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수업36 #시간을판다는의미 #생존을위한인내 #몸값 #만족불가능
나) 이익은 적고 손해는 많다
8:76 어떤 이들은 자신을 팔아
남들의 노예가 되지만
여전히 가난하여 집도 없이
아내는 숲 속 나무 밑에서 출산한다네.
#시간을판다는의미
인간의 삶은 기구한 면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을 팔아야 합니다. 유한한 삶의 시간이란 결국 수명이니,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수명을 파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판다는 것, 그 의미를 곱씹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시간을 파는 이를 고용인이라고 하고, 그 시간을 사는 이를 고용주雇用主라고 표현합니다. 한자를 보세요. 주인 주자가 붙어 있습니다. 만약 1시간을 팔았다면 그 1시간 동안 시간 그리고 나의 주인은 바로 고용주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내 시간의 가치에 따라 고용주와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노예도 능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논전에서 '자신을 팔아 남들의 노예가 된다'는 표현이 꼭 영구적인 노예, 노비 등의 관계를 형성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 신분 제도는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이 시간을 사고 파는 행위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임시적 노예, 피고용인, 직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존이 온전히 보장되기 전까지는 그래야 합니다. 기구한 면이 있습니다. 분명.
8:77 어떤 이들은 생계비를 벌겠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나가고
어떤 이들은 이윤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노예로 만드네.
#생존을위한인내
자신이 교육하고 양육해야 하는 이들에게 불만족과 결핍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질병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계가 극락정토라면 상관 없습니다. 원래 만족의 세계이니까요. 하지만 사바세계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발버둥 쳐야 하며 그렇기에 참고 인내해야 하는 태도가 디폴트인 세계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어렸을 적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다? 불만족에 대한 내성이 없는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사람구실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어떻게 될까요? 온실 속 화초는 결코 태풍을 견디지 못합니다. 사실 산들바람도 버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남의 돈 벌기가 쉽냐? 더럽고 치사하지...'
이런 말이 있죠? 시간을 판다는 것은 이 꼴 저 꼴을 다 보고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입니다. 사바세계는. 그런데 결핍에 대한 내성이 없는 이들은 이 꼴 저 꼴을 볼 것 없이 조금만 못 견디면 도망갈 수 있습니다. 사람구실을 못하더라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좋게 말하면 의지할 곳이 있어서 입니다. 안 좋게 말하면 수명을 빼앗을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송덕사에는 길 고양이가 많습니다. 관찰해보니, 고양이도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영역에서 내보내더군요. 그리고 들어오면 경쟁자처럼 대합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면 새끼라도 때려서 내쫓더군요. 전 그게 건강한 태도로 보였습니다. 어차피 스스로 생존을 견디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테니까요.
#몸값
시간을 팔아도 생존이 안정되지 못하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첫째, 몸값이 낮기 때문입니다. 둘째, 몸값보다 탐욕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몸값이 낮다는 것은 수입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사회가 살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의미는 버는 돈은 적은데, 써야 하는 비용은 점점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분명히 한국 사회는 이런 흐름입니다. 성장은 둔화되고, 임금은 정체되어 있으며, 인플레이션은 매우 높습니다. 이전보다 생존이 쉽지 않습니다.
몸값보다 탐욕이 커지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을 무조건 제공하는 문화는 질병의 씨앗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탐욕을 부풀리기 때문입니다. 비싼 운동화를 가지고 싶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불공정하게 그냥 얻는 습관이 들어버리면, 경제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형성됩니다. 불공정거래가 습관화 되고,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버는 것이 없거나, 적은데 써야 하는 마음의 탐욕을 부풀대로 부풀어 버립니다. 이 경우 몸값이 어느 정도 높아져도 생존이 어려워집니다. 몸값이 탐욕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몸값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희망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에 맞게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전문화 해야 합니다. 더불어 스스로의 태도를 가다듬어 인간관계도 가꾸어야 합니다. 현 시점에만 생존을 위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이런 어려운 조건들을 갖춰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별다를 것 없습니다. 인간이 숲에서 약자로 살아가던 원시적 시기에도 똑같았습니다. 생존을 위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에 대한 전문화, 더불어 적을 줄이고 내 편을 늘리는 관계의 기술은 언제나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언제나 몸값은 높아졌죠.
생존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남의 돈 벌기 쉽지 않다는 것, 거래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 등을 반드시 교육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난 새끼를 영역 밖으로 내몰아 버리는 그 고양이가 제 눈에는 지혜로워 보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새끼를 위해서도.
8:78 어떤 이들은 애욕 때문에
도둑질 같은 짓을 하다 붙잡혀
사지를 잘리거나 화살을 맞거나
창에 찔리거나 화형을 당하네.
#만족불가능
'거래한다'
혹시 안 좋은 뉘앙스처럼 느껴지시나요? 관점을 바꾸세요. 거래한다는 것은 인과에 적절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 속에서 다시 공정과 불공정이 나뉠 것입니다. 거래를 배우고, 공정함을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인과의 지혜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서울대를 가기를 희망하거나, 기도를 한다?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눈이 먼 그 마음이 만족되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나 만족이 되도 문제입니다. 이 우주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보존의 법칙은 비물질계에도 적용이 되는데, 대가를 치루지 않은 희망이 어떻게 만족되었을까요? 주변에서 빼앗아 온 것입니다. 누군가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타인의 수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시간과 수명 그리고 돈의 본질을 곱씹어 볼 수록 이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옛 스님들이 업보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기를 강조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도를 이루는 것? 물론 좋은 일입니다. 멋진 목표입니다. 하지만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망상입니다. 수행해야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는 자가 수행을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는 이가 도대체 여유가 어디 있어서 수행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하고 싶다면 사람구실부터 해야 합니다.
사람구실도 쉬운게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숙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되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육체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배우고,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건강과 활력을 조율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어야 성인이 된 것이고,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이라도 책임지지 못하면 아직 사람이 아닙니다. 반쪽짜리죠.
항상 이 순서를 강조합니다. 첫째, 사람되다. 둘째, 사람구실하다. 셋째, 수행하다. 넷째, 깨침을 완성하다. 기반 공사도 안하고 1층, 2층도 안 지은 채 옥상에 멋진 루프탑 카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망상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기초 공사부터 다시 점검해보고 당장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첫째도 둘째도 항상 언제나 '기본기'가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마시길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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