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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魯鄒山
- 위 치 : 강원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 높 이 : 1,322m
1. 일시 : 2011. 8. 25. 07 : 00 ~
2. 장소 : 노추산
3. 참석인원 : 32명 (새내기 3명)
4. 등산코스 : 종량동 - 옹달샘터 - 소나무쉼터 - 아리랑산 - 정상 - 이성대 - 절골
소 요 제 원(안내도기준)
종량동 → 4.7km ← 정상 → 4.05km ← 절골 (8.75km)
5. 다녀온 길 : 태백가든 ⇔ 중앙고속도로 횡성IC 진출 ⇔ 영동고속도로 새말 IC 진입 ⇔
영동고속도로 진부 IC 진출 ⇔ 59번국도 정선방향 ⇔ 42번국도 강릉방향 ⇔ 여량면 구절리 종량동(하차), 절골(승차)
6. 오늘활동시간
○ 07:00 --- 구, 태백가든 출발( 평창휴게소 경유)
○ 09:46 --- 종량동 주차장 도착
○ 09:5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09:56 --- 들머리 진입, 해발 450m 지점
○ 10:54 --- 샘터, 종량동 2.7km, 광장쉼터0.5km, 해발 865m 지점
○ 11:02 --- 쉼터광장, 해발 955m 지점
○ 11:14 --- 소나무쉼터
○ 13:32 --- 철쭉군락지
○ 12:00 --- 병풍바위갈림길
○ 12:07 --- 아리랑산 정상
○ 12:18 --- 종량동, 노추산, 이성대 삼거리
○ 12:24 --- 노추산 정상(선두팀기준)
○ 13:00 --- 점심식사
○ 14:02 --- 이성대, 종량동, 노추산, 중동 삼거리 (중간팀기준)
○ 14:03 --- 이성대
○ 14:20 --- 너덜지대
○ 14:38 --- 옹달샘 쉼터
○ 14:53 --- 옹달샘, 노추산 2.3km, 중동 2.5km 지점
○ 15:06 --- 대승사, 노추산, 중동 삼거리
○ 15:19 --- 조주선관
○ 15:49 --- 절골 날머리 도착(중간그룹)
○ 15:59 --- 하산행사
○ 16:30 --- 절골 출발
○ 19:38 --- 구, 태백가든 도착(평창, 홍천강휴게소 경유)
7. 노추산 살펴보기
□ 개관
- 강원 정선군 여량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를 이룬 노추산(1,322m)은 심신산골의 산이지만 설총, 율곡등 위인의 혼이 서린 명산이다. 수많은 바위덩이로 쌓아올린 석총을 연상케 하는 노추산(1,322m)은 거대한 육산인 가리왕산, 둥그스름한 억새의 산인 민둥산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3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 노추산이라는 이름도 설총이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를 기려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정상 밑에는 두 성인을 기리는 이성대라는 수도처가 자리하여 산악인의 휴식처도 겸하고 있다. 산 곳곳에 너덜지대가 산재하여 있기에 '이성의 석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기암위에서나 너덜지대의 경치가 빼어나고 조망이 뛰어나며 겨울에는 눈이 쌓인 풍경이 일품이어서 겨울 산행지로도 손꼽히는 산이다
-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도열해 있고 옥계앞바다가 훤하게 내려보인다. 이성대 사당은 강릉, 정선 지역 유림의 도움을 받아 박남현씨가 이곳이 설총과 율곡이 수학했던 곳임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 노추산 부근에는 율곡과 관련된 지명이 몇 개 남아 있다. '율목치'(밤나무고개)라든가,'동초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밤나무재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다. 율곡이 노추산에 와서 공부할 때 이 고개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동초는 송천계곡 대기리 논에서 나는 미나리처럼 생긴 풀이다. 율곡이 이 나물을 뜯어다 먹은 것으로 전해오는데 다른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노추산을 감싸고도는 송천계곡에는 괴리 어름치, 꺽지, 메기 등이 많이 잡히며 수달도 서식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 주변볼거리
<오장폭포>
- 오장폭포는 노추산 남서쪽 줄기인 오장산에서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타고 송천으로 떨어지는 폭포이다. 경사길이가 209m, 수직높이가 127m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높이 209m의 장대한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구름을 타고 가듯 가벼워 진다. 산 앞으로는 송천이 흐르고 있어 등산객의 마음을 한결 시원하게 해준다. 가파른 암벽에 기대어 큰 낙차로 떨어지는 백색의 물줄기는 시원스러움을 더하고, 초여름 구곡천변에 만발하는 철쭉은 폭포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한다. 겨울철에는 빙벽타기에도 적격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고 한다.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노추산등산안내도>
- 노추산은 지난 5. 26일 정기산행일정에 잡혀있었지만 아쉽게도 장마로 인하여 일정을 취소했던 산 중 하나이다. 그 이후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계시기 때문에 주저하지 아니하고 8월말 정기산행지로 선정하였다.
- 노추산 등산로는 크게 보아 종량동 코스(종량동 - 서릉 - 정상), 사자목 코스 (이성대 - 샘터 - 사자목), 그리고 조주선관(구.대승사) - 이성대 간의 절골 코스가 기본이다.
<노추산등산지도>
- 정선군청에서 소개하는 등산코스는 아래와 같이 3개 코스가 있다. 이중 2코스와 3코스를 연계하여 안내준비를 하였다. 오늘 들머리인 종량동 코스는 계곡에 난 돌투성이 옛 광산길로 진입한다. 정선군에서 등산로를 개설하여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진로선도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정이 표기되지 아니하여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왕이면 안내판 여백에 이정이 표기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등산코스(정선군청 제공)
1코스 : 삼거리가든→(60분)조주선관갈림길→(35분)쉼터→(30분)이성대→(35분)정상
(총2시간 40분)
2 코스 : 종량동→(45분)폐광터→(70분)갈림길→(35분)이성대→(35분)정상 (총3시간5분)
3 코스 : 절골→(20분)오장폭포→(15분)조주선관갈림길→(1시간)이성대→(15분)정상
□ 산행안내
<단체기념사진>
- 춘천을 출발한지 2시간15분만에 목적지인 종량동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몇 일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비 소식 때문에 조바심이 났지만 당일은 영동지방에 약간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어 안심하고 출발하였는데 현장의 상황으로 봐서 아침까지 비가 내렸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노추산등산로안내도와 함께 노추산 정상까지 180분이 소요된다는 대형 안내판이 있어 들머리 찾기가 수월하였다. 지금은 석탄산업합리화 이후 폐광된 광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 일행 분들의 발길이 오늘따라 한결 가벼워 보였다. 처서가 엊그제 지나가기는 하였지만 오늘은 해발고도 450m에서 출발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가을이 온 듯 선뜻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소매가 긴 옷을 입었는데도 덥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침까지 비가 내린 듯 풀잎에 맺힌 이슬을 치고 올라가는 바짓가랑이가 순식간에 흠뻑 젖어 들었다. 바위나 돌길은 물기를 머금어 미끈거렸고 탐방로 상황으로 보아 오늘 일정 운영이 결코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노추산등산로 안내판>
- 오늘 들머리인 종량동이 소재한 구절리는 명주군 왕산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때 정선군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구절이란 명칭은 이곳을 흐르는 하천이 유천리 강과 어우러져 구절양장의 형태로 흐른다는 뜻에서 구절리라 이름 붙였다. 산간벽지였으나 석탄개발과 함께 1974년 정선선이 개통되어 한때는 오장광업소, 명주광업소 등 크고 작은 12개의 광산이 성업, 호황을 누렸으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이후 모두 폐쇄됐다.
- 면적은 43km³로 여량면 중에서 가장 넓으며 경지면적은 밭 0.59km³ 논 0.009km³ 임야 41.4 km³이며 명승지로는 등산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노추산이 자리하고 있다. 구절1리의 자연마을로는 산중턱에 문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자시가 되면 스스로 열린다는 자개가 있다. 구절2리의 자연마을로는 노추산 입구로 옛날에 정선 ,강릉간 연락물을 교환하던 왕신, 노추산 대성사가 있던 절골, 다락산 아랫마을인 양지마을이 있다. 구절3리의 자연마을로는 노추산에서 내려온 세천이 흐르는 중동이란 자연마을이 있다. 중은 구절리 중심에서 동쪽에 위치해 붙여진 명칭이다.
전설 : 귀신 항아리 속에서 쏟아져 나온 금싸라기
-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에 전순갑(全順甲)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경작하고 있는 농경지 가운데 언제부터 쌓여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주 오래된 돌담이 밭 가운데 가로 뻗어져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있어 틈만 나면 밭에 나가서 거치장 스럽고 불편한 돌담을 헐어버리고 경지를 정리하기 위하여 조금씩 밭을 일구어 나갔다.그는 1933년 11월 아침을 일찍 먹고 전과 다름없이 돌담을 파내던 중 호미 끝에 무엇인지 걸려 잘 파이지를 않아 온 힘을 다해서 파보았더니 항아리가 하나 나왔다. 이를 이상히 생각하고 혹시나 이것을 귀신항아리는 아닐까 하고 겁이나 항아리를 헐어 버리던 돌담 한쪽 구석진 곳에 놓아두고 담 허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이웃에 사는 노총각이 나무를 하러가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여보게, 여보게, 이리좀 와보게 나는 오늘 이 돌담을 헐다 호미 끝에 무엇이 걸리는 것이 있어 온 힘을 다하여 잡아당기니 땅 속에서 귀신단지 같이 생긴 항아리를 하나 캤는데 도대체 이것이 어떤 것인지 자네가 한번 보겠는가?" 하고 노총각에게 이야기 했더니 이 말을 듣고 총각은 혹시나 귀신이 옮을까 겁이나서 조심조심하며 가지고 있던 지게 막대로 항아리를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이게 왠일인가? 지게막대로 얻어맞고 깨어진 항아리 속에서는 광채가 빛나는 황금싸레기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전씨와 총각은 깜짝 놀란후 쏟아진 금사라기를 주어 담을 수 있는데로 모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일인들의 폭정시라 후에 소문이 나면 후환이 두려워 조선총독부 여량지소에 신고하였더니 신고된 금항아리는 총독부 본부까지 올라갔다. 6개월이 지난 후에 전씨에게 되돌아 왔는데 전씨에게 회수된 금싸라기는 당시 신고했을 때의 량보다 4분의 1정도 밖에 되돌아 오지 않았는데 전씨는 이것을 팔아서 문전옥답을 장만하였다 한다. 또한 전씨의 아들 전봉대도 10여년전 금싸라기가 출토된 장소에서 매장문화재 무쇠솥 외 4점을 발견하여 신고하므로서 당시 10만원 상당의 보상금을 받은 일도 있다.
<옹달샘쉼터>
- 10:54 샘터 경유
- 들머리인 종량동 입구에서 이곳까지 2.7km 지점이다. 해발 865m 지점에 있는 샘터는 오늘 만난 첫 번째 급수원이다. 들머리에서 1시간 남짓 올라왔기 때문에 급수의 필요성이 없었지만 한여름이라면 급수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만한 수량이었다. 주변이 제대로 가꿔지지 아니하여서인지 모르겠으나 물맛을 보겠다는 일행 분들이 한 분도 없었다.
<쉼터광장>
- 11:02 쉼터광장 경유
- 옹달샘쉼터에서 0.5km, 해발 955m 지점이다, 샘터에서 약 10여분 남짓 올라오면 넓은 안부에 쉼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의 안전산행을 당부하는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쉼터>
- 11:14 소나무쉼터 경유
- 이곳은 해발 1,050m 지점이다. 쉼터광장에서 급사면을 따라 10여분 남짓 올라오면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진달래군을 따라 주변경관과 자연을 만끽하면서 즐거운 산행을 당부하는 안내문이 이색적이었다. 소나무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쉼터 일원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11:00 넘은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있어 지난주 대관령옛길에 이어 오늘도 시원한 주변 조망은 접어야만 했다.
<병풍바위 갈림길>
- 12:00 병풍바위 갈림길 경유
- 소나무쉼터에서 가쁜 숨을 고른 다음 급사면 암릉 구간에 조성된 철쭉군락지와 종량동 - 노추산 진행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을 연거푸 지나고 나면 종량동, 노추산, 병풍바위 진행방향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갈림길을 전. 후하여 위험구간에는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짙은 운무만 아니었다면 주변의 경관이 수려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갔지만 아쉬움을 남겨야만 했다.
- 이 갈림길에서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가면 이성대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 암릉 구간으로 올라가면 병풍바위 끝자락을 타고 능선안부로 이어진다. 들머리 노추산등산로안내판 앞에서 일정을 보충설명하면서 이 지점에서 이성대로 곧바로 올라가자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병풍바위의 매력을 만끽해 보기 위하여 능선코스를 선택한 취지를 설명하고 당초일정대로 운영하였다.
<아리랑산>
- 12:07 아리랑산 도착
- 아리랑산은 노추산 보다 높이가 20m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노추산군에 포함되어 그다지 알려지지 아니한 산이다. 아리랑산은 노추산 코앞에 있고 우측편의 산은 사달산인데 운무에 가려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리랑산 바로 밑 해발 1000m 지점에 설총과 퇴계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가 세워져 있지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노추산에서 바라본 아리랑산>
- 아리랑산은 구절리 아우라지강가에 그 옛 날 오두막집 살던 총각이 길랑과 처녀 미월이 사랑을 맺었다. 그들은 다리가 부러진 기러기를 구해다 키웠다. 길랑이 과거를 보러가던 날 미월은 아리랑산까지 배웅하고 이별의 아리랑을 불렀다. 또 다른 전설은 정선군 북면 소재 아우라지강 줄기가 그곳 최정상산인 아리랑산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성대, 종량동, 노추산삼거리>
- 12:18 이성대삼거리 경유
- 들머리에든지 2시간20여분 만에 선두팀에서 이성대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 지점은 이성대, 종량동, 노추산으로 갈라지는 지점으로서 오늘 일정상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지점에서 이성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기리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발길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폐쇄된 듯 싶었다.
- 이 지점에 노추산등산로안내도, 정상 0.?km, 종량동 5.37km, 이성대 0.26km를 알리는 낡아빠진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 올랐다가 이 지점까지 원점 회귀하여 이성대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회장님이 함께하신 후미팀 상황을 확인해 본 결과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셔서 동행하신 분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하셨다. 안타까움과 아름다운 동행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노추산 정상석>
- 12:24 정상 도착
- 삼거리 바로 위 안부에 설치된 헬기장을 지나 노추산 이름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을 지나면서 곧바로 정상이 싱겁게 나타났다. 대개의 경우 정상을 앞두고 급사면을 이뤘지만 노추산을 경우 아리랑산 정상에서부터 이어진 능선 안부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량동을 출발한지 2시간30여분 만에 선두팀에서 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에는 웅장하고 시원하게 만들어진 정상석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정상석을 세우면서 옮겨졌던 석재 2개가 나란히 깔려 있어 쉼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정상석 바로 앞에 2006년에 재설한 구정 23 삼각점의 +자 표식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위도를 가늠해 보았지만 짙게 드리운 운무 탓에 방향감각을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조망>
- 노추산 정상에 오르면 옥계앞 바다와 더불어 북쪽으로 발왕산(1,458), 조고봉(鳥高峰:1,188m),서쪽으로 가리왕산(1,560m), 상원산(上院山:1,421m),동쪽으로 석병산(1,055m), 사달산(1,169 m), 남동쪽으로 덕우산(1,007 m) 등1,000m급 준봉들이 펼쳐져 있다고 하였지만 꿈을 깨야만 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정상의 상황을 짐작하리라 본다.
- 정상에서 선두팀과 중간팀을 점심식사장소로 하산시키고 난 후 이슬과 땀에 젖은 옷이 마르는 과정에서 체온이 떨어지면서 손끝이 아릴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아니, 벌써! 이런 계절이 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방풍재킷이 간절하였지만 배낭에는 허접한 것들만 가득 하였을 뿐 여벌옷은 없었기 때문에 후회막급이었다.
<점심식사>
- 헬기장에서 삼거리로 내려오는 안부에서 선두팀을 시작으로 선. 후미가 한자리에서 점심식사를 마쳤다. 후미팀 일행이 도착하면서 먼저 점심식사가 끝난 선두팀은 이성대로 출발하였다. 오랜 시간 머물면서 한기가 났기 때문에 따끈한 차나 물 한 잔이 그리워지기도 하였지만 이 역시 꿈이었을 뿐이다. 오늘 점심식사에서는 춘향이님이 준비해 오신 크고 실한 풋고추와 잡채가 인기를 끌었다. 춘향이님한테 큰 고추 한 개를 얻어 고추장을 콱 찍어 한 입 넣는 순간 마침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던 단비님께서 “거시기 실하네! ” 하는 바람에 장내가 웃음바다로 파노라마 쳤다. 지난주 대관령옛길에서는 주막터에서 물레방아에 올라앉아있는 개구리 조형물 고추가 화젯거리였는데 오늘은 단비님의 풋고추 거시기 사건이 화젯거리로 등장하였다.
<이성대>
- 14:03 이성대 경유
- 이성대 경내를 전. 후하여 하산길을 달리하였다. 이성대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하산하면 절골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고, 이성대 직전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중동방향으로 하산하다가 대승사 삼거리에서 대승사 방향 절골로 진입하여 하산하는 길이다. 산행안내 준비를 하면서 “한국의 산천” 사이트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절골 방향 하산 길은 급사면을 이뤄 한겨울이면 산행에 어려움을 겪는 코스로 소개하고 있었다. 오늘 현지 상황으로 봐서 절골 방향 하산길은 거리는 다소 짧은 장점이 있지만 분명히 착지가 불안할 것으로 판단되었고, 중동방향 하산 길은 능선을 우회하는 관계로 거리는 다소 긴 편이지만 발길이 편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현장의 등산로 정황을 감안하여 다소 우회하더라도 착지가 편한 중동방향으로 진로를 조정하여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앞서 내려간 분들의 행적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그 분들의 산행경험이나 산행능력으로 봐서 어느 길로 하산하던 지간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중간팀 이후의 일행 분들은 위 등상안내도 1코스와 3코스를 연계하여 진로를 선도하였다. 그 결과 조주선관을 경유하지 못하고 비켜가는 아쉬움을 남겼다.
- 여량면 구절리 산1번지 노추산 해발 1,322m 8부 능선에 위치한 이성대는 산지가 수려하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지점에 있는 2층 목조건물로 설총과 율곡선생이 입산 공부하던 곳이라고 한다. 노추산에서 신라의 설총선생과 조선의 이율곡선생이 공부하였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으나 이를 기릴 곳이 없어 강릉유림, 정선유림 및 지역주민의 찬조금으로 1954년에 박남현(朴南顯), 설국충(薛國忠) 등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 이성대는 노추산(魯鄒山) 서편 벼랑 아래에 위치한 정각(亭閣)이다. 8칸으로 된 2층의 단층 건물로 노추산, 이성대(二聖臺), 노추사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라시대의 설총(薛聰)과 조선시대의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입산하여 학문을 닦던 곳이다. 2층 누각에는 율곡과 이이의 위패를 봉안한 노추사가 있다.
- 건물은 중층이며 1층기둥은 퐐각기둥이고, 2층기둥은 원기둥이다. 지붕은 팔각지봉형식이고 1층과 2층에 모두 지붕이 있다. 모서리는 머리맟춤하였고 포는 익공계 양식이다. 벽체는 방부목, 내부의 방바닥은 장마루를 설치하였다. 1층에는 공부방과 작은 부엌이 있고, 2층에는 설총과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았으며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제단을 마련해 두었다. 매년 10월 중정일에 여량면 구절리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구삼회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설총 : 경주설씨(慶州薛氏)의 시조이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입니다. 유학과 문학에 조예가 깊어 국학(國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가 창제한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은 당시 중국 학문 섭취에 큰역활을 했으며, 이두(吏讀)문자를 집대성하였다.
- 이이(李珥, 1536년 음력 12월 26일 ~ 1584년 음력 1월 16일)는 조선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관직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성혼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로 추앙된다.
<너덜지대 이정표>
- 14:20너덜지대 경유
- 너덜지대에 들어서면 돌탑1기, 性物로 보이는 남근석상 1기, 노추산 0.9km, 이성대 0.3km, 중동 3.9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마가목이 군락을 이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아직 채 익지 않은 열매가 풍성하게 열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였다. 마가목은 죽은 나무를 만지기만 해도 뭔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었는데 만져보지도 못하고 뭔가에 쫓기듯 서둘러 내려온 것에 미련이 남기도 하였다.
<너덜지대 성물(性物)>
- 너덜지대에서 앞서 내려가던 일행 몇 분을 만났다. 잠시 머무는 동안 단비님께서 남근석으로 보이는 石物을 보고 “어! 거시기 잘 생겼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일행분의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단비님의 날인가 보다. 그 분의 위트 있는 수다에 지금까지 쌓인 피로를 싹 가실 수 있었다.
<대승사삼거리>
- 15;06 대승사삼거리 경유
- 이 삼거리는 대승사, 중동, 노추산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대승사 방향으로 진입하여 절골 하산길과 합류할 수 있다. 진행방향표식지를 깐 다음 대승사 방향으로 진입하였다. 대승사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절골 - 대승사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이 지점이 1코스와 3코스가 합류하는 지점이었다. 일행 분들을 먼저 하산시키고 대승사입구에서 이성대 방향으로 들어섰다. 대승사(조주선관) 경내를 둘러볼 요량이었다.
<조주선관 표석>
- 15:19 조주선관 경유
- 오늘 당초일정대로 이 성대에서 절골로 바로 하산하였다면 조주선관을 들러 불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여버린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함께 있던 일행 분들을 먼저 하산시키고 대승사로 발길을 돌렸다. 이성대 진행방향 계곡에서는 대승사는 찾을 수 없었고 초라하게 보이는 조주선관 너와집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경내를 대충 살펴본 다음 모두님들께 소개할 영상자료 몇 컷을 챙겨가지고 서둘러 하산하였다.
<조주선관 전경>
- 趙州禪關은 너와지붕의 절집이다. 남차북이(南茶北移)를 실현시킨 노추산조주선관은 차와 인연이 깊은 숨겨진 도량이다. 조주선관은 조주고불(趙州古佛)의 옛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너와집으로 지어진 차실이 있어 그 자리는 마치 선경을 보는 듯 하다. 이곳에서 차와 선의 색다른 만남을 통해 선차 체험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는 곳이다.
<절골 입구 등산안내도>
- 절골은 노추산 대성사(魯鄒山 大成寺) 절로 왕래하는 계곡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절골이라고 붙여진 지명이지만 입구에 취락이 형성되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은 절골 입구에서 이성대 방향으로 올라가면 노추산조주선원이 있을 뿐이다.
<후미팀 파이팅 장면 ...>
- 15:59 하산행사
- 회장님을 비롯한 후미팀 일행 분들이 16:00가 다 돼가면서 날머리에 도착하였다. 먼저 내려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분들로부터 환호의 함성이 터지자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하산행사장>
- 오늘 하산행사에서는 유 문 숙 그림자님께서 준비해 오신 돼지껍데기볶음 안주와 맥주가 인기를 끌었다.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푼 다음 돼지껍데기볶음 안주와 총무님께서 준비해 주신 안주로 덕담과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없이 정겨워 보였다. 하산행사 장소가 여의치 않아 간단히 행사를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
□ 산행을 마치고
- 오늘은 하산 예정시간 15:30을 전. 후하여 +, - 30분 시차 범위 내에서 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시고 안전하게 종주해 주신 모든 분들과 맛있는 안주와 맥주를 협찬하여 하산행사장을 빛내 주신 유 문 숙 그림자님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 오늘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노추산 등산일정을 소화해 내신 곽 태 화 노팅힐님께 축하와 더볼어 파이팅의 큰 박수를 보낸다. 후미팀장을 맡아 주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우 연 항님, 배 흥 원님 등 후미팀 일행 분들께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아름다운 동행을 연출해 주심에 감동 먹은 하루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노추산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접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