다. 굶주린 사람에게 있어서는 금붕어를 식별한 눈이 없다. 왜냐하면 목구멍으로만 모든 것을 계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추운 방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겐,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거문고라 할지라도 한 토막의 장작개비만도 못할 것이다. 추위로 언 몸에는 거문고 소리를 식별할 수 있는 귀가 없다. 어느 것이 더 화기가 있느냐로 모는 것을 따지려 들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지금은 금붕어를 잡아먹고, 거문고를 패어 아궁이에 쑤셔 넣는 시대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사치가 되고 罪가 되는 시대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금붕어를 버리고 미꾸라지를 얻을 것인가? 거문고를 내던지고 장작개비를 주울 것인가? 당신은 詩의 무력함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부르는 노래가, 가을날, 곡식이 여무는 그 가을 날, 옥수수 수염을 흔드는 西風만도 못하다는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한탄할 일이다. 우리가 쓰는 시는 입에서 녹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혓바닥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비스킷이 아니다. 장미를 노래하든 감자를 노래하든 시는 분명히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거문고를 내던져야 할 것인가? 監房(감방)의 罪囚(죄수)들은 춥다. 거리에서 잠드는 老宿者(노숙자)들은 한 점의 모닥불을 아쉬워한다. 노래는 비껴가고, 흐느끼는 한숨처럼, 단지 허공을 울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금붕어는 다시 꿈틀거리고, 거문고의 줄은 다시 퉁겨져야 한다. 먹을 수 없는 고기, 땔 수 없는 나무가 언젠가는 눈짓해 줄 것이다.
추위와 굶주림이 없는 땅이 어떠한 곳인가를 이야기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시대에 금붕어를 기르는 것은, 거문고를 타는 것은 사치도 罪도 아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 1974.11
<알람브라궁의 추억>
비가 내린다. 궁 앞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색색의 비옷과 우산의 움직임이 꽃의 군무처럼 굼실거린다. 이윽고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웃음 띤 금발의 가이드가 이어폰을 건넨다. 귀에 꽂자 ‘알람브라궁의 추억’이 솨르르 흘러든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기타 연주가 잠들었던 세포를 흔들어 깨운다.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느꺼움을 안고 궁 안을 천천히 걷는다. 반복되는 트레몰로 주법의 멜로디는 은구슬이 구르듯 여울진다. 문득, 어느 가을날의 기타 연주, 시간을 거슬러 온 그 소리가 되살아 울린다.
저녁노을이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하늘을 캔버스 삼아 붉은색과 오렌지빛, 노랑과 보라색이 농염하게 아우러졌다. 마을을 지나 먼 산자락에서야 끝날 듯 이어진 들녘까지도 붉디붉었다. 익어가는 나락들은 노을에 사그락사그락 몸을 씻고 있었다.
논두렁에 앉은 J와 나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J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알람브라궁의 추억’이었다. 한쪽 무릎을 세워 기타를 얹고 고개를 숙인 채 연주에 몰입해 있었다. 음악은 물결치듯 이어지고,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기타 위에서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나만을 위한 풀밭의 연주회였다. 눈을 감은 채 애잔하게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에 젖어 아득히 먼 스페인, 그 알람브라궁을 언젠가 가보리라는 꿈을 꾸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셋, 지방 행정기관에 근무하고 있었고 J는 그곳에서 군 복무 중인 대학생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출근하면 내 책상 위에 꽃병이 있곤 했다. 그때 막 출시되었던 녹색의 킨사이다 병에 빨간 덩굴장미가 한 움큼씩 꽂혀 있었다. 어떤 날은 내 뒷모습을 빠른 터치로 스케치한 그림이 놓여 있기도 했다. 뒷자리에 앉은 J일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무심한 듯 모른 척했다.
J는 고교 시절 교내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주자여서 그런지 기타 솜씨도 수준급이었다. 하얀 얼굴에 쌍꺼풀진 큰 눈과 성냥개비가 올라가는 긴 속눈썹은 뺏어오고 싶을 만큼 부러웠다. 어느 날, 키우는 강아지가 낳았다는 북실북실한 새끼를 선물 받았다. 너무나 조그맣고 앙증맞은 녀석을 품에 꼭 안았다. 동심원처럼 찰랑대며 다가오던 J도 마음속에 안아 들였다.
기타를 멘 그와 논두렁을 걷는 날이 많았다. 발등을 간질이는 풀잎이 싱그러웠다. 보리밭에 핀 메꽃을 보려 앉았다가 우거진 풀숲에 똬리를 튼 뱀에 놀라 달아나기도 했다. 소낙비라도 한소끔 내리고 나면 수많은 고추잠자리가 가붓가붓 하늘을 맴돌았다. 훗날 바람 부는 창가에 흔들리는 커튼이 저 날개 같았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웃곤 했다.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도, 기타 연주를 듣거나 함께 노래하는 것도 좋았다. 어쩌다 나를 위해 썼다는 자작곡을 연주해 줄 때면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듯 우쭐해지기도 했다. 꿈결 같은 자연 속의 만남은 계속될 것 같았고 달콤하고도 즐거웠지만,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수십 년의 꿈, 와 보고 싶었던 곳에 서니 많은 상념이 오고 갔다. 작곡가가 제자를 사랑했으나 거절당한 슬픔 속에 만든 곡이 알람브라궁의 추억이라 했다. J가 이 곡을 처음 연주하던 그 순간에 이루지 못할 사랑도 이미 잉태되었던 것일까.
인연의 끈이 가늘게라도 남았었던지, 오래전 피할 수도 없는 길모퉁이에서 J와 마주쳤다. 서울역 어디쯤이었다. 둘 다 화들짝 놀랐지만, 선물 같은 만남이 반갑기도 했다.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앉아있었다. 두 갈래 오솔길에서 거듬거듬 마른 낙엽을 거둬들이는 발짓을 반복하며 무연히 서 있던 J를 두고 돌아섰던 나였다. 찻잔을 그러잡고 J가 말했다.
“그때 우린 Non Ho L'eta(노노 레타)였어…….”
젊은 시절 더 용기 내지 못했음에 대한 회한이 서려 있었고 내 마음도 아릿해 왔다.
붉은빛 고즈넉한 궁을 적시며 여전히 비가 내린다.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플라타너스 푸르른 길로 들어선다. 두 갈래 길을 다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가지 않은 길’처럼,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아닌 다른 숲길을 걸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직도 물결치는 알람브라궁의 추억, 그 마지막 선율이 흐르고 있다.
지은이 : 배공순
< 서시 >
한 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3) 中 ‘서시’
< 괜찮아>
한 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이틀 뒤면 입동이라고 합니다.
산야가 단풍으로 불타오르고, 그 단풍잎들 아직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데 (낙엽져서 조금 성글어지기는 했지만)
겨울로 가는 마차가 턱밑까지 와 있다니요....
가을도 깊었으니 곧 겨울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다음 계절의 습격을 받는 듯 하여 먹먹하기만 합니다.
2024년 11월 7일 목요일, 18:00~ 20:00, 커먼즈 필드에서 유정독서모임 진행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김유정의 <가을>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강의 노벨문학상수상 소식으로 한창 달아오르는 문학작품 읽기 열풍에, 여러분도 한 번 몸을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맛난 음식은 우리 몸의 건강을,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이틀 뒤로 다가온 목요일, 커먼즈 필드에서 뵙겠습니다.
2024. 11. 5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