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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개인의 삶과 미래 교육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 바로가기
미래 교육의 요체인 ‘필요할 때 학습하는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교과 학습의 사전·사후에
개인 탐구 활동과 문제해결 학습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입력 2021.10.24.
미국의 경제 침체기, 고등교육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답은 ‘대학생이 늘었다’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엔 대학생 수가 1.9%포인트 늘었고, 2001년 경제 침체기 직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
그런데 이번엔 반대이다. 코로나19로 여행과 인구 이동이 줄고 상거래가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서 글로벌 경제 침체가 일어난 지난해, 미국 대학생 수는 줄었다. 브루킹스 자료에 따르면 61만5000명이 줄었으니 1%포인트 정도의 감소이다. 하버드 대학이 90년 만에 첫 적자를 냈다는 기사가 화제일 정도였으니 최고의 명문대들도 이번 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왜 예전과는 다를까. 원래라면 대학에 들어왔을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거 전환되면서 고등학교 졸업이 유예된 학생들이 늘었고, 이런 이유로 대학들이 신입생을 덜 뽑은 탓일 거라고 한다. 게다가 비자 발급 등의 문제로 외국인 유학생도 감소했다. 이번 경제 침체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왔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르게 교육의 전달 방식에 크게 영향을 준 탓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은 곧 해결될 문제이므로 대학생 수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를 이룬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보면,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그로부터 학생이 얻는 부가가치가 크지 않다는 시각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2018년에 미국 대학의 3분의 1 정도만이 입학 정원을 채웠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나마 대학의 수강생 상당수가 전통적인 대학생이 아니라 평생교육 이수자였다는 데이터도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 19 팬데믹이 몰아치자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됐다. 경제적으로 안 좋은 때일수록, 비용을 들였을 때 어떤 보상이 있을지를 더 민감하게 따지는 법이다. 미국에서는 일자리가 늘면서 고졸자도 직장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취업에 꼭 필요한 지식과 스킬은 MOOC(온라인 학교) 같은 대체재에서 얻으면 되는데, 이런 과정은 입학 심사도 필요 없다.
교수자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어렵고 일방적 지식 전달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아온 MOOC도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변신을 추진하는 중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학교인 코세라(Coursera)는 일부 상호작용이 가능한 ‘코세라 랩스’를 도입했다. 비대면 수업에 가상현실 기술 등을 도입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문대(community college)가 더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봄 학기에 미국 대학 전체 등록자는 4.5% 줄었는데, 전문대 등록자는 9.5% 줄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눈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데 거기에 서리까지 내린 형국이다. 글로벌 위기 요인들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힘을 발휘하는데, 거기에 국지적인 요인인 출산율 감소 추세가 더해졌다. 우리나라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은 70% 정도인데, OECD 평균은 40%를 조금 상회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올해 초에 국내 대학들에서 상당 규모의 정원 미달이 발생하자 학령인구 감소에 대처해야 한다는 걱정이 늘었다. 하지만 사실은 고등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글로벌 회의론에 한국적인 요인이 더해진 것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인구 구조에 맞춘 입학 정원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더 근원적인 과제는 교육이 각 개인의 삶에 줄 수 있는 효용성과 부가가치가 무엇인지를 21세기 관점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학교가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마사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이 교실 하나를 나누어 쓰는 학교에서 마사이족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전에는 평원에서 소 떼를 몰아야 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서 골칫거리였는데, 어느 날 국제원조기구가 와서 학교 앞마당에 우물을 파준 뒤로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했다. 수업 후에 아이들에게 물을 한 통씩 퍼가게 했더니 쓸데없이 셈이나 가르친다는 부모들의 불평이 쏙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 학교에 가면 귀한 물이 생기는구나!’학교가 아이와 그 가족의 삶까지 향상시킨다는 증거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수백 년 동안 학교의 주요 기능이었던 지식 전수만으로는 더 이상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할 수 없다. 유튜브와 MOOC에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부터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동영상까지 널려있는 시대 아닌가. 학교에 가면 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정도의 선명한 답은 뭘까. ‘필요할 때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식 범람의 시대에 어차피 다 아는 게 불가능하다면, 필요할 때 학습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만 잘하는 아이를 키우자’는 주장도 종종 듣는다.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왜 과학 공부를 강요하느냐는 얘기도, 또 그 반대의 항의도 빈번하다. 각 영역이 잘 분리되어 있고 각각이 영속적이던 시절에는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때는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하고, 그 분야로 진출하면 됐다. 2018년에 미국과 캐나다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특정 직역의 전문성보다는 문제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는 답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서의 초·중·고는 특정 분야 전문가를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소양이나 역량 교육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준비하도록 돕는 기능이 중요하다. 아이가 살아갈 미래 세상은 지금과 다를 것이므로, 지금 희망하는 분야가 사라져도 다른 분야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이런 기초 체력에 해당하는 교과목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체계가 설계돼야 한다.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 사례로 자주 소개되는 프랑스의 에콜42는 아무런 강의 제공 없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팀 프로젝트로 해결하게 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필요한 지식은 온라인에서 얻고,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마다 레벨이 하나씩 오르고 레벨 21이 되면 졸업한다. ‘문제해결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
미래 교육의 요체인 ‘필요할 때 학습하는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교과 학습의 사전·사후에 개인 탐구 활동과 문제해결 학습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 고(高)성취 학생과 저(低)성취 학생이 혼재한다는 필연적인 문제는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혼합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학생 각자의 학습 속도와 이해도를 인공지능(AI) 방식 학습 시스템이 파악하고 적절한 진도를 제안하는 ‘개인별 최적화’된 형태로 구현하는 것이다.
집과 도서관 등 장소 구분 없는 교육 시스템 위에서 모두가 배우는 시대가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학습 경험은 이런 거대한 흐름을 조금 앞당기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미래사회 교육 컨퍼런스
조금 다르게 보면,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그로부터 학생이 얻는 부가가치가 크지 않다는 시각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취업에 꼭 필요한 지식과 스킬은 MOOC(온라인 학교) 같은 대체재에서 얻으면 되는데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학교인 코세라(Coursera)는
문대(community college)가 더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눈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데 거기에 서리까지 내린 형국이다.
학교에 가면 ‘필요할 때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답이 될 수 있다.
*‘하나만 잘하는 아이를 키우자’는 주장 2018년에 미국과 캐나다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특정 직역의 전문성보다는
문제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 사례로 자주 소개되는 프랑스의 에콜42는 아무런 강의 제공 없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팀 프로젝트로 해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