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봉이 가로 막고 있어 우측 사면으로 끝까지 올라간다.
▲암봉 우츠 소나무에 시그널이 보이고 가파르게 내려간다.
▲암봉 우측으로 길이 보이고 따라가니 휴양림에서 가리산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이 보인다.
▲휴양림 고개에서 올라오는 가리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크계단을 만나 가파르게 올라간다.
▲가리산 정상 맞은편 봉우리에 가리산 강우레이다
가리산에서 바라 본 무쇠말재 방향의 능선 모습과 강우관측 레이더: 2016년 6월 15일에 개소식을 한 가리산 강우관측 레이더는 해발 994m에 설치되어 있으며 북한강 유역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에 대한 집중호우와 돌발홍수 등에 대해 관측 한다고 한다. 약 39개월의 공사기간과 24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가리산 강우레이더'는 태풍, 기상변동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상레이더와는 달리 반경 100㎞ 이내의 강우를 집중 관측한다고 한다. 2003년 3월 임진강(강화), 2009년 6월 비슬산(청도), 2011년 11월 소백산(단양), 2014년 10월 서대산(금산), 2015년 12월 모후산(화순)에 이어 여섯 번째라고 한다.
▲가야할 지맥능선
▲14년만에 다시 찾아 왔다. 좁았던 정상주변을 데크로 잘 정비해 놓았고, 정상석도 바뀌었다.
▲가리산(加里山1051m):가리산은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두촌면과 춘천시 동면·북산면에 걸쳐 있는 산. 태백산맥의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속하는 산으로, 북쪽에 매봉(800m), 서 쪽에 대룡산(大龍山,899m), 동쪽에 가마봉(可馬峰,1,192m) 등이 솟아 있다. 이 산의 동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水系)는 자은리 부근에서 여러 수계를 합하여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 강(洪川江)을 이루고 남서쪽으로 흐르며, 두촌면의 역내리를 지나 철정리에 이르러 서석면 과 내면의 경계인 응봉산(鷹峰山, 1,103m)부근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내촌천(乃村川)과 합 류하여 화양강(華陽江)을 이룬다. 북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는 물노리에 이르러 소양호로 흘러들고, 서쪽 사면으로 흐르는 수계도 품안리에서 역시 소양호로 흘러든다. 남쪽 사면으 로 흐르는 수계는 성산리 부근에서 화양강으로 흘러든다. 산 이름인 가리는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둔 큰 더미'를 뜻하 는 순우리말로서, 산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고깔 모양으로 생긴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강원 도에서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는 산으로 알려져 있고, 제1봉 남쪽에서 홍천강이 발원하여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수원(水源)을 이루는 곳이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속하는 가리산은 능선이 완만한 편이나, 정상 일대는 좁은 협곡을 사이에 둔 3개의 암봉으로 이루 어져 있으며 강원 제1의 전망대라고 할 만큼 조망이 뛰어나, 소양호를 비롯하여 북쪽으로 향로봉에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힘차게 뻗어나간 백두대간 등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 이 한눈에 보인다. 1995년 가리산 자연휴영림이 개장되어 통나무집·야영장·체육시설 등 편 의시설이 있다.」정상 부근에서는 소양호로 갈 수 있는 가삽고개가 있는데, 그 형태가 계단 식 분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 출처 : 두산백과 두피디아
▲가리산전투 : 가리산은 홍천,춘천,인제를 잇는 전술적 요충지로 1951년 당시 인민군 최강 부대인 제6사단 1,500명이 방어 하고 있었다. 이 곳을 미 해병대 제1사단에 배속된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3월19일부터 공격하여 3월25일 총공격으로 가리산을 빼앗는데 이후 이 어진 종공군의 춘계 2차 공세를 맞아 미2사단 38연대 3대대는 5월17~19일 벙커 고지 일 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여 사수한다. 미국의 진지 사수로 종공군은 홍천 진출이 막히면 서 춘계공세는 끝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경향신문에 실린 ‘중국이 본 한국전’ 기사는 이 전 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중공군의 제 2차 춘계공세로 공격 개시 5일 만에 끝나고 미 8 군도 재 진격을 개시 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국군(중공군) 제 3사단을 해체 의 치욕으로 몰고 가게 했던 강원도 현리 전투와 미 제 2사단 38연대 3대대의 사수로 미 제 10군단이 전선을 고수 할 수 있었던 가리산 전투 ‘벙커 고지 전투’는 좋은 대조를 이룬 다고 소개 했다.
▲당겨본 2봉과 3봉 ▲가리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현리(泉峴里)의 모습: 천현리(泉峴里)는 홍천군 두촌면 가리산의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산간지역으로 자연마을에는 평내, 새말, 모로골, 경수, 장여울 등이 있으며 장여울은 ‘홍천강의 긴 여울 옆에 있는 마을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장여울은 장탄(長灘)이라고도 부른다. 평내는 마을 앞에 큰 냇물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평천(平川)이라고도 부르며, 천현리는 샘재고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샘재 또는 천치(天峙)라 하다가 천현리가 되었다. ▲2봉을 거쳐 새덕이봉을 거쳐 등잔봉-홍천고개까지5.7km를 더 가야하나 홍천고개에서 교통도 불편하고 시간도 늦을 것 같아 힘도 빠져 가리산 휴양림으로 하산한다. 오늘 비록 소기의 목적 달성은 못했지만 후회나 미련은 없다. 가리산 정상을 밟았으니 이것만으로도 내갠 감사할 뿐이다. ▲가리산(加里山:1,051m): 멀리서도 솟은 봉우리가 ‘뫼 산(山)’자처럼 세 개의 암봉으로 된 가리산은 남쪽에서부터 1,2,3봉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1봉이 가장 높은 정상이고 1등삼각점이 있다. ▲데크옆에 있는 1등삼각점(내평11/1988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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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봉에 있는 큰바위 얼굴의 유래: 가리산 큰바위얼굴은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인 조선조 영조대왕 후 반기, 이곳 가리산이 소재한 두천면 천현리에 OOO씨 성을 갖는 OO이라는 선비가 있었는 데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달하여 공부를 잘했고, 틈틈이 가리산 정상에 올라 휴식과 책을 읽고 호연지기를 키워왔으며, 스무살 되던 해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판서까지 오르는 벼슬을 했다고 한다. 그후 OOO판서가 앉아서 공부하며 호연지기를 키우던 가리산 제2봉의 암벽이 조금씩 사람 얼굴을 띠며 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산 큰바위 얼굴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리산 큰바위 얼굴의 소문이 전해지면서 지역에 사는 많 은 청년과 선비들은 OOO판서가 했던 대로 가리산 제2봉에 올라 학업과 휴식과 호연지기를 키우면서 많은 이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형들이 가리산 큰바위 얼굴을 찾아 기도하 면 수능대박을 얻는 다는 큰바위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형들이 가리산 제2봉에 올라 큰바위 얼굴에 전하며 기도하 는 진풍경 속에 많은 등산객이 찾는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가리산정상 1봉에서 보는 2봉과 3봉. 지척의 2, 3봉이지만 패스를 해야겠다, 왜냐? 기진맥진해서 바로 휴양림으로...
▲데크계단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