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에서 우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지져 분한 밀집된 잡목과 씨름하며 지맥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꺾어간다.
▲밀집된 능선에 붙어 좌측으로 향한다.
▲능선 따라 가는데 좌측에 묘지가 있어 그 위로 오르려 하였으나 잡목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능선으로 올라가 진행한다.
▲가시나무 저항을 받으면서 봉우리로 올라간다.
▲90m봉에서 지나온 106.1m봉을 마루금을 뒤돌아본다.
▲사산리 깊은골, 절골과 멀리140.7m봉, 80.6m봉 90m봉에서 바라본 부여군 세도면 사산리(沙山里)의 절골과 깊은골의 모습 사산리의 마을 뒤로는 언덕지형이 있고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며 백제시대에는 가림군(加林郡), 신라시대에는 가림군(嘉林郡), 고려시대에는 임천군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백암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사랑리, 산사리와 석성군 현내면의 포사리(浦沙里) 일부를 병합하여 사랑과 산사의 이름을 따서 사산리라 하고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목골, 사랑리, 성림촌, 저사, 저호, 산사등이 있다. 목골은 사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마을에 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림촌은 마을에 성림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호는 금강가에 있는 마을로 호두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산사는 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 사산리사지(沙山里寺址) 또는 백석사지(白石寺址)라고 부르는 절터가 있으며 산사와 저호 두 마을을 통틀어 저사라 일컫는다. 사산리 1구 성림사지에 우적탑(牛積塔)이라고 불리는 탑이 묻혀있다고 한다.
▲90m봉에서 조망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살짝 꺾어져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는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고 가끔 시그널이
반겨준다.
▲무명봉에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널려 있다.
▲안부를 지나 올라가는데 잡목의 저항으로 우측 벌목지 묵은 임도로 탈출한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지토리 쪽의 축사 부여의 산길에는 유난히도 축사들이 많이 보인다.
▲우측에 있는 지토리 축사를 다시 한번 더 본다.
▲잡풀이 우거진 묵은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벌목지 봉우리로 임도 따라 올라간다.
▲51번 송전탑에서 106.1m봉 가는 능선을 뒤돌아본다.
▲우측의 지토리 축사.
▲장암면 지토리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