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가족이라는 자애롭고 숭고한 단어가 더 있을까 싶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모든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하고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가족 내 사랑하는 가족. 듣기만 하여도 애틋한 감동이 샘솟고 내 가족을 위해 무엇인들 못하랴 하는 힘이 저절로 가슴에서 솟아난다.
험난한 세상살이에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으랴? 화해와 사랑으로 꽃피운 사랑의 금자탑이며 삶의 양식을 잉태해 주는 영혼의 양삭 처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성당에서 운영하는 시니어대학에 서둘러 상쾌한 마음으로 나간다.
성당 어르신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활기차고 즐거움을 주기 위한 신부님의 설립 목적과 신앙이 함께하는 공동체이며 또한 진심으로 헌신하는 봉사자 선생님과 함께하는 봉사 단체이다.
반드시 무엇을 배운다는 목적보다 노인 어르신들로 부터 서로가 주고받는 인간의 살아온 경험을 배우고 그분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욕심 없이 살아온 지혜를 배우며 나의 신앙이 성장해 가고 있다. 이 분들은 몸은 비록 늙었지만 가족과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해온 모두가 인생의 진한 경험자들이며 우리의 인생 선배 들이다.
이 시니어대학에 중증 치매 할머니가 열심히 즐겁게 다닌다. 그 자매님에게는 따님 여러분과 성실하고 인자하신 영감님이 계신다. 가정적으로 하나도 빠짐없는 행복한 할머니이지만 어쩌다 천형의 형벌인 치매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 집도 혼자서는 못 찾아간다. 따님 여럿이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기에 정성을 다하여 효도하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 반원 모두는 가족 사랑의 귀중함을 몸소 배우며 지낸다. 따님들은 결혼하여 각각 다른 곳에 살지만 어머니가 시니어대학에 오시는 날은 서로 순번을 매겨 어머니를 모시고 와 하루 종일 옆에서 시중들고 식사 때도 옆에서 돌봐드린다.
어머니가 성당 시니어대학에 오는 날만이 유일한 바깥 외출을 하는 날이기에 이날만은 서로가 어머니를 모시고 와 즐겁게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몸은 비록 병에 걸렸지만 세상 어느 열 아들 가진 어머니에 부럽지 않은 효도를 받으며 시니어대학에 다니는 이분을 보면서 최소한 내가 정의를 내리는 자식 도리란 부모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고 기쁘게 해드리는 자식들만이 효도의 첫째 조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 그것은 자기들 인생의 문제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을 다 갖추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사다. 그 자매님은 남편 복도 있으시다. 성실하고 인자해 보이는 남편은 가끔 마나님 모시러 와서 우리 교실을 방문해 노래 시간에는 우리와 함께 노래도 부르며 음정도 가사도 틀리게 부르는 마나님의 모습을 빙긋이 미소 지으시며 바라보신다.
흔히들 매스컴에서 장애인이나 병고에 시달리는 식구가 있는 집안을 소개할 때 몹시도 푸대접하고 괄시한다는 좋지 않은 뉴스를 방영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 세상에 그들을 괄시보다 진심어린 사랑으로 다독여 주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세상에 그늘에 가려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 이들 또한 우리들의 가족이며 이웃이다.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이며 불행한 것은 아님을 받아드리며 그리고 그 불편도 우리 사회가 만든 것이기에 특별한 배려를 통해 풀어 나가야할 과제이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바람 같고 안개 같고 먼지 같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 늙는 데는 빈부 격차도 잘나고 못나고도 없다.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기능이 하나씩 소멸되며 사라지는 과정이다. 시니어대학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각가지 사연도 많다. 이분들에게서 힘들게 살아온 인생 여정을 들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신께서 나에게 주신 현재의 생활에 무한 감사하며 범사에 만족하는 생활 태도 역시 고마운 축복이다.
가족의 힘은 강철보다 강하고 사랑은 녹지 않은 흰 눈처럼 맑고 깨끗하고 숭고하다. 이들 모두 황혼을 저만치 뒤로하고 오로지 신앙과 삶의 겸허함으로 노년을 살아가는 인생의 참 스승님이고 훈장님이다.
오래전 나의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로 나를 부르시기에 어머니 만나러 친정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시기에 핀잔만 주고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불효. 이제야 가슴 깊이 후회된다. 얼마나 병석에서 보고 싶은 큰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반가운 마음에 이말 저말 하시는 것. 왜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쑥스러워 못해 드렸던 얄밉고 철없던 딸. 이제야 가슴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부모님 살아생전 잘해 드리라는 그 명언. 진실된 말이 내 귓전을 때리며 회한의 눈시울이 앞을 가린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거실 베란다 창밖은 우장산의 싱그러운 녹음으로 출렁이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훈풍이 미소 짓고 있다. 어제는 어버이날이기에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엄마 생각이 더욱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엄마 살아생전 일찍 철이 들었었다면 좀 더 잘해 드리며 포근한 엄마의 넓은 바다에서 우리 두 모녀가 행복하게 유영하였을 텐데. 그 기나긴 후회와 애증의 세월 속에 그리움에 목이 메여하는 엄마의 강은 언제까지 흘러갈지?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 삶 자체가 생로병사의 고행길을 가야만 하는 숙명인 것을 누구나 기필코 가야만 하는 그 길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 길을 묵묵히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도달하는 인생길이 때로는 험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때로는 따듯한 햇볕이 감싸 안을 때 우리는 감사하며 순종하며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이 있기에 그 가정의 행복한 문에 들어간다.
“가족”이란 가장 소중한 삶의 버팀목이며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숭고한 “사랑 탑”이다.
호명자 로사리아 우장산성당 성도 문학저널 문학상, 강서문학 본상 수상 <저서> 새벽에 뜨는별 내 마음의 소나타 황혼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