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천재 예술가를 낳는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의 피라밋은 위대한 예술가를 확정해준다.
칸딘스키는 추상화를 실증적으로 체계세운 화가로 평가된다. 인간사회의 공통적인 심적 정서적 바탕을 추상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칸딘스키는 법률가 지망생이었다. 45세가 지나 겨우 추상화풍을 정립했다. 칸딘스키가 왜 그렇게 위대하지?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미술사의 피라밋이다. 역사의 피라밋이기도 하다. 기독교개혁에서 도식을 선보인 일이 있지?
피라밋을 수평으로 삼등분한다. 맨 위의 삼각형을 1이라 하자. 가운데 사다리꼴은 2, 아래 쪽 사다리꼴은 3이 되겠지? 1번 삼각형의 꼭지점에 내적 필연성이 있다.
칸딘스키는 일찍이 힌두교의 경전이나 불교에 심취했다. 그리고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면서 “그림에서 대상이 필요한가”라는 화두를 만든다. 현대물리학에서 물질이라는 것이 절대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자신의 작품에서 색면 만으로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한다.
땅거미가 질 무렵 칸딘스키는 거꾸로 걸린 그림을 본다. <집이 있는 그림>에서 집도 그림도 없고 밝은 색면만 보였다. 그것을 재구성한 것이 1910년의 추상수채화이다. 이어 칸딘스키는 내적필연성을 주장한다.
그림이란 개성과 스타일을 바탕으로 순수성과 영원성이라는 불가사의한 필요조건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것이 내적필연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피라밋의 정점이다. 불교의 인식론과 양자물리학, 음악과 내적필연성이 조합된 것이다.
칸딘스키는 말하고 있다. “나에게 핵분열은 세계의 분열과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두꺼운 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흐물거리고 불확실하며 흔들흔들했다. 대기중에서 돌맹이 하나가 녹아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피라밋의 정점에서 볼 때 제1 삼각형의 한 쪽 밑변에는 바우하우스의 학생과 다리 그룹의 화가가 있다. 후계세력으로 격렬한 추상행위를 내세우는 앙포르멜이 포함될 수 있다. 다른 한쪽의 밑변에는 반대세력이 있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대표적이다. 제1의 삼각형 안에는 내적필연성의 동조세력과 반대세력이 토론과 비평, 논쟁을 벌인다.
제2의 사다리꼴 한쪽에는 기자 및 저널리스트가 있다. 격전의 현장은 저널에 보도된다. 다른 쪽에는 사상이나 어록, 또는 보도기사를 인용하는 평론가나 이론가가 있다.
제3의 사다리꼴에는 대중이 있다. 역시 동조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나뉜다. 무관심한 대중은 가운데서 부유하다가 이쪽저쪽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머리속에는 칸딘스키=뜨거운 추상이라는 단순화한 등식이 입력된다. 입력이 반복되면서 등식은 상식이 된다. 그 상식의 피라밋에서 미술사는 취재, 기술, 평가, 보존된다.
칸딘스키의 피라밋이 커진 것은 후속세력과 대중의 상식이 착실한 저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 피라밋을 크게 만든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칸딘스키가 변화와 발전의 흐름을 표방했다는 것이다. 마치 연줄을 다루듯 그는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가늠했다.
추상이라는 것은 새로운 언어였다. 그래서 먼저 대상성이라는 연을 높이 하늘에 띄운다. 대상성이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미술의 언어를 일컫는다.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면 이게 무슨 그림이야 라는 말이 나오지? 도대체 뭘 그렸는지 알아볼 수가 있어야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하고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이 그림은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다. 먼저 즉흥곡이라고 악보같은 제목이 붙어 있지? 미술과 연관은 노젓기라는 제목에 있다.
화면에는 배를 암시하는 빨간 아치형의 선이 있다. 그러고 보면 노 젓는 사람은 그리다만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제 알겠지? 이 그림은 석양에 노 젓는 사람처럼 어느 부분만이 강조되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추상화같다면 그것은 미적분 함수를 닮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대수함수는 <집이 있는 그림>이다. 한번 미분하여 이 <노 젓기>가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한번 미분하면 뭐가 나올까. 노 젓기를 다시 거꾸로 놓고 석양에 보자.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두 번째 미분의 결과로 나올 추상화이다. 칸딘스키는 그렇게 대상성에서 비롯하는 추상화를 다졌다. 조형요소에 의한 추상이 대중에게 이해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던 것이다.
대상성이라는 이름의 연 이야기를 했었지? 하늘을 날고 있는 연은 쉽게 알아볼 수 있으니까 친밀하게 보아준다. 연에 꼬리와 날개를 달았다. 꼬리는 음악성이었다.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승화시키고 정제시킬 수 있다고 믿어졌다.
19세기를 정점으로 잘 정리된 음악사의 흐름에 편승할 수 있었다. 날개는 정신성이라 할 수 있겠지. 정신을 강조하여 기계문명에 대한 인류의 자부심을 만족시켰다. 물론 그 인류의 대부분은 보통사람이었다. 결국 칸딘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 누구였을까. 일반 대중이었다. 대중의 상식이었다.
추상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있다.
많은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추상을 부정했다. 예술에 순수한 추상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림은 어떤 시각적인 세계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논의는 좋은 예술이란 추상이라는 것이다. 예술은 어느 정도 형식적 측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 형식이 추상을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고대의 비구상 장식화는 모두 제멋대로 얽혀있는 이를테면 덩굴식물 등을 형식화한 것이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표현적 추상이라고 부른다. 그에 대하는 개념이라면 기하적인 것이 있을 것이다.
표현적 추상의 사상은 19세기 말까지 소급된다. 칸딘스키는 1911년에 의식적으로 추상작품을 창조했다.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 등의 일상적인 주제를 벗어나 음악의 상태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색채가 있었다.
칸딘스키는 회고록에서 태초에 색채가 있었다라고 할만큼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추상형태들에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강도를 부여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이 색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하적 추상은 역시 몬드리안의 전용특허라 할 수 있다.
도판: 칸딘스키 작품-네이버 이미지에서 캡쳐